눈물나면 손바닥 피멍들게 공만 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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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안송이, 충남 연산중 1학년)는 LPGA에서 활약하고 있는 김미현 선수를 좋아하는 구력 1년차의 ‘프로골퍼를 꿈꾸는 소녀’이다.

세계적인 프로 선수가 꿈인 송이는 하루에 2~3시간씩 매일 같이 연습을 한다. 그러나 송이는 18홀짜리 정규 코스를 나가본 적이 없다. 고작해야 인근 군부대 체력단련장인 9홀 골프장을 작년 9월에 3~4회 나가본 것이 전부다.

송이는 여느 프로 골퍼 지망생들처럼 부모의 재력으로 골프를 하는 게 아니다. 든든한 후원자가 있어서 골프를 배우는 것도 아니다. 송이는 엄마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아무리 기억하려 해도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12살 된 동생이 엄마 아빠가 보고 싶다고 울면 속상해서 손바닥에 피멍이 들도록 공만 쳐요. 그러면 모든 게 잊혀져요. 또 공을 치다보면 하얀 달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아 나도 그만 눈물이 나오죠. 눈물을 멈추게 하려고 자꾸 공을 치다보면 달이 없어져요.”

송이가 골프를 하게 된 사연은 이렇다.

송이가 7세 되던 해 송이 어머니는 4살 난 남동생과 수족을 못 쓰는 아버지를 두고 집을 나갔다. 남매를 키울 수 없는 아버지는 하는 수 없이 송이와 영민이(연산초 5학년)를 ‘계룡학사(원장 유창학, 49세)’에 맡겼다. 송이는 동생과 함께 7살 때부터 쭉 계룡학사에서 생활했다. 그러던 중 작년부터 안철수(41세) 코치의 권유로 골프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충남 논산에 있는 계룡학사는 1999년 골프부를 창단했는데, 아이들이 부모 없는 설움을 달래기도 하고 프로골퍼가 되면 직업으로서도 괜찮을 것 같아 주변의 후원으로 창단했다. 계룡학사에 있는 아이들은 75명, 이중에 골프부는 송이를 비롯해 여자아이가 3명이고 남자 아이가 7명이다. 초등학생이 4명, 중학생 3명, 고등학생 3명이다.

처음에는 전국 각지의 후원자들도 꽤 있었다. 그러나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서인지 재작년부터는 발길이 뚝 끊겼다. 지금은 아예 후원이 전무한 상태인지라 18홀 정규코스 라운딩은 아예 생각도 못하고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한국 갤러웨이에서 시합구를 보내주고 나이센에서 클럽을 협찬해주고 있다. 그런데 골프는 그물망이 쳐진 연습장에서 연습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필드 라운딩을 해봐야 하는데 그 비용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가까운 골프장이 스폰서가 되어주기를 은근히 기대만 하고 있는 실정.

안철수 코치는 41세 된 노총각이다. 광주가 고향인 그는 지난 2000년에 계룡학사 골프부를 잠시 맡게 되었는데, “그때는 1~2달 정도 있다가 적당한 코치가 생기면 그만두려고 했어요. 그러나 아이들이 어찌나 따르는지 보따리를 싸려고 몇 번이나 마음먹었다가 아이들 눈망울이 생각나 차마 떠나지 못하고 있지요.”

생계가 보장되지 않는 이곳에 안철수 코치 같은 사람이 아니면 있을 사람이 없다. “나야 몸으로 때우면 그만인데, 아이들이 필드 라운딩을 못하고 연습장에만 노상 있으니 내 맘이 답답해요”하며 기자에게 하소연한다.

기자가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무엇입니까?”하고 물었다. 안 코치는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진심이 담긴 지속적인 관심입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기자는 어떤 용품이 필요한가를 물었는데, 안 코치가 동문서답한 것인지 기자가 질문을 잘못한 것인지 모르겠다. 기자는 필요한 용품이 무엇인가 재차 질문했다.

안 코치는 “다음주 15일부터 춘계 전국 중고등학교 골프대회가 열리는데 송이가 처음 출전합니다. 그런데 규정상 상의는 흰색 티셔츠, 바지는 곤색 면바지를 입어야 하는데 아직 준비를 못했어요. 요즘에 경제가 어렵다 보니까, 손을 벌리기가 민망합니다.”

최경주 선수를 좋아한다는 임준혁(논산공고 1학년)군은 아이언이 장기이고 컴퓨터 게임이 취미. 구력 1년 6개월의 박정재(연산중 2학년)군은 부모 생사를 모르지만 꿋꿋하게 살아가는 멋쟁이. 퍼팅이 장기인 구력 4년차인 김연섭(논산공고 1학년)군은 여학생들로부터 인기가 좋다고 한다.

10명의 계룡학사 골프부 선수들. 이들에게는 물심양면의 후원이 절실하다. 특히 인근 골프장들의 스폰서가 꼭 필요하다. 금방 발이 커지기 때문에 골프화, 장갑도 필요하다. 그러나 생색내기 후원은 사절한다고.

송이를 데리고 가까운 시장에서 옷 한 벌을 사가지고 돌아왔다. “안녕하세요! 와~ 이쁘다”하며 달려드는 초롱초롱한 눈망울들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어 얼른 되돌아왔다.

계룡학사 골프부는 골프가 ‘희망’ 그 자체이다. 공을 치는 동안은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어 좋다고 한다. 이들은 프로골퍼가 되기를 원한다. 프로골퍼가 되면 생사를 모르지만 부모님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고 있다. 또 프로골퍼가 되어 돈을 많이 벌면 동생의 눈물도 그치게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골프채를 잡는다.

“부모 없이 자수성가하려면 골프채를 잡는 길밖에는 없다”며 손바닥이 닳도록 열심이다. “그래도 우리는 이렇게 골프를 배울 수 있어 행복해요”하며 송이는 연신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친다.

아무리 어려운 경제이지만 이들에게서 ‘희망’인 골프채를 놓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들에게는 ‘진심이 있는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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