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판 속에서도 하기환과 한국일보는 싸우고…

이 뉴스를 공유하기


1992년 4월29일 폭동 당시 LA 한인회는 오늘날 처럼 한인회장 선거 후유증으로 제구실을 하지 못할 때였다. 미증유의 폭동 사태를 만난 한인사회는 구심점이 없었다. 한인사회를 대변해야 할 한인회가 표류하는 바람에 ‘꿩대신 닭’으로 당시 한인상공회의소 회장인 하기환씨가 LA총영사관의 주선 등으로 4.29 폭동범교포대책위원회( 후에 한미구호기금재단으로 개명)를 맡게 되었다. 처음 본부를 총영사관에 설치했다.

이 당시 한국정부와 적십자 등 각계 단체와 국민들을 비롯해 세계 각국에는, 그리고 미국내에서 성금이 답지했다. LA에서도 라디오 코리아, 중앙일보사, 한국일보사를 포함한 여러 언론사들이 성금 모금에 나섰다. 이때 국내외서 모인 성금이 무려 1,000만 달러에 이르렀다. 미주에 한인사회가 형성된 이후 이처럼 엄청난 성금이 모인 것은 역사이래 없었다.
 피땀 흘려 이룩한 업소가 잿더미로 변해 하루아침에 거지가 된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구호가 시급했다. 그래서 여러 곳에서 거두고 있는 성금을 단일화 해서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 났다. 언론사 등에서 모금한 것이나 여러 단체 기관등에서 모금한 것을 한미구호기금재단으로 단일화 하기로 논의가 됐다. 그러나 유독
한국일보미주본사(회장 장재민)는 단일화 방법에 반대
했다.
 따로따로 성금을 분배하자고 했다. 한국일보측은 ‘우리가 모금한 것은 우리가 책임지고 나눠 주겠다’면서 유의영 박사를 자체 성금관리위원장으로 선정해 피해자들에게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폭동 피해자들은 하기환씨측에도 가고 한국일보사측에도 가는 등 혼선이 일어 났다.
 오늘날 하기환씨와 한국일보 장재민 회장간의 갈등도 이 당시 서로간의 알력도 기인되고 있다. 폭동 당시의 성금 단일화 분쟁은 한인사회가 단합하는데도 큰 장애를 가져 왔다. 한국일보측과 하기환씨측으로 각기 갈라 졌기 때문이다.

 특히 엄청나게 모인 성금을 두고 ‘당장 피해자들에게 배분하자’는 측과 ‘기금을 보관해 장기적 계획을 세우자’는 논란 등과 함께 폭동성금관리를 두고 기나긴 시간 동안 추태를 보인 것은 두고두고 LA한인사회의 치부로 남겨지고 있다. 당시의 추문과 의혹의 난장판은 고국에서 “똥포”로 부를만큼 ‘부정부패의 극치’였다.
 원래 폭동성금은 피해자들에게 배분되고 또 이런 저런 명목으로 없어지고 해서 약110만 달러 정도가 남았다. 더 이상 쓰다가는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폭동을 영원히 잊지 말자’는 취지로 장기적 사업의 일환으로 생각해 낸 것이 기념관을 위한 건물 구입이었다. 폭동 후 2년 가까이 성금분쟁을 벌인 후 간신히 94년에 6가 거리에 있는 건물을 구입했다. 건물을 구입하고서도 구체적 계획이나 활동이 없이 세월만 흘러갔다. 설상가상으로 99년 건물을 매각하게 됐는데 부동산시세 추락으로 손해를 보아 투자분 90만 달러가 30만 달러로 줄어들어 60만 달러나 손해를 보았다.
 이때 남은 돈을 은행에 입금시킨 것이다. 무려 1,000만 달러에 달하는 폭동성금이 이제는 약20만 달러 정도가 남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부분의 동포들은 이 돈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있다. 그만큼 관심도 없고 기억하기가 싫은 것으로 보여진다. 이 기금은 현재 퍼시픽 유니언뱅크(구 가주외환은행)에서 잠자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미구호기금재단(이사장 전주찬)이름으로 남겨져 있다고 하는 이 기금은 분명히 공금임에도 불구하고 결과 보고가 없다. 현재 얼마나 (이자 포함해서) 기금이 존재하는지 발표된 것이 없다. 하기환씨가 처음 회장으로 있었던 한미구호기금재단은 현재 무슨 활동을 하는지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사회가 구성되어 있을 것인데 지난해 ‘4.29폭동’ 10주년이 됐어도 변변한 보고서조차 없었다.
 지난해 폭동 10주년을 맞아 LA한인회(회장 하기환)는 10주년기념행사를 기획했지만 동포들의 참여는 극히 미미했다. 당시 코리아타운내 ‘서울국제공원’에서 열린 기념행사에는 1,000여명도 안되는 700명 정도가 나왔다. 애초 계획은 10년전 폭동 당시 ‘10만명 평화 대행진’을 한다고 한인회는 외쳤지만 결국 모인 사람은 예상수치에서 크게 빗나갔다. 그나마 행사에 동참한 남가주총대학생회 학생들이 없었다면 큰일이 날 정도였다. 이렇게 저조한 행사가 된 것에 대해 한 인사는 “하기환 회장이 연임문제로 시끄러워 많은 단체와 동포들이 외면한 것 같다”고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또 하나, 10주년 행사에 한인사회가 실망을 한 사건도 있었다. 4.29 폭동 당시 조지 부시(현 부시대통령의 부친)대통령은 직접 한인사회에 와서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한인사회 지원을 약속했다. 당시 라디오 코리아(회장 이장희) 특별 회의실에서 마련된 모임에 참석한 부시 대통령은 직접 라디오 코리아 스튜디오에서 생방송으로 동포들에게 위로를 보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작년 부시 대통령은 ‘LA폭동 10주년행사’에 오면서 한인사회는 무시하고 흑인 커뮤니티 기념행사에 참석한 후 공화당가주지사에 나서는 후보를 위한 모금파티장으로 가버렸다.
 4.29 폭동을 당한 후 한인사회는 ‘정치력 부재’를 실감하면서 “정치적 역량을 키우자”고 소리쳤다. 하기환씨는 LA한인회장 선거에 나서면서 ‘미주류사회와 유대강화’를 약속했다. KAC등 1.5세 단체들도 ‘주류사회와의 가교’를 다짐했다. 그러나 10여년이 지나서도 한인사회는 그 자리에 맴 돌고 있다. 주류사회와의 연결이나 유대는 겉치례뿐이고 대부분이 개인적 명예나 실속을 차리기 위해 단체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비난을 듣기도 한다.

 폭동 당시 코리아타운을 파괴한 무리들을 한인들은 “폭도”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성금 배분과정에서 보인 한인사회의 추태는 “반만년 역사의 문화민족”이라는 한국인에게 ‘똥칠’을 한 것과 다름이 없다. 이제 ‘똥칠’의 멍에에서 벗어나기 위해 4.29 폭동에 대해 새로운 조명과 행동이 필요하다는 움직임이 2세들 사이에서 일어 나고 있다. 한가닥 희망이 떠 오르는 시작이다.

“꼬메스타”
인종과도 친해야

 코리아타운 한인업소에서 일하는 라티노들이 처음 배우는 말은 “빨리 빨리”이다. 이 말속에는 한인들의 라티노에 대한 인종 차별적인 냄새가 풍긴다는 것이 라티노들의 푸념이다.
<다음면에서 계속>
<앞면에서 계속>

 4.29 폭동을 당하면서 한인사회는 주위의 다른 인종과도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폭동 11주년을맞아 흑인들과도 유대가 긴밀해야 하지만 이제는 라티노 주민들과도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금 당장 4.29 폭동 같은 폭동이 일어난다면 인구면에서 흑인보다 엄청나게 많으며, 한인들에게 인종차별 감정마저 느끼는 라티노 사이에서 터져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종학자들 사이에서도 만약 폭동이 재발한다면 코리아타운은 라티노들에 의해 폐허가 될 지도 모른다고 우려를 표명할 정도 이다.

 폭동 후 1년이 지난 93년 5월 LA 타임스가 법원 문서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약탈자들은 50%가 흑인,43%가 히스 패닉이었지만 지금의 인구학적 상황은 매우 달라져 있다. 2000년도 인구조사에 따르면 LA 시 전체 인구 369만4천명중 46.5%인 171만9천여명이 라티노계로 백인에 불과 0.4% 차 밖에 나지 않는다. 라티노계는 흑인보다 4.1배, 아시아계보다 4.6배나 많다.
 특히 코리아타운 전체 인구의 51.2%가 라티노인 반면 한인은 20.1%(4만6천여명)에 불과하 다. 최근 몇 년간 한인 유입이 많은 LA 동부의 경우 주민 12만4천명중 96.8%가 라티노이다. 라티노계의 급속한 인구증가율로 볼 때 향후 5-10년 안에 LA시 전체의 인구의 50% 이상 을 이들이 점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한인 업소에도 멕시코계를 비롯한 라티노계 이민자들이 대거 고용돼있다. 대부분 의 한인 운영 음식점이나 스왑밋(저가물품 판매점)에서는 라티노계 종업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한인 봉제업계는 라티노계 노동력에 절대 의존한다. 대형 한인 슈퍼마켓의 경우 종 업원의 절반 이상이 라티노계로 추정된다.

 그러나 일부 업주들은 라티노계 종업원들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거나 체류신분을 문제삼 아 노동력을 착취한다고 노동상담소 관계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한인 고용주를 상대로 한 라티노계 소송의 거의 전부가 임금착취나 인종차별적 언행과 관련돼있다는 사실에서도 양쪽 관계의 심각성이 잘 드러나고 있다. 최근 코리아타운내 아씨마켓에서 야기된 노조설립 문제도 이 같은 환경에서 원인이 제공됐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의 최대 노동자조직인 미국노동총연맹산업별회의(AFL-CIO)의 테레사 산체스LA 지부장 은 “라틴계 커뮤니티에 대한 한인들의 편견, 업주와 종업원 관계를 상하관계로 인식하는 한인들의 계급의식이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엘 레스카테 노동자권리상담소 의 스티브 아레돈도 변호사는 “라티노계 종업원들이 욕설 등 언어 폭력과 심리적 압박에 시달리며 공정한 대우를 만들기 위해 노조를 결성하려 할 경우 해고 위협까지 받고 있는 실 정”이라며 “많은 히스패닉이 ‘노동착취 공장’과 같은 상황에서 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사 관계 뿐만이 아니다. 라티노계 고객에 대한 차별적 대우도 심상치 않다. 한인봉사단체 인 한미연합회(KAC) 부설 4.29 센터가 LA 폭동 진앙지 사우스 센트럴 지역 한인 업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흑인 고객들과 갈등은 58%로 줄어든 대신 라티노 계와 갈등은 32%로 늘어났다. 한인 의류업계에서 생산하는 의류의 70%이상이 라티노계들에게 판매될 정도로 노동력 뿐만이 아니라 소비측면에서도 이들의 비중은 매우 크다.

 지난 2001년 4월 비무장 흑인에 대한 백인 경관의 총격사건으로 촉발된 오하이오주신시내티 폭동 이나 2000년 6월 LA 레이커스의 프로농구(NBA) 우승 직후 발생한 난동사태 등은 언제든지 폭동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해주고 있다.

@SundayJournalUSA (www.sundayjournalus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뉴스를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