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北 “길재경부부장” 망명기사- 오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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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가 지난 17일 첫보도하고 KBS, MBC, SBS 등 방송3사가 머릿기사로 크게 보도한 북한 김정일 비서실의 길재경 부부장의 망명 기사는 완전한 오보로 밝혀졌다. 국가기간통신사를 자임하는 <연합>과 방송사들이 남북관계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기사를 정확한 확인 없이 보도한 것에 대해 따가운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연합>의 오보를 확인한 것은 <중앙일보> 19일자. <중앙>은 기사에서 “길재경 부부장이 3년 전인 2000년 6월 7일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며 관련 증거로 평양 애국열사릉에 있는 길재경 부부장의 묘비를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묘비에는 “길재경 동지. 당중앙위원회 부부장. 1934년 10월18일생, 2000년 6월7일 서거”라고 새겨져 있다.
이에따라 <연합뉴스>는 19일 ‘길재경 망명설 사과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사고(社告)를 내고 “국내외에 엄청난 파장과 물의를 빚은 데 대해, 연합뉴스는 해당 기사에 거론된 인사들 개인은 물론, 관련 기사를 실은 국내외 언론사,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를 드린다”고 밝혔다.

한편 KBS, MBC 등 국내 방송사들은 <연합뉴스>의 보도를 확인도 하지않은 채 17일밤 저녁뉴스의 머릿기사로 크게 보도했다. 북한 관련 보도에서 수없이 나타난 ‘아니면 말고’식의 보도 태도가 이번에도 나타났다는 비판이 제기될 만하다.

<연합뉴스>가 17일 처음 보도한 기사는 최선영 기자가 썼다. 최 기자는 탈북자 출신으로 안기부(국정원 전신)가 운영해온 내외통신을 거쳐 현재 연합뉴스 민족뉴스취재본부 소속 기자로 일하고 있다.

<연합뉴스>의 기사는 충격적이었다. 길재경 부부장은 ‘김정일의 비밀자금 조성 책임자’로 지난달 20일 호주 당국에 나포된 5천만달러 어치의 헤로인 50㎏을 실은 북한 선박 ‘봉수호’의 마약밀수를 총지휘했으나 선박이 나포되자 김정일의 처벌을 피해 망명했다는 것이다.
기사는 “최근 북한 고위층의 망명이 급증하고 있다”며 “노동당 조직지도부 염기순 제1부부장의 아들인 염진철(45세)씨도 얼마 전 제3국 출장중 망명해 보호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는 다시 18일 오전 ‘한명철 북 조광무역 부사장 행방불명’이라는 기사를 내보내고 “최근 한명철 부사장의 행방이 파악되지 않고 있어 미국 망명을 시도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미 지난 4월19일 오스트레일리아의 <오스트레일리언 위크엔드>가 북핵 개발의 대부인 경원하 박사 등 과학자와 군 장성 등 20여명이 서방으로 망명했다는 보도까지 있던 터였다.
따라서 북한 고위층 인사의 연이은 망명은 김정일 정권이 내부로부터 붕괴되고 있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었다.

‘노 대통령 귀국도 밀어낸’ 최고 뉴스

<연합뉴스>가 첫보도를 한 17일은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날이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취임후 첫 미국방문 관련 기사는 ‘길재경 망명사건’에 묻히고 말았다.

KBS는 17일 저녁 9시 뉴스에서 맨 첫번째와 두번째 기사로 ‘길재경 망명설’을 비중있게 보도했다. 첫번째 기사는 ‘김정일 최측근 길재경 부부장 등 망명’ 두번째는 ‘길재경 부부장 망명 파장 클 듯’이라는 기사였다.
MBC 역시 맨 앞 기사 3건 모두 길재경 관련이었다. SBS 역시 길재경 부부장 관련 기사를 맨 앞에 2건을 보도했다.
이 가운데 KBS와 SBS는 <연합뉴스>를 보고 보도하면서도 뉴스의 원천이 <연합뉴스>라는 사실 자체도 밝히지 않았다. 마치 자신들이 자체 취재한 것처럼 보도했다.
석간 <문화일보>도 1면 머릿기사로 ‘북 김정일 비밀자금 총책 길재경 제 3국서 미 망명’을 보도한 데 이어 제 3면에서도 ‘길재경은 누구인가’ ‘북 외화벌이 메가톤급 폭로예고’ 등을 자세하게 실었다.
단, 조선·동아 등은 이런 보도가 없었다. 당연했다. <연합뉴스>가 첫 보도를 한 17일은 토요일로 조간 신문사는 모두 휴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일이었다면 어떤 태도를 보였을지 짐작이 간다.

그러나 18일 낮부터 상황이 반전되기 시작했다. 한국 언론의 보도를 안 것이 틀림없는 한명철 북한 조광무역공사 부사장이 홍콩의 한국 기자들과의 전화통화에서 자신의 망명설을 부인했다. 이어 오후 3시께는 다시 연합뉴스 특파원과의 전화통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 망명설이 제기된 김정일 노동당 총비서 서기실의 길재경 부부장은 이미 돌아가셨다. 이번 길재경 부부장 망명설은 남한의 정보기관이 자행한 대북 모략 소동이다. 남한 정보기관은 북한 보도 내용이나 똑똑히 알아보고 언론에 흘려라. 몇 년 전에 이미 돌아가신 분을 보고 미국으로 망명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명백히 명예훼손에 해당한다. 허위 정보를 공개한 정보기관이나 언론들은 사과하라.”

한 부사장은 허위 사실을 보도한 국내 언론에 대해 명예훼손 소송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 실제 행동으로 이어진다면 북한 사람이 남한 언론 보도를 문제삼아 소송을 제기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판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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