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렇게 LA 콜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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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자이기에

금새라도 하늘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요란한 천둥소리…… 며칠 전부터 내리기 시작한 장마비는 그칠 줄 모르고 퍼부어 대고 있었다. 천둥까지 동반한 장마비 소리와 시계소리가 번갈아 내 가슴을 쓸어 내렸다.
벌써 새벽 3시, 아직까지 잠이 오지 않는다. 12시간 후면 나는 이제 그 한 많고 서러운, 그리고 악몽과도 같은 25년의 세월을 접어두고 한국 땅을 떠난다. 지난 세월은 지금의 내게 있어 차라리 형벌과도 마찬가지로 어둡고 고통스러운 시간의 연속이었다. 생각조차 하기 싫은 악몽 같은 지난 세월을 접어두고 떠난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다. “그래, 나는 두번 다시 이 지긋지긋한 땅에 돌아오지 않을 것을 맹세 한다. 정말이야! 죽어도 나는 미국 땅에서 죽을 거야”
수없이 다짐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지난날을 생각하니 언제부터인지 나도 모르는 사이 눈물이 흘러 내렸다. “오늘만 울고 절대로 울지않을 거야. 그리고 지난 세월을 복수할거야” 그런 맹세를 하면서도 참을 수 없는 서러움에 흘러 내리는 눈물을 주체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스티브 김을 만난 건 지난 12월 크리스마스 이브 였다. 나는 실로 1년 만에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어울려 나이트 클럽에 갔다가 우연히 부킹을 주선한 웨이터를 통해 자연스럽게 자리를 같이하게 되었다. 그는 180센티를 넘는 키에 상당히 준수한 외모를 가졌고, 누가 보아도 한눈에 호감이 갈 정도로 남자다운 면이 있었다.
자신을 재미교포라고 소개한 그는 결혼 상대자를 물색하기 위해 귀국했다고 말하면서 며칠 후에 미국으로 돌아 갈 것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스티브는 나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분에 넘치는 매너를 보이며 정중하게 나를 대했다. 나는 평생 처음으로 그런 대접을 받아보았고, 보면 볼수록 매력이 넘치는 그에게 나 역시 마음이 가기 시작 했다.
나는 실로 처음으로 스티브에게 이성으로서의 감정을 갖게 되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가까워 졌다. 그는 나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했고 나 역시 그의 사랑을 순수하게 받아 드렸다. 나는 그에게 지난날의 모든 과거를 이야기 했다. 23년의 과거라는 것이 별 것 아니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가혹했다.
그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는 오히려 그 동안 고생이 많았다고 위로 하며 이제부터 자기가 지난 과거를 대신하여 좋은 인생의 반려자가 되어 주겠다고 말하면서 나의 아픈 과거를 어루만져 주었다.
그는 나하고 결혼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나를 닮은 딸아이를 갖고 싶다고 하면서 결혼식은 나중에 미국에 가서 하기로 하고 우선 미국으로 가는 수속을 하자고 했다. 나는 그의 제의를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 드렸다.

꿈에 부푼 미국 수속

그는 나에게 미국대사관에 근무한다고 하는 사람을 소개시켜 주었다. 나는 그 동안 호스테스 생활을 하며 모은 5백만원을 건네 주었고 나머지 5백만원은 미국에 도착하면 주기로 하고 수속을 하기 시작 했다. 너무나 꿈만 같았다. 이세상의 모든 것들이 나를 축복해 주는 기분이었다.
나는 생전 처음으로 여권을 받아 쥐고는 그에게 한없는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는 나 때문에 미국에도 가지 않았다.
그는 아예 내가 있는 원룸으로 들어 왔고 그때부터는 거의 부부처럼 살게 되었다. 나는 일도 그만두고 그와 신혼의 단꿈을 꾸면서 두달 여를 보냈다. 그 동안 모아 두었던 돈도 떨어졌다. 그의 씀씀이는 장난이 아닐 정도로 헤펐다. 무엇이든지 최고급이었다. 먹는 것에서부터 입는 것까지 그는 최고급이 아니면 상대를 하지않을 정도로 눈이 높았다.
그런데도 오히려 나는 그런 그가 사랑스럽기 까지 했다. 그를 위해서 나는 아까운 것이 없었다. 우리는 매일 나이트 클럽에 놀러 다니면서 술과 섹스로 세월을 보냈다. 그는 지금까지 내가 상대한 어떤 사람들과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대단 했다. 정말로 그는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같았다. 나는 5천만원의 전세 보증금을 월세로 돌려 가면서 그와 함께 유흥비로 썼다.
어느날 스티브는 내게 미국 비자 발급이 어려워 아무래도 미국으로 직접 들어가는 것이 힘들 것 같으니 캐나다를 통해 들어 가는 것이 어떠냐고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미국으로 들어가든 캐나다로 들어가든 무슨 상관이냐고 했다. 그리고 며칠 후 그는 먼저 미국으로 들어 갔다. 미국으로 갔다가 캐나다로 온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를 먼저 보내고 일주일 후 캐나다행 비행기 예약을 했고 나는 드디어 그 한 많고 서러운 한국 땅을 떠나게 되었다. 장미빛 꿈을 안고서……

까다로운 캐나다 이민국

나를 실은 대한항공 비행기는 비 내리는 캐나다 밴쿠버 공항에 미끄러 지듯이 내렸다. 창 밖을 바라보니 너무나 낯선 풍경이었다. 단풍잎이 그려진 캐나다 국기를 보며 드디어 내가 캐나다 땅을 밟게 되었다는 안도감과 공항으로 마중 나왔을 스티브를 만날 생각에 가슴이 벅차기 까지 했다.
그러나 나의 기대와 달리 이민국 입국에서부터 고생이 시작되었다. 내 생각으로는 무비자이기 때문에 제주도에 가는 식으로 내리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 했었는데 그게 아니였다. 이민국 직원은 영어로 내게 뭐라고 했는데 한마디도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대한항공의 지상요원이 와서 통역을 해주었다. 나는 스티브가 한국에 있을 때 가르쳐 준대로 캐나다에 친구를 보러 왔으며 2주일간 여행을 하기 위해서 왔다고 둘러대었다. 그러나 이민국 직원은 내 말을 믿으려 들지 않았다.
나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 보면서 여권과 비행기표를 다른 이민국 직원에게 건네주며 조사실로 안내 했다. 대한항공 여직원은 한국의 젊은 여자들이 이런 식으로 하여 캐나다로 들어와 미국으로 밀입국 하는 경우가 많아 이민국심사가 까다롭다고 말했다. 그때서야 나는 스티브가 나를 이런 식으로 해서 캐나다를 통해 미국으로 밀입국 시키려는 의도를 알 수가 있었다. 이민국 직원은 정말로 까다롭게 질문 했다. 달러를 얼마나 가지고 들어 왔으며 밴쿠버에 누가 살고 있으며 어디에 머무를 것이며 한국에서 무엇을 했는지 등 무려 4시간에 걸친 취조를 당해야만 했다.
다행히 대한항공 여직원의 도움으로 소지하고 있던 1만달러 중 4천달러를 이민국에 예치 시키며 출국할 때 받는 조건으로 비자를 받을 수가 있었다.

무려 4시간동안 조사를 받은 나는 탈진상태에 있었다. 예전하고는 달리 캐나다 이민국이 한국 여자들에게 무척 까다롭고 거의 대부분 비자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조사실에 있는 동안 혹시 한국으로 되돌아 가야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상당히 떨고 있었다.
공항 밖을 나오니 웬 낯선 사람이 ‘정지숙’ 이라는 팻말을 들어 보이며 내게 다가와 ‘혹시 정지숙 씨 아니냐’ 고 물었다. 그때서야 정지숙이 내 이름 이라는 사실을 알고 반갑게 대답했다. 그 사람은 자기는 스티브의 친구라고 소개하고 스티브가 사정이 생겨 며칠 뒤에 올 것이라고 말하면서 같이 가자고 했다.
너무나 뜻밖의 일에 당황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내게 그 상황에서 아무런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 순순이 그의 말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그 사람이 가는 대로 따라가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아주 자연스럽게 왜 그렇게 늦게 나왔느냐고 말하면서 4시간동안 기다리는데 지루했다고 말하면서도 늦게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는 말투였다. 그래도 어찌 되었던 반가웠다. 이 사람이라도 나오지 않았다면 정말로 나는 이국 땅에서 고아나 다름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쟌’ 이라고 소개한 그는 나를 자신의 승용차에 태우고는 프리웨이를 달리기 시작했다. 너무나 피곤한 나는 차에 오르자마자 잠이 들었다. 떠날 때도 그렇게 장마비가 오더니만 캐나다에 도착하고도 비가 내렸다. 나는 빗소리를 아련히 들으면서 너무나 피곤에 지쳐 곤히 잠에 취했다.

뭔가 이상한 예감

얼마를 달려 왔을까? 나는 정신 없이 잠이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어둠이 깃들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직감할 수 있었다. 쟌 이라는 스티브의 친구는 조심스럽게 나를 깨웠다.
‘무척 피곤했나 봐요. 너무 곤하게 자길래 깨우지 않았어요.’
나는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잠들었다는 게 창피스러웠다. 창피하다기보다 오히려 미안했다.
‘다 왔습니다. 내리시지요. 우선은 여기서 며칠 묵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는 차에서 내리면서 트렁크를 꺼냈다. 나는 아무런 할말이 없었다. 그가 말하는 대로 따라야 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다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달리 할말이 없었다.

조그마한 이층집인데 비교적 깨끗했다. 그는 집 뒤쪽으로 들어갔다. 나는 머뭇거렸다.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쟌은 안심을 시키려는 듯이 ‘걱정말고 들어 오세요. 안에 들어가면 친구 언니 동생들도 있으니 조금도 걱정 말아요’라고 말했다. 순간 나는 뭐가 잘못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친구 언니가 있다니요’ 나는 놀란 토끼새끼처럼 그에게 묻자 그는 저으기 당황하는 얼굴빛으로 나를 쳐다 보았다.
그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안으로 먼저 들어가면서 따라 들어 오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라는 눈치였다.
나는 체념하는 기분으로 그를 따라 들어 갈 수밖에 없었고 들어가니 3명의 아가씨들이 쟌을 맞으며 반가워 했다.
쟌은 아가씨들에게 나를 소개하면서 오늘부터 같이 지낼 터이니 사이 좋게 지내라고 당부까지 했다. 뭔가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었고 육감적으로 속고 있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다.
두 명은 나보다 3살이 많은 언니였고 한명은 나하고 동갑내기 였다. 우리는 서로 인사를 나누면서도 어딘가 처해진 상황이 비슷한 구석이 있는 동료 의식이 들었다. 피차 똑같은 입장이라는 얼굴 표정을 쉽게 발견할 수가 있었다.
‘오느라고 고생이 많았겠구나. 조금도 걱정하지 말고 짐 풀고 샤워하고 식사해라’며 예림이라는 언니는 친절하게 나를 맞아 주었다.
우리는 금새 친해질 수가 있었다. 언니 두 명은 나보다 일주일 먼저 왔고 동갑내기 민아는 이틀이 되었다고 했다.

저녁을 먹고 나서야 비로 내가 캐나다로 들어온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그들 모두가 나하고 똑 같은 케이스였다. 그러나 틀린 것은 그들은 모두 자진해서 돈을 벌려고 캐나다를 통해 미국으로 들어 가려는 것이었고, 나는 오로지 스티브를 만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내 경우를 이야기하자, 모두가 가엾다는 표정들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캐나다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밀입국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미국 수속비로 준 것은 캐나다를 통해 미국으로 안내해 주는 사람에 대한 브로커 비라는 사실도 알았다. 갑자기 속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원하는 것은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캐나다 국경을 넘어서

한참을 자고 있는데 쟌이 들어와 나를 깨우며 전화를 받으라고 했다.
스티브였다. 잠결에 받은 전화 인데도 전화를 받자마자 소리를 질러대었다. 너무나 화가 났다. 이럴 줄 알았다면 오지 않았을 텐데 라고 울부 짖으며 소리를 질러 대면서 절규했다. 스티브의 반응은 냉담 했다. 예전의 그의 목소리가 아니였다. 그는 나에게 “잘 알아서 선택해, 오고 안 오는 것은 너의 의사에 달려 있고 올려면 쟌이 국경을 건너게 해 줄테니 오라”는 퉁명스러운 말만 남기고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어 버렸다.
갑자기 사람이 무섭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오기가 발동 했다.
“그래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보다야 못 하겠는가? 가볼 때까지 가보는 거야? 여기까지 왔는데 미국 땅을 밟아 봐야지” 라고 혼자서 중얼거리며 스티브에 대한 원망 보다는 살아야 겠다는 삶에 대한 욕구가 솟구쳤다.

내가 머무는 일주일 동안 밴쿠버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비가 내렸다. 정말 지겹도록 퍼부어 대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지난 9.11테러 사태 이후로 국경의 경비가 무척 삼엄해 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동안 한국에서 온 아가씨 2명이 합세해 식구가 6명으로 늘어 났다. 우리는 쟌의 감시 속에서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하루종일 방에만 있어야 했다.
그러던 어느날 드디어 국경을 넘는다는 것이었다. 우리 일행은 쟌을 따라서 밴쿠버에서 남쪽으로 1백마일 떨어진 국경을 향했다.
칠흙 같이 어두운 밤이었다. 무서웠다. 우리가 자동차로 도착한 시간은 새벽 3시가 다 되었다. 쟌은 우리에게 뒤돌아 보지말고 자기만 따라 오라고 말하면서 앞으로 뛰었다. 우리 모두도 그와 함께 뛰기 시작했다. 한 손에는 트렁크를 들고 뛰는데 왜인지 그 순간에도 눈물이 서럽게 흘러 내렸다. 그렇게 얼마를 뛰었을까…… 조그마한 강을 건너 뛰는 데 불과 20분 뛰어온 길이 10시간은 온 기분이었다. 그리고 갑자기 기운이 빠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그곳이 미국 땅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묘한 흥분이 일기 시작 했다.

< 다음주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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