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선결요건은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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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의 영혼이 한 덩어리의 금속체가 되어 유리벽을 격파하고 쑤셔 박히면서 폭발하는 모든 형체들… 쌍둥이 바벨탑이 지상에서 사라져버린 9월 11일 ‘2001년, 비통과 슬픔, 절망과 분노의 처절한 비극을 딛고 일어났다. 테러에 대한 공포와 쏟아지는 전쟁비난 여론을 물리치고 미 수뇌부는 난공불락의 아프카니 스탄을 공격하여, 탈레반 정권과 알카에다 테러조직을 소탕하고 아프카니스탄 전지역을 장악, 점령하였다.
9.11은 인류문명의 신기원을 여는 피의 제전이었다. 평화는 사람의 입을 통한 주문이 불러오는 것이 아니라 총알을 토하는 총의 입을 통햇 얻을 수 있다는 고전적인 교훈이 새로히 입증되었다.
부시는 “전미국인의 피로 발목을 적시겠다”고 호언한 오사마 빈라덴의 가랭이 밑을 기어나온 현대판 한신이 아니었다. 부시는 거짓말로 죽음을 모면하고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양심선언을 한 변신의 명수 갈릴레오도 아니었다. 그는 미국의 대통령인 조지 W. 부시였다.
석유자원 이권유지를 위하여 평화의 탈을 쓴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 열강들의 이라크전쟁 극력반대와 빗발치는 아랍 동맹들의 성토와 저주를 미국은 최첨단 화력으로 무력화 시켰다. 바그다드는 함락되고 사담후세인은 도망갔다. 총구가 인구를 제압한 것이다.
인류가 지구상에 존재한 이래 인류 문명은 쇠와 피 그리고 기를 바탕으로 일정한 진보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쇠는 문명의 이기와 발달을 의미하고 피는 쇠의 발달에 따른 대가를 치뤄야하는 인간의 희생을 의미한다. 기는 쇠를 부리고 다루며 피를 복원하는 인간의 의지와 양식, 그리고 공동의 선을 향한 내공력을 뜻한다.
쇠는 물질 문명을, 피는 인간의 육신과 생명을, 기는 인간의 정신과 우주에너지와의 융합을 대변한다. 물질문명의 평화는 인간의 피를 요구한다. 정신세계의 평화는 인간의 기를 승화시킨다. 물질과 정신의 경계를 초극하는 구경마저 개벽하는 열린 세계 – 선경의 추구다.
21세기 초입의 9.11을 분기점으로 인류의 문명은 쇠와 피와 기가 복합된 새로운 형태으 제 4의 문명을 창출하였다. 지능을 갖춘 스마트 폭탄과 신경 체계에 의해 작동되는 크루즈 미사일, 천상의 제우스 신과 같이 지상의 동태를 낱낱이 탐색하는 인공위성 등등은 전쟁의 개념과 양상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이와 같은 미증유의 군사력에도 불구하고 부시의 용기야 말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 법칙을 뒤엎고 초강대국 미국을 정크 문명의 요람에서 반문명 세력을 응징하고 타도하는 새로운 문명의 기수로 등장하게 하였다.
진정한 평화는 총구에서 나온다. 물리적 힘의 바탕에서 세력 균형(Check and Balance)이 유지될 때 평화라는 괴물은 비둘기로 변신한다.
걸핏하면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 “남쪽에서 헤아릴 수 없는 재난을 당하게 될 것” 이라는 등의 공갈 협박을 거리낌 없이 일삼는 자들. 마약, 위조지폐, 미사일등의 밀매를 정부에서 자행하는 범죄 집단에게 과연 인도적인 햇볕정책이 합당한 것인가. 아니면 핵무기 개발을 돕는 이적 행위로 말미암아 적화통일의 위기에 봉착하게 되는 것이 아닌지 심사숙고 해보자.
노대통령은 개혁과 인기에 연연하기보다 인류문명의 큰 틀 속에서 민족의 장래를 멀리보고 지행일체의 의지와 실천을 몸소 보여줘야 한다. 북한이 소위 “결정적 시기”라고 판단을 내릴 때가 그들 집단이 종말을 고하고 북한 동포를 해방시키는 날임을 깨닫게 하자. 메모리얼 데이에 즈음하여 한국 전쟁 참전 기념비에 세겨진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는 문구의 뜻을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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