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황장엽” 왜 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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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으로 망명한 황장엽 전북한 노동당비서의 방미가 또다시 무산됐다. 황씨의 방미는 金영삼, 金대중 정부 시절에 계획됐으나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다가 노무현 정부 들어서 최근 다시 시도해 내부적으로 허가 단계에 있었다. 하지만 결국 또 다시 무산됐다. ‘황장엽 방미’ 보도가 나올 때 마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그가 미국에 오면 망명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나돈다. 미국 일각에서 황씨의 망명을 유도하고 있고, 황씨 자신도 망명을 원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소문의 진실 여부는 실제로 황씨가 미국에 온 다음에야 밝혀질 사항이다.

미의회의 한 한국관계 소식통은 “한국정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황장엽 미국망명’이다. 그래서 金대중 정부는 황씨의 미국방문을 허가하지 않았다”면서 “이번 노무현 정부에서도 마지막 수속 단계에서 거절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 이 소식통은 “이번 황씨의 방미수속이 신원조회 과정에서 허가를 받지 못했다는 점이 이해를 할 수 없다”면서 “새로 국정원을 총괄하는 인사들이 발목을 잡고 있음에 유의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소식통은 “한국정부가 언제까지나 황씨의 미국방문 의사를 거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황씨의 방미를 두고 한미간 교섭 중의 난제는 ‘황씨가 만약 미국에 망명 의사를 밝히더라도 미국이 이를 받아 주지 말 것’이란 조건이 들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남한측의 이런 조건은 미국으로서는 받아 들이기 어려운 사항인 것이다. 미국과 한국이 동맹국일지라도 개인의 망명 사항은 어디까지나 인권에 대한 문제이기에 미국으로서는 망명 조건에 부합되면 누구에게나 허가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 왔기 때문이다.

황씨의 방미를 두고 조건을 내건 한국정부측은 스스로 인권을 위배하고 있는 것이다. 金영삼 정권이후 실시되어 온 여행자유화를 망각한 처사이기 때문이다.
만약 황씨의 미국망명이 현실로 나타날 때는 남한의 “햇볕정책”은 국제적 망신을 당할 것이고, 남북관계는 파국으로 번지는 사태가 올 것이라는 것이 노무현 정부의 우려이다.

과거 金대중 정부는 이런 우려 때문에 극력으로 미측의 요구를 거절해 왔다. 실지로 당시 DJ는 미국 방문시 미의회에 들렀을 때 “황씨를 미국 의회에 초청하겠다”라는 헨리 하이드 하원 국제관계위원장의 제의에 승락까지 했으나 귀국해서는 이런 저런 이유로 황씨를 보내지 않았다.
당시 미국 의회측은 한국정부가 북한 외무부 대변인의 황씨 방미관계 성명서에 영향을 받고 있는데 대해 못 마땅해 했다. 당시 북한측은 “미국 의회가 황장엽씨를 초청한 것은 ‘미공화당 강경 보수 세력의 모략극’ ‘대조선 강경책 증대’ ‘도발적인 반공화국 모략 책동’이다”라고 표현했다.

미국내에서 황씨의 방미를 가장 바라고 있는 측은 의회 공화당 강경파들과 민간기구인 ‘디펜스 포럼 재단’측이다. 특히 ‘디펜스 포럼 재단’은 미국방부 정책에 자문하는 기구로서 북한의 金정일 체제는 붕괴돼야 한다는 인식을 지니고 있다. 또 이 재단은 탈북자 문제에도 깊은 관심과 후원을 보내고 있는 단체이다. 의회 강경파인 하이드 위원장은 지난번 황씨 초청장 전문에서 초청 목적을 ‘북한 체제가 지역 평화·안정에 도전하는 상황을 파악하는 데 필요한 자료를 제공받고 의회 증언을 듣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특히 ‘북한의 진실(The Truth about North Korea)’을 파악하는 내용 중에는 金정일 독재체제·인권상황·군사적 위험이 들어 있다.

이 같은 상황을 파악하는데 황씨의 증언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워싱턴의 한 한반도 전문가도 金영삼 정부시절은 대북 강경정책으로 미국이 조절하기가 어려웠고, 이에 비해 DJ는 대북 우호정책으로 역시 조절하기가 어려웠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민족자주를 표방하는 새로운 환경이 조성되자 ‘황장엽 카드’는 남북을 조절하는데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카드가 된다고 풀이했다.
특히 대북 강경책을 구사하고 있는 국무부나 국방부 그리고 중앙정보국(CIA) 등 관련 정부 기관들도 의회와 마찬가지로 황씨의 방미에 큰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이들 기관들은 각기 황씨로부터 북한의 실상에 대한 직접 체험을 듣고 싶어 한다. 국무부측은 북한의 인권사항, 국방부는 북한 핵사항 등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현재 국무부는 매일 북한 동태에 대해 전세계 공관이나 기타 연관 관계를 통해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과거 미국은 金대중 정부가 계속 황씨의 방미를 거부하고 있을 때 돌연 미국에 도피 중인 이석희 전국세청 차장을 체포했다. 이 전 차장은 한국정부가 계속 체포와 인도를 요구했던 인물이었다. 미국측은 이 전차장을 한국에 인도하는 대신 황씨의 미국 방문을 요구했다. 이런 딜은 미국과 한국간에 수차례 있었다. 가장 크게 관심을 모은 빅딜 중에는 전두환 군부가 집권 당시 미국은 ‘金대중씨의 미국망명’을 조건으로 ‘전두환의 미국초청’을 교환한 것이다.

미국은 9.11 테러사건 이후 부시의 ‘악의 축’ 발언으로 북한을 타도의 대상국가로 보고 북한에 대한 고급 정보와 함께 북한을 압박할 수 있는 수단을 강구해왔다. 그 수단의 한 방안으로 황씨를 미국에 초청해 북한의 실상을 부각시키자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북미관계는 물론, 한미관계도 경색국면으로 치달았다. 그 한 예가 DJ 미국방문의 실패작이다. 클린턴의 대북유화정책에 반대 입장인 부시로서는 DJ의 햇볕정책’
이 “악의 축” 발언에 대치되는 입장인 것이다. 따라서 ‘황장엽 카드’는 대북 강경정책에서는 매우 유용한 수단이었다.

미의회의 중진이며 강경 보수판인 제시 헬름스 의원이 콜린 파월 국무장관에게 황씨의 방미 추진에 도움을 요청하는 장문의 서한을 보낸 것도 같은 부시 정책의 보조수단인 것이다. 한편 당시 金대중 정부는 차기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를 몰아부칠 호재로 세풍 주역인 이석희 전차장을 이용하려고 했으나 미국측이 인도조건으로 황씨의 방미조건을 내걸어 DJ측이 난색을 표했다.

이 때 일부 언론에서는 “여당의 대선 후보가 결정된 뒤 ‘황장엽-이석희’ 빅딜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DJ도 탈당 등으로 정치전면에서 물러나고 임기 말이라 정치적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정권재창출을 위한 압박카드를 얻을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 ‘황장엽-이석희’ 바꾸기 조건은 미국이 한국 대선에 개입한다는 부정적 시각 때문에 미국이 선뜻 응하지 않고 국제적 관례에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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