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김,김정실 “갈라서 보니 남보다 못한 사이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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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김」하면 떠오르는 수식어가 몇가지 있다. ▲ 자일랜 신화창조의 주인공 ▲ 억만장자의 자선사업가 ▲ 벤처기업의 귀재 ▲ 나라은행 이사 등 휘황찬란하게 열거된다.
「스티브·김-김정실」 부부를 연상하면 바로 이런 등식이 성립된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들 부부가 새운 금자탑은 전무후무할 만큼 한인들에 대해 위대하고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억만장자의 재력가인 동시에 각계각층 교육계 등에 1백만불의 거액을 쾌척하여 한인사회를 놀라게 했던 이들 부부는 우리사회의 진정한 영웅으로까지 칭송되었다. 그러나 그들도 어쩔수 없는 인간이기에 그 뒷면에서의 장면들이 연출되더니 끝내 이혼, 한인사회를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이들 부부의 말이 누가 거짓이고 진실인지는 그들만이 알것이다. 본보의 하나금융 관련 보도이후 그들 부부를 둘러싸고 설왕설래 나도는 각종 루머의 배경을 종합 집중 조명해 본다.

자일랜 신화’의 주인공 스티브 金이 ‘하나금융’(사장 서니 金)의 뒤통수를 때린 일화를 소개한 본보 보도(6월1일자)가 코리아타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그동안 억만장자인 동시에 사회 자선 사업가로만 알려져 왔던 스티브 김과 하나금융과의 관련 소문은 그동안 많은 억측을 불러 일으켜 왔다. 하나금융에 투자를 하겠다고 접근 후 정보와 인력들을 빼가 새로운 팩토링 회사를 차렸다는 소문과 하나금융의 찰스 김 회장과 써니 김사장이 스티브 김에게 뒷통수를 맞아 이로 인해 찰스 김 회장이 홧병으로 들어 누었다는 이야기까지 많은 루머가 뒤따랐다.

본지 보도에 대해 스티브 김 회장 측근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는 사실과 다르며 스티브 김 회장이 하나금융에 투자를 하려고 한 것은 사실이나 조건이 맞지 않아 그만 두게 된 것이지 달리 다른 이유가 없다”고 말하면서 “정보를 빼 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건 누군가의 모함이다”라고 그간의 소문을 부정 했다.
(본지는 스티브 김회장과의 인터뷰 요청을 했으나 마감 시간까지 연락이 오지 않았음)
또한 “김회장의 아들이 대표로 되어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고 다만 배우고 있는 단계 일 뿐이다”라고 밝혔다.(확인 결과 NCC팩토링의 대표는 김 회장의 아들이 아닌 것으로 확인 되었음. 본지의 410호 보도는 일부 오보였음을 아울러 밝힘)

자일랜 신화창조

화제의 주인공인 스티브 김은 지난 99년 3월 자일랜사를 프랑스의 알카텔에게 20억 달러에 매각 후 ‘자일랜 신화’ 창조 이후 또 다시 국내외 뉴스의 초점이 됐었다.
당시 그는 중앙일보 미주판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사회사업 분야의 관심에 대해서’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중략)…개인적으로 많이 벌어들인 돈을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에 환원할 생각이다. 수년 전 한인 교포들을 위한 교육문화센터 건립용으로 1백만 달러를 기증한 적이 있는데 아직 집행되지 않은 것을 보면 이러한 사회사업도 기업 못지않게 철저한 조사와 검토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 이 답변 가운데 나오는 ‘교육문화센터 건립용 1백만 달러’는 오늘날 한국교육관으로 불리는 건물을 의미한다. 당시 교육관 건립은 여러가지 사정으로 계획기간내에 완결치 못하고 우여곡절끝에 나중에 건립됐는데 건물에는 ‘정실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기부자의 이름을 기념키 위해 명명한 것인데 ‘정실관’은 金정실씨의 이름에서 따 온 것. 金정실씨는 바로 스티브 金의 전부인으로 그녀는 99년 한국에서 와이즈-내일 투자회사를 창업해 화제를 모았었다.

중앙일보와의 인터뷰 답변 내용을 보면 ‘100만 달러’ 기부금은 스티브 金이 낸 것으로 되어 있는데, 완공된 건물에 기증자의 이름은 전부인의 이름으로 됐다. 한편 지난 2001년 2월 자유기고가 金민선이 金정실씨와 인터뷰한 내용에는 이런 글이 실려 있다.

“(중략)…미국에서 LA 민족교육관 건립기금으로 100만 달러를 기증하는 등 사회사업을 펼치고 있지만 고국의 현실은 그곳과 비교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소년소녀가장을 돕기로 작정하고 한국복지재단을 통해 월 5만달러(약 6천만원)씩 기부해 지금까지 총 2백50만달러 이상을 기증했다….” 이 글에서 ‘LA 민족교육관 건립기금 100만 달러”는 오늘의 한국교육관으로, 金정실씨가 100만 달러를 낸 것으로 되어있다. 당시 한국교육관의 건립이 당초 계획보다 늦어지자 타운에는 “기부금 반환”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것은 ‘스티브 金이 LA총영사관에 대해 100만 달러 기부금 반환소송을 제기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교육관 건립이 시일을 끌어 지지부진하자 스티브 金이 자신이 낸 기부금이 제 목적에 쓰이질 않는다는 이유로 반환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 소문대로라면 기부금 제공자는 스티브 金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100만 달러 기부금을 기탁한 시점은 스티브 金과 金정실씨가 이혼전이라 金정실씨의 의향으로 기부금이 조성됐다는 설이 더 유력하게 나돌았다.나중에 이런 말은 사실로 확인 되었다.

당시 민족교육관 건립을 위하여 메리야트호텔에서 기부금 모금을 위한 ‘펀드 레이징’이 열렸는데 모인돈이 고작 10여만불에 불과 했다. 김정실씨가 나머지 액수는 자신이 출연하겠다고 하여모 언론사의 주선으로 관계자들을 만나 자신의 의향을 표명하자 그 자리에 있었던 LA교육관을 비롯 한국학교 관계자인 김지수씨 등이 자리에서 일어나 김정실씨의 뜻밖의 쾌척에 박수를 보내기도 한 일화가 있었다.

당시 스티브 김 회장은 그런 김정실씨를 가리켜 “큰 손”이라고 할 정도 였다. 그러나 교육관 건립이 장기화 되고 표류 하면서 스티브 김 회장이 이의 제기를 하며 반환 소송을 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으나 이때도 김정실씨가 김회장에게 “우리 손을 떠난 돈이다. 기다리자’고 설득하여 반환소송 자체가 없었다는 후문이다.
이들 부부는 97년 이혼하면서 양측은 ‘100만 달러 기부’에 대해서 “스티브 金이 기부자”와 “金정실이 진짜 기부자”로 각각 주장하기도 해 타운에 묘한 뉘앙스를 풍기기도 했다.
이런 묘한 분위기는 다른 곳에서도 나타났다.

김정실의 화려한 등장

지난 99년 9월 3일자 한국경제에는 <여성 파이어니어- ‘김정실씨’ .. 초고속 성공>이란 제목의 기사는 이런 글로 시작됐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숱한 벤처기업 가운데서도 단연 돋보이던 자일랜(Xylan). 이 회사를 키운 ‘자일랜 신화’의 주역 김정실씨가 한국의 벤처캐피털 시장에 진출했다. 창업 6년만에 기업가치를 2백배로 키운 金(정실)씨가 한국의 벤처기업을 키우겠다며 창업투자사 와이즈-내일 인베스트먼트에 1천만달러를 투자한 것. 와이즈-내일의 출범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내한한 그는 성공스토리를 한국경제신문에 공개했다.”

또 99년 12월호 여성동아에는 <성공스토리- 한국 상륙한 美 ‘벤처업계 큰손’ 김정실 “자일랜 신화는 끝나지 않았다”>라는 제목의 기사에는 이런 글이 실렸다. “‘우리는 나스닥으로 간다’고 당당히 선언한 와이즈-내일 인베스트먼트. 그 뒤에는 투자심의위원회 회장 김정실씨가 있다. 전 남편 김윤종씨와 함께 미국 나스닥에서 ‘자일랜 성공신화’를 엮어냈던 그가, 이제 한국의 벤처기업을 발굴하고 키워가는 인큐베이터로 나섰다.
김정실 회장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광고를 통해서 였다. 9월1일 출범을 즈음해서 와이즈-내일 인베스트먼트는 ‘우리는 나스닥으로 간다’는 공격적인 슬로건으로 대대적인 광고 캠페인을 벌였다. 그 중심에는 김회장이 있었다.”

이와 비슷한 글이 한국의 여러 언론매체에 대대적으로 소개됐다. 이 내용들을 보면 ‘자일랜 신화’의 또 다른 주역은 金정실씨로 부각되어 있다.
한국에서 金정실씨가 대대적으로 소개되자 일부 언론에서는 “자일랜에서 공식 포지션이 없던 가정주부가 어떤 역할을 했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에 대하여 와이즈-내일 홍보실에서는 인터뷰 요청이 들어 온 언론에 대해 “인터뷰를 결정하시기 전 몇 가지 확인할 사항이 있어 편지를 보냅니다. 먼저 김정실 회장은 그 동안 언론과 접촉하면서 다음과 같은 반응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선 일각에서 제기된 ‘자일랜에서 공식 포지션(position)이 없던 가정주부가 어떤 역할을 했는가’라는 지적입니다”라고 설명 후 다음과 같은 부연 설명이 따랐다.

“金(정실)회장은 차고에서 출발한 한 벤처기업이 세계 벤처의 등용문이라 할 수 있는 나스닥에서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기까지 전과정을 함께 하신 분입니다. 그 전 과정의 기획단계부터 실행단계까지, 그리고 상장 후 관리단계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 참여하셨습니다. 국내 기업의 나스닥 진출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나스닥 상장 경험 부재’라고 합니다. 이런 상장 경험을 통해 갖게 된 투자네트워크와 정보네트워크야말로 와이즈-내일이 김정실 회장에게 기대하는 가장 큰 성공 노하우입니다”

가슴아픈 과거지사

스티브 金과 金정실씨는 결혼 후 77년에 도미해 84년 金정실씨가 계를 통해 모은 돈5,000 달러와 친지들의 돈을 합해 1만 달러의 창업자금으로 집 근처 차고를 빌려 파이버먹스 (Fibermux)라는 광역통신망(WAN) 장비업체를 설립했다. 스티브 金은 1년 반의 연구 끝에 파이버먹스 이름으로 광섬유를 이용한 데이터통신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시스템의 성능을 인정 받으면서 성장을 거듭했고, 설립 첫해 80만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그 후 ADC사의 매각 제의에 대해 파이버먹스를 5천4백만 달러라는 당시로는 거액으로 팔았다.

투자자들에게 이미 20배 이상의 이익을 돌려 주었다.
이어 이들 부부는 93년에 자일랜을 설립하고 제2의 창업에 나서 독자적인 기술로 제품을 만들어 나갔다. 그런데 두 부부가 설립했던 파이버먹스사를 매입했던 ADC사가 소송을 걸어 왔다. 유사업종에서 유사제품을 만들지 않겠다는 ADC사와의 계약을 어겼다는 것이다. 천문학적인 손해배상금을 요구해 오는 대기업을 상대로 힘겨운 법정투쟁이 계속됐다. 소송이 장기전으로 진행되면서 자일랜에서 생산되는 제품이 ADC 제품과는 다르다는 것을 입증시켰다. 향후에도 유사한 제품은 만들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는 선에서 ADC와의 문제는 해결됐다.
이후 자일랜의 고속 성장은 계속 됐고 96년 나스닥 상장으로 소위 ‘자일랜 신화’가 창조됐다.

이 과정에서 金정실씨는 ADC의 소송으로 한때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스티브 金을 격려해 위기를 넘기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으며, 회사 직원들을 독려해 끝내 회사를 살렸다며 자신의 역할을 강조했다. ADC가 자일랜에 대하여 ‘유사제품 제조의 약속위반’의 문제가, 최근의 하나금융이 스티브 金으로부터 당한 사건도 ‘약속위반’이 되는지 물음표를 달 수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스티브 김과 김정실씨를 잘 아는 사람들에 의하면 스티브 김 회장이 NCC팩토링에 투자한 1천만불( 한국-중앙일보 보도)도 두 사람이 두 자녀 명의로 신탁 되어 있는 구좌에서 두 자녀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인출하여 회사를 설립, 이로 인해 자녀들과의 관계가 극에 달해 있는 상황이며 특히 딸은 대단히 분개 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현재 한국에 체류 중인 김정실씨는 경제학과를 졸업한 아들이 자바시장을 돌아 다니고 고객을 찾으러 다니는 모습을 보고 가슴 아파하고 있다고 전했다. 앞으로의 상황 전개 귀추가 주목 되고 있는 가운데 가정문제와 재산 싸움 문제가 법정으로 비화 될 조짐까지 비추고 있다.
‘자일랜 신화’ 창조의 이면에 가려진 일그러진 모습과 찬란한 모습을 놓고 과연 누가 주역인지 판가름하는 것이 옳은 길인가에 대한 물음표를 달 수 있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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