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윌셔가에 점령군 사령관 데이비드 리 그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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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건물 40여개 외형 8억달러 … 윌셔에만 27개 초대형 건물 소유
윌셔가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제미슨 프라퍼티(Jamison Properties) 소유의 건물 그림자를 밟고 지나가게 되어있다. 한 건물 건너가 아닌 윌셔가의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제미슨 프라퍼티의 위용은 가공할 정도로 대단하다. 현재 제미슨 프라퍼티사가 소유하고 있는 건물만 해도 거의50개에 가깝다. 싯가만 하더라도 무려 8억불에 이르고 전 미국의 부동산 업계의 상위 그룹에 오를 정도로 막강한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들의 끝일줄 모르는 부동산 매입과 공격적 경영은 일반인 들로는 상상 할 수 없을 정도의 고도의 치밀하고도 전술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지극히 저돌적이면서도 냉철함을 모토로 하는 새로운 부동산 매입 방법은 가히 신 벤쳐 개념을 도입한 부동산 업계의 혁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성 싶다.

지난 93년 윌셔와 웨스턴 코너에 위치한 피어스 건물을 시가보다 6배나 싼 가격인 불과 4백50만불에 매입(SQ 180불 짜리를 28불에 매입)하여 세간을 놀라게 하더니만 곧 이어 윌셔와 버몬트 코너 쌍둥이 빌딩(윌셔 스테이트 뱅크 입주 건물)을 단돈 600만불에 사드리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 뛰어난 사업수단을 발휘 하기 시작, 불과 10년만에 윌셔가의 대부분 건물을 독식하는 부동산 업계의 일대 혁명을 불러 일으키면서 명실상부하게 부동산 업계의 제왕으로 부상 했다.

제미슨 프라퍼티의 이와 같은 과감하고도 공격적인 부동산 투자 방식은 지금까지 찾아 볼 수 없었던 전무후무한 일대 변혁 이였으며 상상을 초월한 경영 기법을 도입. 투자자들에게 무려 년 20%라는 천문학적인 고 소득을 보장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마켓 주인부터 병원 의사, 대 기업들까지 줄지어 투자를 하려고 대기하고 있으니 정말로 놀랄 일이 아닐 수 없다.

제미슨 프라퍼티사는 초창기인 90년대 초에는 일부 의사 그룹들만이 주축이 되어 공동 투자하여 건물 매입을 주도 했으나 90년대 말 부터는 아예 전문적인 투자 방법으로 소액 투자자들을 모집 이들에게 고 소득을 보장한다는 미명아래 엄청난 사업 확장을 꾀해 왔다.

다운타운에서부터 라브레아 길에까지 무려 30개에 이르는 초대형 건물을 보유한 제미슨 의 신화를 창조한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이런 엄청난 대 변혁을 몰고 전설적 가치를 창조한 주인공은 누구 이며 그의 정체는 무엇이고 과연 이들의 신화적인 행진은 언제까지 계속 될 것인가에 많은 사람들은 궁금해 하고 있다.

바로 그 주인공의 이름은 Dr,데이빗 리 박사. 그는 벤나이스 지역에서 아직도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평범한 의사에 불과한 인물이기에 더욱 놀라움이 크다.
과연 제미슨과 데이빗 리 박사의 불패행진의 신화는 언제까지 계속 될 것이며 이에 따른 문제점과 부작용을 집중 취재해 본다.
<편집자 주>

부동산 투자에 천부적 감각을 지닌 데이빗 리 박사의 등장

그는 경기 흐름을 꿰뚫어 보는 뛰어난 감각과 실력으로 90년 초부터 다양한 상업용 건물을 매입하여 현재 미국 내에 부동산 업계에서 선두 그룹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그의 신화가 점차 확산되어 이제 미 주류 사회에까지도 알려지게 되어 미국 부동산 업계에서도 알아주는 부와 명예를 동시에 얻고 있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2001년 8월 LA Times에 “데이빗 리씨”에 대해 보도가 되었다.

기사 내용을 간략히 요약을 한다면 ‘캘리포니아의 경제가 어렵고, 92년 당시 폭동 등으로 어수선 할 때 그는 오히려 미드윌셔 지역의 상업용 건물을 매입하였다. 일반적으로 코리아 타운의 사업은 대부분이 한국과의 교역을 통한 무역이 대부분이었으나 이제는 소규모 사업을 펼치는 등 변모된 코리아 타운을 볼수 있다고 벤자민 홍이 추산했다. 이런 상황에 데이빗씨는 코리아 타운에 있는 소규모 비즈니스를 잘 이해하고 있다 보니 자신의 상업용 건물에 공실율을 높이는데 기여했으며 실제 무려 90%에 달하도록 만들 정도였다.

당시 그가 건물을 매입할 당시 80년대에 square당 180달러 하던 건물을 30달러에 구매하였다고 밝혔다. 상황에 따라서는 커피샵 같은 경우 4만달러에 매입하여 20만달러에 매각하는 등 천부적인 기질을 발휘하였다.
데이빗 리씨는 그의 나이 17세(1971년)에 패서디나에 왔고, 늦게나마 노스웨스턴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내과의사가 되었다. 그는 현재 22개의 건물을 보유한 Jamison Properties를 운영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또한 이뿐만 아니라 그를 따르는 수많은 투자자들이 함께 하고 있다. 그가 구성하고 있는 조직은 지극히 체계적이며 Team Work가 좋다는 평판이 자자하다. 사업확장은 날로 번창하여 코리아 타운을 포함해 다운타운, 롱비치 등 여러 곳에 위치한 상업용 건물들을 매입하여 현재 코리아타운 미드 윌셔 가에는 ‘한 건물 건너 위치한 건물’이 모두 그의 소유인 상태다.
데이빗 리 박사는 92년과 93년 당시 미국 부동산 경기를 예측하여 남들과는 달리 비범하고 번뜩이는 통찰력을 발휘, 상업용 건물들을 집중적으로 매입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가족과 친척들 중심으로 시작한 부동산 비즈니스가 향후 대성공(?)을 이루게 되는 메시지이었던 것이다.

소규모 영세 입주상인들 지나친 “횡포”에 시달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당시의 세계정세와 미국의 경제동양, 부동산 침체위기

당시 세계정세는 미국과 소련간의 냉전체제가 와해되어 해빙 분위기로 전환되는 시점이었다. 양국간의 군비 축소, 미사일 개발 축소 그리고 핵무기 폐기 등 양국 모두 엄청난 국방비 지출을 규제하는 분위기였다.

데이빗 리 (49세,한국명: 이 용 일 )

그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로 그는 병적으로 언론과의 접촉을 꺼려 한다. 그의 얼굴 모습을 언론에서 거의 찾아 볼수 없을 정도로 공식적인 노출이 없다. 그 정도로 주도면밀하고 치밀한 인물이다. 세인들은 그를 가르켜 컴퓨터 보다도 더 치밀한 놀라운 머리를 소유하고 있는 ‘천재’ 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는 뛰어난 기억력을 지니고 있다. 그 천재의 주인공이 바로 49세의 내과의사 ‘데이빗 리’다.

그는 경기고 재학 중 가족과 함께 이민, 파사디나 하이스쿨을 졸업하고 시카고 노스 웨스턴 의과대학을 졸업. UCLA에서 경영학 MBA를 했다. 이외 리 박사는 지난 2002년 10월부터 USC 대학자문위원이며, 동대학 한국학센터의 이사이다. 더욱이 UCLA에서 공중보건학 석사를 획득했다. 그후 내과 분야 레지던트와 전문의 과정을 마치고 밴나이스에서 개업해왔다. 지금도 3명의 파트너와 함께 일주일에 3번씩 병원에서 진료하는 평범한 의사로 알려져 있다.

그의 부인과 자녀들은 USC와 인연이 깊다. 그의 부인 미키 남은 1979년 USC 화학과를 졸업했으며,딸 Jamie는 USC대 영문과에 재학 중이다. 그는 공무원인 부친을 두고 별로 유복하게 자라지 못했으나 다른 사람들과 달리 별로 뛰어난 것이 없는 지극히 평범한 어린 시절 이였다고 그를 아는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그는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지는 않았지만 LA에 동기생들이 몇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그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라는 것이 였다. 그와 동기 동창인 안과의사 한석진씨는 “학교 다닐 때에는 잘 몰랐으나 미국에 와서 동기 동창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할 정도로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로 볼 수 있다.

그는 우리 한인사회에 너무나 잘 알려진 USC식물학 노모 교수의 외 조카로 이 사람들의 초청으로 가족 이민을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첫째 형은 수의과 의사이며 둘째 형은 심리과 의사. 셋째 형은 약사이며 넷째 형은 어카운던트를 하고 있으며 여동생은 한인사회에 잘 알려진 신경내과 조경구씨 의 부인이다.

제미슨 프라퍼티(Jamison Properties,INC.)

제미슨은 딸이름 Jamie와 Son의 조합 치과의사 부인은 부사장, 경영일선에…

데이빗 리 박사는 아내(미키 남,치과의사)와 딸 1명 그리고 아들 3명의 가족구성원을 이루고 있다. 그는 딸의 이름 Jamie와 아들의 영문단어 son을 붙여 ‘Jamison’이라는 회사를 설립하였다. 회사 이름에 자녀의 이름을 넣어 만든 것을 보면 자녀 사랑이 지극하고 따뜻한 사람임을 느낄 수 있도록 짐작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그렇게 탄생한 회사가 바로 오늘날의 제미슨 프라퍼티 부동산 투자회사다.데이빗 리 박사의 딸 Jamie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아버지와 함께 Jamison Properties에서 함께 일을 하고 있다. 그가 쏟아 부은 자식사랑만큼이나 부모와 함께 많은 걸 배워나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아내 미키 남씨는 현재 Jamison Properties의 부사장으로 활동하고 있어 가족중심의 경영을 하고 있음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실제 치과 의사인 부인 미키 남씨는 한인사회에 잘 알려진 치과 개업의의 원조격인 남정호씨의 딸이다.

따라서 방위산업이 주축이 되어 지역 경제를 이끌던 캘리포니아 주는 커다란 경제적 타격을 입게 되었다. 방위산업은 실제로 국방산업과 관련된 기술을 연구하고 제품을 생산하는 것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캘리포니아 주의 당시 실물경제를 이끌던 주역이었으며, 이런 방위산업의 위축 (항공산업 위축, 미사일 제작 축소 그리고 핵무기 개발 포기 등) 은 급속히 캘리포니아 주의 경기 후퇴를 가져왔다.
이 같은 냉전체제의 급속한 붕괴 현상에서 방위산업에 종사하는 White Color 와 Blue Color 직원들의 감원을 야기시켰으며 엄청난 실업률의 상승을 일으켰다.
실업률의 상승에 따른 실물경제의 급속한 위축으로 캘리포니아 주는 겉잡을 수 없는 경제적 시련에 빠져들었으며 이는 결국 즉각적으로 부동산 경기 시장에 큰 한파가 불어온다는 것을 의미했다.

부동산 관계자들은 “당시 90년 초 모기지 이율은 10-11%로 높은 편이었으나 부동산 경기는 최고점을 지나치고 있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거의 한집 건너건너마다 Sale 표지판이 붙어 있을 정도로 당시 부동산 경기는 최악 중에서도 최악이었다.”라고 회고 했다.
또한 “당시 코리아타운 상업용 건물들도 이러한 영향을 받아 테넌트를 구하지 못해 부동산 융자를 제대로 갚지 못하는 건물주들이 파산하기에 이르렀고 이내 부동산들을 급매물로 내놓기 시작하였다”고 당시의 부동산 경기 현황을 전했다.

부동산 경기가 위축되어 최악으로 치닫고 있을 때 건물주들과 이를 소유, 융자한 은행들은 상업용 건물들을 처분하기 위해 혈안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은행들은 앞 다퉈 현금을 확보해야만 했고, 불량채권의 발생을 우려해 이를 회수하거나 관련한 유형자산을 처분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바로 이 시점에 리 박사는 사업적 감각이 발동했다. 그는 일반적인 경기의 흐름과 정반대로 상업용 매물에 관심을 보이며 접근 했던 것이다.

그는 뛰어난 통찰력과 경기흐름을 읽어내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한인 은행들이 그간 고객에게 제공한 Loan(개인용/상업용)을 회수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게 될 것이라는 점 등에 착안했다. 즉 당시 상업용 매물을 급 매물로 내놓는 등 자금확보에 열을 올리는 은행들과 건물 소유주들을 상대로 빅 딜(Big Deal)을 시작했던 것이다.
은행들이나 건물 소유주들이 자금확보를 위해 일반인에게 대출한 융자와 테넌트 부족 등으로 발생하고 있는 수익구조의 악화 해소를 위해 상업용 건물들을 매물로 너도 나도 내놓기 시작하였고, 그는 당당한 자세로 은행들로부터 헐값에 건물을 사들이게 된 것이다.

당시 은행 관계자들은 앓던 이를 빼는 기분으로 “상업용 건물을 매입하려던 그에게 굽신거리며 애걸하면서, 많은 부분을 양보하였고, 그는 당시 시세보다도 훨씬 저렴한 가격에 상업용 건물을 매입했다” 라고 전했다. 일거양득의 효과로 은행들과 그의 거래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바로 이 시점이 그의 활약을 알리는 첫 신호탄이었다.
코리아타운 윌셔와 웨스턴에 위치한 피어스 빌딩은 당시 430만 달러에 매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현재 시가로 환산하면 무려 7배가 넘는 장사를 한 것이다.
그리고 윌셔은행 본점이 입주하고 있는 건물은 당시 엄청난 헐값인 600만 달러에 매입 했다.

그 후 그는 부동산 경기의 사이클을 분석하여 부동산 경기 및 실물경제가 살아날 때까지 소요될 시간이 충분함을 감지하였고 본격적으로 상업용 건물을 매입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매번 은행으로부터 융자를 받을 경우 10년 만기 5.5%의 고정이율을 정했다고 한다.
즉 변동금리로 인한 추가 비용발생의 Risk와 은행측의 장기대출로 인한 부실채권 발생의 우려감을 상쇄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풀이된다. 변동금리의 경우 본인 뿐만 아니라 다른 투자자들에게도 약속한 투자이윤을 돌려준다는 것이 어렵다는 판단의 계산에서 나온 것이다.
더욱이 그의 치밀하고도 놀라운 감각을 살펴보면 지난 2002년도에는 어떠한 건물도 매입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었다.
즉 이라크 전쟁의 발발, 테러의 위협 등 다양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상황을 이용하여 각종 경제 지표들이 하향곡선을 그리며 떨어지기 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예상은 결국 적중, 경기의 위축과 함께 대출이율이 사상 최저 치를 갱신함에 따라 금년도에는 다시 몇몇 상업용 건물들을 인수하였고 윌셔와 세라노가 위치한 곳에 상업용 건물 건축계획을 내놓은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이미 확정안이 된 신축 계획에 따른 문제점은 차후에 보도 할 예정이다)

데이빗 리 박사의 투자 기법

그는 현재 윌셔 가에만 약 27개의 빌딩을 비롯해 8가의 상가 건물 등 제미슨 사가 소유한 외형규모만 약 7-8억달러에 달한다.

이는 실로 엄청난 액수이다. 마치 과거 일본인들이나 유태인들이 미국의 부동산에 열을 올리며 매입 했던 모습과도 너무 흡사하다. 과연 어떻게 그가 상업용 건물을 집중적으로 매입하고 있고 어떤 투자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인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항상 상업용 건물을 매입할 때는 자신이 투자하는 몫이 이미 정해져 있다고 한다. 가령 그는 상업용 건물 매입자금 중 5%정도에 해당하는 금액만 투자하고, 나머지는 주변 투자자들로부터 투자를 받거나 은행들로부터 융자를 받아서 처리한다는 것이다.

즉 ‘High Risk High Return’ 방식이 아닌 자신이 감수할 수 있을 정도의 Risk만을 끌어 안고 사업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큰 돈을 투자하여 홀로 독식하려 하기보다는 한 건물에 자신이 투자한 금액만큼만 투자이윤을 챙겨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그는 “계란을 모두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기본적인 경영 포트 폴리오에 입각하여 매번 상업용 건물을 매입하면서도 각기 다른 Management Company를 설립하였다.
다시 말해 그는 A, B, C라는 상업용 건물을 매입할 때 각기 A, B, C를 위한 Company를 별도로 설립한 것이다.
이는 분명히 일반적인 상업용 건물 관리 기법이기는 하다. 또한 그가 보유한 상업용 건물들 중 한 곳이 부도가 난다거나 문제가 발생할 경우( 입주자 감소에 따른 부작용) 그 건물만 처분하여 그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상업용 건물들의 연쇄붕괴 현상인 ‘도미노 현상’을 막겠다는 뜻이다. 한 Management Company나 보유 건물들 중 한곳이 다른 상업용 건물에 연쇄적인 영향을 미칠 경우 타 상업용 건물의 다른 투자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어 낭패를 겪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상업용 건물에 투자하는 기법모두가 기본적인 경영기법에 입각하여 접근하고 있으며 철저한 계산 속에서 단돈 1센트 라도 문제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투자자들과 투자잉여금 배분문제도 역시 정확하게 처리함을 알 수 있다. 매번 상업용 건물매입 시 투자금액의 20%의 이익금을 약정하고 투자자들을 모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즉 100만 달러를 투자할 경우 매년 15%의 수익을 보장해 준다는 것이며, 나머지 5%는 5년 뒤에 주는 방식을 취한다. 실제 매년 15%씩의 수익을 받는다면 5년 뒤에는 투자금액에 해당하는 금액을 모두 수익금으로 받게 된다는 계산이 된다. 투자한 금액이 5년 뒤에는 2배가 되어 돌아온다는 것이다.

윌셔의 신화를 창조한 인물인가!! 돈만 아는 “베니스의 상인”인가

이익 챙기기에 급급, 관리 보수는 뒷전 빌딩마다 슬럼화, 입주자들의 원성 높아

LA 폭동 이후 부동산 경기 및 실물경제의 위축으로 좀처럼 살아날 것 같지 않은 경기가 되살아 나게 되었다. 많은 백인들이 미드 윌셔가를 떠났지만 점차 그들이 하나 둘씩 되돌아 오고 예전 같지는 않지만 점차 변모하고 활기찬 코리아 타운이 다시 형성되기 시작했다. 부동산 업계 한 관련자는 “그의 노력이 빛을 발했다. 또한 떠났던 백인들이 서서히 되돌아왔다”고 전하면서 그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실제 그의 노력은 대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천재성과 멋진 노력의 대가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남는 점들이 많다. 실제 이와 관련하여 몇 년 전부터 그가 매입한 건물에 입주해 있는 오래된 테넌트 들을 만나보았다. 그들은 모두 한결 같은 목소리로 “그는 대단한 사람이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대단한 모습과는 달리 실제 테넌트 들을 위한 환경 개선이나 건물관리가 너무나 소홀하다는 점에 대해 공통적인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손바닥만한 바퀴벌레가 나오고, 고장 난 화장실은 몇 달째 비닐로 덮어두고 ‘Out Of Order’라는 종이만 붙어있기가 일쑤라고 전했다.

또한 더러운 카펫이나 잦은 고장으로 불안한 엘리베이터는 Inspection도 제대로 받고 있지 않으며 실제 엘리베이터에 갇히는 등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불만을 얘기할 경우 건물 관리 매니저들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하는 식으로 관리의 소홀함을 인정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반응뿐이라고 전했다.

과연 왜 어쩔 수 없는 것인지 본보 기자는 해당 건물 매니저들에게 전화통화나 인터뷰를 시도하였지만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이런 사실에 대해 알고 있는 제미슨 사의 한 관계자는 “다른 Properties회사보다도 훨씬 낮은 관리비를 받고 있는 것이 가장 문제의 핵심”이라고 전했다.
즉 일반 Management Company의 매니저들은 보통 관리비로 월 20% 정도를 받는 것이 상례다. 하지만 실제 제미슨 프로퍼티스가 고용한 매니져들은 10%정도만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이외 부분은 테넌트가 입주 시에 매니져들이 커미션을 챙길 수 있도록 유도장치를 마련해 놓은 것이다.

이렇다 보니 많은 매니저들은 테넌트 확보에만 혈안이 되고 건물관리는 소홀해지는 것이다. 즉 적은 관리비를 받는 매니저들은 자연스럽게 건물관리를 저급하게 하면서 이런 건물에는 고급 테넌트들은 고개를 절래절래 젓고 입주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건물에는 학교나 학원과 같은 테넌트들을 수용하다 보니 더욱더 건물은 지저분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매니저들은 어떤 테넌트라도 렌트비를 꼬박꼬박 잘 낸다면 테넌트의 입주에 문제를 삼지 않고 있으며 커미션 베이스로 수익을 내야하기 때문에 ‘앞뒤를 가릴 처지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미드 윌셔가의 대표적 상업용 건물인 에퀴터블 빌딩 역시 관리 비용을 줄이기 위해 저급한 화장지로의 교체, 바퀴벌레가 난무하고 그리고, 또 다른 건축물 건설을 위해 주차 공간을 협소하게 조정한 것에 대해 모든 테넌트들은 “오토바이를 세우라고 만든 것인지 차량을 주차하라고 만든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한 테넌트는 “에퀴터블 빌딩을 제미슨 프라퍼티스가 소유하기 전 관리하던 외국인 매니저나 Management Company들보다도 훨씬 못한 관리로 건물은 점점 더럽고 지저분하게 변해가고 있다 미드 윌셔가의 환경을 고려해서 남겨진 공원마저도 건물주의 배를 채우기 위해 건물을 짓겠다는 것은 비도덕적이고 비열하다”고 맹렬히 비난했다.
실제 윌셔와 세라노에 위치한 공원에 복합쇼핑센터가 건립될 것이라고 일간지를 통해 밝혀진바 있다. 그곳은 많은 빌딩숲 사이로 잠시나마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도록 남겨진 공원인데 그곳에 빌딩이 들어선다면 이제 미드 윌셔가는 삭막한 공간으로 변모될 것이라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그 땅에 많은 미국인들이 건물을 짓지 못해서 지금까지 건설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라며 “그들은 코리아 타운의 도시 환경과 미관을 고려했기 때문이지 데이빗 리 박사가 건물을 지을 때까지 양보한 것은 절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또 하나의 충격적인 사건으로 Jamison Properties 소속의 3921건물에 도난 사건이 발생하였다. 지난 주말에 누군가 사무실 벽을 부수고 문을 열고 들어가 각종 자료와 PC와 같은 집기들을 훔쳐 달아난 것이다. 관리와 보안상의 문제점을 확연히 드러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 건물에는 낮은 관리비를 이유로 밤에 경비 한 사람도 없다. 따라서 입주자들은 공포에 떨며 출 퇴근을 해야 한다.게다가 밤이면 계단에 홈 리스 피플들이 잠을 자고 있는가 하면 수시로 멈추는 엘리베이터의 고장으로 몇번씩 엘리베이터 안에 같이는 빈번한 사례가 발생하였으며 이를 항의할적마다 “싫으면 떠나라”는 식이 였다.(이와 같은 사례는 비단 3921빌딩 만이 아니여서 차후 사례별로 엮어 보도 할 예정 임) 많은 사람들이 그가 한인들 중에서 뛰어난 지식과 통찰력으로 성공한 사람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렇게 멋지게 독주하여 10여년 만에 성공한 것에 대해서 찬사를 보내고 있다.
과연 그렇다면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그는 신화를 창조한 것일까?

쉽지 않은 대답일수도 있지만 그가 사업가로서 이곳 한인들 중 성공한 것만큼은 사실이다. LA흑인 폭동으로 모두가 떠나간 코리아 타운에 백인들이 다시 입주하고 이곳에 그들이 돌아오는 것에 상당히 큰 일조를 했다는 평이다. 실제 그런 평이 겉으로만 살아났다고 할지라도 그의 천재적인 감각과 노력으로 이 정도나마 일구도록 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성공한 모습 뒤에 왜 ‘비도덕적이고, 비열하다’라는 또 다른 서술어가 따라 다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사실상 그는 동포사회에서 성공은 누구나 부정 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곳에 위치한 건물들을 사들이면서 그가 부를 축척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교포사회로의 환원이 없다는 것이 가장 핵심중의 핵심이다. 철저하게 돈을 벌어들인 것 만큼 교포사회를 위해 베풀 줄도 아는 관용이나 사회 환원이 필요하지만 벌어들인 돈이 모두 고스란히 그의 은행계좌에서 나오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는 투자 수익금으로 “또다시 어떤 건물을 살 것인가”만을 궁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그에게 가장 위협적인 것은 다가오는 위기는 부동산 경기의 점진적인 침체가 예상되고 있으며 이자율 상승에 대한 우려감이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경기가 침체되어 부동산 경기가 악화될 경우 총체적 위기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즉 Tenant들이 빠져나가 수익구조 악화가 예상되어 결국 건물을 처분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와 관련 본보 기자는 3차례에 걸쳐 데이빗 리 박사에게 대해 공식 인터뷰를 요청하였다. (인터뷰요청 팩스자료 참고) 하지만 그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인터뷰를 회피하고, 어떠한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외부로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그이기에 쉽지가 않아 아쉬움이 남았다.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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