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낙태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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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 만삭의 몸으로 인도를 가던 임산부 P씨가 교통사고를 당해 뱃속의 아이가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당신출산 직전의 9개월된 뱃속 아이가 죽었음에도 보험사는 한푼의 보상금도 지불하지 않았다. 보험사들은 임산부가 교통사고를 당해 낙태했을 때 원칙적으로 낙태수술에 드는 비용은 보상하지만 사람이 죽었을 때와 같은 보상은 하지 않고 있다.

태아는 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사람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행 민법은 태아가 엄마와 같이 사망하거나 엄마 뱃속에서 사망하면 재산상속권이나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태아의 권리가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태아를 잉태한 여성의 몸에 대한 배려 역시 빠져 있다.

1998년 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15~44세 기혼 여성의 44%가 한 번 이상 낙태 경험을 갖고 있다고 한다. 최근 가족보건복지협의회 조사에서 나타난 기혼 여성의 낙태 경험률은 약 39%에 이른다. 여기에 낙태시술의 30%를 차지하는 미혼 여성까지 감안하면 전체 가임 여성의 낙태건수는 상상 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 이를 근거로 추산한 연간 낙태건수는 1백50여만건보다 2.5배나 많은 것이다. 물론 이것마저 정확한 통계는 아니다. 은밀히 이루어지는 낙태시술이 얼마나 되는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한국에서 낙태는 1953년부터 형법상 불법으로 규정됐다가 1973년 제정된 모자보건법에 의해 태아의 장애나 강간에 의한 임신, 모체의 건강이 위태로울 때 등 5가지에 한해 부분적으로 허용되고 있다. 그런데 형법에서는 자기낙태죄,동의낙태죄,부동의 낙태죄,업무상 낙태죄,낙태시사상죄를 통해 낙태와 관련된 거의 모든 행위를 처벌하게 돼 있다.하지만 낙태죄로 의사가 처벌된 경우는 지난 10년간 통틀어 30명 정도밖에 안된다.그 중 공소가 제기된 인원은 10명도 안된다. 결국 낙태가 합법화된 것과 마찬가지인 현실인 것이다.

낙태반대운동연합이나 한국 천주교 주교회 등 대표적인 낙태 반대론자들은 태아의 생명도 존중해야 한다는 ‘생명 우선론’을 반대근거로 내세우고 있다.이들은 앞서 소개했던 불법낙태의 예외조항을 명시한 모자 보건법 제14조 폐지 청원을 내고,’백만인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낙태를 법제상 원천적으로 금지하기 위한 구체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 낙태가 불법임에도 낙태시술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이 행해지고 있다. 그 와중에 낙태한 여성들의 목소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생명론자들만이 뱃속에서 사라져간 태아를 대신해 낙태 반대운동을 펼치고 있다. 법과 현실, 주체와 대상, 어느 하나 제대로 제 소리를 찾지 못한 채 기이한 소음을 내며 웅성거리고 있는게 낙태를 둘러싼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이 웅성거리는 소음 속에서 낙태 여성의 목소리는 빠져 있는 것이다.

낙태 경험이 있는 38세의 직장여성은 이렇게 고백한다.”대학생 때 처음으로 낙태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바보 같았지만,남자도 나도 피임에 무지했다. 수술실에서 혼자 다리를 벌리고 누워 있으면서 너무 치욕적이고 슬펐다. 또 얼마나 외롭던지… 생명을 없앤다는 죄의식 때문에 자학적인 감정이 생기기도 했다. 마취를 할 때는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싶었다. 의사, 간호사와 시선을 마주하는 것도 부끄럽고 두려웠다. 그들이 날 형편없는 여자 취급하는 것 같았다.”이 여성이 낙태시 느꼈던 수치감은 같은 경험이 있는 여성 모두의 공통적인 느낌이었을 것이다.


한국에서 여성의 낙태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순결한 여성의 몸이야말로 여성이 가진 최고의 자산이었다. 이런 사회적 무의식 속에서 낙태는 자기 몸을 단속하지 못한 여성이 야기한 불결하고 부정적인 결과일 뿐이었다. 낙태 논란에서 정작 가장 중요한 당사자인 낙태 여성의 목소리가 생략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여성은 태아의 생명에 대한 존중감이나 존귀감을 누구보다 절감하고 있는 태아의 모체이기도 한 것이다. 한 어머니는 다음 같이 말한다.

“모든 어미된 것들은 안다. 이제 막 난자와 정자가 만나 엉긴 흔적 같은 미물일지라도 그것이 자라나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고 하루 종일 부벼도 또 보고 싶은 새끼가 된다는 것을….제 방에서 하루 종일 장난질로 인해 웃고 우는 저 아이들.낙태란 바로 그렇게 자라날 또 한 아이에 대한 살육이라는 것을…”낙태 문제가 공론화되지 않음으로 인해 여성의 낙태 경험은 부정적으로 각인되고 은폐되고 있다. 낙태한 몸이 제대로 보살펴지지 않는 까닭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의사들은 낙태가 출산 경험과 비슷한 정도의 격한 과정이라고 입을 모은다. 여성이 출산을 하면 최소한 3개월의 회복 기간을 가져야 한다. 법적으로 출산휴가가 90일이 된것도 그 때문이다. 낙태를 한 여성들의 경우 바깥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런 상황에서 낙태 여성들은 대다수가 시술을 한후에 바로 일상적인 생활을 시작하고 있다.
의료진들은 낙태한 이후 몸을 제대로 돌보지 못할 경우 상당히 위험한 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수술에 의한 감염, 자궁천공 등 수술합병증, 전신마취. 출혈로 인한 쇼크사 위험, 자궁내막유착, 자궁외 임신, 임신중기 유산증가, 불임증 유발 등 때로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에 이르기도 한다. 낙태 사실을 쉬쉬하고 속으로만 끙끙대야 하는 여성들이 겪게 되는 심리적인 고통은 또 어떤가.
낙태 경험이 여성에게 주는 정신적 후유증은 신체적인 것 이상으로 심각한 것이다. 낙태는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이에 대한 논의는 여성의 현실을 떠나 이야기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이 낙태에 대한 논의와 의사결정의 주도권을 가졌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지난해 한국인권재단 주최의 심포지엄에서 이숙경 줌마넷 대표는 “낙태논쟁은 생명권과 여성의 선택이라는 구도의 논쟁으로 이어져 왔지만 사실상 여성에게 자유로운 선택의 권리가 없으며 논쟁에서도 여성들의 경험과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정부는 출산율 조절이라는 미명 하에 낙태를 간접적으로 유도해왔고, 의료계는 수입을 위해 낙태를 방조해왔다. 구조적으로 낙태가 양산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낙태 여성은 홀로 낙태로 인한 온갖 사회적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미혼 여성이 낙태문제를 거론하면 혼전 성관계에 대한 비난부터 받아야 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낙태 문제의 대안은 잃어버린 여성의 목소리를 되찾는 것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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