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로 홀랑 탔던 이지선의 요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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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홈페이지 ‘지선이의 주바라기’와 KBS2 TV <인간극장>을 통해 우리 시대 희망의 아이콘으로 등장한 스물여섯의 아가씨 이지선. 어느 화창한 날, 햇살 같은 미소를 머금은 그녀를 만났다. 방송과 책<지선아 사랑해> (이레출판사)에서도 들려주지 않은, 진짜 이지선의 이야기.

아직 이지선(26세)을 모르는 사람에게 자기 소개를 한다면?
“저는 홀랑 탔었던 아이라고 말하거든요(웃음). 그 사고를 계기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아주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지선은 대학 4학년이던 2000년 7월 30일, 교통사고로 인해 전신 55퍼센트에 3도 화상을 입고 말 그대로 극적으로 살아났다. 열한 차례의 수술 끝에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그녀.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이야기하고, 그녀로 인해 감동을 받는 것은 그녀가 이화여대 출신, 미모의 젊은 여성 출신(?)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이지선의 진짜 이야기는 바로 지금부터 시작이다.

이지선이라서 행복해요

지선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지사모)의 회원이 2만을 훌쩍 넘었고 ‘지선이의 주바라기’의 방문자 수도 꾸준히 상승 곡선을 타고 있다. 인기 검색어로 선정된 온라인 스타 이지선이 요즘은 오프라인에서도 바빠졌다. 5월 둘째 주 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 순위에 훌쩍 뛰어든 ≪지선아 사랑해≫ 덕분이다.

“작년 12월 출판사 제의를 받고 책을 준비하는 동안 예전에 써둔 글을 죽 읽어봤어요. 제가 무엇을 발견한지 아세요? 신기하게도 그 당시에 소망했던 일들이 지금 하나 둘 이루어져가고 있는 거예요. 또 많은 분들이 써준 글을 읽으면서 고통의 시간은 결코 나 혼자 겪은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도 다시금 깨우치게 되었어요.”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지선아 사랑해≫가 미약하나마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저자 이지선의 바람이다. 타인이 가진 그 무엇을 부러워하고 열등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자신만의 행복의 기준을 세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최근 이지선을 가장 행복하게 했던 기억에 대해 묻자, 그녀는 꽤 난감해했다. 행복했던 순간이 너무 많아서 고민하는 눈치다. 한참을 생각하다 웃음부터 터뜨리고는 얘기를 이어 나갔다.

“얼마 전에 목욕탕에 갔다가 쑥탕에 몸을 담그려는데 어느 할머니께서 제 몸을 보시더니 ‘어쩌다 이렇게 많이 다쳤냐 진짜 고생 많았겠다. 사는 게 기적이다’라며 한참 동안 말씀하셨어요. 가끔 있는 일이라 저는 그냥 ‘네, 네’ 대답만 했거든요. 그런데 다음 말씀이 ‘어쩜 얼굴은 하나도 안 다쳤네’라고 하시는 거예요. 목욕탕의 뜨거운 기운에 다른 사람들의 얼굴도 빨갛게 홍조를 띠고 있으니까, 저도 그런 줄 아신 거예요.”

병원에서 나온 후 이지선은 비록 지금은 거울 보기 힘든 얼굴이지만 10년 후쯤에는 사고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화상당한 얼굴인지 몰랐다고 할 정도로 나아지기를 소망한다는 기도를 했었다. 그날 쑥탕에서 마치 기도 응답의 예고편을 본 것 같다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왜 이지선이 대중 목욕탕을 다닐 거라는 생각을 못 했을까. 이지선은 이미 2년 전부터 대중 목욕탕에 드나들었다고 했다.

“단지 일반 사람들과 모습이 다를 뿐이지 내가 부끄럽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남들보다 몇 배로 고생한 내 몸이니까 더 깨끗하게 닦아주고 아껴줘야 하잖아요. 물론 처음 목욕탕에 갔을 때는 제 주위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고 난리가 났었죠.”


혼자만의 고통이 아니었음을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까지 하고도 외출을 두려워하던 이지선은 한참을 돌아보거나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이들이 없는 일본에서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연습을 했다. 피부 이식 수술을 위해 떠난 일본에서 마음까지 단련되어 돌아온 것이다. 몇 차례의 피부 이식 수술을 통해 이지선은 지금의 얼굴을 얻을 수 있었지만, 신체 곳곳에는 이식을 위해 떼어낸 흉터가 남아 있다.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이지선의 하얀 발은 거의 유일하게 온전히 남아 있는 예전 그대로의 피부이다.

“피부 이식 수술을 여러 번 하다 보니 얼굴에 이식할 살이 없어서 두피에서 떼어내기도 했어요. 그 사람들(의사)은 발에서도 떼어낼 수 있었으면 떼어냈을 거예요.” 이지선의 어머니가 한마디 거들자 미소를 띠며 이지선이 받아친다.

“다치기 전에는 제 발이 예쁘다는 생각을 단 한번도 못 했어요. 온몸에 붕대를 감고 누워 있을 때 병문안 오는 사람들이 손을 잡을 수 없으니 발을 잡고 인사를 했었거든요. 다들 발이 너무 예쁘다고 하길래 봤더니 정말 예쁜 거 있죠.”
이지선의 행복 일기는 죽 이어졌다. 병상에 누워 있을 때 어쩌면 다시는 못 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며 포기했던 일들을 이제 다 할 수 있게 됐다는 것. 엄마랑 얼굴 비비면서 같이 잠들고, 대학 졸업도 하고, 친구들과 신촌에서 만나 수다도 떨었다.

세상 그 누구보다도 해맑은 미소를 보여주는 이지선에게 사람들은 ‘대단하다’며 입을 모은다. 그 속에는 ‘타고난 낙천주의자겠지’라는 지레짐작이 들어 있기 마련이다.
“이지선은 타고난 낙천적인 성격 덕에 이겨냈을 거라고 마치 저를 인간 승리의 표본으로 보시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그 사건은 성격으로 이길 만한 것이 아니었어요. 제가 뭐라고 말을 하기가….”

어머니가 대화를 이어 나갔다. 금세 눈이 촉촉해진 그녀 역시 순조롭게 말을 잇기 힘들어했다.
“열여덟 시간 수술받고 나와서 3일간 기운 못 차리고 뻗어 있는 아이에게 계속 속의 것을 석션해야 하고… 정말 일 분 일 초가 견디기 힘든 상황이었는데… 그 말 못 할 고통을 단지 성격만으로 참고 이겼다고는 말 못 하죠.”
수술 후 일주일 정도 아프고 나면 몸이 훨씬 나아질 것을 알면서도 모든 것을 다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들더라는 이지선은 그때마다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새삼 느꼈다고 했다.

“이가 부들부들 떨릴 만큼 뼛속까지 고통스러운 당장의 상황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조금 멀리 내다볼 수 있도록, 소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신 분이 있었기에 지금의 이지선이 있는 거라는 걸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지선이의 이상형은요?

이런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그분께서는 왜 이지선에게 이런 고통을 주었을까. 뭔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짐작만 하던 그녀는 홈페이지에서 그 답을 찾았다. 이지선으로 인해 삶의 용기를 얻었다는 네티즌들의 사연이 바로 해답이었다고. 이지선의 팬을 자청한 개그맨 남희석 역시 홈페이지 글을 통해 인연을 맺었으며, 이해인 수녀, 개그맨 이홍렬, S.E.S. 출신의 유진 등이 좋은 글을 읽고 간다며 글을 남겼다.

“홈페이지에 글 올리는 분들 가운데 저보다 더 가슴 찡한 사연을 가진 분들도 많아요. 저와 동갑이라는 한 분은 폐암 말기 선고를 받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다가 <인간극장>을 보셨대요. 제가 그분처럼 절망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밉다, 밉다 하며 술에 절어 살다가 어느 교회에서 제 간증을 듣고는 저의 제자가 되었다고 하더군요. 저를 통해서 받은 게 많은 만큼 자신도 다른 이에게 나눠주고 가겠다고요.”

6월 중 이지선은 캐나다를 방문해 학생 수련회에서 초청 강연을 한 뒤 미국으로 넘어가 9월부터 일년간 어학연수 과정을 밟을 예정이다. 이듬해부터 대학원에서 재활심리학을 전공하기 위해서다. 사회적으로 말썽을 일으키는 사람들에 대한 심리치료 연구가 부족한 국내에서 재활심리 치료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자기 스스로 영향력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그 사이 조금 더 예뻐지는 수술을 할 거라고 이지선은 살짝 얘기해줬다. 아직 조금 덜 감기는 눈을 손보고 개방적인 콧구멍을 약간 줄이고 목 부분의 피부를 깨끗하게 정리할 예정이라고. 인터뷰를 마치면서 이지선은 모발 끝이 많이 상해 미용실에 가서 손봐야 하는데 못 갔다며 속상해했다.

순간, 친구들을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하냐는 질문을 했던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그녀의 대답은 ‘그냥 사는 얘기 하죠 뭐’였다). 단지 살면서 조금 색다른 경험을 했을 뿐, 그녀는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기 마련인 스물여섯의 아가씨였던 것이다. 참고로, 이지선의 이상형은 몸과 마음과 정신이 정갈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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