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문익환 목사 큰 며느리,영화배우 문성근씨 형수 “국립오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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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국립오페라단이 자랑하던 드라마틱 소프라노이자 현 예술감독. 거기에 <아이다> <토스카> <라보엠> 등 주옥같은 오페라의 주연으로 30년을 관객들의 갈채 속에 살아온 사람이니 ‘도도하고, 다소 오만하겠지’라는 생각은 선입견에 불과했던 것이다.
약속된 인터뷰 시간에 맞춰 세종문화회관 뒤편 분수대로 갔을 때 눈에 띈 검은 원피스 차림의 50대 여성. 옷차림은 수수했고, 화장과 액세서리 역시 튀지 않았다. 매력적인 오페라 가수라는 인상보다는 후덕하고 푸근한 큰이모의 느낌을 주는 여자. 활짝 웃으며 먼저 인사를 건네는 그녀가 바로 국립오페라단 정은숙(57) 예술감독이었다.

정은숙 예술감독은 통일운동가 문익환 목사(94년 타계)의 며느리이자, 한국형 오페라의 전범을 만든 연출가 문호근(2001년 타계)씨의 아내, 노무현 정권을 탄생시킨 일등공신이라 할 영화배우 문성근의 형수로 더 잘 알려진 사람.
하지만, 정은숙씨는 문씨 일가의 후광(?)을 입어 빛나는 사람이 아니다. 누구의 며느리나 누구의 아내가 아닌, 한 사람의 당당한 예술가로 살아온 그녀.

1970년 스물 넷의 어린 나이에 김자경 오페라단이 무대에 올린 <아이다>의 주역으로 데뷔한 후 74년 국립오페라단 입단, 이후 30년 가까운 시간을 갖가지 오페라의 주역을 도맡았으며 팬들의 사랑을 받았고, 지난해에는 국립오페라단 40년 역사상 최초의 여성 예술감독에 오른 정은숙.
그녀는 지난 5월과 6월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았다. 남편의 2주기를 기념해 문호근 서간집 <하나가 된다는 것은>이 출간돼 출판기념회를 열었고, 생전에 남편이 대표로 있던 극단 금강의 뮤지컬 <수천> 무대를 찾아 후배들을 격려했다. 이 와중에 시동생 문성근은 지난 대통령선거 때 인터넷에 올린 글이 문제가 돼 선거법 위반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남편의 빈자리가 느껴질 때마다 더 열심히 스스로를 다그치며 일한다”는 정은숙 예술감독과 함께 오페라와 남편 문호근, 문익환 목사와 시동생 문성근 그리고, 살아간다는 것의 눈물겨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지난달 남편이 문익환 목사에게 쓴 편지가 책으로 묶였는데.
“책을 만들던 시기가 국립오페라단의 <투란도트> 공연준비와 겹치는 바람에 많은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원래 편지쓰기를 좋아하던 사람이라 아버지는 물론, 나와 아들에게 쓴 편지도 많았다. 그중 아버지께 쓴 편지를 골라서 출판사에 전해줬고, 선별은 남편과 친분이 있던 시인 신동호(38)가 했다. 어쨌건 그를 잊지않고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고맙다.”

– 통일운동가나 오페라연출가가 아닌 자연인 문익환과 문호근은 어떤 사람이었나?
“아버님은 젊은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컸던 분이다. 결혼도 전적으로 자식들의 의견에 맡길 만큼 이해심 또한 넓었다. 처음으로 인사드리러 가던 날 ‘그럼 언제 (결혼) 할래? 뭐 미룰 거 있나, 한 2주 후에 해라’고 하시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또한 내 노래를 가장 정확하게 평가해준 분이셨다. 감옥에 계시던 80년대 어느 날 ‘아가, 네 공연에 못 가는 것을 보니 내가 감옥에 있긴 있는 모양이다’라고 보내오신 편지를 아직 보관하고 있다.


남편은 친절한 조력자이자 동료였고, 또한 스승이었다. 원체 일에 몰입하는 스타일이라 작업하면서 만난 사람들은 ‘차갑다’는 말도 한다. 하지만 공연 때문에 떨어져 있으면 매일 엽서를 보내오고, 싸운 다음 날에는 식탁에 사과의 메모를 남겨 나를 감동시킨 자상한 남편이었다.”

– 남편의 서간집 <하나가 된다는 것은>이 나왔을 때 느낌은.
“바쁜 분들에게 누가 될까봐 초청장을 보내지 않았음에도 많은 분들이 출판기념회를 찾아주셨다. 책과 그분들의 기억 속에 살아있는 남편이 다시 내 앞에 온 느낌에 가슴이 울컥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고이 간직하던 생활의 편린을 동의 없이 공개하고 퇴고 없이 책으로 만든 것이라 자기 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던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 원래 편지를 많이 썼던 사람인가?
“결혼하고 받은 편지만 라면 박스에 하나 가득이다. 떨어져 있는 시간이면 하다못해 팩스라도 하루에 한번씩 보내왔다. 모든 편지는 ‘사랑하는 당신에게’란 문장으로 시작된다(웃음). 평범한 글에서도 감동을 느끼게 하던 사람이었는데…”

– 그토록 자상했으니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질 것 같은데.
“남편 1주기가 지난 얼마 후 아들(문용민)까지 입대했다. 혼자라는 사실에 외로워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나. 언제나 그의 빈자리를 느낀다. ‘2년이면 이젠 그리움도 옅어질 때다’고 말하지만 그리움은 갈수록 진해진다. 작품을 준비하다 어려움에 부딪칠 때면 더 그렇다. 그때마다 스스로를 다그치며 일에 몰두한다.”

– 오페라와 만나게 된 계기는?
“가수가 꿈이었던 엄마가 늘상 노래를 흥얼거리는 걸 보고 자랐다. 아버지 역시 음악을 좋아했다. 3개월 레슨을 받고 성악과에 진학했는데 거기서 ‘성악의 꽃은 오페라’라는 사실을 알게됐다.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막상 극이 시작되면 그 고통은 사라지고 희열만 남는다. 결혼 초기에 아침마다 킁킁거리며 목과 비강을 푸는 나를 보며 남편이 이상하게 여겼을 정도로 항상 소리(노래)만 생각하고 살았다.

– 시동생 문성근의 정치참여에 대한 생각은?
“그건 정치참여가 아니라, 아버님의 인간사랑을 이해하고 실현하는 한 방편이라고 생각한다. 주위 사람들의 고통을 그냥 두고보지 못하는 게 아버님의 삶의 태도셨다. 두 아들(문호근, 문성근)과 나 역시 그 뜻을 이해했고, 동참했다.
세상 사람들은 아버님께 ‘목사가 왜 정치에 참여하느냐’고 했지만,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하지 않는 것은 성직자의 도리가 아니다. 문성근씨 역시 자신의 얼굴을 내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의 일원으로서 그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믿는다.”


– 향후 계획은?
“국립오페라단을 탄탄한 시스템 위에 세우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속합창단과 전속관현악단을 조직하는 것도 필요하고, 재정적 자립을 위한 노력들도 있어야 할 것이다. 올 10월에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사랑의 묘약>을 공연할 계획이다. 기대해달라.”

– 남편 책의 독자들과 오페라를 찾을 관객들에게 한마디.
“어두운 역사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았던 한 부자(父子)의 대화가 세상을 밝히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한다. 최선을 다해 준비한 공연에도 관심을 보여주면 좋겠다. 감동이 있는 무대를 위한 우리의 노력이 관객들의 격려와 질책과 함께 하기를 기대한다.”
<오마이뉴스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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