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고아·장애인 위해 다시 이라크행..

이 뉴스를 공유하기

세계 어느 곳에서건 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여성과 아동이다. 전쟁은 필연적으로 많은 장애인을 양산한다. 이러한 모습은 미국의 명분없는 이라크 침공에서도 나타났다.

미군의 무차별적인 폭격 이후 폐허가 된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에는 고아와 여성, 수많은 장애인들이 먹을 것과 의료진의 손길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지만 정작 이라크 내에서는 이러한 것들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고 있다.

이라크 현지에서 평화봉사단원으로 활동하다가 5월 22일 건강문제로 일시 귀국했던 유은하씨가 한달만인 지난 6월 23일 다시 이라크 현지로 돌아갔다.

이라크에서 유씨는 반전관련 활동에 전념했었고 그 와중에 전후 방치된 장애인관련 시설들을 방문했다. 그의 눈에 비친 현실은 참담했다.

병원이라고 하지만 전혀 치료의 손길이 없었고 대부분의 간부들은 전쟁와중에 피신을 한 상태였다. 그나마 남아있는 직원들도 여러달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해 장애아동들을 방치한 채 넋을 잃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본 유씨는 직접 팔을 걷어 시설 경영에 뛰어들었다. 후원자들이 보내준 후원금으로 직원들의 월급을 지불하고 시설을 보수했다. 이런 와중에 유씨는 건강상의 이유로 일시 귀국했던 것이다.

유은하씨, 출국 전 기자회견 통해 바그다드 참상 전해
지난 6월 13일 유씨는 “이라크 반전평화 활동에 관한 기자회견”을 몇몇 언론매체 기자들과 비공개로 가졌다.

이 자리에서 유씨는 많은 언론매체가 전쟁으로 인한 이라크의 현실에 대한 관심보다 유씨 개인에게 초점이 맞춰져 부담스럽다고 했다. 때문에 이날 기자회견에는 유씨가 선정한 일부의 언론사만 참가했고 자신에 대한 사진촬영도 금지했다.

유씨는 이 자리에서 자신이 이라크에 가게 된 것은 “하나님의 부름”이라고 단언적으로 말했다. 그는 “이대로 제 생이 멈춘다고 하더라도 멋진 좋은 경험이었고 하나님이 잔치를 마련하고 초대했고 나는 응했다”라고 했다. 그는 “고생보다는 오히려 기쁨과 보람이 더 많았다”며 “미군과 기자들이 오기 전에 이라크는 평온했고 행복했다”고 했다.

유씨는 이라크 내에 장애인 시설이 있는 곳은 바그다드, 카발라 2곳 뿐이라고 했다. 이라크에 이렇게 장애인 시설이 부족한 것은 그들의 가족제도 때문이라고 한다.

대가족 제도인 이라크인들은 여성, 아동, 장애 등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책임을 국가가 감당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철저하게 가족 구성원들이 나눠지고 있다.

가족의 구성원 중 이혼, 사별등의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남은 여성과 아동, 장애인들을 형제들이 부양하기 때문에 특별히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때문에 시설에 있는 장애인과 고아들은 그나마 가족들이 보호할 수 없는 특수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이다.

전후 이라크 현지의 모습은 처참하다. 식량이 있더라도 그것을 요리할 시설이 없다. 연료가 제대로 없기 때문에 음식을 먹기 위해서 하루전부터 요리를 해야 제대로 먹을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식수로 인해 아동들은 배탈설사로 거의 대부분 건강에 문제가 있고 전기 공급도 하루 2회씩 낮, 저녁으로 2시간 정도만 공급되고 있다고 했다. 정상적으로 전기공급이 되는 곳은 기자들이 머무는 호텔이 유일하다고 한다.

전후 고아·장애아동 문제 심각 “치료 손길 사각지대 방치”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그간 문제가 되지 않았던 고아와 장애아동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동안은 고아와 장애아동에 대한 문제를 가족들이 해결했지만 전쟁으로 인해 상당수의 남성들이 사망과 실종을 당하고 가정이 해체되어 이들을 돌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런 결과로 중증 장애아동 시설인 나라하난(Dar Al-Hanan)의 경우 수용인원 100여명 중에 50명은 부모가 없고 나머지 50명은 형편상 가정에서 키울 수 없어 시설에 맞긴 것이다.

처음 유씨가 이 시설을 방문했을 때 관리자는 자리를 비운 상태이고 직원들도 몇 달간 월급을 받질 못해 장애 아동들은 있지만 실제적으로 운영이 되질 않고 있었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중증 장애 아동이 누워 있으나 욕창이 생겨도 뒤집어 주는 사람이 없었다. 엉덩이에 뭍은 대변을 닦아주지 않는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유씨는 당장 후원금으로 월급을 주고 정상적으로 시설을 가동시키는 노력을 했다. 그러나 수용된 장애아동들의 신상과 관련된 서류나, 직원 명부 등 제대로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고아들의 경우 이름도 제대로 확인이 안돼서 즉석에서 이름을 지어서 불러야 했다.

월급이 지급되자 직원들이 몰려 들었다. 그간 시설 직원의 임금수준은 일반직은 50% 정도였다. 때문에 직업의식도 부족하고 자부심도 없었다. 단지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이러한 지원 이후에 2주 후 관리자인 매니저가 복귀해서 정상 운영에 들어갔다.

5월 15일부터 정부가 월급을 준다고 발표를 했고 병원 직원들부터 임금이 지불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받은 월급으로는 생활이 어려웠다. 이전에는 기본 생필품을 정부가 무료로 지급해 주었지만 현재는 지원이 끊겼기 때문이다. 월급도 언제 끊길지 몰라 불안한 심정들이라고 한다.

미군, 평화유지군 아닌 점령군의 오만함 보여
의료시설은 많이 있지만 워낙 기본적인 의약품이 없어 어려움이 많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다친 몸을 이끌고 병원까지 갈 수 있는 교통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전쟁으로 인해 실명, 절단 장애 등 무수한 장애인들이 발생하고 있지만 치료의 손길은 제대로 미치지 못하고 있다.

유씨가 이라크 현장에서 만난 미군의 모습은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의 모습이었다. 미군에 대한 그의 인상은 “오만함” 그 자체였다. 미군은 정유소, 대학, 기자들이 머물고 있는 호텔 외에는 전혀 보호하지 않았다.

약탈로 인한 치안부재에 대해 평화활동가들이 항의해 보았지만 미군변은 “우리는 이라크사람을 죽이러 온 것이지 살리러 온 것이 아니다”라고 노골적으로 말했다고 한다.

아이들이 미사일 등의 옆에서 놀고 있는데 치우질 않는다. 보다 못한 평화활동가들이 그것을 정리하다가 폭발 사고가 나기도 했다. 평화활동가들은 미군들이 오히려 약탈을 조장한다고 말하고 있다. 폭격피해보다 약탈로 인한 피해가 5배나 컸다고 한다.

본격적인 이라크 장애인, 아동 복지시설 지원 프로젝트 가동
건강상의 이유로 하던 일들을 맡기고 한국으로 돌아온 유씨는 건강을 돌볼 겨를도 없이 다시 이라크로 돌아가기 위한 본격적인 준비작업에 돌입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추진한 사업은 “이라크 장애인/아동 복지시설 지원 프로젝트”이다. 그는 Dar Al Hanan(장애아 고아원), Al Nur school(시각장애인 학교) 등 바그다드 지역 장애인, 고아원 시설 복구 지원을 위해 6월부터 9월까지 한국의 자원봉사자들을 통해서 장애아동들은 지원하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2주에서 1개월 정도의 일정으로 바그다드를 방문해서 시설 직원과 함께 식사 준비 및 도움, 목욕 시키기, 손톱 발톱 깎아 주기, 의료 지원, 물리치료, 소풍 및 파티 기획, 장애인 특수 교육 지원, 시설 청소, 직원 및 장애 아동 가정 방문 교제 등 다양한 활동들을 진행하게 된다.

바그다드로 돌아간 유은하씨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계속적으로 현지의 상황들을 전하고 있다. 그는 현지 소식을 통해 “지난 4,5월은 정부 신경 안 쓰고 하고 싶은 만큼 일을 했는데, … 그때 만났던 아이들, 특히 제 딸처럼 여기는 말라키가 보고 싶어서 왔는데, 걔들을 만나려면 노동부 장관 허락을 받으라고…”라며 한달만에 달라진 환경에 대한 아쉬움을 전하고 있다.

유씨는 현지인 중심의 NGO를 설립하는 일과 자원봉사팀의 7, 8월 방문 준비, 현지 지원 사업으로 분주하게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SundayJournalUSA (www.sundayjournalus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뉴스를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