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동성애자 “긍지의 행진”.. 100만 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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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8일 토요일 총 100만 이상의 동성애자들이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렌스젠더 긍지의 행진(La marche des fiertes lesbiennes, gaies, bi, trans, 이하 긍지의 행진)’이라는 이름 하에 파리, 베를린, 빈, 마드리드뿐만 아니라 쟈그레브, 리스본 등 유럽의 대도시를 행진했다.

파리에서는 예년에 비해 참가 인원이 눈에 띄게 늘어 50만(경찰 집계)~70만(주최측 집계)에 육박하는 인원이 참가했다.

오랫동안 ‘Gay Pride’로 불리다가 지난해부터 ‘긍지의 행진’으로 다시 태어난 이번 행사는 올해로 13회를 맞았다.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여름 한나절, 도시를 온통 축제의 도가니에 푹 빠뜨리며 동성애자들의 성 정체성을 부각시켜온 이 행사는 올해 들어 ‘모든 형태의 차별과 투쟁하라!’는 슬로건이 말해주듯 정치 시위의 성격이 유난히 강했다.

20여대의 차량과 갖가지 음악이 동원된 ‘긍지의 행진’을 구경하기 위해 시민들은 가두행렬이 통과하는 대로를 중심으로 일찍부터 자리를 잡느라 분주해 보였다.

예정보다 1시간 가량 늦은 14시에 이탈리(Italie) 광장을 출발, 파리를 반바퀴 돌아 목적지인 공화국(Republique) 광장에 첫 수레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18시 45분경이었다. 20시가 지나서야 마지막 차량이 도착해 현장에서 댄스파티를 포함한 흥겨운 음악공연이 펼쳐졌으며 이것은 밤 22시께 막을 내렸다.


‘동성애 혐오증에 대해 분명히 형벌을 가할 것’, 시라크는 약속을 지켜라!

60여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렌스젠더 관련단체연합인 Inter-LGBT가 주관한 ‘긍지의 행진 2003’에는 그 자신 동성애자인 베르트랑 들라노에(Bertrand Delanoe) 파리시장, 잭 랑(Jack Lang) 전 문화부장관 등 다수의 정치인과 함께 프랑스민주노동동맹(CFDT), 통일조합연맹(FSU), 프랑스공산당(PCF), 국민운동연합(UMP)과 같은 정치단체는 물론, 퇴직 동성애자, 에어프랑스(Air France), 프랑스국유철도(SNCF), 파리교통공사(RATP), 파리시청, 우체국, 경찰 등 민간, 공공 부문에 종사하는 동성애 노동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것은 라파랭(Raffarin) 총리 내각 출범 이후 첫 ‘긍지의 행진’으로 ‘동성애혐오’ 발언이나 행위를 제재하고 관련단체들이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법적 근간을 마련해줄 것을 요구하는 등 정부를 정면으로 공격하는 기회가 됐다.

쟈끄 시라크(Jacques Chirac)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해 2002년 대선운동 기간 중 4월 21일자 월간 게이잡지 ‘떼뛰(Tetu)’와 가진 인터뷰에서 ‘동성애혐오증에 대해 분명히 형벌을 가할 것’이라고 약속한 바 있으나 현재 인종주의를 제외한 다른 종류의 사회적 차별, 즉 동성애혐오증에 대해서만 유독 애매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2002년 9월 14일, 랑스(Reims)시에서 ‘호모를 싹쓸이해 버리겠다’는 깡패 세 명에 의해 한 청년이 살해된 충격적인 사건을 포함, 2002년 한 해 인권단체 ‘SOS 동성애혐오(이하 SOS)’에 접수된 피해자들의 고발 횟수는 2001년과 비교해 13%가 줄어든 398회에 달했다.

하지만 파리를 중심으로 하는 일드프랑스(Ile de France) 지역에서만 감소했을 뿐 지방의 경우 2001년과 비슷한 수치를 기록했다고 28일자 일간지 리베라시옹(Liberation)은 전했다.

고발 내용을 보면 직장 내 동성애혐오 사례가 약간 후퇴한 반면, 일상생활면에서는 오히려 증가세를 보였다. 미약하나마 피해자가 감소한 것은 ‘더 이상 입닥치고 당하지 않겠다’는 당사자들의 중대한 인식 전환 결과라고 ‘SOS’는 평가했다.

이성애만 찬양하는 분위기가 동성애자들을 사회와 격리시켜

지난 5월 ‘동성애혐오증 사전’을 출판한 낭떼르(Nanterre) 대학 루이-죠르쥬 탱(Louis-Georges Tin, 29세) 교수는 프랑스에서 무시할 수 없는 동성애혐오증의 증거로서 ‘빡스(PACS, 시민연대협약)-동성애 커플 또는 외국인의 세금 감면이나 상속, 사회보장제도 등을 법으로 규정한 제도, 올해로 시행 3년을 맞았다-를 내세웠다.

‘빡스’제도 국회 통과를 앞두고 찬, 반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되던 1999년 1월 31일 당시, 안티 빡스파들은 거리에서 ‘호모들을 화형대로!’라는 구호를 거침없이 외쳤고 집권당 국민운동연합의 피에르 를루쉬(Pierre Lelouche) 의원도 ‘그들(동성애자)을 거세하라’는 망발을 서슴지 않았다.


이와 같은 폭언은 차치하고라도 동성애자들에게 가해지는 물리적 폭력도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빈번하다고 말하는 탱은 영화와 책, 광고, 부모, 친구와 같이 모든 환경이 이성애만을 찬양하는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이 성장하고 있는 것이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자신의 동성애적 성 정체성을 발견하기 시작하는 이들에게 이러한 환경이 동성애자들을 사회와 격리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책이나 TV처럼 아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의 이미지를 다양화해서 동성애자들이 자연스럽게 사회에 편입될 수 있도록 하자는 의견을 제시하며 이것은 사회 구성원들의 ‘의지’의 문제이지 근본적으로 어려운 것은 아니라고 탱은 주장했다.

1977년 시작된 Gay Pride, AIDS 공포 넘어 ‘긍지의 행진’으로 도약

프랑스에서 동성애혐오증을 거론하면서 쟝 르비뚜(Jean Le Bitoux)를 빼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동성애와 관련된 출판물이 전무했던 1979년 ‘게-피에(Gai-Pied)’라는 잡지를 창간한 르비뚜는 당시 영웅으로 칭송되거나 철저히 무시되면서 프랑스 동성애 투쟁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GLH-PQ(정치적, 일상적 동성애 해방 그룹)’에 의해 파리에서 첫 동성애자 행진이 개최된 1977년 6월 25일, 300여명의 ‘성난 게이’들은 난생 처음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했으며 그 중심에는 르비뚜가 있었다.

이날 장관회의를 마치고 나오다 동성애자 행진과 부딪친 발레리 지스까르데스땅(Valery Giscard d’Estaing) 대통령이 ‘프랑스에서 저들은 자유롭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는 웃지못할 일화가 있다.

동성애가 곧 ‘범죄’ 혹은 ‘정신병’으로 취급되던 드골(de Gaulle) 정권 하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르비뚜의 또 다른 일화를 더듬어 보자.


‘난 아마도 동성애자인 모양이야.’ 1964년 16세 되던 해 르비뚜는 한 친구에게 처음으로 커밍아웃(coming out)을 시도한다. 그러나 친구의 대답은 ‘너 미쳤니? 그건 로마제국 이후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였다. 당시에는 동성애에 대한 개념마저 부재했던 까닭이다. 설령 있었다 한들 50, 60년대 동성애의 이미지는 혐오감 그 자체였다. 단지 남들보다 튀기 위해 발악하는 미치광이 정도였다고 할까.

80년대로 넘어오면서 그나마 어렵게 시작됐던 동성애자 행진은 허덕이기 시작, 1988년에는 급기야 ‘게-피에’가 동성애자들에게 행진 참가 권유조차 포기했었는데 AIDS(후천성면역결핍증) 공포가 주된 원인이었다.

이듬해인 1989년 르비뚜는 행사를 재개하면서 행렬이 각 코스를 돌 때마다 1분씩 침묵의 시간을 할애하고 글로리아 게이너(Gloria Gaynor), 프레디 머큐리(Freddy Mercurry)의 노래를 연주하면서 풍선을 하늘로 날려보내 AIDS로 희생된 이들을 추모했다.

90년대가 시작되면서 Gay Pride는 다시 타오르기 시작한다. 1991년 6천명, 1995년 8만명 그리고 2000년에는 50만이 Gay Pride에 참가했다.

2003년 ‘긍지의 행진’에서 한발 물러선 르비뚜는 현재 들라노에 시장의 제안으로 동성애혐오증 관련 서적과 자료들을 수집하며 전문기관 설립을 위해 분투하고 있다.

동성애 커플에 너그러운 프랑스인, 그러나 입양과 결혼에는 회의적

한편, 이번 ‘긍지의 행진’과 때를 같이 해 일간지 르몽드(Le Monde)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동성애자에 대한 프랑스 사회의 똘레랑스(tolerance)는 48%로 증가추세(2000년 38%)에 있으나 동성애 커플의 입양에 대해서는 59%의 프랑스인이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17%의 응답자만이 사회가 동성애자들에게 ‘지나치게’ 너그럽다고 대답한 반면, 32%는 충분치 않다고도 했다. 또 동성애 커플의 권리에 관해 86%가 커플 상호간 상속을 인정해야 한다고 응답했으며 12%는 반대했다. 세금감면에 대해서도 79%는 이성애 커플과 동일한 혜택을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결혼과 입양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55%의 응답자가 동성애 커플에게 결혼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43%는 반대했으며 59%가 동성애 커플의 입양권리를 부정해 37%의 찬성 입장과 대립했다.

출처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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