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 <산케이 신문> 서울 지국장 구로다씨가 바라본 노무현 정부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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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문제를 둘러싸고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운 가운데 당사국의 한쪽 한국에 대한 미.일등 동맹국의 태도와 자세엔 미묘한 감정과 시각이 교차하고 있음을 부인할 길 없다. 지난 5~6월 일련의 3개국 교차 정상회담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그 후의 실무급 대책회의에서 번번이 이견 또는 엇갈림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여기 일본의 서울주재 특파원으로서 수10년간 한국을 지켜보고 저서도 7~8권 낸바 있는 저명한 한국통 구로다 카츠히로씨(산께이신문 서울지국장)의 글(제군 7월호)내용을 참고로 소개한다.
(편집자 주)

서울북쪽 교외는 전에는 논두렁과 밭밖에 없고 겨울엔 황량한 풍경이 어딘가 ‘군사적 긴장’을 느끼게 했다. 그것이 지금은, 특히 서웅서북에 인접한 일산지구는 고층맨션이 수풀처럼 선 인구40만의 근대적인 신 주택도시로 일변해 버렸다.

이 변모는 요 10년사이의 일이다. “ 일산신도시계획”은 노태우정권(88~93년)시절 발표되었는데 당시 국회에서 재미있는 논쟁이 있었다. 북한과의 경계에 가까운 서울북방에 이런 대규모주택도시를 건설해도 괜찮은가, 안보상의 문제는 없는가 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답변에 나선 국방장관이 “ 고층 맨션가는 유사시에는 서울시민의 방패도 된다”고 발언한 탓에 큰소동이 벌어졌다. “ 민간주택을 군사 시설쯤으로 생각하다니 돼먹지않았다. 시민을 모두 죽일 작정이냐”라는 셈이다. 장관이 발언을 정정해서 일단락됐지만, 당시는 서울북방에 관하여 국민사이에 그 정도의 ‘안보의식’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이 어디에도 없다. 전에는 서울의 북쪽이 남쪽보다 땅값이 훨씬 쌌지만 지금은 오르기만 한다. 북한이 핵문제로 국제사회를 위협하건, 미사일발사를 하건, 땅값에는 영향이 없다.

그런데 이 일산보다 더 북쪽에 파주시라는 데가 있다. 전에는 파주군이었는데 최근 시가 되었다. 임진강면이라 해도 될 만한 지역이다. 한국정부는 최근 이 파주시에도 ‘일산’과 같은 신도시를 건설할 계획을 발표했다. 파주에서는 당장 지가급등이 전해지고 있다. 어느 곳도 비무장지대의 북쪽에 대량 배치된 북한군의 장거리포 사정안에 있다. 그러나 지금 정부나 국민이나 그런 일은 아부도 의식하고 있지않다.
재작년 김포공항에 대신하는 서울 하늘의 현관으로서 오픈한 ‘인천국제공항’도 그렇다. 이 공항은 북한영토부터는 눈과 코끝이다. 이착륙시는 북한땅이 눈아래 보인다. 안보상의 관점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위치이다. 한국은 이미 북한에 대해 “유사(有事)의 관념을 버려버린 것 같다.

가치관의 대역전

“한국에서 사라진 것”을 주어가면 그대로 한국현대사가 될 것 같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이 한국사회에서 군사풍경 내지 안보풍경이 확실히 사라져가고 있는 일이다. 그 배경은 한국인에 있어서의 “북의 위협” 아니, “북의 위협감”의 대폭적인 후퇴이다.

근년에 북한에 대한 심리적인 무장해제상황이 현저하다. 이 사이 한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무엇이 한국사회를 무장해제 시켰는가. 최대의 배경은 “민주화”라는 이름의 한국사회의 커다란 변화이다.
이 변화는 80년대후반의 노태우정권시대에 시작되어 이미 15년이 지났다. 이 15년간의 민주화시대에 한국인의 북한관이 크게 변했다 해도 이상하지는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1980년의 광주사건은 계엄령하에서 도중에 총까지 손에 쥔 시민의 반정부 무장투쟁이었다. 그러나 이것을 진압한 군은 후에 악으로 단죄되고, 무장투쟁한 측이 민주화에 공헌했다고 해서 국가적공로자가 되고있다.
이러한 역사의 역전평가는 온갖 분야에서 행해지고 있어 과거의 반정부사건은 거의 정의로 되고, 당시 법률에 따라 단속했던 정부측은 악으로 되어있다. 김대중 정권하에서는 “민주화보상법”까지 제정되었다.

데모나 비 합법활동 등으로 체포된 과거의 반정부활동가에게는 민주화의 공로자로서 금전적 보상까지 행해지고 있다. 화염병을 던져 공공시설을 태우고 경찰관을 살상시켜 체포되어도 동기가 “민주화”였다고 해서 거꾸로 국가적공로자로서 보상되고 있는 것이다. 이 역전현상은 다시 거슬러 올라간다. 예를 들어 1948년의 “제주도4.3사건”의 평가에 관해서도 최근 그것이 있었다. 무장폭동의 계기가 되었던, 북한이 연결되는 당시 남조선노동당의 무장봉기 책임보다는 정부군의 과잉진압쪽을 문제시하는 정부보고서가 발표되고 있다.

문제의 북한관에 관해서 말한다면, 80년대 이후의 민주화과정에서 북한을 악이라 하고 “북의 위협”을 강조한 과거의 견해는 틀린 것이며, 북한은 대립하는 적이 아니라 받아들여 교류.협력해야 할 동포라는 것으로 되었다. 북한을 가상적이라는 의미에서 “국방백서’에 ‘주적’으로 표현해온 것 까지 문제가 되어 김대중 정권하에서는 “국방백서”조차 나오지 않게 됐다.

화제가 된 2000년6월의 남북정상회담에서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총서기가 웃는 얼굴로 껴안았다. 그 이후 김정일씨도 이때까지의 악의 이미지로서가 아니라, 선의의 지도자로 이미지화됐다. 김정일씨에 대한 한국사회의 당시의 버블인기는 다소 처진 기색이긴 하나 한국의 매스컴이나 식자는 언제나 고지식하게 ‘김정일 국방의원장’이라고 경어를 붙여 부르며 결코 마구 부르지 안토록 신경을 쓰고 있다. 마구 불러 제끼는 부시대통령과는 크게 다르다.

그러나 한국에 있어서의 심리적인 대북무장해제는 김대중정권의 탄생이나 그 햇볕정책, 또는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라고 말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들 모든 것이 이 15년간이 “민주화”의 결과인 것이다. 전라도라는 한국사회의 피차별적 소수파를 배경 삼은, 김대중 정권의 탄생자체가 그러했고, 젊은이를 배경 삼은 혁신 정권인 이번의 노무현정권 탄생도 그러하다.

즉 한국에서는 이 15년사이에 일종의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따라서 북한에 대한 변화에서도 또한, 심리적무장해제라는 혁명적변화가 일어나고있는 것이다.
이 변화는 한국의 내부 변화였으며 북한의 변화에 의한 것은 아니다. 아니 북한자체의 기본적인 변화는 여전히 없다. 만일 있다고 한다면 기아정보나 탈북자에 상징되는 것 같은 체제의 약체화이다. 아니 약체화했다는 이미지라고나 할까.

민주화세력의 정체

그래서 한국에서는 특히 90년대후반이후 북한을 동정의 대상으로서 관민 모두 지원, 구원의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저 금강산관광 등이 그 상징이다. 화려한 등산복차림의 노약남녀가 한국에서 호화 관광선으로 북한영토로 연달아 들어가 철조망너머로 북한의 활기가 없는 시들해진 농촌을 곁눈질하며 관광한다. 거기에는 이제 ‘북의 위협’론 등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한국사회의 민중감정으로 말하면 북한은 이젠 위협의 대상이 아니라 동정의 대상인 것이다. 이 배경에는 당연히 한국인에게는 스스로의 경제발전과 국력에 대한 자신과 여유가 있다. 그것이 특히 젊은 세대에 강하다. 한국전, 북으로부터의 특수부대나 무장간첩 침입, 각종 국가테러 등 ‘북의 위협’을 직접 경험한 연배세대는 그래도 과거의 기억에서 아직 무장해제 할 생각은 들지않는다. 그러나 전쟁을 모르고 북과의 ‘과거’가 없는 젊은 세대에게는 위협의식은 없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쪽이 훨씬 강하다.

그렇게 되면 필자 등 외국인 워쳐는 당연히, 그 여유와 자신, 나아가 동정의 뒤에 있는 체제상의 우월감이 핵문제를 비롯 북한의 ‘체제를 변화시킨다’ 는 정열로 왜 연결되지않을까_라고 생각해 초조해진다. 혹은 한국에서 독재반대, 민주화와 인권확보에 그토록 정열적으로 달라붙던 민주화세력이 동포인 북한의 독재체제에는 눈을 감고, 그 민주화나 인권에 왜 냉담한가_라고 비아냥거리고 싶어진다.

이건 하나의 불가사의이다. 다만 후자에 관해서는 일부 설명을 못 할 바는 아니다. 예컨대 민주화세력이 가짜였다는 일이다. 좌익이나 공산주의자, 친북세력이 ‘민주화’를 위장한데 지나지 않다는 셈이다. 이는 여려 외국의 역사에도 자주 있었다. 최근 또 유행하고있는 ‘반전.평화’도 그렇다. 한국에서 작년부터 인기의 ‘반전.평화’는 분명히 반미.친북의 위장물이 되고 있다. 한국여론은 북한의 ‘핵 보유발언’에도 극히 조용하다. 같은 민족문화로서 저 ‘과장’내지 ‘허세’짓을 잘 안다는 것일까. 혹은 북의 핵은 한국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는, 체제보다 민족감정을 우선시킨 낙관론일까.

그러나 북한의 핵문제는 이제 국제문제이다. 미국이나 일본 등 국제사회와 이어져 살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국제사회가 납득하는 대북정책을 해야만 한다. 민족감정에 빠져있을 때가 아니다. 한국정부가 노무현대통령의 방미에 의한 한미정상회담(5월14일)으로 우선 친미노선과 한미동맹을 재확인했다. 노대통령의 “반미에서 친미로”의 표변(?)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 “변신”의 행방을 다시 워칭할 필요가 있지만, 우선 한국이 놓여진 국제적위상, 그에 수반하는 책임과 역할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현실주의자’ 혹은 ‘실리주의자’를 자인하는 노대통령에게 있어 금후의 정권운영의 최대과제는, 자신을 당선시켜준 지지세력의 좌파나 진보파, 혹은 친북세력을 어떻게 컨트롤할 수 있을까 이다. 대통령관저를 비롯 정권중추에는 학생운동출신이나 시민운동, 노동운동 출신 등 소위 좌파NGO계가 대량으로 진출해 있다.

그 상징은 정보기관의 국가정보원 톱이나 간부에, 국회공청회가 “좌파적이고 친북적”이라고 인물평가한 민간인 변호사나 학자를 기용한 것이다. 노대통령은 여론의 비판을 제치고 ‘개혁’을 명분으로 임명을 강행했다. 앞으로 대북정책이나 노동문제, 교육문제(한국판’일교조’인 “전교조”는 이미 교육계를 흔들고있다)등에서 벌써 왼쪽사이드부터의 상당한 롤빽압력이 예상된다.

방미와 한미정상회담에서 대북정책에서는 미국에 다가서서 우선은 “한미동맹”을 재확인했지만 국내서의 친북 압력은 금후로도 십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관민 모두 북한의 독재체제에 터치하는 일을 터부시 하고 있다. 이 심리는 귀찮은 일은 생각하고 싶지않다 라는 “ 문제를 미뤄가는 식”의 의식이 뚜렷하다. 여론에도 그것이 강하다. 2000년6월의 남북정상회담후의 한국사회에 보인 ‘김정일붐’은 동포로서는 싫은 일(북의 독재체제)는 생각하고 싶지않다 라는 심리에 대한 잠깐동안의 치유였다.

그러나 이라크전쟁후의 미국은 북한의 체제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 북한은 국가운영이 잘 안돼 심각한 경제난부터의 체제위기를 ‘핵카드’로 돌파하려 하고있는데 문제의 근저에는 식량이나 경제를 비롯 위기를 해결할 수 없는 체제에 있다. 한국도 ‘문제를 미뤄가는식’의 교류.지원.협력으로서가 아니라, 북한체제를 똑바로 본 해결책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기에 와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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