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의 이대 복학생” 수필가 정옥희씨”

이 뉴스를 공유하기

1954년 12월.

당시 이화여대 국문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23살의 정옥희씨는 마지막 한 학기를 남겨 놓고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

“전쟁의 여파로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제재소가 큰 타격을 입은 상황에서 등록금을 더 내달라는 말이 차마 나오지 않더라구요.”

이미 졸업기념 수학여행도 갔다 왔고, 졸업사진 촬영까지 다 끝낸 상태였다. 마침 육군장교로 복무하던 남편과 혼담이 오간 끝에 이듬해 3월 결혼식을 올렸고, 정씨의 졸업에 대한 꿈은 그렇게 사라져 갔다.

이후 중앙여고와 동경 한국학교에서 국어교사로 재직하던 정씨는 1977년 미국 땅을 밟게 된다. 세딸을 키우면서 사업가로, 수필가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 왔지만 대학을 마저 마치지 못한 아쉬움은 가슴 한켠에 늘 남아 있었다.

2003년 5월.

아침일찍 배달된 중앙일보를 펼쳐 본 72세 정옥희 할머니는 깜짝 놀라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여성들의 학습권 보호’를 내세워 1946년 학칙에서 입학 요건으로 ‘미혼’을 못박고 재학 중 혼인을 금지해 온 이화여대가 ‘평등권에 위배된다’는 여론에 따라 이 학칙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는 서울발 기사를 발견한 것이다. 더욱이 이대는 금혼학칙으로 인한 중도 탈락자들의 재입학 신청을 받겠다고 했다.

“서둘러 호적초본과 성적증명서를 떼 학교에 복학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다행히 모교에서 정년퇴임한 단짝친구 김호순 교수의 도움을 받아 모든 절차를 원만히 마무리질 수 있었습니다.”

지난달 27일에는 학교측으로부터 재입학 허가서와 채플카드, 학생증 발급용지를 전달받았다. 모두 22명의 복학 신청자 가운데 바다 건너 해외에 사는 신청자는 정할머니 한사람 뿐이다.

오는 9월부터는 이대에서 손녀 또래의 후배들과 함께 졸업에 필요한 한 학기 과정을 이수할 계획이다. 정할머니가 수강할 과목은 전공필수와 채플 등 모두 4과목. 이대 후문쪽에 몇달 동안 머물 아담한 원룸 아파트도 얻어 놓았다.

“복학 소식을 접한 친지분들은 ‘정말 축하한다’는 의견과 ‘그 나이에 꼭 무리를 해야 하느냐’는 의견으로 나눠 지더라구요. 그러나 같이 살고 있는 큰딸(미셸 스틸·백악관 아태자문위원)이 오히려 제 등을 떠밀었습니다. 아무 걱정 말고 열심히 공부하고 오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어요.” 정할머니는 졸업장을 받게 되는 내년 2월말쯤 졸업 축하연을 겸해 마무리 작업 중인 세번째 수필집의 출판기념회를 아주 근사하게 열 계획이다.

“재입학을 허락해 주신 총장님도, 강의를 맡으실 교수님도 다 저보다 한참 후배입니다만 열심히, 신나게, 그리고 씩씩하게 공부하고 돌아오겠습니다.” 칠순의 ‘복학생 언니’ 정할머니의 얼굴엔 다시 20대 시절로 돌아간 듯 싱그러운 미소가 가득 배어나왔다.

노세희 기자
출처 : 중앙일보 미주판

@SundayJournalUSA (www.sundayjournalus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뉴스를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