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눈치보며, 국민 세금 깍아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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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민주당, 한나라당 등이 추진중인 특별소비세와 근로소득세 등 세금 인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같은 감세정책이 곧바로 소비 진작 등 경기부양으로 나타날지 미지수이며, 무엇보다 내년 총선을 앞둔 정치권의 선심성 세금 정책이 아니냐는 시선이 나오고 있다. 이럴 경우 국가 재정에 큰 부담으로 다가와 다시 세금 증가 등 국민의 부담으로 되돌아올 것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국내 소비자의 이익보다는 미국 등 외국의 통상압력에 의해 국내 세금 체계가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외국 위스키업자들의 국내 주류 세제개편 압력에 이어, 자동차에 대한 특소세 인하가 미국 통상압력에 의해 추진되자,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외국의 국내 조세문제 개입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외국 압력에 의한 세제개편… 누굴 위한 것인가

감세 논란의 불을 지핀 것은 지난 3일 재경부 세제실장의 특소세 인하 발언 때부터다. 당시 김영룡 세제실장은 “당초 올 연말 미국과 협의해 자동차 특소세율을 조정할 예정이었지만, 이 사실이 시장에 알려지면서 소비자들이 자동차 구매를 연기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내수가 더욱 위축되고 있어 이른 시일 안에 특소세 인하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6월초 특소세 인하에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던 김진표 재정경제부 장관의 발언을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뒤집은 것이다. 감세를 통해 경기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한나라당 주장에 대해, 지난 달 2일 김 장관은 “특소세와 근로소득세 인하가 참여정부의 기본 방침이긴 하지만 특소세 인하는 경기부양 효과가 별로 없다”고 말했다. 그는 4일과 10일에도 “특소세를 내려봤자 소비 활성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장관은 특소세 인하가 소비진작에 부정적이라고 밝혔지만, 김광림 재경부 차관은 지난 8일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 출석해 “특소세 인하는 경기 진작과 한미 통상문제를 고려했다”고 말했다.

더욱 큰 문제는 자동차의 특소세 인하 과정이다. 국가 재정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세금 문제를 정부가 경기 변화에 따라 탄력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미국의 통상압력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의원 입법 형식으로 내놓은 정부의 자동차 특소세 인하 내용을 보면 분명해진다.

당초 정부는 2000㏄ 이상 승용차의 경우 특소세율을 현재 14%에서 10%로, 4% 포인트 내리는 반면, 1500㏄ 이하는 7%에서 6%로 고작 1% 포인트 낮추는 것이 전부였다. 국내 자동차 가운데 1500㏄ 이하의 소형차가 차지하는 비율은 40.1%에 달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가 소비진작을 위해 특소세 인하를 주장하기 위해선 소형차의 특소세 인하 폭이 커야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는 결국 그동안 국내 자동차 시장 선점을 위한 미국의 자동차 업체의 특소세 인하 압력을 사실상 정부가 받아들인 것과 다름없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참여연대는 지난 7일 성명을 통해 “정부의 특소세 인하방침은 외국의 대형차 판매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결정된 조치”라고 전제하고 “일시적인 특소세 인하는 반대하지 않지만 재정상황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대형차에 많은 혜택을 주는 세율인하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이어 “조세 형평을 고려해야할 정부가 미국의 통상압력과 내수진작을 이유로 빈익빈 부익부를 더욱 심화시키는 조치”라며 “빈부 격차와 차별을 해소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과의 의지와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베를린자유대 정승일 박사는 “미국의 압력으로 인해 국내 세금 정책이 움직이는 것은 문제”라며 “과거 개발시대 산물로서 특소세가 인하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특정 계층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부와 여야는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승용차 특소세율 가운데 1500㏄ 이하 승용차의 특소세율을 5%까지 낮추는 데 사실상 합의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와 정치권의 졸속적인 감세정책, 국민 부담으로 돌아올 것

이번 자동차 특소세 인하로 정치권은 에어컨, 프로젝션, PDP-TV 등 전자 제품의 세율 인하와 근로소득세 공제율 확대, 기업 법인세율 인하 요구까지 검토하는 등 감세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은 충분한 검토없이 정부의 특소세 인하를 빌미로 감세 논의를 확대, 내년 총선을 의식한 선심성 정책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한나라당은 법인세 1% 추가 인하까지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번 감세 논의 과정에서 △연 3000만원 이하의 봉급생활자의 근로소득 공제폭을 5% 상향 조정하며, 근소세 감면시 의료비 특별공제 혜택 확대 △1500cc 소형차 특소세 추가인하 △석유류와 고가 소비행위 등 제외한 나머지 품목 특소세 20% 일괄 인하 △중소기업 법인세 최제 세율 현행 12%에서 10%로 인하 등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일부 의료비 공제 확대와 소급적용에 난색을 나타내고 있을 뿐 나머지 특소세 인하 등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나오연 국회 재경위원장은 지난 9일 “승용차만 특소세를 낮춘다면 다른 고가품과의 세율 격차가 커 과세 형평성에 위배된다”면서 “석유류와 유흥, 사치성 품목을 제외한 품목에 대해서는 특소세를 낮출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치권이 국가 재정 부담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이같은 감세 정책을 추진할 경우, 자칫 경기부양은 고사하고 미국 통상압력으로 촉발된 감세가 고스란히 국민 부담으로 되돌아올 것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김효석 민주당 의원은 지난 9일 “경기조절을 위해 세수 정책을 사용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며 재정 여건을 감안하지 않은 채 대규모 감세를 주장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성공회대 유철규 교수는 “감세 정책이 추진되기 전에 현 세율 체계를 어떻게 개편할 것인가에 대한 올바른 고찰이 선행돼야 한다”면서 “이같은 조건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졸속이나 기형적으로 추진되는 것은 우려스러운 점”이라고 지적했다.

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 이문영 간사는 “감세 정책은 재정부담을 고려해 충분하고 엄밀한 검토를 통해 논의돼야 한다”면서 “감세가 불가피하게 필요한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재정에 무리가 갈 정도의 대규모 감세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감세를 논하기 전에 그로 인한 세수 결손분에 대한 뚜렷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면서 “현재와 같은 경제상황에서는 감세가 국민 소비 진작으로 이뤄질지 미지수며, 결국 국민의 호주머니를 털어 감소분을 메울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한편, 여야는 10일 양당 간사 접촉을 통해 감세 범위 등에 대해 의견을 조율한 뒤, 법안심사소위와 전체회의를 열어 특별소비세 인하, 근로소득세 경감, 추경안 등을 일괄 처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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