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언론사 “노동조합” 설립움직임… 각언론사 대책마련 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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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타운에서 대형 식품점인 ‘아씨마켓’에서 노동조합 설립운동이 진전되는 가운데 이번에는 한인 언론사들에서도 노조운동이 태동할 움직임이 조심스럽게 추진되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 언론 노조지원 단체의 한관계자는 “최근 들어 LA지역의 한인 언론사 직원들로부터 노조설립에 관한 상담을 받은 적이 있었다”면서 “노조설립 전략상 구체적 추진사항은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본보 취재진이 한인 커뮤니티의 중앙일보, 한국일보, 라디오코리아, 미주 한국방송사(KTE) 중의 어느 언론사인가’라고 문의하자 “모두 포함된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관계자의 답변은 4개 언론사의 직원들이 노조에 대해서 상담을 했다는 의미로 받아 들일 수 있다. 또 본보 취재진이 ‘이들 4개 언론사들 직원들이 연합언론노조를 계획하는 것인가’라는 질의에 대해 노조지원 관계자는 “그렇게 보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사항은 4개 언론사가 연합노조를 결성하기 보다는 자체회사 내 노조를 구상하는 것으로 보이며, 이들이 다만 횡적인 교감을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회사 내 노조를 꿈꾸는 방송사의 모 기자는 “현실적으로 언론노조 지부를 결성하는 데에는 많은 난관이 있다”면서 “지난 80년대 말 한국일보 미주 본사에서 노조를 위해 기자협회를 결성한 것으로 아는데 결국 노조로는 성공치 못했다”고 말했다. 또 그는 “현재 방송기자협회가 구성되어 친목을 다지고 있는데 개인적 차원에서 정보를 교류할 정도”라면서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만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코리아타운에서 방송기자협회는 여러 방송사들의 기자들로 구성되어 정기적으로 회합을 갖고 나름대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신문기자협회는 유명무실이다.

성 진[취재부 기자] [email protected]

지난 1989년 한국일보 미주본사에서 발생한 기자협회 파업은 코리아타운에 상당한 파문을 몰고 왔다. 당시 한국일보에서 일어난 파업은 그 언론사가 지니는 비중에 견주어 심각했다. 그 때 파업을 주도한 일선 기자들은 현재 부장급에 이르고 있다.

한국일보 기자협회가 파업을 선언하면서 내건 요구조건은 직원들에 대한 복지향상과 대우개선이 우선 순위였다. 당시 한국일보는 광고 등으로 많은 수입을 얻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에 대한 대우는 형편이 없었다. 경쟁사인 중앙일보에 비해 엄청난 차이였다. 중앙일보와의 봉급 차이는 지금까지도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직원들에 대한 대우는 열악한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경영진은 라스베가스 도박장을 찾으며 향락을 즐기는 경우가 많았다.

파업이 일어나기 전 간접적으로 경영진에게 “1등 신문이라면서 대우는 중앙일보 보다 못하다”는 건의에 대해 돌아온 대답은 “중앙일보는 삼성재벌이 뒤에 있지 않은가”였다. 그 같은 대답에 대해 기자들은 경영진에 대한 분노감이 끓어 올랐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이대로는 안 된다”라는 의식이 강화됐다.

당시 파업의 동기가 된 결정적 사건은 직원들간의 차별적 대우 문제였다. 어느날 서울본사 출신 기자의 집에서 파티가 있었다. 파티 도중 미주에서 채용한 한 기자가 테이블 위에 놓인 봉급수표를 무심코 보게 됐다. 그 봉급수표를 본 기자는 깜짝 놀랐다. 자신의 봉급과는 너무나 큰 액수의 차이였다. 이 사실은 곧 미주현지에서 채용된 기자들 사이로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경영진은 서울 본사 출신의 기자들에게는 미주에서 모집한 기자들 보다 월등히 많은 액수를 지급해왔던 것이다. 오랫동안 이 같은 행위를 비밀로 해왔다.

당시 미주 현지 법인인 대한항공에서도 본국에서 파견 나온 직원과 미주 현지에서 채용된 직원간에는 대우에 있어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한국일보는 이 사실을 보도하면서 “차별대우는 시정되야 한다”고 언론의 소리를 냈다. 그러한 신문사가 자체 직원들 대우문제에 차별을 해 온 것에 기자들은 분노했다.

‘봉급수표’ 사건 이후 젊은 기자들은 함께 모인 자리에서 “우리 모두 봉급수표를 공개 해보자”고 하여 서로가 받고 있는 봉급액수를 비교하게 됐다. 여기에서도 놀랄만한 일이 벌어졌다. 기자들 사이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봉급차별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경영진은 교묘하게 기자들을 속여 왔던 것이다.

원래 기자협회는 선임 기자인 견습 3기를 포함해 일선 기자들이 주도했었다. 기자들의 의견을 다양하게 수렴하기 위해 여러번 모임도 가졌다. 이들은 회사 주변의 피자집이나 용궁식당 등에서 만나 활동방향을 논의해 나갔다. 그 때가 88년도 말기였다. 경영진에서도 눈치를 채게 됐다. 애초 일선 기자들은 견습 3기에게 직원들의 처우개선 등 요구사항을 회사 측과 교섭하도록 위임했다. 그러나 이들 3기들은 회사 경영진과 교섭하는 과정에서 일선 기자들의 뜻과는 다른 자세를 보여 일선 기자들이 이상하게 생각했다.

일선 기자들은 이들 3기를 용궁식당에 불러 놓고 대책을 논의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3기 중의 한 기자가 ‘지금은 (파업할)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일선 기자들은 ‘더 이상 3기를 믿을 수 없다’며 이들과 함께 파업할 계획을 무산시켰다.

일선 기자들은 다음날 회사에 출근하면서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된다. 견습 3기의 3명이 나란히 ‘차장대우’로 승진됐다는 사령이었다. 그 때서야 일선 기자들은 왜 이들이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였는지를 이해하게 됐다.
일선 기자들은 새로 기자협회를 이끌어 갈 4명의 임원진을 구성하면서, 임원진이 경영진과 만날 때는 모두 함께 만나고 기자협회가 어떤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전원의 찬성을 받도록 하는 ‘단결성’을 강조했다.

기자협회는 요구조건을 내걸면서 이는 편집국 기자뿐 아니라 전직원의 권익옹호를 우선원칙으로 삼았다. 첫째 봉급을 현재보다 1,500 달러를 인상하라는 것이었다. 평균 100%를 인상하라는 조건이었는데 이 조건을 보면 당시의 한국일보 봉급수준이 얼마나 열악한 수준이었는지 가늠할 수 있다. 경영진은 펄쩍 뛰었다. 아예 기자협회와 협상하려 들지 않았다. 기자들은 요구조건을 대폭 수정해 800 달러 인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회사는 귀도 기울이지 않았다.

이에 기자협회는 파업을 선언하면서 제작 거부에 들어갔다.

파업에 나선 일선 기자들은 회사에는 출근하면서 편집국에 들어가지 않고 사원 식당에서 회의와 논의를 하며 회사 측과 맞섰다. 일선 기자들 없이 신문을 제작하는 간부진이 경영진과 파업기자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됐다. 서로 토론하면서 회사의 위기를 슬기롭게 해결하려고 양측이 지치도록 협상을 진행시켰다.

파업은 3일째 급진전의 변화를 맞으며, 4일째 타결됐다. 봉급인상을 500 달러 수준으로 결정됐다. 애초 요구 조건인 1,500 달러에서 한참 모자라는 것이었다. 파업이 끝나자 경영진은 재빨리 용궁식당에서 기름진 뷔페음식을 주문해 편집국에 상을 차려 파업으로 지친 기자들에게 ‘진상’했다. 억지로 음식을 들고 있는 기자들 얼굴에는 기쁜 표정보다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파업이 끝나자 한 소문이 나돌았다. 파업 기자들 중에서 ‘배반자’가 생겼다는 것이다. 파업 기자들의 전략이 고스란히 경영진에게 전달되었던 것이다. 또 여기에 편집국 고위간부가 ‘배신자’로 나타나 기자들의 파업을 파괴하는데 조종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 ‘배반자’는 지금 회장의 비호아래 “실세 부장”으로 국장을 제치고 파워를 행세하고 있으며, 또 그 ‘배신자’는 경영진에게 손 비비며 동료 직원들 목 자르는데 앞장 서 왔다가, 지금은 서울본사 회장의 눈치를 보며 연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파업 기자들은 광고국 등의 직원들로부터 핀잔을 듣고 비애를 느꼈다. 파업이 종식된 후 지급된 봉급에서 회사는 파업 기자들에게 500달러를 인상해 주고, 다른 직원들에게는 400달러를 인상해주었다. 이에 일부 직원들은 “돈을 더 받으려고 파업을 했느냐”며 비아냥 거렸다고 한다. 회사측은 또 한번 파업 기자들의 순수한 파업정신에 보복을 가한 것이다.

한편 파업을 주도했던 일선 기자들 중 일부는 그 후 회사의 보복을 예견하고 일찌감치 퇴사했다. 남은 사람들은 경영진과 실세 간부들에 의해 교묘한 방법으로 승진 등에서 불이익을 당하며 자리 보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일보 경영진의 못된 자세는 직원들을 믿으려 하지 않는데 있다. 회사에 대한 불리한 소문이 나돌면 직원 중에 “고발자”가 있는 것으로 보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우선 평소 경영진에게 불평을 한 직원들을 일차적으로 의심한다. 그래서 속죄양을 만들기도 한다.

한국일보에는 직원들의 직급이 아주 다양하다. 편집국의 예를 들면 견습기자에서 수습이 끝나면 정식기자로 발령이 난다. 그 다음 승진 코스는 ‘차장대우’이다. 그 다음이 ‘차장’이다. 그리고 다음 ‘부장’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고 ‘부장대우’로 발령이 난다. 그 다음은 ‘부장’이고 다음 단계는 ‘부국장 대우’ 다음이 ‘부국장’ 그리고 다음 승진은 ‘국장’급이다. 원래는 기자 -차장-부장-부국장-국장급 순위지만, 사이사이 마다 ‘대우’라는 딱지로 여러 직급을 두는 것은 봉급을 올려 주지 않는 대신 직급을 올려 주기 위한 것이다. 이들 수직선상의 직급 이외에 ‘편집위원’이나 ‘논설위원’ 직급도 있다. 직급을 여러 개로 나누다보니 나중에는 ‘부장대우 차장’과 ‘국차장’이라는 직급도 만들어 냈다. 나중에는 직급에 따라 봉급을 올려 주었지만 쥐꼬리였다.
“정상의 신문”이라고 주장하는 한국일보는 직원 대우에 있어서는 “빵점의 신문’인 것이다.

남가주 한인 노동상담소

최근 남가주 한인 노동상담소(소장 박영준)에 10년간 집계된 한인 커뮤니티 노동분쟁과 관련해 최저 임금과 시간외 근무 수당 등 임금과 관련된 분쟁이 가장 많은 것으로 조사됐으며, 부당해고 또한 상담 내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0년간 한인 노동상담소를 통해 임금분쟁이 해결된 케이스는 1861건으로 집계되었으며, 이중 임금을 받아낸 상담 건수가 5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남가주 한인 노동상담소 박영준 소장은 “어떠한 업종이든 간에 법적으로 노조구성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라며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한인 커뮤니티의 전문직 업종이나 노동자들의 단결이 이뤄져 이제는 노조결성이 한인 커뮤니티에도 필요한 시점이다”라며 커뮤니티 내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노동조합’이라 함은 자체적으로 결성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 미국에는 AFLCIO라는 각 업종을 포괄하는 노동조합 단체가 있어 모든 것을 조율해준다. 즉 언론이면 AFLCIO 산하 언론노조에 가입함으로써 부당한 일이 발생하거나 임금협상 등을 벌일 때 언론업종 대표노조가 사측과의 협상권을 가지고 분쟁해결에 나서기 때문에 그만큼 노동자들의 권리확보와 노동환경 개선이 수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체적인 노조위원장이 필요 없다는 얘기가 된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노조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대표노조가 조합원을 대신해 대표해달라’는 프레시 카드를 연방 노동관계 위원회에 접수해야 한다. 위원회에서는 노사 양측에 이 사실을 알리게 되며, 이후 선거를 실시해 조합원의 50% 이상이 노조설립에 찬성표를 던지면 그 순간부터 대표노조가 조합원을 대표해 사측과 협상을 벌이게 된다.

박영준 소장은 “한인 커뮤니티의 각 업종 종사자들은 사측의 힘에 밀려 지레 겁을 먹고 본인들의 권리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또한 “노조를 결성하기까지 사측의 압력을 이겨내고 단결하기가 쉽지 않다”며 “노조를 결성하는데 있어 조합원의 50%+1표만 얻어내면 승리를 할 수 있으나 현실적으로 사측의 방해공작으로 무산된다”며 “확실한 단결이 되지 않았을 때 노조설립을 시도하다가 피해를 보는 경우들이 의외로 많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노동조합 설립의지를 갖고 있는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반노조 교육을 시키고, 영화 등 비디오를 보여주며 노조결성을 와해시키고 파괴하는 전문 사업체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한편 노동문제 전문가들은 통계치를 볼 때 “기술력 있는 전문직 업종일수록 노조설립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이는 사측이 해고 등의 강수를 꺼내 들었을 때 그 업무를 대체할 인원보충이 빠르게 이뤄질 수 없기 때문으로 풀이했다.

[박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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