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역사의 기록을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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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대한인 국민회’ 마지막 증인,구융회 전 신한민보 편집장의 호소

최근 국민회관 복원과정에서 발견된 사료 등으로 새삼 국민회관 자료의 주인에 대해 논쟁이 이슈화 되고 있다. 국민회관의 주인인 ‘대한인 국민회’는 기록상으로 1989년 3월 7일에 해산됐다. 마지막 회의를 기록한 사람은 1960년대 말 신한민보의 편집장을 지낸 구융회씨였다. 구융회씨는 국민회관에서 가까운 거리에서 살고 있었다. 5년 전 간암 수술을 받아 죽을 고비를 넘긴 구 씨는 “죽기 전에 진실을 밝히고 싶었다”면서 지난 5일 본보 특별취재반 앞에서 약3시간 동안 피맺힌 증언을 했다. 그는 국민회를 청산하는 마지막 회의록을 보여 주면서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반

“대한인 국민회는 한국역사에서 필요할 때에 생겨난 단체였다. 조국이 해방되고 미주에도 새로운 동포단체들이 많이 생겨났으며, 그래서 시대적 변화에 따라 해산된 것이다.”라며 구융회씨는 말문을 열었다.
국민회는 미국에서 나라없는 한인들에게 조국의 정부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1913년에는 미국정부로부터 ‘자치정부’의 대우까지 받을 정도로 역량을 보였다. 국민회가 보증을 서면 미 이민국도 한인동포에게 미국 체류증을 발급해 줄 정도로 신임을 받았던 단체였다. 그러나 해방후 한국에 이승만 정권이 들어서면서 국민회를 탄압했다. 1965년 개정이민법으로 한인이민이 대폭 증가되면서 미주동포사회는 새로운 커뮤니티로 형성되어 가면서 독립운동체였던 국민회는 회원들이 줄어들어 자연히 해산의 길을 걷게 됐다.

67년 이민으로 LA에 정착한 구 씨는 당시 국민회 회장인 김성락 목사(작고)의 권유로 기관지였던 신한민보의 편집장을 맡게 됐다. “신한민보를 만들 당시 오늘날처럼 컴퓨터도 없었고 당시 한글타자기가 처음 나와 힘들게 제작했다”면서 “기사는 타자기로 작성했으나 제목은 붓으로 써서 제작하기도 했다”고 구 씨는 당시의 신문을 보여주었다. 그는 편집장으로 근무하면서 신한민보를 창간호부터 자신이 만들 때 까지를 모두 읽었다. 다 읽고 난 다음의 느낌에 대해 그는 “대학 공부한 것 보다 더 값어치 있는 것을 배운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신한민보는 한국의 국호와 연호 그리고 한글을 고수한 유일한 역사적 신문”이라며“특히 세계 각지역 동포사회로부터 접수된 전보문을 가지고 편집하는 등 살아 숨쉬고, 눈물없이는 읽을 수 없는 신문이다”고 설명했다. 구 씨는 신한민보를 만들면서 독자들에게 이렇게 소개했다. <신한민보는 장엄한 민족의 얼이며 독립운동의 실록이다. 신한민보는 민족지로서 동포의 번영과 조국광복과 통일의 필봉이다> 그는 “신한민보의 기사는 조상의 눈물 자욱이나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신한민보기사는 조상의 눈물

나중 국민회 집행부와 편집방침을 두고 이견이 생겨 구 씨는 신한민보를 떠났다. 수년후 국민회가 쇠락의 길로 접어 들면서 해산과정에 들어갈 때 한때 신한민보를 맡았다는 인연 때문에 본의 아니게 서기의 임무가 그에게 주어졌다. 그래서 그에게는 “국민회 마지막 서기”라는 별명이 따라다니고 있다.

때는 1980년대말이었다. 공식적으로 국민회 마지막 회장은 안승화(작고)씨였다. 국민회 마지막 회의는 1989년 1월 20일 오후 1시30분 LA코리아타운의 세종회관에서 열렸다. 참석자는 안승화 회장을 포함해 이화목(작고),안정옥 이사, 구융회 서기 그리고 김희선 재무 등 5명이었다. 이날의 주요결의사항은 국민회의 재산을 청산하는 문제였다. 당시 국민회 유산은 ‘홈 세이빙 오브 아메리카’은행에 정기예금으로 기탁된 금액(만기일 금액 45,118달러 25센트)과 국민회관에 보존된 유물과 사료 등이었다. 회의에서 재산을 총영사관이나 동포단체등에 위탁시키자는 논의를 한 결과 국민회와 가장 유사한 흥사단으로 결정했다.

청산기금 45,000 달러와 국민회가 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측으로부터 받을 미수금까지를 흥사단에 기탁하는 조건은 ‘국민회의 이름으로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이었다. 또 유물과 사료는 흥사단이 위임을 받아 훗날 조국이 통일되면 책임있는 기념관에 영구 보존되도록 한다는 조건이었다. 그리고 회의는 이 결의사항을 집행하기 위해 안승화 회장, 구융회 서기, 김희선 재무 3인에게 전권을 위임했다. 이들 3인은 그해 3월7일 왕관식당에서 모임을 갖고 흥사단에게 국민회의의 청산결의문을 발송하고 흥사단측의 공식 수락서를 받은 후 청산업무를 집행키로 했다. 당시 흥사단미주위원부는 송재승 위원장의 명의로 이 모든 조건을 수락한다는 공문를 국민회로 보냈다. 이과정에서 돌발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안승화 회장이 흥사단에게 모든 것을 전달하기 전 교통사고로 사망했던 것이다. 졸지에 구씨는 회장의 역할까지 맡아야 했다. 국민회와 흥사단은 1989년 5월1일 한국회관에서 청산에 따른 기금전달식을 가졌다.

국민회 최후의 오찬

“국민회관의 유물 일체를 흥사단에 위임하면서 많은 고통을 당했습니다”라고 당시를 기억하는 구씨는 “기금이 실지로 흥사단에 전달되기까지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고 말했다. 국민회로부터 ‘장학금지급’ 조건으로 청산기금을 받은 흥사단은 그후 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구 씨는 “오늘 날까지 흥사단이 국민회 이름으로 장학금을 지급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다”면서 “그 돈이 어떤 돈인데…국민회 청산을 담당했던 한사람으로 선조들을 볼 면목이 없다”며 울먹였다. 그는 “흥사단측에 연유를 알아보았는데, 자기들 단소(회관)구입비에 사용했다는 말을 듣고 분이 복바쳤다”며 두 주먹으로 탁자를 치면서 분노감을 나타냈다. 구씨는”죽기전에 다시 흥사단에게 국민회와의 약속을 지켜달라고 서신을 보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1년6개월 전에 간암이 재발되어 앞날을 장담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한시간 정도도 글을 쓸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도 마지막 기록하고 싶은 것은 국민회,신한민보,대한여자애국단에 대한 논문이다.
“과거 독립운동을 하던 선조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위대한 일을 했다”고 말하는 구씨는 “어떤 해는 상해임시정부에 7만 달러나 독립성금을 보낸 기록이 있는 장부를 보고 믿기지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신한민보를 제작하면서 회관에 있던 자료들이 예사로운 것이 아님을 아직도 실감하고 있다. 유명하지 않은 수많은 선조들이 꼬박꼬박 애국성금을 납부한기록서류들을 포함해 ‘한국인’이라는 증명서를 발급했던 국민회 철인 등등 중요하고 역사적인 사료들이 많았음을 기억했다. 안타까운 기억도 있다. 그가 국민회를 떠난후 어느 해, 국민회관에 있는 귀중한 사진들을 조 모 이사가 USC 행사에 대여를 해주었는데 그 자료들을 반환받기 전에 조 이사가 사망했다. 구씨는 “그후 국민회측의 어느 임원도 대신 그 사진들을 USC로부터 찾아 오지도 않아 지금까지 그 사진들은 소재가 불분명해졌다”면서 “이런저런 사연으로 국민회관의 사료들이 분실되고 사그라지고 있다는 소식에 가슴이 메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논쟁이 되고 있는 국민회 사료에 대해서도 구씨는 “교회나 흥사단 또는 어떤 개인이나 단체도 욕심을 품어서는 안될 것”이라며 “모두가 올바른 길을 가야한다. 그것이 역사를 바로 아는 것이 아닌가!”라고 언성을 높였다. 그리고 그는 “증거를 가지고 있는 내가 아직 죽지 않았잖아!”라며 다시 울먹였다.

한국에서 독립기념관이 건립되기전의 일이다. 국회의원이며 서울대 교수인 독립기념관의 최모 부관장이 LA를 방문했다. 구씨는 “국민회관의 자료들이 썩어 나가고 있으니 독립기념관에서 조치를 해주기 바란다”고 건의하자 부관장은 “좋은 제안이다. 서울가서 그대로 시행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독립기념관이 개관됐어도 그 제안은 실행되지 못했다. 구씨는 “한국정부나 이곳의 관련단체들도 유물관리에 못본척하다가, 이제 조금 살만하니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이 안타깝다”면서 “지난 날 모두들 회피하다가 유물보존의 기회를 다 놓쳤다”고 아쉬워했다. 그 자신도 뒤늦게 자료를 수집해 글을 쓰려고 했는데 “간암이 발병해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며 후회하고 있다. 그래도 “죽는 날까지 국민회의 역사를 후대에 전하기 위해 기록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구씨는 “지금이라도 미래를 볼 수 있는 비젼을 우리사회가 지녀야한다”면서 “우리한국인에게는 다른 민족이 지니지 못하는 ‘뜨거움’이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문을 나서는 취재반에게 “젊은 세대에게 우리 선조들의 역사를 알려주는 일이야말로 희망의 비젼이다”라며 “사료보존에 교회나 흥사단을 포함해 관련단체들이 서로 칭찬하면서 바른 길을 택하길”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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