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경악… ‘삼성 황태자’ 이재용 스위스 UBS비밀계좌 드디어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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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특종」부끄러운「삼성」그 반역적 행각의 전모를 추적한다

충격·경악… ‘삼성 황태자’ 이재용 스위스 UBS비밀계좌 드디어 찾았다
부패·반역·망국적 해외 재산은닉 실체 전모

‘Asia 증권시장의 풍운아’ 마쯔오카 히데오(박준홍) 미스테리 大추적


‘삼성가의 황태자’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의 스위스 UBS은행의 비밀계좌가 드디어 본보 취재팀에 의해 꼬리가 잡혔다. 95년 당시 불과 20대 중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수억 달러의 해외계좌를 가지고 있던 이재용 씨와 순복음 교회 조용기 목사의 장남인 조희준 씨와의 신탁비밀 장부거래를 통해 송금통지서를 본보가 긴급 입수, 그 사건의 전모와 실체를 집중 추적했다.
























지난주 본보가 제기한대로 삼성가의 황태자인 이재용 씨를 비롯한 재벌2세 및 유명인사들의 숨겨논 해외 비자금들이 당시 일본 내 자금 관리책으로 보이는 조희준 씨를 통해 일본 증권가로 흘러 들어간 모든 과정과 세부내역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들 일부 재벌 2세들이 경악과 충격을 금치 못할 망국적인 행각을 펼치고 있어 사건의 실체를 7년 만에 전면적으로 보도한다.

20대 중반의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스위스 UBS은행에 거액의 비밀예금 계좌를 가질 수 있었으며, 또한 그 돈의 출처는 어디며,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이러한 어마어마한 비밀 장부의 사실 여부를 사전에 알고 있었는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현재 본국의 참여연대를 비롯, 반 삼성 안티 단체들이 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위해 본보에 문의가 잇따르는 등 한국 정재계와 순복음 교회 등에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며 적지않은 파장이 예고되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하지만 본보 특별 취재팀은 계속되는 인터뷰 요청에도 불구하고 이를 철저히 거부하고 있는 소위 ‘키메이커’ 마쯔오카(한국명 박준홍) 씨를 계속 설득하는 한편 새로운 접근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모든 비밀의 내막을 알고 있는 마쯔오카 씨와 직접 거래관계에 있었던 주변 유력인사들과의 접촉을 시도하였다. 이에 몇 건의 비밀자료를 입수해 접촉이 이뤄졌으나, 이들 역시 약속이나 한 듯 인터뷰를 거절하며 철저히 함구로 일관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본보의 두차례의 걸친 기사를 접한 다른 제보자 등 이어지는 각종 제보를 통해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을 알아낼 수 있었고, 몇 가지 풀리지 않던 비밀의 의혹들이 하나 둘 씩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본보 취재팀은 극비리에 지난 95년 경 ‘삼성가의 황태자’ 이재용 씨가 일본에서 정착을 시도하려던 순복음 교회 조용기 목사의 장남인 조희준 씨에게 스위스 UBS 은행 비밀계좌에 예탁해 놓았던 일부자금을 송금한 내용이 담긴 송금통지서를 입수하게 된 것이다.
































조희준 씨는 비밀송금이 이뤄진 95년 당시 일본 도쿄와 오사카에서 (주)국민일보 일본 현지법인과 투자회사인 ‘HJC’(Hee Jun Corporation)의 대표 취췌역을 맡고 있었다.

본보가 입수한 송금통지서에 따르면 이재용 씨는 일본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던 조희준 씨에게 수백만 달러 이상의 거금을 스위스 취리히 소재 UBS 은행으로부터 일본 도쿄 소재 UBS 지점으로 ‘텔레뱅킹’을 통해 송금하는 방식을 취해 자금이동을 시도하였던 정황을 포착할 수 있었다.

아울러 지난 95년 7월 11일 이 같은 이재용 씨의 자금을 수취한 이가 다름 아닌 조희준 씨의 가까운 친구사이로 알려진 위승연(Wee Seung Yun) 씨였다는 것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서류에 따르면 엔화 2억 2천만 엔(미화 200만 달러 상당)이 스위스 계좌로부터 ‘위승연’ 씨라는 차명계좌로 입금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이 일본 계좌의 주인공인 위승연 씨는 ‘보루네오 가구’ 전 사장인 위상식 씨의 딸로 알려져 있으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위 씨의 전 남편인 David Lee 씨는 조희준 씨가 설립한 홍콩 현지 법인의 대표였다는 사실은 이 같은 계좌가 철저히 준비된 차명계좌이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기도 하였다.

문제는 스위스 UBS(Union Bank of Switzerland) 은행에 이미 삼성가 이재용 씨 자금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일차적으로 확인된 것이고, 일본계좌로 흘러 들어간 이재용 씨 자금은 이 같이 차명계좌를 통해 철저히 분산되어 수 차례 송금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총액이 미화 1,000만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는 이재용 씨가 현재까지도 스위스 UBS를 비롯한 해외 비밀은행 신탁계좌를 통해 비자금이 관리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어진다는 점이다. 알려진 바로는 이러한 금액이 천문학적 금액인 수천만 달러에 이른다고 알려져 있어 이 같은 ‘이재용 해외 비자금’의 사실 여부를 놓고 본국에서 한차례 큰 파문이 예상되고 있는 것이다.

<특별취재팀> www.sundayjournalusa.com

삼성가 황태자‘이재용’과‘조희준’의 만남

삼성가 황태자 이재용 씨가 어떠한 계기로 조희준 씨와 만났으며, 앞서 밝힌 스위스 UBS 은행 비밀계좌를 통해 수백만 달러를 어떠한 연유로 입급하게 되었는지 집중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지난 92년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한 이재용 씨는 졸업과 동시에 삼성전자 총무그룹에 입사했고, 이후 철저한 ‘경영자 수업’을 위해 삼성 JAPAN의 간부를 역임하며 일본 게이오 대학 대학원 경영관리연구 석사과정을 거치게 된다. 바로 이 시기에 이재용 씨는 업무관계 상 일본 출장이 잦았던 한국 재벌기업 2세들과의 정기적 만남을 통해 조희준 씨와의 인연을 맺었고 각별한(?) 관계가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바로 이 시점인 95년은 조희준 씨가 일본 여성과의 두 번째 결혼을 계기로 일본에서 정착을 하려했던 시기와 일치한다. 이 시기에 일본여성과 결혼함으로써 조희준 씨는 ‘오바야시 다이찌’라는 일본명을 얻게 되었으며, 이후 일본에서는 ‘오바야시 다이찌(大林大地)’라는 이름으로 활약하게 된다.

이 당시 ‘오바야시 다이찌’ 즉 조희준 씨는 증권 및 주식투자에 관심이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과거 ‘아시아 증권가의 풍운아’였던 마쯔오카 히데오(한국명 박준홍) 씨와 연계를 통해 그 자신도 함께 새로운 ‘황제’로의 등극을 꿈꿨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조희준 씨는 이 과정에서 본국에서의 친분을 십분 활용해 재벌2세 및 유명인사들의 자금을 끌어 들이기 시작했고, 바로 이러한 자금 속에 이재용 씨의 해외자금이 흘러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스위스 UBS 은행에 이미 이재용 씨 자금이 들어있는 계좌가 존재했었다는 점이고, 이 당시 일본으로 흘러 들어간 돈이 미화 1,000만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보아 현재까지도 스위스 UBS를 비롯한 해외 비밀은행 신탁계좌를 통해 비자금이 관리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이를 놓고 말들이 무성한 것이다.

이재용 씨는 본보가 입수한 여러 장의 송금통지서를 분석해 본 결과 철저하게 준비된 차명계좌를 통해 분산시켜 자금을 이동시킨 것으로 보인다. 알려진 바로는 이러한 해외계좌를 통해 이재용 씨가 관리하고 있는 금액이 천문학적 금액인 수천만 달러에 이른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어 이에 대한 사실여부를 놓고 한차례 파문 또한 예상되고 있다.

아무튼 지난 95년 7월부터 이재용 씨의 비밀송금이 극비리에 진행되었고, 1년 여가 지난 96년 중반 조희준(오바야시 다이찌) 씨는 재벌2세 및 유명인사들의 자금을 발판 삼아 마쯔오카 씨와 공동으로 ‘FIC’라는 증권투자사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이후 본격적으로 한국의 재벌2세 및 유명인사들의 자금, 그리고 베일에 가려져 있는 본인의 투자금을 합쳐 본격적인 주식투자에 뛰어들게 된다.

지난 432호에 이미 기사화 했듯이 본보가 입수한 당시 ‘FIC 법인 합병 등기부 등본’에 의하면 ‘FIC’는 조희준 씨의 소유기업인 (주)韓新(일본 소재), HJC(Hee Jun Corporation), (주)국민일보 등과 기업합병을 하였고, 이를 발판 삼아 본격적으로 일본 주식시장에 대규모 투자를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비쳐볼 때 거부(?)로 알려진 아버지 조용기 목사의 자금지원도 한 몫 거들었을 것이라는 추측 및 의혹 또한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아버지의 후광(?)을 입은 조희준 씨의 자금동원 능력을 믿은 재벌2세 및 유명인사들은 선뜻 투자금액을 비밀리에 건넨 것으로 보인다. 물론 ‘투자’라는 명목아래 큰 수익을 기대하며, ‘비상한 두뇌의 소유자’로 알려진 조희준 씨에게 전적으로 자금을 맡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전액 손실에 가까운 엄청난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이 시점에 ‘조용기’ 목사와 ‘조희준’ 이들 부자간의 비밀거래가 있었다는 의혹이 일고 있고, 이 또한 ‘뜨거운 감자’로 다시 떠오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97년 불어닥친 금융 한파(寒波)

지난 96년 마쯔오카 씨가 조희준 씨와 ‘FIC’를 창업할 당시에 마쯔오카 씨는 이미 대형펀드 회사인 ‘PHT 신탁’의 현금유동성 위기로 파산일보 직전에 놓여 있었다. 또한 이 시기는 조희준 씨가 중소 규모의 투자회사를 (주)국민일보 일본 현지법인과 함께 경영하고 있는 시점이었다. 문제는 이들이 왜 손을 맞잡았는가라는 것이다.

이 두 사람과 가까웠던 측근들은 “마쯔오카 씨는 ‘PHT’의 수억 달러에 이르는 손실처리를 겪으며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고, 조희준 씨는 보다 큰 대형규모의 투자사를 물색 중인 상황에서 이들의 이해관계가 적절히 맞아 떨어졌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당시 마쯔오카(한국명 박준홍) 씨는 세계최대의 기관투자가인 “일본생명”을 비롯 미국과 유럽의 초대형 펀드사들과 특별한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마쯔오카 씨는 당시 ‘일본생명’의 홍보실장인 히라다(平田) 씨와 특별한 친분관계를 갖고 있었으며, 이 히라다(平田) 씨를 통해 일본 내의 대형 기관투자사 간부들과 장기간 거래관계에 있었던 것으로 조사되었다.

아울러 마쯔오카 씨는 일본 유학시절부터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도쿄 대학 및 교토 대학 출신의 대형 금융기관 간부들과도 긴밀한 협조관계에 있었던 것이다. 조희준(오바야시 다이찌) 씨 역시 일본 증권사들과 새로운 거래를 시작하고 있는 시점이어서 이 같은 마쯔오카 씨의 금융권 고위층 인맥이 절실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시점에 지난 96년 후반 마쯔오카 씨가 현금유동성 위기로 파산일보 직전에 몰리는 등 개인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조희준 씨가 많은 도움을 주며 두 사람의 관계가 급속도로 친밀해졌다는 후문이다. 이 시기에 마쯔오카 씨가 운영하고 있던 펀드들 중에는 이미 한국 재벌기업이나 유명인사들의 자금이 대다수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이에 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본보는 철저히 추적 중에 있다.

조희준(오바야시 다이찌) 씨와 마쯔오카 씨는 의기투합해 손을 맞잡고 FIC를 대형투자사로 전환하기 위해 일본 국내 및 해외기관 투자가들의 펀드를 동원, 대규모 주식매수 작업에 들어갔다.

96년 후반기부터 시작된 대규모 주식매수는 연일 FIC에게 수백만 달러의 평가이익을 파생시킬 정도로 성공적이었으며, 당시 FIC는 창업 3개월 만에 무려 1억 달러에 가까운 평가이익을 달성할 정도로 ‘고공비행’을 거듭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97년 3월 경부터 일본에 불어 닥친 증권시장의 패닉(공황) 상태로 승승장구를 거듭하던 ‘FIC’는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마쯔오카 씨와 조희준 씨의 풀리지 않는 이상한(?) 거래

마쯔오카(한국명 박준홍) 씨와 오바야시 다이찌(한국명 조희준) 씨. 그들은 어떻게 짧은 시간에 증권시장에 Major로 떠오를 수 있었나를 집중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이 두 사람의 주변인물들의 평을 종합해보면 이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비상한 두뇌의 소유자들이며 주식투자에 관해서는 천부적인 자질을 갖고 있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는 이들 두 사람이 손을 맞잡고 시작한 대규모 도박(?) 게임이 처음 자금을 확보하는 과정 및 진행상황부터 가히 007 작전을 방불케 하는 수준으로 펼쳐진 점을 보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본보의 특별취재팀은 여러 경로를 통하여 풀리지 않는 ‘비밀투성이’인 조희준 씨와 박준홍 씨의 대규모 증권투자 미스테리에 대하여 추적해 보았다. 두 사람과 직접 거래관계에 있었던 관계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두 사람이 각자 다른 길로 헤어진 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고 회술했다. 이는 추후 설명하겠지만 대규모 주식투자를 통해 두 사람이 대조되게 엇갈렸다는 점에 기인한다.

조희준 씨가 측근들에게 “마쯔오카 씨가 본인의 자금을 수백억 원 이상의 손실을 입힌 후 교묘하게 해외로 빼돌렸다”고 주장했다는 점을 미뤄보아 현재 이들 두 사람은 이미 남남으로 갈라서 서로 등을 돌리고 있는 상태임을 알 수 있었다.

본보 취재팀은 이 같은 사실을 마쯔오카 씨에게 직접 확인하기 위해 재차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마쯔오카 씨는 “이미 과거는 다 잊어버렸으며 설사 안다고 해도 회사의 대주주나 고객의 정보를 제3자에게 유출할 수 없는 것이 증권시장이나 금융가의 원칙이다”라며 일축했다. 마쯔오카 씨는 고객정보 부분에 있어서는 철저히 특수한(?)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처럼 도무지 진실을 밝히고 있지 않는 것이다.

이들 두 사람은 한때 친형제 이상으로 우정과 우의가 돈독하였으며 절대적인 신뢰를 갖고 있었으나, 지난 97년 초부터 일본 금융시장에 갑자기 불어 닥친 증권시장의 패닉(공황)상태가 그들의 동업관계를 깨뜨리는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했으며 결국 모종의 거래를 통해 둘이 손실을 인정하고 갈라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알려진 바로는 조희준 씨와 관계 청산 이후 마쯔오카 씨는 고도의 금융투자 기법을 발휘해 ‘투자고객들의 손실을 보전하고, 일부 투자자들은 거대한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지자 손을 털고 일어선 조희준 씨가 마쯔오카 씨에 대해 앙금(?)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도 그럴 것이 조희준 씨는 삼성 이재용 씨를 비롯 재벌 2세들과 유명인사들의 자금을 포함해 자신의 주장처럼 수백억원 이상의 손실을 보았기 때문이다. 항간에는 본국으로 돌아가 조희준 씨가 사비를 동원해 이들 금액까지 변상해 줬다는 얘기도 들린다. 즉 일부 투자자들에게 ‘무마용’으로 입을 막기 위해 이중으로 손실을 떠안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당시 증권 관계자들의 전언에 의하면 FIC는 너무 무리한 현금동원과 증권 신용취인 금액(Margin Call)이 커 현금유동성 위기가 숨가쁘게 돌아갔던 것으로 전했다. 이 과정에서 조희준 씨와 마쯔오카 씨는 개인자금은 물론 본인들이 동원한 대형 펀드의 자금들을 거의 손실하는 무리한 도박을 감행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마쯔오카 씨의 경우 조희준 씨와는 달리 ‘FIC’의 대표 취췌역으로서 법률적으로나 도의적으로 모든 책임을 혼자 져야 하는 위치에 있었고, 우여곡절 끝에 조 씨의 ‘FIC’ 지분을 마쯔오카 씨가 전량 인수하는 방식을 취해 두 사람은 갈라지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조희준 씨는 고스란히 손실을 떠안았음을 두말할 나위가 없고, 이후 마쯔오카 씨 또한 계속되는 주식시장의 경색과 대폭락 등으로 거의 몇 달을 주가방어에 많은 자금을 쏟아 붓는 등 고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호에 제기했듯이 당시 환산시가로 약 1억 5천만 달러에 달하는 (주)코아석유 1,500만 주를 비롯한 매수 포트폴리오 전 종목이 대폭락하기 시작했고, 이 같은 엄청난 게임에서 ‘FIC’와 기관 투자가들은 10억 달러 이상의 손실을 본 것으로 조사되어 있다.

여러 정황을 종합해보면 삼성 황태자 이재용 씨의 자금을 비롯한 대다수의 고객들이 과연 조희준 씨가 ‘FIC’에서 손을 떼면서 투자금액이 손실처리 되었는지, 아니면 계속해서 마쯔오카 씨의 관리자금으로 남아 있었는지는 아직 의문으로 남아 있다.

분명한 것은 이 도박과도 같은 게임에 투자자들 모두가 엄청난 자금을 손실했던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문제는 이 자금들을 투자한 재벌2세 및 유명 인사들의 자금이 누구였으며, 개인들이 소유한 자금이었는지 법인자금이었는지가 명확하게 밝혀져야 하며, 그 자금의 출처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러한 ‘FIC’ 기업위기 속에 조희준 씨는 본국의 국민일보 사장으로 복귀하기 위해 ‘FIC’를 서둘러 정리하고 일본을 떠났으며, ‘FIC’는 마쯔오카 씨 혼자 현금 유동성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던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조희준 씨와 사업관계를 청산한 마쯔오카 씨는 ‘FIC’의 본사를 긴자로 이전, 해외 Major 증권사들과 다시 거래를 재개한 후 홍콩과 유럽 등의 헤지 펀드 등을 동원, 손실만회를 위한 마지막 도박을 시도하였다. 당시 마쯔오카 씨가 동원한 펀드는 이미 기사화한대로 약 5억 달러 이상였던 것으로 드러나 있다.

그러나 본 취재팀은 너무나도 이해할 수 없는 사실 한가지를 발견하였다. 이 5억 달러라는 자금을 동원하여 다시 주식매수를 시작한 지 약 한달 뒤 모든 자금이 손실된 것으로 처리, ‘FIC’와 마쯔오카 씨가 동원한 대형펀드가 폐업을 하게 된 것이다. 즉 긴급 동원된 5억 달러가 ‘허공’속으로 사라져 버린 결과였다.

하지만 이에 여러 정황 등을 분석해 본 결과 마쯔오카 씨는 자신의 중요 고객들의 손실보전을 위해 새로운 펀드를 조성한 후 주식 매수, 매도기법 중에 하나인 ‘헷지 거래’를 비밀리에 한 것으로 추측된다. 상세히 설명하자면 Long Position과 Short Position을 각각 다른 국가의 증권시장을 통해 소위 ‘헷지’를 걸어 논 후 Long Position 쪽은 매도, Short Position 쪽은 매수하는 등의 기법을 사용해 대폭락에 따른 투자금의 손실보전과 아울러 고객비밀 보호장치에 문제가 없게끔 대도박을 강행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쉽게 설명하자면 소유한 주식들을 집중적으로 매도해 대폭락을 만들고, 헷지거래를 통해 주식매도로 생겨난 손실 분을 뛰어 넘는 큰 수익을 창출해내는 고도의 기법을 구사한 것이다. 즉 Long Position 쪽은 매도, Short Position 쪽은 매수하는 기법은 오로지 해당 주식이 떨어져야만 수익이 나는 거래였던 것이다.

이러한 주식시장의 원리를 교묘히 이용해 해당종목 주식 대다수를 현물시장에 내다 팜으로써 폭락을 연출했고, 헷지거래의 특성상 떨어지는 주가 덕분에 한 방향으로 도박을 감행한 마쯔오카 씨의 전략이 맞아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긴급 동원된 펀드자금 5억 달러가 1달 만에 증발해버렸다는 데에 있다. 언뜻 보기에는 정상적인 거래로 보이지만 ‘잃은 이가 있으면 딴 이가 있기 마련이다’라는 증권의 공식을 교묘히 피해나갔기 때문이다.

‘헷지거래’를 통한 막대한 새로운 평가이익을 얻어 냄으로써 손실보전을 한 쪽도 마쯔오카 씨의 고객이었고, 소위 Short Position을 행사하여 증권시장의 대폭락으로 인한 평가익을 올린 것도 마쯔오카 씨의 고객들이었다는 점이다.

마쯔오카(한국명 박준홍) 씨는 이 ‘미스테리’와도 같은 ‘FIC’의 대규모 평가손실 처리 이후 어떤 자금들을 동원해 다시 손실을 보전할 수 있었는지 밝혀야만 한다. 유럽 및 홍콩의 비밀계좌들을 통해 동원된 것으로 보이는 ‘5억 달러’는 과연 누구의 돈이었을까라는 데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왜냐하면 마치 증발한 것과도 같이 사라진 ‘5억 달러’의 제공자들이 전혀 손실을 탓하며 문제 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새로운 ‘5억 달러’라는 자금 속에 이재용 씨를 비롯한 재벌2세의 자금 및 유명인사들의 자금이 포함되어 있었을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또한 본국으로 돌아간 조희준 씨는 ‘오바야시 다이찌’라는 일본명으로 일본에서 활약할 당시 어떤 자금으로 일본에서 여러 개의 회사를 운영할 수 있었으며, 그가 ‘FIC’에 동원해 손실을 본 자금출처 또한 밝혀져야 한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 모든 ‘키’를 ‘키메이커’ 마쯔오카 히데오(한국명 박준홍 씨)가 쥐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수면위로 떠오르는 순복음 교회 조용기 목사와 조희준 부자간의 비밀상속 의혹

현재 조희준 씨는 현 넥스트미디어 아이(전 스투닷컴) 그룹의 명예회장으로 스포츠투데이, 파이낸셜 뉴스 등을 발행하고 있는 발행인이자 명예회장직을 맡고 있다. 38살이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이 같은 거대한 미디어 그룹을 운영하는 것이 아버지 조용기 목사의 후광 및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이룬 것이 아니냐라는 의혹은 마치 수식어처럼 조 씨를 계속 따라다니기도 한다.

실례로 지난 2000년 9월 27일자 ‘기독신문’을 보자면, 당시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서 출교와 제명 조치를 당한 14명의 장로들이 “교회 재산 대부분은 장로와 교인들도 알지 못한 가운데 조용기 목사의 장남인 조희준 씨가 경영하는 넥스트미디어 코퍼레이션 등에 거액 담보 대출됐다”고 폭로전이 일어나기도 했다.

교회 재산의 투명한 관리를 요구하다가 중징계를 당했던 ‘교회사랑 장로모임’(교사모) 소속 장로들이 지난 2000년 9월 22일 기자회견을 열고, 순복음교회 대성전 인근의 13층 짜리 본관건물이 △97년 3월 넥스트미디어 코퍼레이션(주)에 20억 8,000만원 △1999년 12월 30일 인터내셔날 클럽 매니지먼트 그룹(주)에 25억원 △1998년 5월 22일 여의도순복음교회 65억원 △2000년 2월 18일 넥스트미디어 코퍼레이션(주)에 14억엔(150억 6000만원)에 근저당 설정된 것으로 나타난 등기부 등본을 공개하며 항의하고 나섰던 것이다.

당시 이들 ‘교사모’ 소속 장로들은 “순복음 교회 재산 중 재단법인으로 귀속된 것은 대성전과 제1교육관 등 일부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여의도 순복음 교회 대표 조용기 목사’ 명의로 되어 있다”고 밝히고 “교회 재산이 교회와 무관한 넥스트미디어 코퍼레이션 등에 거액 담보 대출된 원인은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던 것이다.

이후 지난 2001년 국민일보 조희준 회장은 2001년 실시된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 탈세와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되면서 아버지 ‘조용기 목사’로부터 지원 받은 사실이 어느 정도 드러나 세인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기도 하였다. 당시 특가법상 조세포탈 혐의와 특정경제범죄 가중 처벌법상 횡령 혐의를 적용 받아 지난 2001년 8월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김병관 동아일보 전 명예회장과 함께 구속당하기도 했다.

당시 검찰은 지난 99년 8월 31일 당시 국민일보 조희준 사장은 넥스트미디어 코퍼레이션 주식 30만 4,000주를 매입한 것처럼 위장해 증여받는 수법을 동원해 11억원의 소득을 탈루했고, 또한 조희준 사장은 97∼99년 아버지 조용기 목사의 자금 20억원을 현금으로 인출해 개인차입금 상환자금 등에 사용하면서 9억원의 증여세를 탈루했으며, 조 씨는 98년 계열사 임원 명의로 17억원 상당의 빌라를 취득했음에도 불구하고 증여세 4억원을 신고에서 누락하기도 했으며, 조 씨는 또한 아버지인 조용기 목사가 관계회사에 임원명의로 입금한 10억원을 97년 인출해 사용하고도 이 같은 사실을 은폐하고 4억원을 탈루한 혐의가 인정되어 구속하게 되었다고 밝혀진 바 있다.

하지만 2001년 당시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 탈세, 횡령혐의가 드러나 구속되었던 조희준 씨를 놓고 세간에서는 형평성 문제를 놓고 말들이 많았다. 당시 다른 언론사 사주들은 증여 행위를 했다고 해서 고발 적용대상이 된 반면 조희준 씨는 부친 조용기 목사에게 증여를 받았다는 것이 고발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놓고 언론계에서는 “조희준 회장이 부친인 조용기 목사 대신 고발 당한 것”이라는 얘기까지 흘러 나왔었다. “처음 국세청이 조사한 자료대로라면 조용기 목사가 검찰에 고발되어야 하는데, DJ 정부가 종교단체까지 ‘적’으로 돌릴 수 없다는 정치적 판단을 한 것 아니냐”는 지적들이 봇물 터지듯 흘러 나왔던 것이다.

조희준 씨의 순탄치 않은 결혼생활과 베일에 가려져 있던 일본생활

다시 이번 ‘삼성 황태자 이재용 씨 해외 비자금 은닉사실 포착’과 관련했던 90년대 중반으로 되돌아가보자.

과거 탤런트 나종미 씨와의 한차례 결혼실패로 심한 방황기를 거친 조희준 씨는 두 번째 결혼을 통해 일본에 정착하려고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본보의 취재결과 조희준 씨는 한국에서 탤런트 나종미 씨와 화제(?)의 이혼- 이혼과정에서 위자료 문제를 놓고 당시 가석방 중였던 서방파 두목인 김태촌 씨와의 연루 야합설이 불거져 나와 법정싸움을 벌여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음 -을 한 후 방황을 하다가 아버지 조용기 목사의 소개로 만난 일본여성과 재혼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과정에서 조 씨는 일본으로 완전한 정착을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또 다시 결혼 생활에 실패, 별거상태에 들어갔다가 끝내 이혼을 했으며, 본국으로 돌아온 지난 99년에는 탤런트 강문영 씨와의 결혼설이 나도는 등 ‘여자문제’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이러한 조희준 씨에 대해 지난 2000년 10월 아버지인 조용기 목사는 ‘여성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힌 바 있다.

“장남이 정신적으로 불안정했어요. 그래서 첫번째 결혼에 실패했습니다. 두 번째는 내가 소개해서 일본에 있는 의사 딸과 맺어주었지요. 마음의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재혼한 겁니다. 그런데 언젠가 아들을 데리고 프랑스 파리에 가서 선교집회를 할 때였어요.일본의 아들 집으로 전화하니까 며느리가 전화를 안 받아요. 친정으로 전화해도 안 받아요. 이상하다 생각하면서 일본으로 돌아왔는데, 느닷없이 보험회사에서 자동차사고 처리에 대한 통지서가 날아왔어요. 자동차사고 날짜가 우리 아들이 파리에 있던 시기여서 자동차를 탄 적이 없어요. 그래서 조사해보니까 며느리가 결혼 전의 애인과 차를 타고 온천장에 갔다가 사고를 낸 거였어요. 나는 아들에게 용서하고 살아야지 어떻게 하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아들도 용서해주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며느리의 아버지가 와서는 ‘일본에서는 이런 일이 보통이다, 뭐 이런 일로 법석을 떠느냐’ 하면서 딸을 데려가겠다는 겁니다. 결국 아들은 두 번 이혼했지요. 그래서 지금은 결혼 공포증에 걸려서 결혼을 겁냅니다.”

아무튼 두 차례 결혼실패를 거친 조희준 씨는 우여곡절 끝에 한국으로 돌아와 ㈜국민일보 사장과 회장을 거치며 경영 전선에 뛰어 들었고, 현재는 12살 연하인 장안나 씨와 재혼해 세 번째 결혼생활 중에 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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