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중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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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통령중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남아
케네디 암살 40주년… 그는 죽지않고 영원히 미국인 가슴속에 살아 숨쉬고 있다


케네디 죽음은 미국 종말의 ‘전주곡’… 죽음이후「상심과 향수」 남아

미국의 35대 대통령 존 F.케네디가 전국민이 시청 하는 텔레비전 생중계 속에 총탄에 쓰러진 지 22일이면 만 40년이 된다.
그러나 생애의 절정에서 맞이한 그의 죽음은 지금까지도 많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상심과 향수를 불러 일으키고 잃어버린 카멜롯의 약속을 상기시키며 갈수록 새로워지는 신화로 남아있다.

케네디 40주기를 맞아 미국에서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텔레비전 특집과 각종 학회, 전시 등이 열리고 수많은 책이 쏟아져 나오면서 그의 업적 외에 알려지지 않았던 온갖 음모와 추문까지 쏟아내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온 미국인을 매혹시켰던 46세의 젊고 매력적인 대통령으로 남아 있다.
최근 “끝나지 않은 생애: 존 F.케네디 1917-1963”이란 책을 출간한 보스턴 대학 의 역사학자 로버트 댈럭 교수는 “46세의 나이로 얼어 붙은 그의 신화는 아직도 매우 강력하다”면서 그가 이처럼 신화 속의 인물로 남게 된 것은 미국 대통령 중 처음으로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돼 활기차고 카리스마가 넘치는 멋진 모습을 남긴 까닭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케네디가 조지 워싱턴과 에이브러햄 링컨,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함께 미국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4명의 대통령 중 하나였다고 평가하면서 “그가 구사하는 수사법과 연설, 그가 사용한 언어는 미국인들에게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었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살았더라면 베트남 전쟁이 그렇게 실패로 끝났을 지 의문을 품고 있다.

아메리칸 대학의 피터 쿠즈닉 교수는 “케네디의 암살은 미국의 종말의 시작이었으며 그 사건 이후 미국은 급한 내리막길로 들어섰다는 시각이 광범위하게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케네디의 생전에 정치적 업적은 크지 않지만 죽은 뒤 많은 일들이 그의 이름으로 이루어졌다면서 대표적인 예로 고인이 상당히 소극적이었던 인권운동을 들었다.

이에 대해 댈러스 시에 있는 케네디 기념 박물관인 `6층 박물관’의 학예연구사 게리 맥은 당시는 냉전시대였으며 피그만 사태와 쿠바 미사일 위기 등 인권운동이 본격 전개되기 어려운 ‘미국 역사상 공포시대’였음을 지적했다.

케네디 암살사건 조사를 맡은 워런 위원회가 내린 ‘리 하비 오스왈드의 단독범 행’ 결론, 1978년 의회의 재조사 결과 밝혀진 ‘공범 증거, `음모 이론을 입증할만한 설득력 있는 증거가 없다’는 1988년 법무부의 수사종결 선언이 남긴 것은 아직도 계속되는 의혹이다.
한편 ‘대통령을 죽인 도시’라는 오명을 쓴 댈러스시 주민들중 상당수는 아직도 충격의 여파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당시 ‘극보수파’라는 평판을 얻고 있던 댈러스시에서는 케네디 대통령 방문을 하루 앞두고 케네디를 현상 수배범으로 그린 ‘반역 혐의 수배자’라는 전단이 나돌았으며 방문 당일 댈러스 모닝 뉴스는 대통령이 법무장관에게 공산주의자들을 살살 다루라고 명령한 이유를 밝히라고 요구하는 ‘미국 진상위원회’의 전면광고를 실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사건이 일어나자 댈러스 시는 ‘대통령을 죽인 도시’라는 손가락 질에 시달렸고 주민들은 곳곳에서 노골적으로 적대적인 대접을 받았다.

많은 댈러스시 주민들은 케네디의 죽음과 관련된 장소를 의식적으로 무시했으나 시는 1970년 필립 존슨이란 조각가에게 위촉해 딜리 광장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곳에 가묘를 세우고 블록 전체를 ‘존 F.케네디 추모광장’으로 명명했다.

그러나 흰 콘크리트로 제작된 9m 길이의 질박한 기념비는 원래의 의도와는 달리 방문객들에게 오히려 혼란을 불러 일으켰다.
마침내 역사학자 코노버 헌트 등은 기부금 380만달러와 융자를 합쳐 `6층박물관을 세웠고 이 박물관은 케네디의 삶과 죽음, 그가 살았던 시대를 증언하는 자료들을 수집, 전시하고 있다.
현 6층박물관 관장 제프 웨스트는 “1963년에 댈러스에 살았던 사람들 중에는 아직도 이 곳을 차마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건 너무도 고통스럽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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