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문제 “한국민들 흥분할 필요 없다”[제440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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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극우단체의 독도 상륙 시도로 다시 쟁점화되고 있는 독도 영유권 문제를 다시 짚어본다(본 기사는 본보 제440호에 실렸던 기사임)

“독도는 누가 뭐래도 우리땅”
日 영유권 주장 “또 망언”

‘독도’ 영유권 문제가 또 다시 한일 간에 쟁점으로 부각되며 한일 양국 국민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독도’ 문제는 과거에서부터 수 차례 일본 정상등이 ‘자기네 땅’이라며 속된 말로 ‘망언(妄言)’을 일삼게 되자, 한국에서는 과거 80년대에 개그맨 출신 ‘정광태’ 씨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긴다’며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노래를 자작곡으로 만들어 국민적 ‘유행가’로 퍼뜨리는 등 화제를 받은 바 있다.

하지만 문제의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는 본국에서 ‘금지곡’이 되는 등 오히려 ‘정광태’ 씨의 ‘일본 입국비자’가 거부되는 등 ‘미스터리’와도 같은 사회문제로 부각되기도 했다. 이후 그 명확한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채 세간에서 잊혀져 갔고, 90년 대 이후에도 ‘독도문제’는 ‘때가 되면 등장하고 사라져버리는’ 일종의 정치적 ‘쇼’와도 같은 부속품으로 전락해버렸다.


사실 ‘독도’ 문제는 지난 1952년 1월 28일 일본이 울릉도(鬱陵島)의 부속 도서인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섬으로써 50여년 넘게 한 ·일 양국 간에 벌어지고 있는 영유권 문제라 할 수 있다. 이후 숱한 논란이 양국 간에 오고 가면서 잊을 만 하면 등장하는 양국 국민들 논쟁거리의 ‘단골메뉴’가 되어 버렸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한국 정부’의 대응책이라 할 수 있다.

일본 측의 도발적인 자세에 철저하리만큼 ‘무대응’으로 맞서는 정부 측의 태도에는 국민들이 이해할(?) 수 없는 역사 속 진실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는 간단히 설명하자면 단지 ‘논쟁’일 뿐 ‘국제적 분쟁’으로 승화시킬 경우 ‘오히려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데에 기인하고 있는 것이다. 알다시피 ‘국제적 분쟁’으로 점화시키려는 일본 정부의 지속적인 노력 및 대응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가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발언한 것과 관련, 한일 양국간의 네티즌들 사이에 치열한 ‘공방전’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작금의 현상은 과거 여느 때보다 뜨거운 것이 사실이다. 자칫 ‘한국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라는 설명과 명분만으로는 이 같은 ‘독도 열풍’을 잠재우기에는 국민들의 궁금증과 분노의 열기를 잠재우기에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이는 역사 속에서 한일 양국간 ‘독도 문제’에 있어 명확한 기준을 세워두지 않았고, ‘3김’ 중 한 사람인 김종필 씨와 관련 ‘논란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쉬쉬(?)’ 입을 다물어 온 것이 아니냐라는 의혹 또한 제기되고 있다. 이에 본보는 ‘독도문제’에 대해 세간에 떠돌고 있는 각종 의혹들과 ‘독도문제’를 놓고 벌이는 양국 학자들의 견해를 소개하므로써 ‘독자’들의 올바른 판단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

박상균<취재부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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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의 각종 명칭과 유래

지난 1945년 한국의 광복과 함께 독도는 한국 영토로 귀속되었고, 아울러 한국 정부는 지난 1952년 1월 18일에 ‘인접해양 주권에 대한 대통령 선언’에서 독도를 포함한 한국 영토의 한계를 명백히 포고하였다.

또한 지난 1954년 8월에는 독도에 등대를 세우게 하는 등 세계 각국에 독도를 알리는 한편, 독도 주변 영해 내의 수자원을 확보하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반면 이와 같은 한국 정부의 조치에 대하여 일본 정부는 지난 1952년 1월 28일 즉각적으로 한국에 항의하며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옴으로서 ‘독도’가 양국 간의 정치적 문제로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고서(古書)에서 나타나듯 여러 가지 역사적인 정황들은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임을 명백히 입증하고 있다. 독도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성종실록(成宗實錄)>, <숙종실록(肅宗實錄)> 등의 각종 문헌들에 의하면 과거 조선 전기부터 우산도(于山島) 또는 삼봉도(三峯島)로 명명되며, 울릉도와 함께 강원도 울진현(蔚珍縣)에 소속되어 있었다는 기록들이 기술되어 있다.

특히 <정조실록(正祖實錄)>에 의하면 지난 17세기에 한 ·일 간에 울릉도 영유권문제가 야기되었을 때에는 안용복(安龍福) 일행의 외교활동으로 1696년 일본으로 하여금 울릉도와 함께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인정하게 했던 성과 또한 기록되어 있다. 이후 독도 주변에 가제(강치)가 서식하는 데서 착안되어 1794년 경부터는 가지도(可支島)라 불리다가, 1881년경부터 독도로 호칭되어 오늘에 이른 것으로 알려져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독도’라는 명칭은 1906년 울릉군 군수 심흥택(沈興澤)이 그 보고서 중에 기록함으로써 최초로 문헌에 등장하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메이지(明治) 초기 즉 19세기 후반부터 일부 어민들이 울릉도와 독도 근해로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종래 그들이 다케시마 (竹島)라 부르던 울릉도를 마쓰시마 [松島]로 개칭했고, 마쓰시마 (松島)라 부르던 독도를 다케시마 (竹島)로 바뀌어 부르게 했다는 것이 학자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한편 독도(獨島)가 유럽 등 세계인들에게 알려진 것은 지난 1849년 프랑스 포경선(捕鯨船) 리앙쿠르 호(Liancourt 號)에 의하여 발견되어 이 섬을 리앙쿠르 암초(Liancourt Rocks)라고 부른 것이 그 시초라 하겠다. 지난 1855년에는 영국 군함 호네스트 호(Hornest 號)에 의하여 측량되어 영국의 해도(海圖)에 호네스트 암초로 기재되기도 하였다.

‘독도 영유권’ 분쟁 및 논쟁이 일기까지…

지난 1881년 조선은 종래의 울릉도 공도정책(空島政策)을 지양하고 개척령(開拓令)을 발포하는 등 강원 ·경상 ·전라 ·충청 도민들을 울릉도에 이주시켜 본격적인 재개발 정책을 실시하였으며, 이에 따라 인근 도서인 독도 또한 울릉도 어민들의 하계 어업기지로 활용되게 되었다. 하지만 일본은 지난 1904년 8월 한 ·일 협약이 체결되는 등 이른바 ‘한반도’ 보호정치가 가능해지자, 지난 1905년 2월 시마네현[島根縣] 고시(告示) 40호를 발하는 동시에 독도를 그들의 영토로 편입하기에 이른다.

이후 1910년 일제에 의한 한국의 국권강점이 이뤄지자 세계 지도상에는 ‘독도’라는 명칭이 사라지게 되고, 일본명 다케시마(Takeshima) 즉 죽도(竹島) 혹은 프랑스 명 리앙쿠르 암초, 영국명 호네스트 암초(Hornest Rocks) 등으로 기재되었던 것이다.

이후 2차 세계대전 종결 후 포츠담 선언 등에 입각한 연합군의 지령(指令)에는 이 같은 ‘독도’를 일본의 속도(屬島)로 인정하고 있지 않는 등 수많은 고찰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한국전 당시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을 근거로 일본 정부 및 일부 학자들이 그 영유권을 포기하지 않은 채 말 그대로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문제의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이란

지난 51년 9월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은 전후 전승연합국의 영토처리에 관한 법적 문서로서 ‘독도 영유권’ 문제와 관련한 가장 최근의 자료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바로 ‘독도 영유권’과 관련, 문제가 되는 것은 지난 1946년 연합국 최고사령부 훈령(SCAPIN 제 677호)에서 ‘일본의 한국 영토 포기지역’으로 명시되어 있던 ‘독도’가 이 조약에서는 감쪽같이 사라진 데에서 비롯되고 있다. 이 같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문서에 ‘독도’가 [일본의 포기지역]으로 명시되지 않음에 따라 일본 정부 및 일본 학자들이 주장하는 ‘독도는 일본 땅이다’라는 주장이 가능케 되는 빌미가 되었던 것이다. 물론 한국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 같은 ‘누락’이 철저히 일본 측의 로비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는 주장이 단연 우세하다.

아무튼 이 같은 ‘샌프란 시스코 평화조약’ 문서에 대해 한국 정부는 한국 연안의 모든 섬들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었기 때문에 빠진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즉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은 SCAPIN 677호의 내용을 바탕으로 새로이 추인한 것인데, 독도를 일본령으로 다시 귀속한다는 적극적인 언급이 없는 이상, 결국 한국령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일본 측은 SCAPIN 677호는 영토결정에 대한 연합국 측의 최종결정이 아니었고,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발효와 동시에 무효화된 것이라고 주장하며,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서 독도가 [일본의 포기지역]으로 명시되지 않고 누락된 것은 ‘독도가 일본 영토로 잔류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 것이다.

‘독도 영유권 문제’는 한일 간의
영원한 ‘논쟁’으로 남을 것인가

한양대학교 신용하 교수는 자신이 발표한 ‘독도 영유권과 독도문제 처리’라는 논문의 맺음말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인된 1951년 9월 8일 연합국의 대 일본 강화조약은 독도가 한국영토에 속한다는 초안을 채택하지 못하고, 독도 명칭을 조약문의 한국ㆍ일본의 모든 조항에서 삭제함으로서 이 문제의 결정을 회피하였다.

그 결과 연합군이 5년 전 1946년 1월 29일 SCAPIN 제 677호에 의해 내린 결정이 여전히 유효하게 되고, 1948년 8월 15일 수립되어 그 해 12월 12일 국제연합으로부터 독립국가로 공인된 대한민국이 독도를 국제법적으로도 한국영토로 공인 받아 통치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연합국의 대 일본 강화조약의 준비로 직전인 1950년에 연합국들 사이에 합의된 ‘연합국의 구 일본영토에 관한 합의서’가 독도를 한국영토로 다시 합의 결정했기 때문에, 그 1년 후의 샌프란시스코 조약문에서 독도가 누락되어 있어도 이 합의서가 독도의 귀속을 설명해주는 것이다.

한국은 역사적으로도 독도를 영유해 오고 있을 뿐 아니라 국제법상 합법적으로 독도를 영유하고 있으므로(이미 연합국에 의해 판결을 받은 것이므로) 일본이 국제 사법재판소의 판결을 요청해 와도 절대로 응할 필요가 없다.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상으로나 명명백백하게 대한민국의 배타적 영토이다. 대한민국의 배타적 독도 영유권은 그 어느 나라가 어떠한 주장을 해와도 협상대상이 될 수 없는 불가양의 배타적 주권의 일부인 것이다.]

이 같은 신 교수의 주장에서 보여지듯 지난 90년대 후반 한, 중, 일 3국이 경제수역을 선포한 후로는 ‘독도’를 둘러싼 영유권 분쟁이나 경계 확정 분쟁 등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지만 한국의 유수한 역사, 외교 학자들은 ‘가능한 피하는 방향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라는 조언을 하고 있다.

즉 경제수역이 중복된다고 해서 반드시 경계를 확정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 설명이다. 학자들은 이 같은 근거로 지난 94년 발효된 유엔 해양법 협약 121조 3항이 ‘사람이 살 수 없거나 자체의 경제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바위섬은 경제 수역을 가질 수 없다’고 규정하였듯이 독도를 경제수역 문제와 분리하는 방법을 취해야 하며, 일본 측의 고도의 ‘전략’에 말려들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일본 측의 고도의 전략이란, 이렇듯 때만 되면 ‘독도 문제’를 거론하며 시비를 가릴 것을 유발함으로서 “한국민의 감정을 자극시켜 ‘국제문제’로 비화시키게 되면 ‘국제분쟁 위원회’에 회부되어 조정이 가능하다”라는 기본적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다.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망언으로 촉발된 ‘사이버 전쟁’ 위기

지금 한일 네티즌 들 사이에는 ‘사이버 전쟁’이 한바탕 일고 있다. 즉 감정을 앞세운 ‘한판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반면 한국정부는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독도는 일본 땅’ 발언에 대해 무대응 전략으로 나서며, 더 이상 독도 문제를 국제 이슈화하기 위한 ‘일본의 계략’에 넘어가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자칫 한국 정부까지 추가대응에 나설 경우 한-일 양국간에 감정싸움으로 비화될 우려도 있을 뿐더러 ‘국제분쟁’으로까지 이어질 경우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정부는 “역사 속에 입증되고 있는 본국의 영토에 대해 억지 주장을 펴는 일본 측의 주장에 일일이 대응할 경우 말려들 우려가 있다”며 불필요한 대응을 자제하고 있는 상태다.

한국 정부측은 “일본 측이 1차적으로 독도를 ‘국제문제화’시켜 양국간 협의 또는 협상대상으로 만들려는 것이 궁극적인 일본의 속셈”이라며 “이 과정에서 일본은 한국민의 감정을 자극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라며, 최근에 불고 있는 ‘독도문제’와 관련, 시민단체 및 네티즌들의 자제를 호소하고 있는 형편이다.

즉 한국민들이 감정을 앞세워 불필요하게 ‘독도문제’를 확대해석하기보다는 실용적이고 냉정한 자세로 문제를 풀어 가는 것이 가장 현명할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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