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 발발 1주년 … 세계 정보기관 <영국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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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초강국 미국과 함께 이라크전을 주도 했으며 미국 다음으로 가장 세계에서 테러의 위험을 많이 받는 나라, 한때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세계를 경영했던 영국이 냉전이후 달라진 위상과 급박하게 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도 내노라 하는 세계의 어느 정보기관 못지않은 정보력을 유지하고 있다.

축구와 해리포터의 나라로 더 알려지기 시작한 영국의 변화에 과연 세계 최고(古)의 정보기관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 지 알아보도록 한다.

강신호<취재부 기자> [email protected]

92년 전통 세계 最古… 역할 분담 통해 국가안보 천명역할

제임스 본드 007 코드 넘버 산실
세계를 무대를 하기에는 역부족

맹전이후 M15 공식 홈페이지 운영하며 공개적 활동

▲ 007 시리즈 ‘Die another day’의 포스터.

여러분은 영화 007 을 잘 알 것이다.

한때 북한군을 묘사한 장면이 나와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바로 코드넘버 007의 영국 첩보원 제임스 본드가 소속된 기관이 바로 흔히 MI6으로 알려진 비밀정보국(Secret Intelli-gence Service)이다. 영국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국내 방첩은 이른바 MI5로 더 알려진 보안국(Security Service)이 맡고 있으며, 해외정보활동은 비밀정보국(SIS)이 담당하는 식으로 분리되어 있다. MI5와 MI6의 기원은 19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영제국 국방위원회(Committee on Imperial Defence)의 건의에 따라 비밀첩보부(Secret Service Bureau)가 설립되었다. 창설 당시 버논 켈(Vernon Kell) 대령과 맨스필드 커밍(Mansfield Cumming) 대령이 각각 육군과와 해군과의 지휘를 맡았다. 이후 조직 개편에 따라 편제가 국내과와 국외과로 변경되면서 켈 대령은 국내과, 커밍 대령은 국외과를 담당한다.

1916년 국내과와 국외과는 군사정보국의 일부로 편입되면서 각각 MI5와 MI6라는 명칭을 부여 받았다. Military Intelligence의 약어인 MI가 붙은 것은 이 기관들이 설립 초창기에는 군 조직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당시 활동한 군 내부의 조직으로는 MI8(암호해독), MI11(심리전공작) 등이 있었지만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다.

전쟁이 끝난 후 1921년 국외과는 외무성 관할로 옮겼고 이때 비밀정보국(SIS)으로 개편된다. 한편 MI5는 1931년 아일랜드 테러분자와 무정부주의자들을 제외하고 영국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 모든 사안들을 담당하면서 현재의 정식 명칭인 보안국(SS)으로 거듭난다.

소련 간첩망에 침투당해 망신살 경험

보안국(MI5)은 영국정부의 기관임에도 최근까지 법적 지위가 부여되지 않은 것은 물론, 존재 자체가 인정되지 않았다. MI5는 법령에 의해 창설되지 않았으며 관습법에 의해 인정되지도 않았다.

MI5의 존재는 1989년에 이르러서야 보안국법(Security Service Act)이 제정되면서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 이 법에서는 MI5의 역할을 “첩보공작 활동, 테러, 사보타주의 위협, 외국 첩보요원의 활동에 따른 위협, 정치·산업·폭력적 수단을 동원하여 의회민주주의를 전복 또는 훼손하려는 행동에 따른 위협 등에서 국가안보를 보호”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MI5는 원래 영국에서 활동하는 외국 첩보기관에 대한 방첩이 주임무였으며 초기에는 특히 독일 스파이의 침투를 추적·색출하는 역할에 초점을 두었다. 그 결과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이전 영국 내에서 암약한 12명의 독일 첩자를 체포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하였다.

1차 대전 이후 한동안은 주로 볼셰비즘으로 무장한 공산주의자에 의한 사회전복 기도의 추적과 색출 및 검거에 역점을 두다가, 1930년대 말에 이르러 다시 독일의 첩보공작 가능성에 눈을 돌리게 된다. MI5는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에도 혁혁한 성과를 올린다. MI5는 전쟁중 16명의 독일인과 2명의 스페인인을 간첩으로 체포했으며 그 외에도 많은 수의 독일 첩자들을 전향시켜 독일에 대한 기만전술로 역이용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다시 소련 첩자의 색출이 주임무가 되어 상당수의 스파이들을 검거하기도 했으나, 후일 알려진 바와 같이 MI5는 MI6와 함께 이른바 케임브리지 링(Cambridge Ring)이라는 소련 고정 간첩망에 의해 철저히 침투·유린당하기도 했다.

케임브리지 링은 30년대 케임브리지 대학 재학 당시 공산주의 사상에 경도된 일단의 학생들이 소련에 의해 첩자로 충원되어 MI5와 MI6의 고위직에 이를 때까지 지속적으로 소련을 위해 첩보활동을 전개한 간첩망으로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킴 필비다. 필비는 검거 직전 베이루트에서 소련으로 피신해 88년 죽을 때까지 소련에서 살았다.

소련은 필비의 공로를 인정해 생전에 최대한의 예우를 해주었으며, 죽은 후에는 KGB의 영웅을 주제로 한 우표 시리즈에 필비를 넣기도 했다. 어쨌든 이로 인해 MI5는 냉전 시기 대소 첩보전에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며 신뢰도를 떨어뜨렸을 뿐 아니라 영국 정보기관과 많은 정보를 공유한 미국 정보기관과의 협조체제에도 손상을 입었다.

이처럼 MI5는 과거에는 주로 적성국가들의 간첩침투에 대한 방첩활동에 역량을 집중해 왔지만 최근 들어서는 테러리즘, 마약, 불법이민, 조직범죄 등 과거 경찰이 담당한 영역까지도 활동의 범위를 넓혔다. 아울러 MI5는 북아일랜드 문제와 관련한 활동에 상당한 자원을 투여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 외에도 웨일스나 스코틀랜드의 극단적 민족주의자들에 대한 정보활동도 수행한다고 한다.

이처럼 MI5의 활동영역이 넓어지면서 MI5와 경찰간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예컨대 원래 북아일랜드 문제를 담당해 온 스코틀랜드 야드(Scotland Yard)의 수사관들은 MI5가 무능력하고 서투르다고 비난하곤 한다.

1993년 MI5가 발간한 소책자 ‘보안국’(The Security Service)에 의하면 MI5의 기능은 크게 △테러 방지 △방첩 △국가전복기도 방지 △방호 보안(protective security) △보안 정보활동의 다섯 가지다. 이런 기능 속에는 대(對) 정보활동과 방첩공작 수행, 민감한 첩보에 접근할 수 있는 모든 직원의 보안심사 감독, 파괴 활동 가능성이 있는 분자들의 국내 활동과 조직들에 대한 감시가 포함된다.

보안국은 대 태업활동과 외교적 임무를 수행하는 인원들을 포함하여 외국의 거류민과 방문객의 감시와 통제에 대한 책임도 맡고 있다.

MI5는 공개적 활동, MI6는 아직 베일 속에 감춰져

▲ 007 역할을 하는 제임스 본드의 모델은 해외첩보 기관 역할을 하는 M16이다.

MI5는 1850명의 풀타임 요원을 고용하고 있으며, 총 여섯 개의 처(處)로 편성되어 있다. A처(정보자원 및 운용), B처(참모실, 행정 및 재정), 그리고 S처(지원근무, 등록, 컴퓨터 센터 및 훈련실)가 행정 및 평가를 담당하는 부서들이다. MI5의 기본 임무를 수행하는 부서는 C처(방호 보안), F처(국내 전복), K처(방첩)이며, 이 처들은 다시 과(課)로 세분된다. 1997~98년 예산편성에 따르면 MI5 가용자원의 편성비율은 △북아일랜드 관련 테러활동 업무(25%) △국제 테러활동(15.5%) △방첩 업무(12%) △방호 보안(7.5%) △중대범죄(2.5%) △무기 확산(2%) 등이다.

냉전이 끝나자 MI5도 과거의 비밀성을 탈피하기 시작해 1991년에는 최초의 여성 국장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스텔라 리밍턴 여사(Dame Stella Rimmington)의 임명을 언론에 보도하기도 했다. 두 아이의 어머니기도 한 리밍턴 여사는 냉전의 그림자에서 MI5를 이끌어 내어 처음으로 활동을 양성화하기 시작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리밍턴 국장의 뒤를 이어 1996년 부임한 스티븐 랜더(Stephen Lander) 국장은 1975년부터 MI5에 근무한 케임브리지 박사(사학 전공) 출신으로 북아일랜드 문제에 특히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MI5가 공식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국장의 신원과 사진까지 언론에 보도할 정도로 냉전 이후 공개적 활동을 전개한 반면, 첩보원 007 시리즈의 소재가 된 MI6는 아직 베일에 싸인 기관이다. 1994년 제정된 정보국법(Intelligence Services Act)에 의하면 MI6의 역할은 “영국의 국토 바깥에 있는 인물들의 행동과 의도에 대한 정보를 수집·제공하며, 국방 및 외교정책과 관련된 국가 안보이익 증진, 영국의 경제적 이익 추구, 범죄 방지 및 탐지와 관련된 기타 업무를 수행”하는 데 있다고 한다.

이 법안의 제정으로 의회 내 MI6의 지출·행정·정책을 감독하는 정보보안위원회(Intelligence and Security Committee)를 설치했다.

영국 거주한 외국인 주포섭 대상

MI6는 2차 대전의 발발과 함께 제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하여 특히 암호해독에서 큰 성공을 거두어 영국뿐 아니라 다른 연합국들에게도 독일과 이탈리아의 군사력 및 이들의 의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도 했다. MI6는 2차 대전이 끝나기 전인 1944년 여름에 대(對) 소련 부서를 신설하면서 본격적으로 냉전시대 첩보전의 막을 연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대로 MI6는 소련 첩자인 킴 필비 등이 이미 침투하여 MI6의 많은 활동들이 사전에 소련에 노출되어 실패로 돌아가기도 했다.

냉전이 종식되고 공산권의 몰락으로 적성국가가 사라짐으로써 MI6의 활동은 크게 위축되었다. 과거 소련의 위협에 초점을 맞춘 기능은 대폭 감축되어 구소련 지역에 대한 공작활동은 약 3분의 2가 줄어들었다. 그러나 러시아 정보 당국이 런던에서의 정보활동을 활성화한 것으로 알려진 96년에는 MI6 활동이 다시 되살아나는 기미를 보이면서 그해 5월 영국과 러시아가 각각 4명씩의 외교관을 추방 및 맞추방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MI6의 업무 영역에 변화가 일어났음은 또 다른 사건에서도 알 수 있다. 냉전 이후 MI6는 유령회사를 설립하여 프랑스의 브레스트 해군기지에서 일하는 기술자에게서 잠수함 추적 기술을 빼내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이제 MI6는 ‘제트기류’(Jet Stream)라는 공작명하에 서유럽 내 친선우호국을 대상으로도 공작활동을 수행하였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직원들에게 ‘회사’(The Company)로 통하듯 MI6도 내부에서는 ‘상사’(The Firm)로 통한다. 이 ‘상사’의 본부는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레고랜드’(Legoland)라고 알려진 런던의 복스홀 크로스(Vauxhall Cross) 85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은 약 2300여 명(1994년 3월 현재)으로 추산되나 인원과 예산이 과거에 비하면 감소 추세에 있다. 99년 로빈 쿡 외무장관은 원래 중동 전문가인 데이비드 스페딩(David Spedding)의 후임으로 리처드 디어러브(Richard B. Dearlove)를 책임자로 임명했다. 94~99년에 국장으로 일한 데이비드경은 지난 6월 폐암으로 사망했다.

MI6는 초대 국장인 맨스필드 커밍의 성(姓)에서 머리글자를 따 ‘C’라고 부르는 국장이 지휘하고 있다. MI6는 조직의 우두머리인 국장 아래 일상적 활동을 감독하는 본부장을 두었으며, 본부장 밑에는 네 개의 처와 해외작전을 감독하는 통제단이 있다. 4개 처는 인사·행정처, 특수지원처, 방첩·보안처, 그리고 정보수집 소요의 결정과 정보보고서 작성의 책임을 맡은 소요 및 생산처로 나뉘었다.

MI6의 해외공작은 7명의 통제관의 감독하에 있다. 통제관은 영국에 거주하다 귀국하는 외국인 중 본국 귀환시 영국을 위한 공작원으로 활동할 수 있는 인물을 식별하여 포섭하는 책임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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