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범 칼럼 : 대통령 정신 못차려 나라장래 곤경 암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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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범 전 국회의원의 한국으로부터의 3번째 통신.

(편집자 주)
이신범 전 의원은 8월 20일 국정원 명예훼손 혐의 기소사건 재판에 출석하러 17일 로스앤젤레스를 떠나 귀국했다. 이 칼럼은 그가 재판 후에 서울에서 보내온 3번째 통신이다.

경제 뒷걸음… 물가 실업률 고공행진… 가족해체 급증

국민 고통지수 아시아 최고… 불황터널 “끝이없다”

외신들 “이상주의 대통령이 한국을 부채국가로 전락” 평가
“정치권이 경제 좌지 우지… 軍 정권시대로 회귀”투자경고

절망적 경기 침체… 무모한 포퓰리스트로 경제파탄
물가 상승률 3.6% 증가… 30개 OECD 국가중 5위

경제가 어려워 이러다가 심상치 않은 사태라도 일어나지 않겠느냐는 말이 많이 들린다. 선진국이 되려면 지도자를 잘 만나야 하는데 도약을 하지 못하고 빈국이 되고만 나라들처럼 잘못 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도 널리 퍼지고 있다.

이상주의인가 무모함인가

지미 카터는 “나는 워싱턴 정가 출신이 아니다”는 구호로 기성정치에 식상한 1970년대 후반의 미국인들을 움직였다. 베트남전쟁과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기성정치인에 대한 혐오감이 깊어진 상황에서 도덕과 인권의 깃발은 참신해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국제정치의 현실과 도덕 인권외교라는 이상주의는 잘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마침내 이란인질 구출작전의 실패로 그는 곤경에 처하고 재선에 실패했다.

최근 뉴스위크 9월 6일자가 노무현 대통령의 이상주의가 한국을 부채국가로 만들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수도 이전 계획 같은 과도한 재정지출을 요하는 대형 사업들을 잇달아 추진, 한국이 부채(負債)국가가 될 위험이 있다고 하면서 이 잡지는 한국은 정치권이 경제를 통제하는 과거 전통으로 회귀했다고 평가했다. 재정경제부의 한 관리가 “기술관료들은 명목상일 뿐이다. 결정은 위에서 내려진다”고 한 말을 인용하며 노 대통령은 군 출신 대통령들이 경제를 지휘하던 시절의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고 기업인이나 기술관료들은 발언할 여지가 거의 없다고 하고 있다.

성장과정에서 빈부의 격차가 심해져 기성사회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 이를 권력장악에 이용하는 포퓰리즘 정치선동가들이 나타나고 선진국으로 가는 과정에서 시장경제 체제가 손상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노동조합이 정치세력화하고 대우가 좋은 대기업의 노조가 극단적인 투쟁방법을 택하는 것은 과도기의 진통으로 겪는 것이라고 치더라도 국내외의 투자자들은 정부가 기업을 할 수 있도록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걱정하고 의욕을 잃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여기에 야당이 제 구실을 못하고 권력으로부터 독립해야 할 시민단체까지 권력과 막후거래를 한다는 오해를 살만큼 2003년에만도 411억 원의 정부지원금을 받으면서 기회주의적인 행태에 빠지면 견제가 없는 권력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가진 자들의 투자는 위축되고 그 고통은 서민의 몫이 되고 만다.
가족 해체까지 급증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가난 때문에 가족 해체가 급격하게 늘고 있다는 정부의 자료는 서민의 고통이 실제로 얼마나 심각한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실업과 소득감소, 카드빚 등으로 정상적인 경제생활이 어려워지면서 폭력과 이혼, 가출로 가정은 해체되고 자신은 노숙자로 전락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는데 서민은 물론 중산층, 심지어 의사 변호사 같은 고소득 전문직으로까지 이런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니 놀랍다.

이것은 여당과의 당정협의에 “경기 침체로 가족 해체와 위기가정이 급증하고 있다”고 우려하는 조사자료로 국무조정실이 제시한 것이다. 생계곤란자가 늘면서 이혼은 3년 새 40% 늘었고, 보호시설에 들어오는 아동도 크게 늘고 요금을 못 물어 전기 수도 가스가 끊긴 가구도 9만 가구가 넘는다. 개인 파산은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사실상 경제적 사망 선고를 받은 사람이 이렇게 는 것이다. 가족 해체와 중산층 붕괴의 사례를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에서 이 자료는 새삼스런 것은 아니다. 소비가 줄고 파출부 자리가 없어 술 파는 보도방에 나가는 주부, 무료 급식소의 길어진 줄, 부모가 자녀와 동반 자살한 이야기처럼 비참한 사례들이 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만도 그 동안 드문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절망적인 상태의 서민들을 구제해 줄 길이 보이지 않는다. 뾰족한 수가 안 보이고 지금 같이 계속하여 소비가 위축되고 중소기업이 쓰러지면 사태는 더욱 심각해 질 수 있다는 것이 더욱 문제인 것이다.

고통지수 아시아 최고

8월 26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 “통계로 본 세계 속의 한국”은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을 합한 “고통지수”(Economic Misery Index)가 올해 아시아에서 가장 높을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로 7월 기준 한국경제의 “고통지수”는 7.9%를 기록해 16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자료는 경제가 뒷걸음치고 물가와 실업률, 고통은 높아진 것을 수치로 확인하고 있다.

물가상승률은 2002년 기준 2.7%에서 지난해에는 3.6%로 증가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국가 중 5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2002년 11위 보다 무려 6계단이나 올라간 것이라고 했다. 경제성장률도 낮아져 한국은 지난 2002년에는 7.0%였으나 지난해에는 3.1%로 떨어졌다.
살기가 어려우니 노후를 걱정할 여유가 있을 리 없다. 9월 5일에 공개된 국민연금관리공단 자료에 따르면 6월말 현재 지역가입자 988만5천여 명중 절반 가까운 480만3천여 명(48.6%)이 실직이나 부도 등으로 소득이 없어 연금 납부를 잠정적으로 제외해 주는 납부예외자다. 이 가운데 최근의 경기침체에 따른 실직과 휴직으로 인한 예외 사유가 368만8천100여명으로 전체 납부예외자의 76.8%나 됐고, 부도 등으로 인한 사업중단 사례가 41만7천900여명(8.7%)으로 조사되어 전체 납부예외자 가운에 실직, 휴직, 사업중단에 기인한 대상자가 무려 85%나 됐다. 이어 주소 불명(8.4%), 기초생활 곤란(3%), 재학(2.4%), 3개월 이상 입원(0.4%), 수감(0.4%) 등의 순이었다.

이처럼 많은 납부예외자는 그렇지 않아도 논란이 많이 일고 있는 국민연금을 있으나마나 하게 만드는 사각지대를 폭넓게 형성하여 고령화사회를 대비해야 할 사회안전망에도 허점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대통령 정신차려야

노 정권과 열린우리당은 이런 현상을 보며 심각한 민생파탄의 실정을 알고 있을까? 얼마 전까지 세금을 깎자는 야당제안에 반대하다가 우왕좌왕한다는 비판도 무릅쓰고 갑자기 찬성으로 돌아서 경제대책이라고 발표한 것을 보면 급한 사정을 조금은 알기 시작한 모양이다. 그러나 과연 제대로 해결책을 찾은 것일까?

신용불량자 신세를 면하고 정상적인 개인과 가정 생활이 가능하도록 하는 해결책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길뿐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기업인들의 투자의욕을 잃게 한 책임을 통감하기는커녕 정부정책의 어디가 반기업적이냐고 도리어 반문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3년 한국의 무역의존도는 61.6%로 OECD국가 중 8번째로 높다. OECD국가 중 무역의존도가 가장 낮은 나라는 18.5%인 미국과 20.0%인 일본이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나라에서는 무역에 탈이 나면 바로 일자리와 경제가 어려워진다. 한국이 미국 일본과 같을 수 없는 처지는 여기에 있음을 집권자는 직시하고 세계시장에서 팔릴 상품을 끊임없이 연구 개발하도록 북돋아야 한다. 세계는 더구나 상호의존성이 강화되고 있다. 그런데 상호의존성을 종속관계로 규정하고 국제관계에 이념을 끌어들여 동맹관계를 경시하면 국민의 삶이 고단해질 수 있다. 대통령은 이런 현실의 엄정함을 모르는지 개혁과 자주를 들먹이며 5년 후면 미국과 대등해진다는 뚱딴지 같은 말을 꺼냈다.

이제라도 대통령이 경제 살리기에 앞장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상주의자이기는커녕 나라를 빚더미에 올려놓고 경제를 망쳐 주저 앉힌 무모한 포퓰리스트로 기록될 것이다.

소득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 계수는 DJ정권하에서 계속 악화되었고 역설적으로 노정권의 탄생에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박탈감을 자극해 소환투표에 이긴 베네주엘라의 챠베스 처럼 서민의 생활고가 정권 유지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챠베스는 마침 석유값 폭등으로 뿌릴 돈이라도 생겼지만 자원도 없는 한국의 앞길에는 악재들만 쌓여 있지 않은가? 민심이 얼마나 험한지 늦기 전에 대통령부터 정신차려야 할 때다. (2004.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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