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재판 양양민학살 장인은 「빨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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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의 과거사”
노무현 대통령 장인 「권오석」

피해 유족들 학살행위 “다큐로 제작”추진

노무현 대통령의 장인 권오석씨(비전향수로 옥사)가 좌익행동 대원 시절 주민을 탄압했다는 사실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한다는 사실에 유형무형의 압력이 가세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권씨에 의해 학살당한 양민들의 유가족 대표인 변재환(卞在奐,57 권씨에 의해 학살된 故 변백섭씨의 남동생 변만섭씨의 3남)씨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려 하자 형사들이 찾아 오는 등 이상한 압력이 몰려들고 있다는 것이다. 권오석씨는 바로 노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씨의 친아버지가 된다. 권오석씨는 6.25 당시 창원지역 공산당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양민들을 학살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중 권씨는 체포되어 감옥에서 71년 병사했다. 그때 노 대통령 부인 권양숙씨의 나이는 24세였다. ‘독립신문’ 기사를 중심으로 역어본다.

<편집자주>

6·25당시 창원지역 공산당 위원장 활동
학살당한 양민 후손 의해 만행사실 알려져

「비 전향 장기수… 71년 병사」
은폐된 학살현장 다큐로 제작
형사들 찾아와 유형무형 압력

권양숙 여사 가족들 사실 인정하고
사과하면 용서하고 화해할 수 있다
피해유족들


최근 ‘독립신문’(대표 신혜식)에서 권오석 씨의 좌익행적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걸쳐 수많은 찬반의견이 개진되는 등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이 신문에 직접 전화를 건 시민들은 “꼭 필요한 일이다”, “어떠한 압력이 있어도 다큐제작을 완성해주기 바란다”고 격려하며 적은 금액이나마 후원하겠다는 뜻을 밝히는 의견부터 “왜 긁어 부스럼을 만드나”,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항의까지 다양한 견해를 개진했다.

자신을 ‘그냥 평범한 소시민’이라고 밝힌 한 시민은 “친일은 덮어두고 친북행위만 밝히자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과거사에 대해 진실을 규명하자는 것”이라며 “하루가 멀다하고, 경제마저 내팽겨친 채 ‘과거청산’을 주장하는 대통령과 여당이기 때문에 좌익활동과 관련된 과거사 규명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독립신문 애독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시민은 “대통령 장인의 행적이 속속 밝혀지고 있지만 어떤 언론사도 앞장서서 이 문제를 파헤치려 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며 “독립신문만이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반드시 제작해야 한다”고 격려했다.
그러나 또 다른 한 시민은 “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열어가야지 대통령 장인의 과거사를 밝혀 무엇하겠나”라고 반문하며 “정치적으로 악용하지 않는지 두고 볼 것”이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독립신문을 비롯해 네이버, 야후 등 포털사이트 게시판까지도 다큐제작과 관련한 입장표명과 의견개진 등 다양한 목소리들이 게재되고 있어 국민적 관심이 높음을 반증하고 있다.

다큐제작과 관련해 신혜식 ‘독립신문’ 대표는 “많은 시민들이 격려전화와 소액후원으로 힘을 실어주고 있다”면서 “일부 시민들은 정치적 의도를 걱정하는 경우도 있는데, 우리의 제작의도는 진실규명에 있다. 그 어떤 정치적 악용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신 대표는 “진실을 규명하는 데에는 지위고하가 있을 수 없고, 대통령도 예외일 수 없다”며 “어떠한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겠다”는 뜻을 거듭 피력했다.

한편 노 대통령 장인 권오석씨에 의해 학살당한 유가족 대표인 변재환씨는 지난달 30일 ‘독립신문’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과거사 진상규명을 추진하는 주체가 노 대통령인데, 본인과 관련된 과거사에 대해서는 왜곡, 날조하는 것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문제제기를 시작했다”고 다큐제작의 취지를 밝히며 “권씨의 아들, 딸, 주변인물, 그리고 사위인 노 대통령이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면 그냥 끝날 수 있는 일인데, 대통령이 나서서 사실을 왜곡하는 발언을 하는 것은 유족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일”이라고 분개했다.

또 변재환씨는 최근 권씨 만행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로 했다는 기사가 나간 뒤 일부 피해 유족들에게 형사들이 찾아왔다고 주장해 충격을 주고 있다. 변씨는 최근 반핵반김 국민협의회가 주최한 ‘노정권의 경제파탄-애국탄압 규탄대회’에서 즉흥적으로 마이크를 잡고 “내가 다른 유족들과 달리 앞에서 연설도 하고 글도 쓰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여서 그런지 나는 건드리지 못하고, 얼마 전 불쌍한 우리 다른 유족들에게 형사 2명이 찾아왔다”면서 “그 형사들은 양심에 가책을 느꼈는지 아무소리 못하고 단지 ‘유족을 만나게 해 달라. 자신들이 왔다갔다는 얘기만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며 “이게 협박이 아니고 뭔가? 차라리 협박을 하려면 나한테 하라”고 비난했다.

변씨는 또 “노무현 장인과 관련된 얘기를 딱 3주전에 이 자리에서 했고, 그 얘기가 인터넷에 돌고 돌아도 이 정권은 아무소리 없었는데, 다큐제작 이야기가 나오니 저쪽(정권)이 똥줄이 타기 시작했나보다”고 조소했다. 이와 함께 변씨는 다큐제작 계획을 집회 참가자들에게 소개하며 “현재 노무현 장인 권오석씨에게 인민재판을 받은 두 분과 미망인 한 분이 살아계시고, 직계 후손들도 이에 대한 증언을 할 준비가 돼 있다”며 “당시 권씨의 부인, 바로 권양숙씨의 모친도 현재 살아계신다.

그 사람은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따라다니며 모든 것을 두 눈으로 지켜본 사람이다. 그 생생한 기억을 갖고 있는 증인도 우리 유가족과 ‘독립신문’ 카메라 앞에 나와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와 관련해 신혜식 독립신문 대표는 “마산시청에서도 전화가 와 ‘언제 내려오냐’고 묻는 등 이 다큐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 같다”며 “하지만 일반 국민들이 아닌 공권력의 관심은 필요없다”고 일축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장인 권오석씨에 의해 학살된 유가족 대표를 맡고 있는 변재환씨는 그동안 수차례 ‘독립신문’과의 논의 끝에 이달말부터 함께 다큐를 제작하기로 했다. 변 대표는 23일 ‘독립신문’ 사무실을 방문해 위와 같이 말하며, 관련 다큐멘터리 제작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변 대표는 대화 도중 ‘빨리’라는 말을 수차례 강조하며 진실규명을 소망했다.

‘독립신문’은 역사적 진실을 밝혀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이달 말경부터 당시 사건의 유가족과 학살현장 주민들의 생생한 증언을 토대로 권오석 씨의 행적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로 했으며, 관련내용을 CD나 테이프로 제작. 판매한 수익금은 학살현장에 추모비를 건립하는데 사용할 계획이다. 이 다큐에는 변 대표의 아버지 변만섭 씨와 당시 권오석 씨에게 직접 재판을 받은 2명, 학살당한 피해자의 딸과 마을주민 등 10여명이 출연, 직접 목격한 당시 상황과 이로 인해 어렵게 살아온 과정들이 생생하게 조명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변재환 씨는 “권양숙 여사 가족들이 관련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한다면 서로 용서하고 화해할 수 있다. 연좌제도 폐지됐고 학살자의 사위나 딸이 무슨 죄가 있냐”며 “그런데 사건을 날조, 부정하고 거짓말로 일관하기 때문에 문제”라고 분개했다. 그는 “옛날에는 (권오석 씨 묘)성묘도 유가족들이 무서워 밤에 몰래 와서 했다”고 말하고 “그런데 노 대통령이 후보시절에 기자들 잔뜩 데리고 와서 ‘장인도 역사와 시대의 피해자’라고 말하니 유가족들이 얼마나 분통했겠나. 만일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유가족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면 아마 맞아죽었을 거다”며 울분을 삭이지 못했다.

신혜식 ‘독립신문’ 대표는 “진상규명 다큐를 제작해놓지 않은 상태에서 직접적인 피해자나 현장을 목격한 분들이 모두 돌아가시면 이 사건이 조작시비에 휘말릴 수 있어 다큐를 만들기로 했다”고 취지를 설명하며 “현재진행형인 좌익 역사를 영상으로 남기고 국민들에게 실상을 알리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신 대표는 “다큐제작에는 많은 인력과 자금이 필요하다”며 “제작을 위해 카메라 등 장비지원과 자료수집, 영상편집 등을 맡아줄 자원봉사자의 도움이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변재환 대표가 말하는 권오석씨의 학살행적

북한 인민군이 창원군 진전면을 점령한 것이 1950년 음력 6월 18일이다. 큰아버지인 변백섭씨의 기일이 음력 7월 19일이다. 북한이 (당시)창원군 진전면을 점령한지 10일만에 큰아버지가 체포됐고 그로부터 20일만에 처형당했다. 후퇴하면서 당황해서 처형한 것이 아니라 완전 자기 세상을 만든 후에 무기도, 힘도 아무것도 없는 무고한 사람들을 처형한 것이다. 노 대통령 장인 권오석씨는 6.25전의 창원군 당부위원장이었다. 창원군에 있는 여러 면 중 인민군에 점령당한 면은 진전면밖에 없었는데, 진전면에서 권씨가 당시 최고 직책에 있었다.

미군수복 후 공산당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사람들은 모두 도망을 갔다. 동굴에서 저항하다 죽은 사람도 있다. 그런데 권오석씨는 장님이라 도망가는 것도 매우 불편했다. 그래서 처가(권양숙 여사의 외갓집)에 숨어있었다.

권오석씨는 후천적인 장님이라 누가 데리고 다니지 않으면 아무데도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노 대통령의)장모가, 인민재판을 하거나 학살하는 현장에 권오석씨와 함께 갔고 당시 4살이던 권양숙 여사도 자주 데리고 갔다는 말을 수차례 들었다. 장모가 지금도 살아있으니 얼마든지 사실확인이 가능하다. 이념적으로 생각은 못한다해도 죽인 것에 대해서는 장모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당시 재판을 직접 받았던 사람들에 따르면, 장님이었던 권오석씨는 손을 만져봐서 깨끗한지 험한지에 따라 학살 여부를 판단했다. 심지어 어떤 책을 왜 읽었는지 물어봤다는 구체적인 증언도 있다.

권오석씨는 체포된 후 무기징역형을 받았지만 56년 양안실명 및 폐결핵으로 형집행정지로 풀려났으며 61년 3월 재수감 될 때까지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며 노 대통령의 처남과 처제를 낳았다. 이를 두고 “죄가 적어 풀려났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재수감 시켰다” 등의 변명들이 나오고 있지만 다 말도 안되는 소리다. 권오석씨는 재수감 된 후 전향을 거부하며 옥살이를 하다 71년 폐결핵으로 옥사했다. 권양숙 여사가 당시 만24세였는데, 아버지가 왜 옥살이를 했는지에 대해 모른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역사적 증언을 할 분들의 연세가 많고, 건강이 안 좋으신 분도 있고, 특히 말씀을 잘 못하시는 분도 계신데, 돌아가시기 전에 증언을 남기는 것이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분들 중에는 직접 노무현 대통령 장인인 권오석씨로부터 재판을 받은 사람도 있다. 바로 학살현장인 부락의 치안대 인민군이 점령했을 때 치안대에서 토착 공산주의자들이 모여서 회의하고 재판하고 처단하고 한 곳에서 직접 재판 받고 강제노무한 사람이 생존해 있고 학살당한 분의 미망인도 생존해 있는 분이 있고… 그런 분들은 (나이가 많아서)빨리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생생한 증언을 들을 수 없다. 그분들이 안 계시면 간접적으로 들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빨리 해야한다.”

(독립신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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