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상 처음 연방건물에 명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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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가 우체국 「도산 우체국」으로 … 미 역사 개척 일익 담당, 「공로 인정」

이천용 커미셔너·최영석씨 등 주축으로 성사

왓슨 하원의원
‘주도적 역할’

4월 20일 통과… 18일 현판식

우체국 건물에
도산선생 봉정

샌디에고 거주
「황희철」 화백

미국 연방건물에 최초의 한인의 이름이 새겨진다. 일생을 조국의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민족지도자 도산 안창호의 이름이 ‘코리아타운’ 6가 우체국에 18일 ‘도산 안창호 우체국’ (Dosan An Chang Ho Post Office)’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미 역사상 한인의 이름이 연방건물에 명명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도산 안창호 우체국’은 미연방정부가 미주한인 이민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미국 역사 개척에 일익을 담당한 도산을 미국사회에서 인정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도산은 미국생활 중에서 청소년 수양단체인 ‘흥사단’을 설립했는데 기본사상인 ‘무실역행’은 한인들 뿐만 아니라 세계인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훌륭한 사상이다.

‘도산 우체국’이 탄생하는 데는 연방의회의 다이앤 왓슨 하원의원이 주도적 역할을 했다. 왓슨 의원은 의회에 법안을 제출했으며, 의회는 지난 4월20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어 부시 대통령은 이 법안에 서명했다. 18일 현판식에서 ‘도산안창호 우체국’의 이름이 건물 외벽에 새로 붙여지고 입구에는 도산의 초상화가 걸렸다.

이번 기념식은 ‘한국의 날’ 축제기간중에 열려 한층 뜻을 새롭게 했다. 또한 이번 행사는 지난번 LA 다운타운 프리웨이에 ‘도산 안창호 메모리얼 인터체인지’와 2001년 리버사이드시에 ‘도산 안창호 동상’ 건립에 이은 경사이다. 한편 이 같은 경사에 일부 한인단체들이 생색을 내 구설수 대상에 올랐다.

제임스 최<취재부 기자> [email protected]


‘도산 안창호 우체국’ 현판식을 위해 애쓴 인사들 중에는 LA시 한인 최초의 커미셔너인 이천용 씨와 커뮤니티 활동가인 최영석 씨 등이 있다.
특히 이천용 커미셔너는 평소 교분을 맺어 온 다이앤 왓슨 의원에게 ‘도산 안창호 우체국’이 탄생되도록 제반 과정을 주선했다. 미의회와 정부쪽을 이천용 씨가 담당했다면 한국과 미국 커뮤니티 쪽은 최영석 씨가 담당했다. 최 씨는 이번 행사를 통해 미 주류사회에 도산 안창호의 업적을 소개하기 위해 USC 도서관, LA 타임스 그리고 도산 유가족들로부터 자료를 수집했다.

이들은 도산 영문자료집 300여부를 만들어 주류사회 언론기관들과 중요 기관 단체들에게 배포했다.

이 씨와 최 씨는 현판식 행사를 투명성 있게 하기 위해 스폰서들에게 행사 부문을 나눠담당하도록 했다. 그들이 직접 전체 행사기금을 거두든가 성금을 받는 대신 후원자들이나 단체들이 행사 부문을 맡아서 처리하도록 했다. 행사를 두고 왕왕 벌어지는 부정을 없애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분야별로 여러 단체들에게 후원사항을 부담시켰다. 예를 들면 리버사이드 도산 기념사업회(회장 홍명기)는 기념품 ‘머그’를 준비하도록 했고, 흥사단(미주위원장 백영중, LA지부장 송재승)에게는 우체국에 봉정할 도산 초상화 액자를 준비하도록 했다.

도산 초상화는 과거 클린턴 대통령 초상화를 그려 화제를 모은 샌디에고 거주 황희철 화백이 그렸다.

이번 기념식을 앞두고 흥사단측과 리버사이드 기념사업회 측은 서로 자신들이 행사 주도권을 잡으려는 바람에 빈축을 사기도 했다. 이들 단체는 모두 도산을 위한 단체인데도 서로 화합을 하지 못하고 행사 프로그램 진행을 두고도 상대방 보다 우위를 차지하는데 더 신경을 썼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 단체들은 행사에 적극 후원해야 하는 단체임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을 의식해 미온적인 자세로 나와 행사준비 관계자들의 속을 썩혔다고 한다.

한편 이번 우체국 건물에 봉정된 황희철 화백의 도산 초상화는 애초 국민회관 기념관에 전시키로 계획됐었으나 흥사단측이 이번 행사에 사용키 위해 바꾸어 버렸다는 설이 나돌고 있다. 원래 우체국 명칭 후보로 도산 안창호와 올림픽 영웅 새미 리 박사, 2차대전의 영웅 김영옥 대령 등 3인이 후보로 올랐으나 생존자는 연방우체국 건물에 명명할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도산으로 확정된 것이다.

도산은 누구인가

독립운동가로서 호는 도산(島山)이다. 평안남도 강서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흥국이다. 가난한 농부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9세부터 서당에 다니기 시작했으며, 12세 때 아버지를 여읜 후로는 할아버지 밑에서 성장했다. 조국의 앞날을 염려하던 중 청일전쟁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보고 깨달은 바 있어 1895년 상경, 언더우드가 세운 구세학당에 들어가 그리스도 교도가 되었다.

1897년 독립협회에 가입하고 평양에 지부를 설치하기 위한 만민공동회를 쾌재정에서 개최하여 약관의 몸으로 많은 청중에게 감동을 안겨준 연설을 하였다. 훗날 종교가이며 교육자로서 민족의 지도자가 된 이승훈은 이 연설에 감명을 받고 독립운동의 의지를 굳혔다고 술회할 정도였다. 그는 앞으로 큰 일을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학문을 더욱 받아들일 필요가 있음을 절감하고 1902년 부인 이혜련 여사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는 1903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동포들의 권익보호와 생활향상을 위해 친목회를 만들었으며 이어 공립협회도 구성하고 《공립신보》도 발간하였다. (이 신문은 나중에 ‘신한민보’로 이름을 변경했다.) 도산은 을사조약(1905)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1906년 귀국, 항일비밀결사 신민회를 조직, 《대한매일신보》를 기관지로 하여 활동을 시작하였다.

한편 평양에 대성학교를 설립하고 청년학우회를 조직하여 민족의 지도자 양성에 힘쓰는 등 다방면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10년에는 신민회 간부들과 함께 개성헌병대에서 3개월간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는데 이는 1909년에 있었던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사건에 관련되었다는 혐의 때문이었다.

그 후 시베리아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 1912년 그 곳에서 대한인 국민회 중앙총회를 조직하여 초대 총회장에 취임하고, 기관지 《신한민보》를 창간하였다. ‘105인사건’으로 신민회·청년학우회가 해체되자 1913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흥사단을 조직하였다. 3·1운동 이후에는 미국에서 중국 상하이로 가서 임시정부 조직에 참가하여 내무총장·국무총리대리·노동총장 등을 역임하며 《독립신문》을 창간하였다. 그는 다시 1924년 미국으로 건너가 흥사단 조직을 강화하는데 힘썼다. 그는 대한인 국민회로부터 2만 5,000달러를 지원 받아 프랑스 조계에 임시정부 청사를 마련하고 각 지역 독립 운동가들을 소집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다.

독립운동 방략을 작성하는 한편, 대외선전 및 문화사업에도 착수하여 영자신문인 〈차이나 프레스〉에 한국의 진상을 연재하고, 임시정부 사료편찬회를 조직했으며 〈우리소식〉을 활판 인쇄로 발간하도록 했다. 11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뒤 안창호의 준비론, 이승만의 외교독립론, 이동휘의 무장독립론으로 나뉘어 있던 임시정부는 결국 이동휘가 1921년 1월 노령으로 떠나버림으로써 분열되었다. 한편 그는 1922년 1월과 1923년 10월 2번에 걸쳐 상하이와 베이징에서 이광수를 만나 국내에서의 흥사단운동 전개에 관한 방략을 협의했다.

이에 따라 이광수는 수양동맹회를 조직했으며 평양에도 동우구락부를 설립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뒤에 이 두 단체가 합하여 수양동우회가 되었다. 수양동우회가 1927년 1월경 언론·집회의 자유, 치안유지법 등 악법의 개폐를 중심으로 한 합법적 정치투쟁을 주장하는 방향전환론과 수양단체로의 존속론으로 내부의견이 갈렸을 때 안창호는 상하이에서 수양동우회 회원인 주요한과 조병옥을 만나 수양단체로 존속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1926년 다시 상하이로 가서 흩어진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을 위해 진력하였으며 독립운동기지를 마련하기 위하여 이상촌 건설에 뜻을 두고 이를 추진하였으나 일제가 중국침략을 본격화하면서 실패하고, 1932년 윤봉길의 훙커우 공원 폭탄사건으로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2년 6개월을 복역한 뒤 가출옥하여 휴양 중 동우회사건으로 재투옥되고, 1938년 3월 10일 병으로 보석 중 서울대 병원(당시 경성 제국대 병원)에서 사망하였다. 그의 묘소는 처음 망우리 공동묘지에 묻혔다가 나중 서울 강남구에 건립된 도산공원에 안치됐다. 1962년 대한민국 정부는 도산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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