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범 칼럼 – 美와 「정보공조」 이상기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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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범 전 국회의원의 한국으로부터의 5번째 통신.

본보 특약 :살인가스 원료 대북수출 적발 사건… 국민불안 가중

서툰 외교로 미국과 균열 심각해져 중요정보 인지못해 사태심각

수출한 수천톤 살인 독가스 최종목적지는 북한
韓 정부 가능성 알고도 묵인 「미필적고의」 비난

독선과 오만, 노정권에 대한 美 반감 매우 강해져
독재수법 방송장악 노려 SBS 사업 재허가 보류도


정부는 왜 있는가? 질문의 답은 간단하다.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설치되어 있는 기관이다. 따라서 정부가 도리어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고 안전을 지킬 능력과 자질이 부족하고 정당하게 만든 재산을 빼앗으려 한다면 국민은 그런 정부를 바꿀 권리 즉 저항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요즈음 노무현 정권에 대한 국민감정이 매우 거칠다는 분석이다. 여론조사에 나타난 수치만이 아니라 도처에서 정권에 대한 반감이 강해지고 있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정권은 걸핏하면 언론을 나무라지만 한편의 소극 같은 북한 양강도 대폭발설 소동, 핵 관련 실험의 국제문제화, 태국을 통한 사린가스 원료 북한밀수출 시도 적발에다가 시장경제원리에 어긋나는 정책추진에 이르기까지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일이 연이어 벌어지니 자업자득이지 누구를 탓하겠는가?

북과 동업정권은 아니기를

독가스 화학무기 사린가스의 원료인 시안화나트륨을 한국의 ㄷ화학이 태국의 P회사에 수출하고 이것이 북한으로 수출되려는 것을 태국이 적발했는데 정보는 한국 쪽이 아니라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이 제공한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의 정보기관이 아니었다면 북한은 한국국민을 다 죽이고도 남을 한국산 독가스 원료를 간접적으로 입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9월 13일에 써서 전회에 실린 필자의 칼럼에서 언급한 태국을 통한 이 같은 살인가스 원료의 대북 송출 기도를 한국의 언론들은 18일자 조간에서야 비로소 기사화했다. 당초 8월 27일 일본의 산케이 신문이 보도하고 9월 7일 한국의 일부 언론이 정부당국자의 부분적인 확인내용을 싣고 나서도 한국의 언론과 야당은 한동안 침묵했던 것이다.
커다란 의문은 미국의 정보기관이 알게 된 지난 4-5월의 엄청난 일을 한국 정부와 정보기관이 몰랐다는 변명을 믿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더욱이 추가자료에 의하면 수천 톤이 주변국가로 수출되었는데 정부는 종착지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사린 가스는 살인가스이다. 한국 기업이 생산한 살인가스 원료의 최종 행선지가 북한인 수출 사실을 몰랐다면 1997년 발효된 화학무기금지협약을 비준한 나라의 정부로서 무책임하고 무능하고 정부의 자격조차 없음을 자인하는 것이다. 가능성을 알고도 모른 체 묵인한 미필적 고의라도 있었다면 살인정권이란 비난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일부의 믿기지 않는 괴담처럼 누군가 기업에 일단 제3국으로 보내도록 작용했을 가능성이 털끝만큼이라도 있다면 북과의 동업정권이란 비난까지도 받아 쌀 것이다. 그런데도 정보기관이 오열(五列)의 개입가능성을 조사했다는 확인은 없으니 제대로 조사할 기관이나 있는지 모르겠다는 걱정도 무리는 아니다.

겉과 속다르게 멀어지는 한미관계

이런 가운데 한국안보의 축인 한미관계가 흔들리고 있는 징후가 속속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에 군대를 보내 모든 미국인들의 존경을 받아 마땅한 동맹국들”을 열거하면서 한국을 뺀 것은 “실수”였을까?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실수였다는 해명을 한국 정부 당국자들은 믿고 싶겠지만 그것은 설득력이 없는 해명이다. 뉴욕 공화당 전당대회의 연설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중요한 연설은 준비 없이 즉흥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연설원고를 만들어 여러 사람이 검토하고 프롬터에 넣어 읽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고에 있었는데 대통령의 실제연설에서 실수로 동맹국의 이름을 뺐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원고 작성 때부터 한국은 없었다는 것이 정답이다. 수백 명을 보낸 나라도 열거하면서 미국과 영국 다음인 3,600명을 이라크에 보낸 한국을 뺀 것은 어떤 경고를 담은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작년에 미국의 유력지 월스트리트저널의 인터넷 독자마당에 실린 한국관련 글의 다수가 한국을 배은망덕한 나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란 일이 있다. 한국에 참전했던 미국인들과 가족들이 그런 글을 올리고 있었다. 그들은 낯선 한국의 전장에서 미군 수만 명이 죽고 다친 것을 기억하면서, 보상과 사과 후에도 계속되는 한국인들의 촛불시위와 미군에 대한 일부의 난폭한 행동, 미국 때리기(America bashing)에 편승해 인기를 얻으려는 정치실세들의 행태에 대한 분노를 글 속에 담고, 일부는 한국인과 한국계 전체에 대한 혐오를 거침없이 토로하고 있었다.

겉보기와 속내가 다르다는 설명을 할 때 일본말인 다테마에(建前)와 혼네(本音)를 영어단어처럼 섞어 쓰는 외교관들을 적지 아니 만난다. 외교적 언사로 포장된 다테마에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속내인 혼네는 다른 경우가 국가간의 관계에서는 드물지 않다. 노 대통령이 친미적 발언을 해도 “그의 다테마에는 친미이나 혼네는 여전히 반미일 것”이라고 말하는 외국 기자나 외교관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겉으로는 한미간의 협력에 문제가 없다고 거듭 강조해도 속으로는 여전히 불신과 문제가 있다면 양국관계의 혼네는 뒤틀어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서투른 한국, 능란한 일본

한국과 일본을 비교해 보면 미국의 속내를 짐작할 수 있다. 이라크 파병을 하면서 한국은 반대여론을 구실로 시간을 끌었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았다. 자이툰 부대 수천 명은 얼마 전 조용히 쉬쉬하며 이라크로 떠나 한국에서는 파병을 했는지 안 했는지 헷갈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일본은 한국보다 훨씬 적은 수백 명을 보내면서도 전국에 중계하는 성대한 행사에 고위인사들이 참여해 환송했다.

한국정부는 파병을 하기 싫은데 미국의 요청으로 할 수 없이 보낸다는 기조였지만 일본정부는 중동지역을 안정시키는데 기여해야 할 국제적 의무가 있다고 당당하게 국민을 설득하고 나섰다. 한국은 파병을 하지 않을 수 없으면서도 실속을 못 차리고 일본은 소수를 보내면서도 미국을 업고 국제적 지위를 격상시키는 실리를 챙기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한국의 거리는 분명히 멀어지고 있다. 이라크 파병을 어물어물한 업보 때문만은 물론 아니다. 서울의 미국대사관을 지으라고 했던 자리에서 구한말 고종황제가 러시아공관으로 피신했던 길이 발견되었다고 아직도 건축을 시작도 하지 못하게 하면서 인근에 캐나다 대사관은 허가를 해주었다는 불만 때문만도 아니다.

국제관계의 현실을 모르는 자주라는 이름의 고립주의에 대한 냉소를, 겉으로, 양성적인 경고로 나타내기 시작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미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만큼 일본과 중국이 한국을 냉소할 것은 물으나마나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의 미군 병력을 11월 1일자로 40명만 남기고 철수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40명도 미2사단이 후방으로 이동하면 전원 철수한다고 한다. 미군은 한국의 일선, 유엔군사령부 관할구역도 떠나고 있다. 이렇게 주한미군을 줄이는 시점에 부시가 뉴욕 연설에서 한국을 뺀 뜻을 정권핵심들은 알고 있는 것일까?

독선의 지도력과 망신살

미국이 정보를 제공하지 않자 북한 양강도 폭발사고 설이 사실과 다른 것으로 판명되기까지 통일부와 한국 정부의 정보력에는 망신살이 뻗쳤다. 구름이 끼어 위성사진을 제대로 판독하지 못했다니 지금이 어디 제2차 세계대전 때처럼 육안으로 목표물을 식별하는 시대인가? 플루토늄 관련 실험도 한국은 별 것 아니라고 하는데 국제원자력기구는 심각하다고 하며 추가사찰단을 보냈다. 북한은 때를 맞추어 6자 회담 불참을 발표했다. 이러다가 남북한이 함께 유엔에 회부되지 않을지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국제정치현실의 냉엄함을 알지 못하면 그리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노 정권의 독선적 지도력은 국내 문제에서도 변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총리는 얼마 전에 대통령과 자신은 불량함과 타협한 일이 없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으면 그들도 “쿠데타 주역”인 김종필 총리와의 연합정권에서 장관을 지낸 처지라는 사실은 잊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의 허물은 덮고 남을 손가락질하는 것이 독선이다. 혁명가연하는 독선과 오만은 국정을 어렵게 만든다. 예컨대 여야가 논의하고 타협할 쟁점에 대통령이 선악의 이분법적 잣대로 앞서 결론을 내버리면 국회는 거수기로 전락한다.
안기부, 보안사가 인권을 침해하여 국정원, 기무사로 이름을 바꾸었듯 국가보안법이 과거에 남용되었으니 국회가 법 이름을 바꿀 수도 있고 내용을 손질할 수도 있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90년대 여야합의로 국가보안법을 고친 후에 가장 나쁘게 악용한 사례는 DJ정권시절의 이른바 총풍사건이었다. 그런데 그 정권의 요인이었던 대통령과 총리는 그 점은 전혀 반성하지 않고 있다.

언론을 장악하려는 시도도 문제다. 시장을 통제하여 주요언론사의 시장점유율을 60%로 제한하겠다는 사회주의적 발상으로 논란이 인데 이어 방송위원회가 9월 14일 국내 방송사상 처음으로 공중파 방송사업 재허가 심사에서 SBS의 추천을 보류하고 재심 결정을 했다. 방송의 공적 책임·공공성·공익성 실현 부분에 문제가 있다고 했는데 실은 SBS가 정권의 기분을 나쁘게 한 최근의 몇 가지 보도가 원인으로 최악의 경우 2차 의견청취를 거쳐 허가 취소 결정이 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자기들과 다르다고 권력으로 민영방송을 길들이고 빼앗으려 한다면 군사독재의 폭압 독선과 다를 것이 없다. 노 정권은 국민의 저항이 두렵지도 않은가?

(2004.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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