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핏하면 김정일 타령… 이젠 장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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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범 칼럼리스트 한국으로 부터의 통신 <본보특약>
지금 한국에선 이런일이…

11월 부산 APEC 회의 김정일 참석 거론
장관이 정상회담 운운에 청와대 진화작업

美·日 핵포기 압박 강도 높일듯
북 인권 북제회의 미국서 논의중
심각한 경제난 다급한 북한
대책위해 6자회담 응할 듯

군 상층부 이전투구… 국정원에 추잡한 권력 남용에 국민 불안 가중
산적한 민생문제 제쳐두고 대선전략 인기몰이 전력 정상회담 타령만

▲ 기자회견중인 정동영 통일부 장관.

남북정상회담을 통일부 장관이 거론하자 청와대가 재빨리 부인하고 나섰다. 정상회담 병이라고나 불러야 할까? 여권에서 여러 차례 회담을 추진하자는 주장이 나왔지만 연초에 대통령이 그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부인하였는데도 계속해서 연기를 피우는 이유를 짐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는 11월 부산에서 열리는 APEC(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 회의 때의 정상회담 가능성을 외교부 장관도 나서 거듭 부인했는데 이번에는 5월에 러시아를 방문할 때 가능성이 있지 않느냐는 추측이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러나 성사되기 어려운 일을 불쑥불쑥 거론하여 깜짝 쇼로 헛된 기대를 부풀리려는 것은 고위공직자로서 삼가야 할 일이다.

정상회담 병이 도졌나

다자 외교 무대에 한번도 나타난 적이 없는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부산이나 모스크바에 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게다가 통일부 장관의 희망처럼”11월 APEC 정상회담 이전에 6자회담이 좋은 성과를 축적해서 북핵 문제의 실질적 진전이 이뤄진다면”이라는 전제도 전망이 불투명하다.

오히려 벼랑 끝 전술로 이득을 최대화하려는 북한 때문에 정세가 악화될 가능성이 더 크다. 일부 언론은 정부는 또 김 위원장을 국제무대로 끌어내기 위해 동원 가능한 대북 카드를 모두 쓰겠다는 방침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는데 한국이 쓸 수 있는 카드란 과연 있는가 되물을 일이다.

이런 가운데 국내외 학자들이 북한의 계속되는 핵무기 추구와 6자회담의 실패는 동아시아의 안정을 계속해서 해칠 만큼 위협적이 될 것이며 이로 말미암아 미국과 중국의 이해관계는 정면으로 충돌할 수 있다는 지적과 아울러 시간이 지나도 상황이 진척되지 않는다면 미국은 북핵 문제를 유엔에 위임하고 제재수위를 높인 뒤 군사적 수단을 이용할 수도 있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미국은 리비아 식 해법을 고수하고 북한 인권에 대한 지속적 관심을 가지고 압박을 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북한인권 국제회의 준비 중

▲ 지난 12월 1일 국가인권위원회 주최로 개최된 ‘북한인권 국제심포지엄’.

이 같은 전망은 상당히 구체적인 움직임으로 뒷받침되고 있다. 필자가 파악한 바로는 미 의회가 북한 인권에 관한 국제회의 비용으로 작년에 200만 달러의 예산을 책정해 이를 인권단체인 프리덤 하우스 (Freedom House)에 배정한 이래 최근에는 이 단체를 중심으로 올해 안에 서울에서 회의를 개최하고 대대적인 행사를 열려고 기획에 들어갔다.

중동을 의회 민주주의화하는 근본적 변화를 통해 안정을 확보하겠다는 미국의 구상은 이라크 총선을 성공적으로 치르면서 가시화되고 있다. 이란의 핵 시설을 이스라엘이 폭격할 것이라는 보도는 작년 여름부터 거듭되면서 이제는 미 국무부 차관의 입에까지 올랐다.

시간은 북한 편이 아니라는 경고는 더욱 자주 거듭되고 있다. 북한이 핵물질을 리비아에 준 증거가 나왔다는 보도까지 나오면서 북한은 절박한 선택의 기로에 다가서고 있다.

핵 포기냐 멸망이냐의 엄중한 시련과 고통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판국에 남북정상회담 타령을 한들 북한이 반응을 할 수 있겠는가?

韓·美 이간책에 말릴 위험

북한은 심각한 경제난으로 외화벌이가 다급한 사정이다. 그래서 2000년6월의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한국이 북에 준 것으로 드러난 것만도 5억 달러였다.

이번에도 그보다 더 많은 외화를 주면 혹시 모를 일이다. 남북회담을 중단할 때마다 한국은 북한이 원하는 식량과 물자를 늘려주곤 했으니 더 많이 기대할 것이란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할 기업도 없고 경제형편도 옛 같지가 않다. 더욱이 북한은 미국과 직접 교섭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따라서 벼랑 끝에 몰려 한미동맹을 이간시키는 유일한 방법이 정상회담이라고 판단되지 않는 한 무엇 하러 남한의 정상을 만날 것인가?

6자회담에 북한이 나오게 하기 위해 미국과 일본이 막바지 노력을 하고 있는 마당에 여당 정치인들이 기회만 있으면 정상회담을 거론하는 것은 시기적으로도 맞지 않는 것이다.

더욱이 일본은 3월1일부터 북한 선박의 입항을 사실상 어렵게 하는 경제제재를 시행하기로 했다. 이러한 때에는 정치인들이 말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 벌써부터 차기 대통령 선거 유세를 하듯이 가볍게 말하고 다닐 때가 아니다. 사태가 심상치 않은데 한 목소리(one voice)를 내야 할 때 딴소리를 하는 것은 동맹관계를 교란해 스스로의 발언권을 약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군 손보기 자해행위

주변정세가 심상치 않은데 군 상층부의 이전투구(泥田鬪狗) 같은 싸움은 점입가경 (漸入佳境)이다. 준장 진급 심사에 비리가 있다 없다 격돌하던 군 검찰과 육군이 법정에서 정면 충돌할 기세인 것이다.

군 검찰이 육군참모총장을 증인으로 신청하자 육군 변호인단은 국방장관을 증인으로 신청할 수 있다고 나섰다. 군의 기강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당초 익명의 괴 문서로 시작되었던 수사가 군을 손보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데다가 이런 자해(自害)행위까지 겹치고 있다. 뿔을 고치다가 소가 죽은들 어떠랴 식의 싸움은 선거사범 재판으로 여당이 조만간 과반수를 잃으리라는 예측과 겹치고 있다.

권력의 누수로 정권이 불안해지면서 군을 손보는 것 아니냐는 관측에 기름을 붓는 상황이다. 국군기무사령관의 조기 전역 신청도 때맞추어 일어난 일처럼 의혹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런 때에 국방부는 북한에 대한 주적(主敵) 개념 규정을 폐기하기로 했다. 국방백서에 북을 주적으로 표기하지 않고 ‘직접적이고 실체적인 군사위협’으로 명기한다는 것이다.

미국이 북을 ‘폭정의 전초기지’로 부르고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긴장이 격화될 가능성이 많은 상황에서 끝장을 보고 말자는 식의 싸움으로 군 내부를 콩가루 같이 만들면서 대북 유화(宥和)정책에 앞장서는 모습은 불신과 불안을 증폭시킬 뿐이다.

국정원의 해이

국제정세를 낙관한다는 것인지 과거사를 조사한다고 나선 국정원도 한가로워 보인다. 민간인 10명과 국정원 직원5명 등 15명으로 구성돼 있다는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위원회가 전체 90여 개 대상 사건들 중 인혁당·민청학련사건(1974년),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사건(1979년), KAL858기 폭파사건(1987년), 중부지역당사건(1992년) 등을 우선조사대상으로 선정하면서 이견도 있어 표결까지 했다고 한다.

사건 선정에 정치적 복선이 깔려있음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필자가 이미 지적했듯이 왜 야당을 잡으려고 김대중 정권의 국정원이 북한인 최인수를 납치해온 사건이나, 야당이 거듭해서 제기했던 사찰의혹 따위를 우선 조사대상에 넣지 않는 것인가?

국정원을 환골탈태하게 하려면 가까운 과거에 있었을 잘못부터 밝히고 해체의 결단도 불사할 수 있어야 할 것 아닌가? 필자가 국정원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고소해서 6년을 괴롭히다가 1월 26일에 공소기각 판결로 끝난 사건도 오늘의 국정원이 만성고질병인 권력남용 버릇을 버리지 못한 증거이다.

기소해서 괴롭히다가 공소사실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자 국정원 측은 고소를 취하하고 검사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지 재판장이 의견을 말하라고 하자 “공소를 기각해달라”고 하였다. 추잡한 정치보복이요 사법절차 남용이다.

국민불안 가중

이래저래 국민은 불안하다. 북한 핵 문제는 중대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데 정치인들은 대선 전략상의 인기를 노려 걸핏하면 남북정상회담 타령이다.

군 내부는 사생결단의 법정싸움에다 주적 개념도 폐기한다고 하고, 국정원은 앞으로 2년 동안 진상규명을 내걸고 제 입맛대로 과거를 들추며 국민의 시선을 흐트러뜨리는 일을 한판 벌일 기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구한말처럼 해일같이 밀려오는 격랑을 외면하고 무시하다가 대책 없이 나라를 어려움에 빠뜨렸던 일을 되풀이할 것 같은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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