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범 칼럼: 北 “벼량끝 전술”… 美 “멸망자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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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 보유선언은 협상에서 몸값을 올려보자는 북한의 책략이라는 해석이 여론의 대세로 형성되어가고 있다. 이 분석이 맞는다면 북한을 도와주면 핵무기를 포기할 것이란 말이다.

과연 북한은 그 정도 계산으로 마지막 남은 우방인 중국과 이른바 민족공조의 상대인 한국이 동양최대의 명절인 설을 즐기고 있는 기간을 골라 국제적인 파장을 예상하면서도 핵무기 보유를 선언했을까?

사태를 바로 보아야


약소국가가 핵무기를 만드는 모험을 하려면 멸망을 각오해야 한다. 강대국들이 놓아둘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정희의 죽음을 그의 핵 야망과 연결시킨 해석도 나오지 않았던가?

김정일의 생일을 맞아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한 군사강국의 자긍심”을 들고 나왔지만 그러므로 핵 보유 선언은 제 무덤을 파는 행위나 다름없는 위험한 벼랑 끝 전술이다. 상대를 위협하려다 자칫하면 자기가 벼랑에서 떨어진다는 말이다.

이런 위험을 알고 있을 북한 정권은 왜 폭탄선언을 했을까?
무엇보다도 6자 회담의 틀 안에서 미국과 협상을 계속해 보아야 얻을 것이 없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핵무기를 보유했다고 선언하고 또 실제로 보유하고 나서 협상을 하는 것이 이익을 최대로 얻는데 유리하고 또 협상이 실패하여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더라도 세습독재체제를 유지하고 안전을 보장하는데 유리하다고 판단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북한 외무성의 공식 발표를 짐짓 평가절하해 버린다거나 그래도 6자 회담에 나오라고 외치는 것은 외교적 수사로서는 의미가 있겠지만 사태의 본질을 비켜가는 것이다.

인내의 한계는 6개월(?)











▲타임지에 실린 북핵 관련기사


그런 까닭에 6자 회담 당사국의 고위 외교관의 말이라고 하며 로스앤젤레스 타임즈에 보도된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중국 및 다른 협상 참가국들에게 미국이 북한과 협상함에 있어 모든 외교적 수단을 다했다고 보이기 위해서라도 미국은 당분간 인내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아가서 북한에 대한 미국의 인내는 6개월쯤 계속될 수 있고 중국은 1년, 한국은 5년쯤 계속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이 6자 회담에서 실질적인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유엔에 회부하거나 해상봉쇄 같은 제재로 가기 전에 이웃 나라들에게 마지막 성의표시 기간을 두려 한다는 것을 암시한 말이다.

한국정부는 애써 북한의 발표는 “주장”일 뿐이지 실제 핵무기를 보유했는지는 의문이라고 축소해석에 나서고 있지만 미국의 시간표는 이와는 다른 판단에 근거를 두고 있다.

클린턴 행정부의 1994년 대북 교섭 대표였던 갈루치 대사가 오늘의 상황은 그 때보다 심각하다고 한 것이나 당시에 김일성의 진의를 알았더라면 제네바합의에 서명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 것에서도 미국의 입장을 살필 수 있다.
다시 기만 당하거나 시간을 낭비해 끌려 다니지 않겠다는 것이 분명한 것이다.

햇볕정책의 파산선고


북한의 핵무기 보유선언은 김대중 정권 이래의 햇볕정책에 대한 파산선고이다.
햇볕정책은 한국에 대한 북한의 의존성을 크게 하여 필요한 때에 지렛대로 활용함으로써 북한의 군사모험주의를 완화시키고 북한을 개혁 개방으로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전제 위에서 추진한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북한은 남한이 제공한 5억 달러가 넘는 현금과 금강산 관광 등을 통해서 준 외화로 핵무기를 만드는 자금을 조달한 셈이다.

그런데 노 정권은 지금에 와서도 대화와 압박을 병행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데에는 지나치게 조심스럽다. 그렇다면 집권세력이 주장해온 바, 북의 남한에 대한 의존성을 지금 활용하지 못한다면 그 동안의 햇볕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이제라도 노 정권은 북한의 본질을 잘못 짚은 햇볕의 실패를 인정하고 대북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과소평가하고 안이하게 대응한 결과는 이제 한국이 북한의 핵 볼모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대화노력도 계속해야 하겠지만 압박을 병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햇볕에 눈이 흐려져 북한과 미국이 싸우면 한국이 말려야 한다고 했던 대선 당시 후보로서의 발언이 얼마나 경솔한 것이었는지, 미국에 대해 얼굴 붉히더라도 할 말은 하겠다고 한 얼마 전 프랑스에서의 발언이 한치 앞을 내다 보지 못한 얼마나 근시안적 발언이었나를 되돌아보고 한미일 3국의 공조를 확고하게 해야 한다.

중국 눈치 보는 양비론


중국이 최근에 탈북자 인권에 대한 한국 야당의원들의 기자회견을 무산시킨 사태에 대한 한국 정부의 태도 또한 문제다. 체면 차리기 위한 형식적인 항의나 하고 제대로 사과를 받지 못했다.

보기에 측은할 정도인데 집권당은 양쪽 다 문제라는 양비론을 들고 나왔다. 낯뜨거운 신판 모화사상(慕華思想) 짝사랑을 연상케 한다. 미국에 대해서는 할말 안 할 말을 가리지 않으면서 중국에 대해서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꼴이 과거에 조공(朝貢) 바치던 시절을 생각나게 할 만큼 민망하다.

베이징 기자회견 방해사태에 대하여는 노 정권 자신의 책임도 적지 않다. 국회의원들이 외교문제에 관한 회견을 하면 견해가 정부와 다르더라도 공관의 시설을 이용하도록 배려했어야 한다.

그런데 사정을 알아보니 사전에 한국 공관 측에 회견 장소로 쓸 수 없느냐고 의논을 안 한 것도 아니라고 한다. 의원들은 총영사관에 들어가 한국 행을 기다리며 숙식을 하고 있는 탈북자들을 만나고 나오면서 자연스레 공관 내에서 기자회견을 하려고 출국하기에 앞서 사전에 베이징 한국 공관 측과 협의를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소재가 민감하다고 밖에서 하기를 희망해서 숙소로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중국의 무례는 말할 것도 없지만 이 같은 노 정권의 중국 눈치보기와 야당에 대한 편협한 태도도 큰 잘못인 것이다.

중국이나 쳐다보는 처량함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도록 중국의 역할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그러나 중국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중국은 북한 편이며 북한을 이용해 지역내의 발언권을 높이는 것이 중국의 제일의 목표라고 보아야 한다. 물론 북한이 핵무장을 하면 일본과 타이완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은 자명하다.

중국은 따라서 북한에게 그들 나름의 지역내의 균형 파괴에 대한 우려를 전달할 가능성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중국은 어떻든 북한의 편이라고 보아야 한다. 중국은 북한의 마지막 남은 맹방이지만 또한 북한은 거꾸로 보면 마지막 남은 중국의 사회주의 맹방인 것이다. 따라서 한국이 중국의 역할에 목을 매는 것은 잘못이다.

회색정권 되지 말아야

마침 일본의 산케이(産經) 신문은 북한 청진의 시장에 용천 역 사고 후에 여러 나라에서 제공한 식량과 약품이 판매되고 있는 사진과 기사를 게재했다.

일부에서는 북한이 원조한 국가가 물품을 보내면서 사용한 포대를 재활용한 것이라고 변명하고 있다고 하지만 뜯지도 않고 포대째 판매되는 현장을 찍은 비디오가 매우 선명한 데야 변명이 궁색하다.

게다가 용천에서 500 킬로미터나 떨어진 지역에 원조물자가 대량으로 빼돌려져 판매되고 있는 현장의 사진은 충격적이다. 개인적인 규모를 훨씬 넘는 정부조직 차원의 유용 현장이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또 약품이 대량으로 빼돌려져 팔리고 있는데 이것은 안전하냐는 물음에 외국에서 온 것이라 믿어도 된다는 음성의 녹음까지 공개되고 있다. 외부의 호의는 이렇게 왜곡되고 있다.

한국이 베푼 호의도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의문이다. 아니 한국의 호의는 이번에 북한에 의해 완전히 무시 당했다. 이런 때에 계속해서 어설픈 중재 역을 자임하다가는 미국에 왕따 당할 형편이다. 회색정권으로 궁지에 처하기 십상이다. 입장을 분명히 할 때이다. 최근의 일부 한국 언론의 논조 또한 볼만하다.

북한이 외무성 성명을 내자 “북한의 허 찌르기에 美 당혹”이란 기사도 나왔다. 당혹한 것은 햇볕에 도취한 한국정부 아니었을까? 미국이야 북한의 “자백”을 불감청 고소원(不敢請 固所願)으로 받았지만 표정관리를 하고 있는데 한국이 오히려 주제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아니었을까?

폭풍이 오고 있다

미국은 어느 정도 회담을 요구하며 기다리다가 문제를 유엔으로 가져가거나 응징의 수순으로 들어갈 것이다. 어떤 수순이든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하는데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면 폭풍과 같은 수준의 조치일 가능성이 크다.

우크라이나의 핵탄두 폐기에 대한 넌-루가(Nunn-Lugar) 방식의 보상이나 러시아에 대한 보상방식을 보면 북한이 설혹 한두 개의 핵폭탄을 가지고 있다 한들 북한이 기대하는 액수를 미국이 보상할 길은 없다. 당초부터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북한에 뇌물성 원조를 크게 할 수도 그렇게 할 여유가 있는 나라도 없다.
한반도에, 동북 아시아의 지각변동과 같은 변화를 가져올 폭풍이 이렇게 하여 다가오고 있다. 세계정세를 잘못 읽은 북한과 그 동안 한국의 회색적 태도가 상황을 악화시킨 면이 크다.

그러나 이렇게 하여 갑자기 통일이 닥쳐올 가능성도 잇기에 그나마 긍정적이기도 하다는 위안을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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