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회관 사료 미국에 되돌려줄 의향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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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회관 내부전경. 사진은 좌측부터 이만열, 김운하 씨.
ⓒ2005 Sundayjournalusa

국민회관의 사료불법반출 의혹사건에 대해 수 차례에 걸쳐 보도한 본보는 최근 중요한 사항을 포착했다. 국민회관 사료를 김운하 씨로부터 기증 받은 서울의 도산기념사업회(회장 서영훈)의 한 책임있는 관계자가 최근 “현재 진행 중인 국민회관 사료집 발간이 완료되면 자료들을 미국으로 돌려 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도산기념사업회측은 LA한인사회에서 큰 이슈가 되고 있는 국민회관 사료불법반출에 대해 관련이 없는 것 처럼 행동해 왔었다. 이같은 관계자의 발언은 그들이 책임의 일부를 시인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도산기념사업회는 최근 ‘미주지역 한국민족운동사 자료집’ 1차분 5권을 간행했다. 이 자료집은 국민회관 사료반출에 의혹을 받고 있는 김운하 씨가 기증한 자료들을 모아 간행한 것이다.

자료집 제1권 머리글에서 이만열 도산학회회장은 어떻게 이들 자료들을 기증받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이만열 회장은 도산기념사업회에서 국민회관복원준비위원장을 맡게되면서 평소 알고 지내왔던 김운하씨와 접촉해 어렵사리 사료들을 기증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민회관 자료 수집과정에 관련한 그의 설명에는 석연치 않은 부문이 많으며 바로 이 부문이 국민회관의 사료불법반출의 의혹이 되고 있는 것이다.

성 진<취재부 기자> [email protected]

















▲ 국민회관 사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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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열 회장은 김운하 씨로부터 어떻게 자료들을 수집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었다고 적었다. 김운하 씨는 이들 자료들이 독립운동을 했던 조부인 김형순(작고) 씨로부터 전수 받은 자료들과 흥사단이 소장한 자료들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자료집 서문에 이만열 회장이 적은 글을 소개한다.

<김원용 선생이 중심이 되어 ‘재미한인50년사’를 편찬할 때에 각 처에 산재한 자료를 수집했는데, 이 책을 편찬하기 위해 사용했던 건물이 김운하 선생의 조부이자 실업가로서 독립운동을 지원했던 김형순의 집이었고, 편찬이 끝나자 그 자료들이 김 선생의 조부 댁에 많이 남게 되었으며 그것을 전수받았다는 것이다. 김 선생이 기증한 자료에 공립협회 명부와 대한인국민회의 회의록 및 여러장부들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 선생은 또 이런 이야기도 자주 했다. 흥사단이 단소를 처분할 때 많은 자료들을 버렸는데, 그 때 그는 그 중 일부를 밴에 실어 주워왔다고도 했다.

(중략)

그가 전하는 ‘재미한인50년사’ 편찬 관련 이야기는, 그 편찬에 조력했던 분이 아직도 생존해 있기 때문에, 확인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김 선생이 신한민보를 간행할 때에 국민회관에 사무실을 두었다는 점이 그의 자료 수집과 어떤 관련이 있지 않겠느냐고 최근 몇몇 분이 문제를 제기한 바 있으나 이점에 대해서는 김 선생으로부터 어떠한 이야기도 들은 적이 없다>


이 글을 쓴 이만열 회장은 한국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역사학자이다. 또 미주지역 한인독립운동사 연구에도 일가견이 있는 학자이다. 그런 학자가 공립협회나 대한인국민회 관련의 자료들을 기증 받을 때 이들 많은 공식자료들을 김운하 씨의 조부인 김형순 씨 개인이 지니고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 아무런 의문을 품지 않았다는 점이 이상하다.

공립협회나 대한인국민회의 재정서류나 회의록 그리고 회원명부 등등의 중요한 공식서류들이 개인에게 전달됐다는 설명은 이치에 닿지 않는다. 설혹 공립협회를 창설한 도산일지라도 그 단체의 공식문건들을 개인이 지닐 수 없는 것이다.

앞뒤가 맡지 않은 설명

이들 자료들이 ‘재미한인50년사’ 편찬을 위해 일시적으로 편찬위원회에 보내 편찬위원들이 자료를 연구했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편찬이 끝나면 당연히 그 자료들은 국민회의 본부건물인 국민회관으로 보내져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자료들은 비록 국민회의 회장이나 임원이라 할지라도 개인이 소장할 수 없는 공식자료들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김운하 씨가 도산기념사업회에 기증한 자료들을 보면 우선 공립협회와 대한인국민회 관련 장정,명부,회의록,장부,공문,서한 등 일체 문건들이다.

거의 수 천쪽에 해당하는 양이고 책으로 펴낼 경우 모두 15권에 해당하는 방대한 양이다. 이렇게 대규모적인 공립협회와 국민회의 자료를 한 개인인 김형순 씨가 지니고 있었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자신의 집에서 ‘재미한인50년사’의 편찬작업이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편찬작업이 끝났는데도 그 자료들이 국민회관으로 보내지지 않았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만약 그랬다면 그 행위는 불법소유인 것이다.

‘재미한인50년사’를 편찬한 김원용 씨는 ‘50년사’에서 김형순 씨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김형순은 1903년 하와이에 왔다가 1909년에 귀국해 1913년에 유학목적으로 다시 와 독립운동 후원에 노력했다. 1920년에 농사에 뜻을 두고 중가주에서 30년동안 노력의 결과로 ‘김형제상회’를 설립해 농업계의 명성있는 사업가가 되었다. (중략) 1950년 1월에 대한인국민회 중앙 집행위원장으로 당선한 이래 10년 동안 국민회 발전에 봉사하고 있다>

이 글을 보면 김형순 씨는 김형순 씨가 공립협회나 흥사단과는 직접 관계가 없었던 인물이라는 점이다. 공립협회는 1903년 도산 안창호가 창립한 친목회의 후신으로 당시 여러 단체가 합동해 1905년에 설립됐다. 이후 공립협회는 하와이의 한인합성협회와 합동해 미주에서 최초로 한인단체들의 통합을 이루어 1909년 국민회가 탄생됐다.

국민회는 1936년 샌프란시스코에서 LA로 본부를 이전했으며 1938년 국민회관을 건립했으며 그자리에 공립협회로부터 국민회에 이르는 공식문건이나 관련 자료들을 보관해왔으며 신한민보도 발행했다. 김형순씨는 재력가로 성공해 독립운동을 후원했으나 독립운동 단체활동에는 직접 임원으로 참여한 것은 훨씬 후인 1950년의 일이다.

‘재미한인50년사’를 편찬한 김원용 씨는 책 머리말에서 “하와이의 한인합성협회, 동지회, 교민단 등등과 미주지역의 공립협회, 국민회 등등의 회록과 서류들을 얻을 수 있는대로 구하여 읽고….자료를 모으는데 8년의 시일을 보냈다. 출판에 김호 동지를 비롯해 여러단체 유지들의 출판비 협조에 감사한다”고 적었다. 이 글을 보면 김형순 씨가 책출판에 직접 간여한 것도 아니고 다만 김 호 씨 이름이 나타날 뿐이다.

또 김운하 씨 말처럼 자료들이 수집된 것이 남았다면 하와이 지역의 것도 기증이 됐어야 했는데 모두 미주지역의 것만 기증됐다. 이것은 김씨가 거짓말을 했다는 의심을 받는다.

불법반출은 범죄행위

이만열 회장도 서문에서 <’재미한인50년사’ 편찬 관련 이야기는, 그 편찬에 조력했던 분이 아직도 생존해 있기 때문에, 확인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고 일말의 의구심을 나타냈다. 그 자신도 ‘50년사’ 편찬과 관련해 국민회 자료가 김형순씨 집에 남겨졌다는 점에 일말의 의문을 느꼈으나 확인을 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그점이 애매모호하게 불법반출의 의혹을 더욱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도산의 외손자인 필립 커디 씨는 지난 2003년 12월 각 언론사에 보낸 글에서 “김운하 씨가 국민회관 건물에서 신문을 발행할 때 국민회 자료들을 개인적으로 가져간 것으로 보인다”면서 “국민회 사료들이 서울의 도산기념사업회로 불법 반출된 것은 범죄행위다”라고 밝혔다. 그리고 그는 “이 같은 불법반출은 이만열 씨와 서영훈 씨 그리고 김운하 씨 등이 벌인 공모행위”라고 지적했다.

이만열 회장도 서문 글에서 <김 선생(김운하)이 신한민보를 간행할 때에 국민회관에 사무실을 두었다는 점이 그의 자료 수집과 어떤 관련이 있지 않겠느냐고 최근 몇몇 분이 문제를 제기한 바 있으나 이점에 대해서는 김 선생으로부터 어떠한 이야기도 들은 적이 없다>고 적었다.

바로 이점이 커디씨가 지적한 것이다. 이점에 대해서 김운하씨는 해명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김운하씨가 소송결과로 국민회관에서 퇴거할 당시 많은 자료들을 싣고 나갔다는 증언들이 아직도 남아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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