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정권이 ‘친일파’가 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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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0일 방한한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

네오콘 핵심 AEI 잡지 “중국 견제위해 강한 일본 키워야”


최근 한국을 비롯, 일본·중국 등 아시아 6개국을 순방한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노골적으로 ‘일본 띄우기’를 했다. 그는 독도 문제로 발칵 뒤집힌 한국에 와서 우리 국민들의 감정은 고려하지않고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공개적으로 찬성했다.

미국의 최근 ‘친일 행보’는 어떤 맥락에서 이뤄진 것일까? 미국 네오콘을 대표하는 씽크탱크인 미 기업연구소(AEI)가 펴내는 잡지에 실린 한 글에서 그 배경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AEI가 지난 2월말 펴낸 <아시아전망>(2·3월호)에 이 기관의 연구원인 댄 블러멘털은 ‘미·일 동맹의 부활’이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블러멘털은 미 국방부에서 중국·대만·몽골 선임 담당관으로 근무하다 지난 2004년 AEI에 합류한 인물이다. 블러멘털은 “90년대에 미·일 동맹은 쇠퇴했었으나 테러와 북핵 위협에 대처하면서 미·일 동맹이 다시 부활하고 있다”며 “이는 군사 강국으로서 중국의 부상에 대처할 수 있는 의미있는 수단”이라고 평가했다.

블러멘털은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을 “국제적인 합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미국에 충성을 다하는 동맹국임을 증명한 행위”로 칭찬하면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은 강한 우방국으로서 일본의 등장을 계속 지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미사일 방어체제(MD)체제의 의미를 크게 평가했다. 일본의 미국제 MD체제의 도입은 두 나라 사이의 군사 협력이 결정적으로 강화될 뿐 아니라, 대만을 위협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효과적인 대책이라는 것이다.

블러멘털은 “대만이 미국제 MD시스템 등을 획득한다면 필요할 경우 미·일의 그것과 통합하는 것은 쉽다”며 “최우선적으로 미국·일본·대만 사이에 삼각 안보 협력을 구축하고, 여기에 오스트레일리아와 인도도 참가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 구조속에서 일본의 보통국가화는 결코 일본의 헤게모니 추구와는 상관 없다는 것이 이 지역에서 확신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그의 글을 요약
번역한 것이다.


일정 기간의 쇠퇴를 거친 뒤 테러와 북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일 양국의 안보 동맹이 활기를 되찾고 있다. 또 이 활기찬 동맹은 군사 강국으로서 중국의 부상에 대처할 수 있는 의미있는 수단이다. 이 동맹은 안보 정책의 협력, 미사일 방어체제 협력, 그리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자신의 이해를 확증하려는 일본의 노력에 대한 미국의 지지 등을 포함한다. 미국 정책가들은 이런 발전을 환영해야만 하며 강한 우방국으로서 일본의 등장을 계속 지지해야 한다.(블러멘털의 요약글)

지난 2월19일 미국과 일본의 ‘공동의 전략적 목표’ 발표는 두 나라 사이에 심화되고 있는 안보 협력의 절정이었다. (당시 미국과 일본 외교·국방장관은 회담을 열고 ‘대만 해협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등 ‘하나의 중국원칙’을 공격하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편집자주)

이 성명은 포괄적인 미·일 동맹의 재조정을 위한 가이드 라인을 제시했다. 일본은 중국의 패권주의적 야심을 억제하려는 미국의 거대한 전략에 동참한 것이다.
일본은 부시 정권의 테러와의 전쟁을 굳건하게 지지했고 자위대를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 투입했다. 또 미·일의 전략적 통합을 촉진시키는 탄도 미사일 방어체제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의 최대 관심사는 중동이지만 일본은 아시아에서 영향력을 위한 ‘큰 게임’ 속에 미국을 위치시키고 있다.







표류했던 10년


냉전이 끝난 뒤 미·일 동맹 관계는 길을 잃고 헤맸다. 1991년 걸프전쟁 때 일본이 재정적인 지원 외에 다른 지원을 망설이고 1993~94년 북핵 위기 때 정보 및 병참 지원을 요청한 미국의 요구를 거부함으로써 미·일 관계는 절망 상태로 빠져들었다.

그러나 두가지 사건이 미·일 동맹 부흥의 길을 열었다. 1996년 3월 중국이 대만 해협 근처에 탄도 미사일을 발사하자 일본은 중국의 군사력 증강을 크게 우려했다. 1996년 빌 클린턴 미 대통령과 하시모토 류타로 일본 총리는 ‘우발적인 지역 분쟁’ 때 병참 지원을 제공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1998년 북한이 대포동 1호 미사일을 일본 본토 위로 발사하자 일본은 두번째 충격에 휩싸였다. 북한의 위협에 직면하여 일본 국민들은 자국을 방어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가 미국임을 인식했다. 일련의 사건에 대응해 일본은 독자적으로 정찰 위성을 발사하고 미국과의 탄도미사일 방어(BMD)체제 구축을 함께 하기로 했다.

1990년대에 미·일 관계에는 많은 장애물도 있었다. 가장 큰 것은 중국에 대한 쌍방의 애매모호한 태도였다. 90년대 전반 일본은 미국이 무역 등의 분야에서 횡포를 부린다고 생각하고 대안으로서 중국을 고려했다. 또 90년대 후반 클린턴 행정부는 중국과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추구했다. 이는 일본에서는 미·일 동맹의 약화로 생각됐다.


새 진로의 설정 : 9·11과 그 이후


그러나 2001년 4월 총리에 취임한 뒤 얼마 안돼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의 국제무대에서의 정당한 역할은 미·일 관계의 밀접한 안보 협력을 통하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고이즈미 총리는 9·11 테러가 나자 미군의 작전지원을 위해 이지스급 구축함의 호위를 받는 병참선을 인도양과 아라비아해에 파견했다.

또 항공자위대는 디에고가르시아와 괌에 대한 수송 작전을 펼쳤다. 이로써 고이즈미 총리는 자위대가 일본 밖에서 군사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음을 보여줬다.
2003년 12월 고이즈미 총리는 비전투·재건 역할이지만 자위대를 이라크에 파병했다. 일본은 국제적인 합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주도의 임무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지원을 통해 일본이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될 수 있는 책임있는 국가임을 증명했고, 이라크 전쟁을 통해 미국이 국제적으로 고립된 상태에서도 미국에게 충성을 다하는 동맹국임을 보여줬다.

2002년 10월 북한의 농축우라늄 프로그램 폭로로 2차 북핵위기가 시작됐다. 2003년 8월 6자 회담이 시작됐다. 회담 참가국도 아닌 일본은 미국에 의존해 자신의 2가지 현안-북한의 ‘노동’ 중거리 탄도 미사일과 13명의 일본인 납치 문제-을 주요 의제로 올릴 수 있었다. 미국이 이같은 일본의 이해를 6자회담에서 반영한 것은 고이즈미 정권에게 대단히 중요했으며 양자의 안보 관계를 더욱 공고히 했다.

















 

미일 동맹과 중국


중국의 힘이 강화되면서 일본은 중국의 대만 침공 같은 지역 분쟁에 대응해 법적·정치적 체계를 구축했다. 특히 MD를 통해 미·일 군사 통합을 강화시켰다.

고이즈미 정권의 최고 정책 우선순위는 그 어떤 위기사태시에도 미국에 대해 일본이 더 쉽게 협조할 수 있도록 위기 대응 절차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2001년 10월 일본 의회를 통과한 반테러법은 자위대가 동아시아 밖에서 작전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2003년 7월 3개의 유사법제를 통과시킴으로써 일본 총리는 국가 비상 사태시 의회의 사후 승인만으로 긴급 조치를 취할 수 있게됐다. 이 법안에 의해 긴급 상황시 자위대에게 가해졌던 제한은 제거됐다. 고이즈미 정권은 미국의 해외주둔미군 재배치 계획(GPR)에 일본의 방위 정책도 연계시켰다.

2004년 신방위대강은 유례없이 중국을 잠재적 위협세력으로 규정했다. 방위대강은 “중국은 해·공군력과 함께 핵·미사일 전력을 현대화하면서 해상 능력의 범위를 확장하려고 하고 있다…일본은 이러한 경향에 주의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규정했다. 똑같은 우려가 미국의 해외주둔미군 재배치 계획(GPR)과 ‘4주기 국방전략보고서’(QDR)에도 반영됐다.  고이즈미 총리는 전쟁을 부인하고 있는 일본 헌법 9조를 수정함으로써 미·일 동맹관계에서 일본의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대중국 전략에 가장 크고 장기적인 영향은 일본이 미국과 상호호환할 수 있는 MD 체계를 획득하는 것이다. 일본은 이미 4척의 이지스 함을 보유하고 있고 2척을 더 늘릴 계획이며 PAC3도 도입할 것이다.
일본이 ‘메이드 인 아메리카’ 탄도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은 군사적인 의미 이상이다. 탄도미사일방어(BMD) 시스템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일본과 미국은 전략적·군사 작전 수준에서 많은 계획과 절차를 서로 조화시켜야 한다. 방위산업 협력도 훨씬 더 강화된다.

일본의 BMD는 미국의 군사 위성 등 방위지원 시스템에 크게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미국과 일본은 밀접한 명령체계와 통제 체계를 함께 갖춰야 할 것이다.
또 일본이 해상전구방어(NTW) 시스템을 도입하면, 미국은 일본의 이 능력을 자국 방어 뿐 아니라 대만 방어에 사용하도록 요구할 것이다. 중국이 미국과 일본의 MD 협력에 강하게 반대하는 것은 이 시스템의 이같은 전략적 의미 때문이다. 

고이즈미 행정부는 MD는 북한의 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중국은 이런 주장을 믿지 않는다. 중국의 전문가들은 해상전구방어 시스템이 자신들의 장거리 탄도 미사일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있다.
만일 대만이 미국제 BMD시스템과 지휘·통제·통신 및 정보·정찰 시스템을 획득한다면 필요할 경우 미·일의 그것과 통합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밀접한 부시-고이즈미의 관계와 동맹 강화는 일본에게 중국의 야심에 맞대응할 수 있는 일방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줬다. 일본은 대만과의 관계를 계속 개선해왔다.
일본은 지난해 9월 리덩후이 전 대만 총통의 일본 방문을 허용했다. 이는 일본이 중국의 항의에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는 국가적 자부심의 표현이었다. 리덩후이는 일본어가 유창한 대만의 한 세대를 대표하고 일본 정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있는 인물이다.

대만은 일본과 상당히 성공적으로 더 밀접한 군사적 정치적 관계를 추구해왔다. 고이즈미 총리와 아베 신조 자민당 간사장 대리는 대만과 좀 더 밀접한 관계를 맺으려는 새로운 일본 정치인 세대를 대표한다.
 
역사의 활용 :
대중적 지지를 구축하고
중국의 항의를 잠재우다


대 중국 전략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고이즈미는 대중적 지지를 구축하고 중국의 압력을 견뎌내야 했다. 고이즈미는 일본의 대중국 정책의 아킬레스 건인 ‘역사카드’를 오히려 정치적으로 유리하게 이용했다.
고이즈미는 지난 2001년 8월부터 연례적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했다. 그때마다 중국은 맹비판을 했다. 그러나 중국 지도자들이 이 상징적 문제를 강조하면서 고이즈미의 실질적인 일본 방위태세 변화는 오히려 다른 문제보다 덜 비판을 받았다.

지난 2004년 8월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안컵 대회 때 중국 관중들은 일본팀에게 야유를 보냈고 고위 일본 관리들이 타고 있는 리무진 버스의 유리창을 깼다. 이 때문에 일본 안에서는 반중 감정이 크게 일었다. 이것은 고이즈미 총리가 중국에 대해 더 강경한 접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정치적 함의


현재 동아시아는 20세기에 들어설 때 유럽을 휩쓸었던과 비슷한 전략적 변화를 겪고 있다. 강대국들은 영향력 확보를 위해 경쟁하고 있다.
1990년대 다양한 경험을 거친 뒤 일본은 이제 중국의 증강되는 군사력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미국과의 동맹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부시 행정부의 일본과의 동맹 강화는 장기적으로 전략적 의미에서 성공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은 미·일 동맹에 대단히 예민하다. 중국은 미·일의 BMD 시스템에 군사적 반격을 가할 뿐 아니라 경제적 유인책과 향상된 외교기술로 동아시아에 매력 공세를 계속 취할 것이다. 중국은 일본을 미국의 앞잡이로 계속 고립시키거나 또는 일본인들에게 구애할 것이다. 이미 일본의 최대 교역대상국의 지위는 미국이 아니라 중국에게 가있다.

이러한 위험에 대비해 미국은 일본 국민들에게 그들의 나라를 결코 모험주의의 기지로 보지 않는다는 점을 확신시켜야 한다. 미국은 일본의 독자적인 전략적 관심에 주목하고 적절한 지원을 해야한다.
동맹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을 위해 미국은 일본이 더욱 확실한 안보 태세를 취하도록 밀어붙여야 한다. 최우선 순위는 미국·일본·대만 사이에 삼각 안보 협력을 구축해야 한다. 또 오스트레일리아와 인도를 이 구조에 들여놓아야 한다. 이 틀안에서의 일본이 ‘보통국가화’가 된다면, 이는 결코 일본이 헤게모니를 추구할 의도가 없다는 점이 이 지역에서 확신될 것이다.

그리고 이 지역 안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만약 중국이 그들의 야망을 억제하려는 일단의 국가들을 보게된다면 군사력 강화가 전략적으로 막다른 골목임을 알게될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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