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인간을 파괴하지만 죽음에 대한 생각은 인간을 구원 할 수 있…

이 뉴스를 공유하기
















 ⓒ2005 Sundayjournalusa

3월 한 달 동안 신문, TV, 라디오에서 뜨겁게 논란을 일으켰던 생명과 죽음, 안락사의 문제가 의학적, 볍률적 그리고 윤리적, 종교적 문제에 너무나 많은 것을 남긴 채 Terri Schiavo의 죽음과 함께 끝이 났다. 뇌 손상으로 식물인간이 된 한 인간을 두고 그토록 온 미국이 아니 전 세계가 찬-반으로 나뉘어 논쟁을 일으킨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Terri Schiavo는 평범하고 수줍은 아가씨로 12학년 때 200파운드의 체중을 감당키 어려운 나머지 사람 만나기를 기피하기 시작하였고, 결혼 후(1984년) 체중 감량을 시도하다 d의학적 용어로는 화학적 불균형 때문에 심장마비를 일으키게 되었으며 이것이 뇌 손상으로 이어져 1990년 식물이 되었다.

15년간 병상에 누어 지내다 급식관을 제거한 후 13일만에 즉 3월 31일에 41세의 나이로 숨지게 되었다. 생명 존엄성보다는 다시 한번 Mass Media의 위대한 힘을 발휘한 사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 생명을 두고 싸우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남편 Vs Schiavo의 부모) 정치적 세력은 보수파와 진보파의 찬반 대립으로 확대되었고, 종교집단은 생명을 담보로 하여 피곤한 싸움을 이끌었다. ‘인간이 존엄하게 죽을 수 있는 권리’와 ‘누구도 신성한 생명을 중단 시킬 수 없다’는 안락사의 논쟁을 새롭게 불 피우게 되었고 또한 이 사건은 새로운 사회적 이유로 등장하게 된다.

즉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치료를 거부 할 수 있는 위임장을 문서화 하는 탕구적  대리위임권(The Durable Power of Attorney) 또는 사전지시(Advanced Healthcare Directive)를 만들어 놓는 새로운 풍속도가 생긴 것이다.

의사가 안락사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명문화된 규범이 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소극적 안락사와 적극적 안락사를 구분해서 의사 윤리 지침서에 손질을 하게 될 꺼라는 생각도 든다.살 권리와 죽을 권리가 사법권이나 정치권의 결정사항도 아니고 더더군다나 살아있는 자의 뜻도 아니다.

Schiavo가 남기고 간 ‘생명의 결정권이 누구에게 있는가?’에 대한 논쟁은 계속 될지라도 온 세상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생명을 두고 그 누구가 확실한 대답을 줄 수 있을까!이처럼 생명을 쉽게 얘기할 수 있는(죽이고 살리는) 사회 분위기가 잔인한 4월을 맞이하는 우리를 더욱 암울한 분위기로 몰아간다.

온 세계의 등불로 인간의 지대한 존엄성과 인간 원리를 지켜온 교황의 선종과 맞물려 죽음과 생명을 다시 한번 돌이켜 볼 수 있기에 한번 용기를 내어 영국의 소설가 포스터의 말을 인용한다.


“죽음은 인간을 파괴하지만 죽음에 대한 생각은 인간을 구원 할 수 있다”


@SundayJournalUSA (www.sundayjournalus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뉴스를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