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욱 ‘美 법원 사망 판결문’ 입수 전격 공개

이 뉴스를 공유하기

















ⓒ2005 Sundayjournalusa


김형욱 前 중앙정보부장의 ‘실종 혹은 죽음’을 놓고 한국 언론들의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이미 본보가 지난 498호에 소개한대로 <월간조선>이 특종으로 ‘김형욱 실종사건’을 탐사추적 보도해 관심을 모으기도 했는데, 월간조선 3월호는 “김형욱 씨가 김재규 前 중앙정보부장의 지시에 따라 파리 현장에서 청부살해 되었다”라는 충격적 내용을 담았던 것.

하지만 최근 본국의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이 이보다 더 쇼킹한 ‘내가 김형욱 암살했다’라는 제하의 기사를 게재해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시사저널> 측의 이번 기사를 보면, 월간조선과의 주장과는 달리 ‘차지철 청와대 경호실장의 지시에 따른 거사(?)’였음에 무게를 싣고 있는 모습이라 주목을 끈다.

즉 주간 <시사저널>은 당시 중앙정보부 특수비선 공작원 이 모 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지난 1979년 10월 7일 밤, 파리 시내의 한 카지노 근처에서 김형욱 前 중앙정보부장을 유인 납치해 파리 외곽 양계장에서 분쇄기에 넣어 살해했다”고 주장하는 인터뷰 내용을 실어 큰 논란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것.

<시사저널> 측의 이번 심층 기획기사를 액면 그대로 믿는다 치면 “김형욱 씨는 월간조선을 비롯 그간 제기되어 왔던 중앙정보부 라인이 아닌 차지철 청와대 경호실장에 지시에 따른 중정 요원의 소행이었다”라는 관점으로 해석되고 있어 기존의 가설들을 완전히 뒤엎고 있는 주장이다.


▲ 김형욱 실종사건을 놓고 박정희 前 대통령, 김재규 前 중정부장(左), 차지철 前 청와대 경호실장(右) 중 누구의 지시에 따랐던 것인지를 놓고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이는 어찌 보면 그간 말도 많고 억측을 불러 일으켰던 ‘김형욱 실종 미스터리’의 실마리를 새롭게 보는 해석으로 큰 주목을 받고 있는데, 이번 시사저널의 기사를 보면 “김형욱 씨를 파리로 유인한 여자 연예인이 과거 유명배우이자 한때 요정을 운영했던 최지희 씨다”라고 밝혀 큰 파문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물론 <시사저널> 측은 ‘최지희 씨와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최지희 씨 당사자의 입을 빌려 “내가 아닌 다른 여배우였다”라는 항변 아닌 항변을 실어 눈길을 끌기도 했으나, 이 신문은 ‘김형욱 회고록’을 ‘박사월’이라는 필명으로 집필했던 김경재 前 의원과의 인터뷰를 통해서는 ‘당시 유인자는 최지희 씨가 맞다’라는 류의 정황을 소개해 엇갈린 진술과 관련 그 ‘진위여부’에 촉각이 곤두세워지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시사저널> 측의 새로운 주장을 접한 김형욱 씨 가족들은 모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 같은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우리는 서울에서 살해된 것으로 믿고 있다”고 전함으로써 여전히 ‘파리 살해說‘보다 ‘서울 살해說‘에 무게를 싣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한편 본보를 비롯 본국의 ‘월간조선-시사저널-한겨레 신문’ 등이 연일 쏟아내고 있는 ‘김형욱 실종 미스터리’와 관련 ‘서서히 실마리가 풀릴 지도 모른다’는 분위기가 잡혀가고 있는 가운데 이러한 ‘김형욱 실종사건 해법 찾기’와 관련 본보는 “지난 1981년 김형욱 씨가 사망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미 법원의 판결문을 전격 공개하는 바이다.

박상균<취재부 기자> [email protected]


본보 김형욱 미 법원 ‘김형욱 사망 판결문’ 단독입수 大공개


미국에서는 지난 81년 4월  최종적으로 “79년 사망 인정”
한국은 1991년에야 ‘84년 사망 인정’
















 ▲ 본보가 긴급입수한 김형욱 씨의 사망 인정 판결문. 뉴저지 주 버겐 카운티 법원은 “지난 81년 4월 김형욱 씨가 실종된 날인 1979년 10월 7일 부로 사망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뉴욕 한인 TV 방송국 TKC 사(tkc76.com) 제공>

ⓒ2005 Sundayjournalusa

 











화제의 시사저널과의 인터뷰 이 아무개 씨
“김형욱은 내가 암살했다”


▲ 주간지 <시사저널>이 김형욱 실종사건과 관련 심층 특종보도를 해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다. 원안 사진은 이번 특종취재를 담당한 시사저널 정희상 기자.

1979년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을 프랑스 파리에서 암살했다는 이 아무개 씨는 11일 발행된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파리로 들어가고 나온 경로 등까지 상세히 밝혔다. 다음은 시사저널이 특종보도해 화제를 불러 일으킨 인터뷰 내용의 요약이다.


– 파리에서 김형욱을 처음 어떻게 만났는가?
우리는 암살 실행조였고, 유인조는 따로 있었다. 한국 여배우가 현장에 있었다. 김형욱이 미국에서 단신으로 파리로 온 것은 그 여배우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 그 여배우도 자기가 김형욱 암살목적에 동원된 사실을 알았나?
김형욱과 여배우가 만나기로 한 레스토랑으로 막 들어가려는 김형욱에게 ‘저희가 모시겠습니다’며 안내했다. 팔을 잡고 부축하는 동시에 코에 마취제를 스쳤다. 여배우는 거꾸로 우리가 김형욱 보디가드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여배우는 납치됐다는 것을 느꼈을 수도 있지만 암살하기 위해 데려가는 줄을 몰랐을 것이다.


– 왜 암살 장소로 양계장을 택했나?
프랑스 정보기관은 세계 제2의 정보력을 자랑하는 소수 정예 조직이다. 그런 기관에 발각되지 않고 완전 무결하게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 김형욱 씨는 당시 어떤 상태였나?
가벼운 수준의 마취를 했기 때문에 4~5km 떨어진 양계장에 도착할 때까지 어리어리한 상태였다. 급소를 잡고 들쳐멘 채 분쇄기 계단 위로 올라갔다. 살은 좀 쪘지만 키가 그리 크지 않아서 무겁지는 않았다. 머리부터 분쇄기에 집어넣었다. 잠깐 동안 흔적도 없이 분쇄되어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닭에게 공급되었다.


– 파리로 가기 전 박정희 대통령을 만났나?
1979년 초 밤에 청와대 별관으로 불려갔는데 술을 따라주며 ‘나쁜 놈이로구나. 내가 믿었던 김형욱 이놈이 나쁜 놈이로구나’하며 통탄을 하시는데…더 말이 필요한가? 박 대통령이 나를 만났다는 것 자체가 비밀인데…


– 중정 소속 특수요원이었으므로 김재규 부장이 파견한 것 아닌가?
아니다. 나를 담당하던 중정 윗선에서도 내가 파리에 침투하는 것을 몰랐다.


– 김형욱 씨를 제거한 데 대한 지금 심정은?
교도관이 사형수를 처형해도 기분이 불쾌한 일인데, 인간을 그렇게 처리한 내 기분이 좋았겠는가. 언젠가 내가 조사 받으며 진실을 말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 이 모든 사실을 다 국정원의 과거사 진상조사 위원회에 나가 밝힐 의향은 없는가?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다. 

                                        <www.sisapress.com>


본보는 지난 1981년 4월 9일자로 미국 법원에서 “김형욱(Kim Hyung Wook) 씨는 법적으로 1979년 10월 7일 경 사망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내용을 담은 판결문을 입수해 이번 호에 공개하는 바이다.

이 같은 판결문은 최근 ‘김형욱 씨 가족’들이 미국 땅에서 ‘재산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입수된 것으로 본보가 지난 제498호를 통해 공개한 ‘김형욱 유언장’과 함께 큰 증거자료가 될 전망이다.

이 같은 미 법원의 판결이 눈길을 끄는 것은 한국에서는 김형욱 씨 실종사건과 관련 전두환 정권 시절인 지난 82년 3월 궐석재판을 통해 ‘반국가행위 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법’ 위반 혐의로 김형욱 씨에게 징역 7년, 자격정지 7년형을 선고하고 전재산을 몰수한 뒤, 지난 91년에 이르러서야 가족들이 서울 가정법원에 ‘84년 10월 8일 사망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실종선고 판결을 받아냈기 때문이다. 

지난 96년 특별조치법에 대한 위헌결정 후 형사재판에서 김형욱 씨의 무죄가 선고되는 등 우여곡절의 기간을 거치기도 했다.

결국 한국에서는 실종된 지 12년 만인 지난 1991년이 되어서야 ‘김형욱 씨의 사망’이 인정되었다는 점에서다.

이를 시간적으로 굳이 따지자면, 김형욱 씨의 ‘사망인정’을 놓고 양국 간에 약 10년 여의 차이가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아무튼 미 법원을 통해 이 같은 ‘김형욱 씨 사망판결’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지난 제498호에 본보가 전격 공개한 ‘김형욱 유언장’의 내용(재산분배)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김형욱 씨 가족(부인 신영순(김영순), 김신해, 김정한, 김정우)들로서는 ‘김형욱 씨 사망 인정’이 필요했기에 취한 조처로 보여진다.

이 같은 판결문에 의해 김형욱 씨 부인 신영순(김영순) 씨는 지난 81년 5월 12일 뉴저지 버겐 카운티 유산법원에서 유언장 집행인으로 인정 받게 되었던 것이다.


김형욱 실종 사건 “왜 주목 받는가”


전문에 이미 언급한대로 지난 26년간 베일에 쌓여 있던 ‘김형욱 前 중앙정보부 부장 실종사건(1979년)’이 한국에서는 재차 주목을 끌고 있는 상태다.

이러한 가운데 “김형욱 前 중앙정보부장을 내가 파리에 한 양계장에서 분쇄기에 넣어 살해했다”고 주장하는 前 특수공작원의 진술이 주간지 ‘시사저널’에 보도됨에 따라 새로운 국면을 맞은 모습이다.

지난 2월 3일 ‘김형욱 실종사건’을 비롯한 7개 사건을 우선조사 대상으로 선정한 국정원 과거사 진실위원회는 현재 사건 당 2∼3명 씩의 진실위 위원과 수 명의 보조 인력을 총동원해 자료 검토와 관련자 인터뷰 준비작업을 하고 있으며 매주 한 차례씩 회의를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번 시사저널의 보도와 관련 국정원 과거사 진실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보도 내용만 보고는 사실 여부를 전혀 알 수 없으며 사건 조사에 참조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현재 이 사건과 관련된 자료와 증언자 물색 작업을 계속하고 있으나 인력이나 한정된 시간 등으로 어려움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라고 전하고 있다.

즉, 김형욱 실종사건의 ‘해법찾기’에 있어 본보를 비롯 월간조선, 시사저널 등의 기사들이 참조될 뜻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국가정보원 과거사위 관계자는 “조사 과정에서 파악하고 있는 사건의 내용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고, 이런 주장은 한 번도 들어본 바 없다”고 일부 언론에 흘리면서 시사저널에 공개된 前 공작원 이 모 씨의 ‘거짓 증언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김형욱 미스터리 이번엔 풀리려나’
한인 언론사들 앞 다퉈 ‘해법 찾기’ 선보여 ‘화제’











김형욱 씨를 파리로 유인한 인물로 지목받은
최지희 씨 “나는 아니고 다른 여배우다” 주장



– 1979년 10월 7일 밤 김형욱 실종 현장에 있었다는 주장이 있다.

나는 아니고 다른 여배우다. 이름을 잘못 안 것이다. 지금 나를 찾아온 것도 김형욱 씨와 ○○○이라는 여배우가 함께 있었다는 말을 듣고 나에게 우회적으로 확인하러 온 것 아닌가?


– 목격자?두 갈래에서 나타났다
극비인데. 이것은 김형욱 정보부장이 나에게 권총까지 들이댔기 때문에 말할 수 있다. 그 시절 내가 아는 여배우 중 경제적으로 힘든 아이가 있어서 내가 아이디어를 내서 도와줬다. ‘대통령 각하를 만나게 해줄 테니 가서 어려운 사연을 말하라’고 한 뒤 김형욱 정보부장에게 ‘그 친구 각하 한번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김 부장이 승낙하고 박 대통령 만날 날짜까지 잡았다. 약속된 날 김 부장 지프차가 나타나더니 ‘각하께 바쁜 일이 생겼으니 각하 대신 내가 어떠냐’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모르니 부장님이 가서 밥 사주고 달래주세요’라고 했다. 그런데 나중에 이 사실이 소문이 났다며 김형욱 부장과 박종규 경호실장이 나를 불러 머리에 권총을 들이댔다. 나는 못 먹는 위스키 한잔 마시고 ‘연애는 당신들이 해놓고 뭐 하나 해준 것도 없는 최지희를 이렇게 죽이려 드느냐’고 바락바락 대들었다. 


– 김형욱 씨 실종 직전에 뉴욕에서 당신이 김 씨에게 보낸 편지를 봤다는 사람이 있다
나는 아니다. 그 친구가 편지를 보냈다. 왜 그걸 내가 아느냐 하면, 그 친구가 나에게 김형욱 씨 문제로 고민하는 편지도 보내곤 했다. 그로 인해 그 배우와 남편 관계가 복잡해진 거니까. 그래서 아마 내 이야기가 나왔을 것이다. 그때 그 친구가 나에게 보낸 편지도 어딘가 있을 것이다.


– 그런 사이였다면 김형욱 씨 성격을 잘 알겠다.
잘 안다. 그때 내 머리에다 총 들이대고 죽인다고 했으니까. 사실 이런 얘기 기자에게 하는 것 처음이다. 내가 아니라는 걸 밝히려고 꺼내는 것이지, 그 전에는 얘기도 못했다, 잘못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지. 정치인들이 ‘최지희 의리 있다’는 그 소리 한마디 듣고 세무사찰 받은 다음 내가 일본으로 가게 된 것이다.


–  이후락 정보부장과 김형욱 정보부장이 모두 당신을 도왔다는 말이 있던데…
 그때 얘기를 터뜨리면 큰 일 날 일이 많다. 내가 내막을 잘 아니까, 여배우들과 정치인의 연애 얘기는 다 알지만 내 입으로 얘기할 수는 없다. 우리 연예인들이 정치인과 굉장히 가까웠다. 어떤 때는 형제 같이 지냈다. 김형욱 씨도 잘 알고 박종규 씨도 잘 알았다. 내가 일본에 나갔다가 다시 한국에 와서 식당 일만 하면 최지희가  것 같아 살아있다는 걸 표현하려고 한남체인을 인수한 것이다.


– 김형욱 씨 사건을 잘 아는 사람들이 왜 최지희 씨를 거론하는 것인가
사실 내가 했으면 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내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 했다. 이름을 잘못 안 것이다. 그 친구는 김형욱과 오랫동안 거래를 했다.


– 김형욱 씨와의 거래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내가 듣기로는 김형욱 씨가 미국에 망명한 뒤에 100만 달러를 미국 은행에 그 배우와 공동으로 예치했다고 해서 한동안 그 친구를 정보부가 조사하고 난리가 났다. 한번 캐 보시라. 비밀은 캐야 한다. 그러니까 나는 아니고 다른 배우이니까 잘 취재해서 써야 한다.  
                                                 
                                  <www.sisapress.com>


지난 1977년 6월 22일 김형욱 씨는 이른 바 ‘박동선 로비 사건’을 조사 중이던 미국 의회 프레이져 소위원회의 증언대에 섬으로써, ‘박정희 前 대통령’과 영원한 이별(?)을 고했다.

한때 박정희 前 대통령의 오른팔을 자처하던 그가 ‘反 박정희 의회 증언’의 선전포고를 날림으로써 선제공격을 날린 격이었다.

이 같은 김형욱 씨의 ‘反 박정희’ 움직임은 이어 한국 정가를 떠들썩 하게 만들었던 ‘회고록’ 집필로 이어졌던 것이다.

이같은 회고록을 ‘박사월’이라는 필명으로 김경재 前 의원이 집필했던 것이 인연이 되어, 김 前 의원은 ‘김형욱 실종사건’이 거론될 경우 어김 없이 ‘증언자’로 등장하게 되는 배경이 되었다.

약 27 개월에 걸친 작업 끝에 ‘제1부 5.16 비사’와 ‘제2부 박정희 왕조의 비화’라는 제목으로 지난 1979년 9월말 탈고된 도서 목록을 보면 “제1부에 정군 파동, 혁명 예행연습, 위기 일발, D-day H-hour, 비상 게엄령의 발동, 이한림의 체포, 혁명은 너 혼자 했나, 김종필의 4대 의혹 사건, 중앙정보부원과 공화당 사전 조직, 김재춘의 반격, 양동 작전, 불행한 군인의 연기” 등이 실렸다.

“제2부에는 사상 최대의 3대 부정 사건, 정인숙 여인의 살해 사건, 박정희와 김대중의 쟁패, 실미도 사건, 오치성 파동과 위수령 발동, 김일성-이후락 비밀 회담과 남북 공동 성명, 윤필용 사건과 이후락, 김대중 납치 사건과 이후락의 거세, 문세광 사건과 박종규의 실각, 인민혁명당 사건, 주한 미군의 철수 바란 박정희, 미 하원 프레이져 소위원회 증언” 등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내용을 여과 없이 담았던 것이다.

이에 이 같은 내용을 담고있다는 것에 격분한 박정희 前 대통령은 지난 1978년 11월 경 친히 중정 해외담당 차장이었던 윤일균 씨를 뉴욕으로 급파해 이 같은 ‘김형욱 회고록의 원고를 회수하라’고 지시를 내렸던 것이다.

윤일균 씨 또한 이와 관련 지난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직접 뉴저지의 김형욱 씨 집을 찾아가서, 3일간 담판한 끝에 50만 달러를 주고 그가 쓰고 있던 「김형욱 회고록」 원고를 받아왔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어 윤 씨는 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김형욱 씨가 약속을 깨고 지난 1979년 4월 원본을 일본 창 출판사에서 회고록을 출간하면서, 회고록 발간 저지 공작은 그것으로 끝이 났고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고 전했던 것이다.


김형욱 회고록 집필한
김경재 前 의원과의 인터뷰 내용

<www.sisapress.com>




– 김형욱 씨가 1979년 10월 한국 유명 가수를 만나러 파리에 갔다가 실종되었다고 주장했는데, 사실은 가수가 아니고 배우 최지희 씨 아닌가?

최지희 씨를 어떻게 알고 있는가? 그 여자에 대해서는 김형욱 씨와 부인 신영순 여사, 그리고 나와 내 아내 네 사람 외에는 모르는 사실인데…











시사저널에 실린 ‘김형욱 실종’ 당시 중앙정보부 해외정보국장 김관봉 씨 인터뷰

“차지철 경호실장 지시 가능성” 제기


– 기자는 최근 김형욱씨를 파리에서 납치해 근교 양계장 분쇄기에 넣어 암살했다는 사람을 직접 만났다. 그는 현지 한국 정보부 관계자들의 안내를 받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파리 현지 중정 라인은 누군가에게 철저히 유린당했다고 봐야 한다. 당시 현지 정보부 조직이 움직였다면 그럴 만한 의지와 힘이 있는 사람은 차지철 경호실장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현지 중정 조직 관계자 중 일부가 10·26 이후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김형욱 실종 과정에서 김재규-윤일균-김관봉-이종찬으로 이어지는 해보 정보라인 지휘 본부가 능멸당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이런 점에서 당시 중정 파리 현지 책임자 이상열 공사가 이제는 입을 열어야 한다.


– 옆에서 보기에 차지철 실장과 김재규 부장의 갈등은 어느 정도였는가?

김형욱 실종 무렵 김재규 부장은 박 대통령과 유신체제에 관해 포기 상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마 사태로 부분 계엄이 선포되었는데, 마산까지 경찰서가 습격당하고 심지어 계엄사령관 차량이 시위대에 불탔지만 보도 관제로 언론에는 나지 못했다. 김재규 부장이 현지에 내려가 현지 검찰·경찰·군부·기관장을 불러놓고 유혈 진압을 하지 말라고 연설했다. 부장 연설문은 그때그때 모든 국장급 이상에게 즉시 팩스로 들어온다. 당시 차지철 실장은 김재규 부장이 온건하게 대응해서 일을 망친다고 몰아붙였다. 부산에서 2만~3만 명 죽어도 상관없다는 말까지 나오고, 공수부대 투입도 차실장 힘으로 이뤄지던 시절이다. 그런 상황에서 김부장은 김형욱이 실종될 무렵 문을 걸어 잠근 채 보고도 받지 않고 뭔가에 골몰했다. 며칠 후에 자기가 벌일 10·26 사건을 예비하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유신의 심장을 노리고 있던 사람이 10·26을 앞두고 왜 유신체제의 명예를 위해 김형욱을 제거했겠는가.


– 김형욱이 실종된 직후이자 10·26 사건이 나기 1주일 전쯤 김재규 부장이 주불 한국대사관 이상열 공사를 비밀리에 소환해 조사한 뒤 하루 만에 파리로 돌려 보냈던데…

그런 일이 있었다. 10월 18일 시청 앞 플라자 호텔에서 이종찬 해외정보국 부국장과 김갑수 부장 비서실장을 보내 소환된 이상열 공사를 조사하도록 했다. 그것은 김재규 부장이 자기가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증거 아니겠는가. 만에 하나 김재규 부장이 지시했다면 남의 눈에 안 띄게 이상열 공사를 직접 만나 성공 여부를 확인했을 것이다. 이제라도 진실은 밝혀야 한다.


– 이종찬 해외정보국 부국장이 김형욱 실종 사건을 조사하는 총책이었나?

해외담당 부국장이 3명 있었다. 중동 진출 건설업체 사업을 심의하는 심의관, 정보 분석을 담당하는 부국장, 그리고 공작 및 수집 담당 부국장이다. 이종찬 씨가 공작 및 수집 담당 부국장이어서 이상열을 조사한 것이다. 그는 나중에 ‘조사해도 별 것이 나오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
www.sisapress.com>


– 김형욱 씨를 파리 현지에서 납치해 시 외곽 한적한 양계장에서 암살했다는 사람을 기자가 만났다.

그는 김형욱 씨가 여배우 최지희 씨와 만나려는 현장에 먼저 대기하고 있다가 그녀의 보디가드 행세를 하며 접근해 여배우가 기다리던 차로 안내하는 척하다가 납치하는 데 성공했다고 털어놓았다.


놀라운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가 암살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를 한번 만나보고 싶으니 도와달라. 나는 지난 25년 동안 아무에게도 그 연예인의 실명을 말하지 않았다. 김형욱 씨가 그 여배우를 만나러 간 게 맞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용당했을 것임으로 보호해줘야 한다.


내가 지금껏 여가수라고 둘러댄 것도 그분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최근 기자들이 그 무렵 파리에 갔던 여가수를 찾아냈는지 그녀가 나에게 전화해 다짜고짜 항의하더라.

‘당신이 아니라 여배우 최지희 씨다’라고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어 벙어리 냉가슴을 앓았다.


– 김형욱 씨가 실종될 무렵 그 여배우를 만나러 파리로 갔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았나?

나는 김형욱 씨의 구술을 받아 회고록을 집필하느라 그가 실종되기 전 마지막 27개월을 매주 2~3회 만나서 함께 보냈다.

그가 실종되기 전 편지를 한 장 보여주면서 ‘이것 때문에 마누라하고 대판 싸웠다’고 했다. 여배우 최지희 씨에게서 온 것이었는데, 김형욱 부장과 예전에 둘이서 갔던 특정 장소가 생각난다. 인생을 왜 그렇게 피곤하게만 살려고 하시느냐. 여행도 좀 하시고 마음을 편히 가지시라는 등의 연애 편지였다.


– 김형욱 씨와 사생활까지 털어놓는 사이였는가?

내가 2년 이상 고생해 가며 그의 회고록을 다 집필했는데 막판에 김 씨가 느닷없이 무리한 요구를 했다.

한국 정부가 죽이겠다고 위협을 한다면서 빈말로 책을 전부 내지는 않겠다고 답변했으니 공격의 예봉은 피하고 보자며 나더러 ‘김형욱 동의 없이는 책을 출판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써 달라고 요구했다.

당시 나도 오금이 저릴 정도로 온갖 협박을 받고 있었지만 굴하지 않았는데 왜 이리 약해지셨느냐며 대판 싸웠다.

반발하는 나를 설득하려다 보니 그가 호주머니에서 그 여배우 연애 편지를 꺼내 보여주며 ‘집에서는 이것 때문에 마누라랑 대판 싸우고 나왔는데, 자네까지 이러기냐, 나를 한번 봐달라’고 했던 것이다.


– 정보부장까지 지낸 김형욱 씨가 단신으로 여배우를 만나러 갔다는 점이 이상하다.

내가 보기에도 글씨가 너무 정자 체라서 ‘대필일 수도 있으니 한번 의심해보십시오’라고 권했다. 그랬더니 ‘이 사람아, 대필은 할 수 있겠지만 내용까지 속이지는 못해. 글 내용이 틀림없는 그 사람 것이야’라며 그냥 넘겼다.

그는 당시 미국에서는 물론 해외로 나갈 때면 항상 유도 선수였던 큰 아들을 보디가드로 대동했다. 그러나 여배우를 만나러 파리에 간 그 때는 아들을 떼놓고 혼자 갔다.


– 여배우와 김형욱 씨는 어떻게 아는 사이였나?

1960년대 말 김형욱 씨가 중앙정보부장이던 시절 그 여배우가 정보부 건물 근처에서 정·관계 인사들이 주로 드나드는 비밀 요정을 했다.

일종의 정보부 안가라고 들었다. 그때부터 두 사람 사이가 각별했다고 한다.


[참고]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1999년 방송분


<20년의 침묵 – 김형욱 실종 미스테리>(연출 이규정)편은 시청률 11.8%을 기록해 최고를 기록했다.


  • 관련방송 : 지난 99년 MBC 방송분 다시보기

     





  • @SundayJournalUSA (www.sundayjournalus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뉴스를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