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호통재라… 이제는 김일성까지도 독립운동가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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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일성은 독립운동가 발언’을 한 강
만길 광복60주년 기념사업추진 위원장

김일성을 ‘독립운동가’로 보아야 한다는 좌익성 학자의 발언으로 국내외의 파장이 계속되고 있다. 문제의 인물인 강만길 광복60주년 기념사업추진 위원장은 미국에도 수 차례 방문해 학회 등에서 발표를 한 인물로 LA에서도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들이 많다. 그는 지난 11일 “김일성 전 북한 주석의 항일 빨치산운동도 독립운동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강 위원장은 좌파성향의 원로 역사학자이지만, 친일 진상규명위 위원장에도 내정된 고위 공직자라는 점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그의 발언에 대해 LA에서도 잘 알려진 김동길 교수도 분개하고 나섰다. 인터넷 언론에 나타난 여론을 수집해 소개한다.


성 진<취재부 기자> [email protected]



김동길 교수는 강만길씨의 “김일성…독립운동가” 운운의 글에 대해서 “김일성을 순수한 독립운동가로 본다면 그 자가 불법으로 감행한 6.25 남침도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고 김일성의 남침을 물리친 대한민국의 지도층은 몽땅 역적으로 몰릴 수 밖에 없는 판국이 된 것이다.”라면서 통탄해 했다. 다음은 그의 최근 기고문을 발췌한 것이다.


<정부가 광복 60주년을 기념한다면서 내놓은 사업의 하나로 <독립운동사 대계>의 제작을 추진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 사업의 제작위원장으로 임명됐다는 자가 “김일성의 빨치산 운동도 독립운동으로 보아야 한다”라는 발언을 하였다고 하니 이런 한심한 작자들이 오늘의 학계를 이끌고 나간다면 대한민국은 통일의 주체가 아니라 통일의 대상으로 전락하여 이미 북에 포섭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 아닌가.
만일 북에서 <독립운동사 대계>를 편집하는 자들이 있다면 거기에 김 구, 이승만이 독립운동가로 포함할 것 같은가. 미제의 앞잡이, 스파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김일성에 의해 살해된 박헌영도 거기 이름이 실릴 것 같지도 않은데 왜 대한민국 국민의 세금을 가지고 시작하는 이 일의 우두머리가 그 따위 수작을 하면서 아까운 혈세를 마음대로 쓰겠다고 나서는 것인가.
이제 이 한심한 작자들 입에서 김일성만 아니라 그의 아들 김정일도 독립운동가로 모셔야 한다는 말도 나올 것인가. 어쩌다 대한민국이 이 꼴이 되었는가. 오호 통재, 오호 통재.>


북한 아첨꾼들의 장난


지난 4월 15일은 김일성 생일날이다. 북한에서는 ‘태양절’이라고 부른다. 소위 ‘태양절’이 다가오자 좌익들은 김정일에 아첨하는 발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강만길 교수가 ‘김일성이 독립운동을 했다’고 주장한 것도 그 중 하나다. 방송들도 마찬가지다. 프리존에 올라온 글을 보면 SBS 8시 뉴스에서 김일성 찬양 방송을 했나 보다. 프리즌은 아나운서가 북한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심어주려고 ‘쌩쑈’를 하더라는 소감도 적어놓고 있다.

 지난 날 학교에서 반공교육이 실시되던 때는 북한의 김일성 우상화 실상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반공교육이 ‘통일교육’이란 이름으로 대체되었다. 통일교육은 김대중 정권 때부터 본격화되었다. 통일교육이 일반화되면서 공산주의나 북한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얘기하면 ‘수구꼴통’ ‘냉전세력’ ‘극우보수’ 등의 딱지가 붙기 시작했다. 물론 거슬러 올라가면 1980년대 주사파들이 주도했던  ‘북한 바로보기’ 운동에 연원이 있다고 봐야 한다. 북한 바로보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북한 눈으로 북한보기’로 변질됐다. 학문적 용어로는 소위 ‘내재적 접근론’이 되겠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북한에서 김일성우상화가 어느 정도 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북한 바로보기를 하려면 북한 눈으로 북한을 보려고만 하지 말고 있는 사실을 먼저 제대로 아는 게 중요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미리 말하지만 북한의 ‘김일성 우상화’ 실상을 보면 한 편의 코미디를 보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야말로 유치 찬란하다. 현실 속에서 저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데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한다. 인간의 귀는 지나치게 큰 소리를 듣지 못한다. 예컨대 지구가 자전하는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사기 치는 것도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사기는 이미 사기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 우상화가 그렇다.
 
김일성 우상화


40대 이상은 김일성 우상화에 대해서 들은 얘기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실상을 제대로 안다고 보기는 어렵다. 북한에서 김일성을 ‘어버이 수령’으로 부른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어버이를 지나 전지전능한 신적 존재로 추앙 받는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북한은 김일성-김정일의 문헌을 대성서(大聖書)로, 김일성-김정일을 ‘하느님’이라고 부르기까지 한다.

조선기독교도연맹 중앙위원장이었던 강영섭은 1998년 김정일의 통일관련 문헌을 지지하는 담화에서 김정일문헌을 “조국통일의 대 진로를 제시한 대성서”라고 지칭했다. 그는 또 “우리 종교인들은 지금 김정일 장군님이야말로 어버이 수령님과 똑같은 우리 민족의 하느님이시라 믿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에는 ‘김일성전설집’이란 책이 있다. 책의 내용에는 이런 황당한 구절들이 널려 있다.
 
“나라의 국운을 다시 일으키려고 하늘의 별이 서로 얘기를 나누고 백두산 위에 장군별을 하나 띄웠는데 그 별이 곧 김일성장군의 별이다.”
 
“장군별은 후지산에도 나타났다. 그 때 장군별이 빛나자 후지산에는 검은 구름이 몰려들고 천둥소리가 울리고 번개가 쳤는데 왜구 군벌의 졸개들이 불길한 조짐에 두려움을 느껴 산으로 올라가 보았다. 그러자 조선의 백두산이 보이고 그것에는 마침 아침 해가 솟듯이 찬란한 햇빛이 두터운 구름을 뚫고 이 세상 모든 것을 비추어 태백산의 천년의 통나무에는 두 번째 꽃이 피었다.”

















 ▲ 젊은 시절의 김일성의 모습

김일성 추종자는 쓰레기
 
 네티즌 사이에서도 강만길 교수에 대한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
탁영민 (raintak)이라는 네티즌은 <김일성? 민족의 핵심 원수… 어떤 공을 세워도 그는 유영철보다 15만 배 이상 사람을 더 많이 죽인 악독한 살인자 이자 독재자.. 설사 공을 세웠다 쳐도 민족을 위한 공이 아닌 자신을 위한 공이었으므로 얘기할 가치도 없다..그를 추종하는 자는 다 쓰레기 >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김학권 (Prescott)은 <김일성 주석은 독립운동 경력도 없고 소련군 말단장교로써 공산화를 위한 게릴라전을 펼쳤을 뿐입니다. 그리고 김일성 주석과 김일성 장군은 동일인물이 아닙니다. 요즘 조선노동당 ‘빠돌이’들이 김일성 주체사상의 광신도를 방방곡곡으로 전파하려고 합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심완무 (wmsim100)라는 네티즌은 <6. 25 민족 도살, 세습왕조 세워놓은 게 독립운동이라니, 망동도 분수가 있어야 된다. 김일성 주의자들이 제 세상이라고 설쳐대는데, 이들의 소탕이 시급한 문제로 다가왔다. 자유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국민의 각성이 절실한 시점이다>라고 호소했다.
 
발언에 사퇴소동
 
한편 강만길 교수의 발언에 대해 김학원 자민련 대표가 이에 대한 항의로 광복60주년 기념사업 위원직을 사퇴했다.  이 위원회는 강 교수가 위원장이다. 자유민주민족회의(의장 이철승)도 성명을 내고 강 위원장의 해임을 요구하면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파괴하는 처사”라고 했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13일 “아주 편향된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친일진상규명위 등 책임 있는 일을 맡고 있는 것은 우려할 만한 일”이라고 했다.

반면 열린우리당 김형주 의원은 1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과거 이념시대에서 배제되거나 축소된 역사적 사실을 논의하고, 탈 이데올로기적 항일운동을 교과서에 수용할 의향이 있느냐”며 강 위원장을 옹호했다. 이해찬 총리는 답변에서 “국민적 공감대가 만들어지면 당연히 반영할 수 있다”고 했다. 국내 학계 일각에선 김일성이 1931년 중국공산당에 입당한 이후 사회주의 운동의 일환으로 만주 일대에서 항일 운동을 했다고 보는 입장이 많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김일성의 항일 무장투쟁은 중국공산당의 항일투쟁과 불가분의 관계였다”고 말했다.


김일성 항일운동 의심
 
김일성의 대표적인 항일운동으로 꼽히는 것이 1937년 6월 4일의 ‘보천보전투’이다. 당시 25세이던 김일성이 동북항일연군 산하 유격대 100여명을 이끌고 함경북도 갑산군 혜산진 보천보를 하룻밤 점령했다는 것이다.

전투 규모에 대해선 논란이 있다. 두산 백과사전엔 “경찰주재소·면사무소 등을 공격하고 격문을 살포했다. 일경 7명이 죽었다”고 했지만, 한홍구 성공회대 역사학 교수는 저서에서 “일본군이나 경찰은 한 명도 죽지 않았다. 군사적 의미로만 보면 소규모”라고 평가했다. 김일성은 1940년까지 무장투쟁을 하다 이후 소련에 머물렀다. 한때 독립운동가 ‘김일성 장군’은 김 전 주석이 아닌 다른 인물이라는 주장도 나왔지만, 80년대 후반부터 역사학계에선 신빙성을 의심 받는 분위기이다.

서울대 국사학과 권태억 교수는 “보천보전투는 당시 충격을 준 것이 사실”이라며 “김일성의 독립운동은 그의 광복 이후 행적과는 별개로 인정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원로 역사학자는 “김일성이 남한 민중에게 준 고통과 범죄행위를 생각하면 그의 독립운동을 우리가 먼저 인정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북한은 이승만 전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하지 독립운동가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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