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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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비원 지안스님의 쓴소리 단소리 철학칼럼.
 ⓒ2005 Sundayjournalusa

우리의 속담에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요즘에는 아주아주 옛말이 되고 말았다.

초등학교에서 숙제를 안이해온 학생을 조금만 채벌을 가해도 초등학생이 선생님이 폭력을 쓴다고 휴대폰으로 112 경찰에 신고하는 현실이며 중고등 학교에는 학생이 선생님을 폭행하는 일들이 빈번한 것이 한국의 교육 현실이며 학생이 선생님께 약간의 꾸지람을 듣거나 가벼운 채벌을 받고 집에 가서 부모에게 말하면 학부모는 학교로 달려와 야단법석을 떠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부모들은 어떠한가 초등학교부터 네가 그렇게 공부해서 어떻게 대학교를 가겠냐? 하면서 애들을 들볶는다. 교육이란 지식을 가르치고 품성을 길러주는 것이다. 한국의 어머니들의 교육 열의는 지나치다 못해 병적이며 세계의 어느 나라 어머니들도 따르지 못할 것이며 맹자의 어머니도 울고 갈 정도이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고 인간이다. 인간은 인간답게 길들여 살아야 한다.

이것은 인간도 우주 자연의 만물 중에 한 동물이다. 그러면 자연과 같이 공존하며 하늘과 땅의 이치와 만물의 이치를 깨달아 더불어 함께 공존하는 법을 배우고 익혀야 하는 것이다. 옛날 어떤 선비가 외아들을 두었는데 이 아들을 세상의 누구보다도 현명하게 키우고 싶었다. 그래서 당대의 최고 학자를 수소문하여 문하생으로 보내며 학문을 성취하기 전에는 결코 돌아올 생각을 말라고 했다.

몇 년이 지나 아들이 보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던 선비는 아들을 찾아가서 얼마나 배웠냐고 물었다. 아들은 말하기를 지금 하늘 천(天) 땅 지(地)를 배우고 있을 뿐입니다.라고 했다. 선비는 화가 많이 났다. 몇 년 동안에 겨우 천자문의 첫 구절인 천지(天地)를 익히고 있다면 아들의 머리도 문제지만 스승의 자질도 형편없다고 생각하고 당장 아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그런데 아들의 학문을 시험해 보니 자기보다 더 높을 뿐만 아니라 당대 손꼽을 정도의 학식이었다. 놀란 선비가 까닭을 묻자 아들은 천지간(天地間)의 일을 배우는데 어찌 몇 년 만에 마치겠습니까. 아직도 배우는 중입니다. 다시 선비는 아들을 데리고 가서 스승에게 사죄하였으나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는 이야기가 있다. 교육은 지식을 가르치고 품성을 길러주는 것이라 했다.

지식은 사람이 슬기롭고 지혜롭게 사람답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고 품성은 슬기와 지혜를 각자 자기에게 맞게끔 익혀 가는 것이라 본다. 한국의 교육은 어떠한가 무조건 많이 외우고 쓰는 교육이다. 지금은 디즈텔 시대이다. 암기의 방법은 4-50년 전의 방법으로 이 것은 오로지 모든 표현 방법이 글로 써서 나타냈으므로 이 시대는 문자시대이다.

이것이 차츰 발전하여 아날로그 시대가 오므로 현실을 보고 듣는 방법의 교육이었고 이제는 모든 것이 자동화 아니 그 이상의 최첨단의 디즈텔 교육의 시대이다.
이것은 사고력 창작력 표현력이 하나로 일치하는 교육이다. 그래서 미국의 교육 방법을 한국에서는 선호했다. 주입식 암기 교육이 아닌 자기의 잠재력을 서서히 길러내는 자연환경 친위적인 교육을 그런데 요즘 한인 사회의 교육방법이 서서히 한국식으로 바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교육적 모성애가 살아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부모들은 조기교육의 열풍에 편승해서 미국에 보내고 미국의 부모들은 방학 때 한국의 학원을 보내고 오고가고 정말 복잡하다. 중국 북경에 있는 어떤 초등학교는 한국에서 유학 오는 학생들만으로 한 학년에 한반씩을 만들었다고 한다.

부모들의 지나친 관심은 우리의 어린 아들과 딸들을 동물적으로 길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과외와 주입식 암기 등으로 밀어붙이면 당장은 학교에서 시험성적이 우수할지 모르나 장래에는 크나큰 장애가 된다. 우리가 한국에서 영어를 얼마나 많은 시간을 배웠는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수많은 시간을 단어와 문법을 외우면서 열심히 해 왔건만 미국에 와서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가.

약간의 도움은 되었을망정 공부한 시간에 비유한다면 보잘 것 없다. 이 것이 주입식 암기의 폐단이다. 요즘 한국에는 미취학 아동들 즉 유치원 학생들까지 외국 영어 연수 붐이며 국내에서도 영어 교육이 지나쳐 광적이라고 한다.

인간의 본성을 보는 데는 두 가지의 경해가 있다.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이다. 결국 양자는 교육으로 교화시킨다. 본래 선하다면 악에 물들지 않고 선함을 발휘하도록 교육할 것이요, 악하다면 교육을 통해 바른 길로 이끌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불교의 교육관은 인간의 심성을 성선이나 성악에 치우쳐 보지 않는다.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백지로 보는 것이다. 하얀 종이 위에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이 바로 불교의 교육관이다. 이것은 참된 성품이 있음을 알려주고 그것을 스스로 찾아내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참 가르침이다. 참교육은 가정에서 이루어진다.

호박덩굴에는 호박이 달리고 사과나무에는 사과가 달린다.
호박덩굴에 오이가 달리고 사과나무에 배가 달리는 법은 세상천지에는 없다는 자연의 참 진리다.
그 부모에 그 자식이란 말 명심하여야 한다.

<자비원 지안 스님  213-268-2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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