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민중 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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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비원 지안스님의 쓴소리 단소리 철학칼럼. 
    ⓒ2005 Sundayjournalusa

1961년 5·16 군사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 독재정권은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경제성장에 집착하였고 솟구치는 민주화 운동에 대한 극심한 탄압으로 일관하였다.

저곡가 저임금 정책은 경제성장을 위한 필수 조건이었으며 유신헌법과 긴급조치는 민주화운동 세력을 압살하고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우선 수단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화운동은 전국적으로 그칠 줄 모르고 전개되었다.

마침내 한계에 도달한 박정희 독재정권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자신의 심복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의해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 때부터 군 부내에서 자신의 세력을 규합해 온 전두환을 주축으로 한 신 군부 일당은 오히려 민주화 과정의 과도기를 틈타 자신들의 집권 시나리오를 준비하여 착착 진행하고 있었다.

12·12 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장악한 다음 당시 분출되고 있던 전 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민주화운동세력과 야당의 정적을 제거해야 했다. 그 제물이 광주였다. 민주화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어 온 곳이며 야당의 정적 중에서 가장 많은 대중적 지지를 받고있던 김대중의 정치적 고향이 전라도 인 것이다. 전라도 광주는 70년대 박정희 독재정권 때부터 희생양이었다.

철저히 소외되었고 경제에서는 낙후되었으며 우리 민족을 다시 동서로 가르는 지역감정의 볼모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고장은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마저 내던지며 투쟁해 온 민주투사의 고장이었다. 전두환 신 군부 일당의 학살만행에 맞서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시민전체가 일심동체로 저항하였던 것은 정신적 측면에서든 사회경제적 측면에서든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피의 진압으로 5·18민중항쟁은 끝났지만 그 후 청년학생을 비롯한 양심적인 민주인사들과 민중운동에 의해 전두환 일당을 역사의 심판대에 세움으로서 항쟁의 정당성은 온 천하에 입증되기에 이르렀다. 5·18민중항쟁은 우리 민족의 역사에 면면이 이어져 내려온 자발적인 민중운동의 소산이다.

조선말기의 갑오농민혁명, 일제 강점기의 3·1운동과 광주학생독립운동 등 온갖 탄압에도 굴하지 않은 민족해방투쟁,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4·19학생혁명 등의 정신을 이어받은 밑으로부터 개혁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난 항쟁이었던 것이다. 5·18민중항쟁은 깨어있는 민중이 민주사회 발전의 원동력임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나라의 민주화와 민족의 자주적인 통일 그리고 평등 세상을 향한 사회진보 운동의 일대 전환점으로 자리잡았다.

5·18민중항쟁은 당시에는 피의 진압으로 패배하였지만 이후 전개된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유신체제를 계승한 제5공화국 정권의 부도덕성을 만천하에 드러낸 증거가 되었고 나아가서는 불법적인 무력으로 정권을 찬탈한 정치군부 세력을 심판하였으며 마침내는 부당한 권력의 횡포에 맞선 민중의 자위적 무장항쟁이 국민저항권의 적극적 행사로 인정되기에 이르렀다.

5·18민중항쟁 시기의 수준 높은 나눔과 자치, 연대의 공동체 정신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의 훌륭한 모범이자 압제에 저항하는 세계 진보적인 사람들의 가슴에 가장 경이로운 민중항쟁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이제 5·18민중항쟁은 저항과 단죄를 넘어 나눔과 자치, 연대의 공동체 실현을 위해 우리 모두가 그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는 것은 물론 인류 역사의 숭고한 가치로 승화시켜나가야 할 우리 모두의 유산이다.

군사정권이라는 무거운 탄압 속에 오랫동안 숨죽이고 살았던 한국의 풀뿌리들은 1980년 광주를 통해 어느 한 계층에서만 외쳐왔던 민주 자주 인권 통일이라는 기치를 그들 가슴 내부에 자연스레 구호로 형성시켰으며 ‘민주주의’나 ‘인권사상’이 ‘민중’이라는 계층에 비로소 합류할 수 있는 시민 민주주의를 획득하게 되었다.

학교 교과서를 통해 몇십년 걸려도 깨닫지 못한 진정한 인권에 눈을 뜨게 됐으며, 부당한 권력에는 저항권이 있다는 민주주의의 기본적 원리를 깨달았고 민주주의는 남이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키고 창조한다는 진리를 알게 되었다. 지난 어두운 시절을 뒤로하고 이제 광주는 항쟁의 대명사로서만 아니라 한반도를 포함한 제3세계의 민중, 인권운동에 강력한 변혁의지를 심어주었다.

5·18광주민중항쟁은 부당한 국가권력에 대한 시민저항으로 출발, 자치공동체의 형성 및 정의를 위한 자기희생과 반인륜적 학살에 저항하는 세계적 인권운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책임자가 권력을 장악한 참혹한 상황에서도 ‘5·18 진상규명운동’과정에서 범국민적 저항으로 승화된 움직임은 세계 곳곳에 제2의 광주 공동체정신을 탄생시켰다.

5·18민중항쟁의 진상규명, 학살책임자 처벌, 명예회복, 기념사업, 배상이라는 5대 원칙이 필리핀의 민중혁명과 태국, 인도네시아의 민주화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고 대만의 계엄령 해제 및 민주화 추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또한 중국과 베트남의 개혁을 촉진시키는 요인으로도 작용하였고 동구의 민주화에도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광주항쟁이 기폭제가 된 한국의 민주화는 세계에 5·18민중항쟁이 돋보였던 것은 항쟁 당사자들이 폭도로 몰리고 구속되는 암울했던 시절에도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반 독재투쟁에 나섰으며 마침내 제3세계의 진정한 민주화를 출발시켰다는 점이다.

<자비원 지안 스님  213-268-2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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