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훈령 제18호
김형욱 중정부장과 윤필용 보안사령관 사이의 갈등은 무엇인가를 설명해야 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통령 훈령 18호’를 이해해야 한다.대통령 훈령 18호는 김형욱이 윤필용에게 원한을 가지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무장공비사건 터지기 꼭 40일 전인 1967년 12월 10일, 원주 야전군사령부에서 박 대통령이 주재한 <전국 대간첩 관계 치안관회의>로 거슬러 간다.
그 회의에는 박 대통령을 위시하여 중앙정보부장, 정부관계부처 장관, 대검찰청 검찰총장, 각군 참모총장, 군단장 및 전체 사단장, 보안사령부 사령관, 중앙정보부 각 도지부장, 각 지역 검사장과 검찰지청장, 치안국장과 각 도경찰국장 등 권력기관의 기라성 같은 수장들이 총 집합했다.
그 자리는 당시 빈번히 발생하던 무장간첩 침투 문제들을 토의하고 그간의 유공자들을 포상하며 대통령의 특별 지시와 훈시를 듣는 중요한 회의였었다. 박 대통령은 각 기관별 브리핑이 끝나자, 예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작심하고 나왔던지 유난히 힘을 주어 “앞으로는 대간첩 대책 문제는 보안사령부가 전적으로 맡아서 통제하시오! 그리고 중앙정보부는 대간첩 문제에서 손을 떼시오!”라는 엄명이 떨어졌다.
우리들(중정간부)은 맑은 하늘 아래서 벼락을 맞은 듯한 느낌을 받고 멍하니 앉아 있었던 것이다. 특히 김형욱 부장이 얼굴이 상기되어 일어서서 “각하! 그건 안됩니다. 간첩문제는 중정에서 맡아야 합니다……” 라며 말을 계속하려 했다.
김 부장이 채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박 대통령의 일갈이 또 터져 나왔다. 박 대통령은 “ 김 부장” 이라고도 안 부르고 “형욱이, 앉아! 대통령이 하라는 대로 해요. 관계 장관은 이 문제를 정식 명령으로 하달 하시오!”라고 말했다. 장내는 모두 숨을 죽이고 긴장해 있었고, 중정의 모든 간부들은 김 부장을 비롯해 충격 속에 빠져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대통령의 이 한마디는 <대통령훈령 제18호>에 담겨졌고, 그 명령은 김형욱의 하늘을 찌르듯 하던 기세를 꺾고 중앙정보부의 막강했던 조정기능을 빼앗아서 보안사에 넘겨줌으로써 윤필용에게 승리를 안겨준 판결문처럼 되어 버렸다. 윤필용 사령관이 완승을 거머쥐고 회심의 미소를 머금을 때 졸지에 참패의 늪에 빠진 김형욱 중정부장은 이를 갈면서 피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눈물을 흘린 지 40여일 만에 뜻하지 않았던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터짐으로써 복수의 칼을 빼어들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고 내심 쾌재를 부르며 공비들의 청와대 습격으로 닥칠지도 모르는 국가적 위난을 담보로 하여 윤필용 사령관을 궁지에 몰아 넣을 일대 반격을 시도하려 했던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