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사단 기금 45만달러… 은행 주식투자로 둔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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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사단 미주 위원부 백영중 위원장.
 
ⓒ2005 Sundayjournalusa

최근 동지회가 4분 5열로 분쟁을 겪고 있는데 이번에는 미주 한인사회의 가장 오래된 수양단체인 흥사단마저 내부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원래 LA지역에서 흥사단은 미주 위원부나 LA지부가 흥사단의 이름으로 한 마음 한 몸처럼 활동해왔다. 그런데 지난해말 LA지부의 이병도 회장이 새로 선출되면서 미주 위원부(위원장 백영중)가 LA지부(지부장 이병도)와 흥사단 기금을 두고 한 판 벌일 태세로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있다.

흥사단 기금은 현재 약 45만 달러 정도로 미주 위원부가 관리하고 있는데 LA지부는 이 기금을 흥사단 활동자금으로 쓰기 위해 내 놓으라는 것이고, 미주 위원부 측은 일반 활동 자금으로는 쓸 수 없는 기금이라며 반대하여 왔다. 그러던 차에 더 큰 사건이 벌어졌다. 흥사단미주 위원부가 보유하고 있던 기금을 적법 절차를 걸치지 않고 한인계 은행 주식에 투자한 것이다. 

이를 두고 LA지부 측은 “기금 관리에 의혹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미주 위원부 측은 “하자가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돈에 대해서 청렴했던 도산과는 달리 그가 세운 흥사단의 후손들이 지금 돈을 서로 갖겠다고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다. 저 하늘에 도산이 이를 어떻게 볼 것인가!

제임스 최<취재부 기자> [email protected]


흥사단 미주 위원부가 관리해온 약 45만 달러의 기금은 원래 공채보상비와 과거 카탈리나 스트릿과 팜스프링스에 소재했던 단소 등을 매각한 대금 등이다. 원래는 50만 달러가 넘었는데, 지난번 국민회관 기념관 보수비용에 5만 달러를 기증하는 바람에 지금은 약 45만 달러 정도로 알려지고 있다.

이 기금은 지금까지 태평양 은행에 CD로 예치되어 왔었는데, 지난 6월 말 예치기간 마감을 두고 미주 위원부의 백영중 위원장의 주도하에 태평양 은행의 주식 매입으로 전격적으로 전액 투자됐다. 이 같은 기금을 전액 태평양은행 주식으로 투자된 사실은 아는 사람은 백영중 위원장을 비롯한 미주 위원부 임원 3명 정도였다.

그러나 이 같은 흥사단 기금 전용 사건이 알려지게 된 것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 발생했다. 흥사단 사무실은 지난해까지 윌셔가에 세들어 있다가, 이병도 LA지부장이 새로 선출되면서 LA한인회관으로 사무실을 이전했다. 따라서 흥사단의 우편주소도 한인회관으로 변경됐다. 한인회관내 흥사단 사무실 주소는 흥사단미주 위원부와 LA지부가 공동으로 사용케 된 것이다. 그런데 이병도 LA지부장은 미주 위원부 앞으로 온 우편물을 허락도 없이 뜯어 보게 됐다.

LA지부는 은행계좌를 나라은행으로 정하고 있었고, 미주 위원부는 태평양은행에 계좌가 있었다. 그런데 이병도 LA지부장은 태평양 은행에서 미주 위원부 앞으로 날라 온 우편물을 수취인의 허락도 받지 않고 임의로 개봉했다. 이 같은 우편물 개봉에서 태평양은행측에서 보내온 스테이트멘트에서 흥사단 기금이 주식투자로 전환된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평소 미주 위원부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졌던 이병도 LA지부장은 이 같은 사실을 자신과 절친한 선배 흥사단원이며 한인단체장인 Y 씨에게 알렸고, 이들은 이를 빌미로 미주 위원부에 대해 기금의 사용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한마디로 미주 위원부의 약점을 잡고 공갈 비슷한 행위를 벌인 것이다. 이를 두고 다급해진 미주 위원부의 임원이 Y씨 사무실을 드나들며 협상을 벌였다. 미주 위원부 측은 이병도 지부장보다는 Y씨가 뒤에서 조종을 하고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틈에선가 흥사단 기금의 주식투자 사건은 흥사단 단원들에게 한 다리 두 다리 건너 전해졌다. 그러나 이들 미주 위원부나 LA지부의 양쪽 흥사단원들은 이런 사실들이 밖으로 새어 나가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다.

왜냐하면 가뜩이나 흥사단의 이미지가 좋지 않은 현실에서 이런 사건이 터진다면 더더욱 치명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미주 위원부나 LA지부 어느 쪽도 깨끗한 입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에서 썩으면 냄새가 밖으로 나가는 법이다.

지난 19일 서울의 흥사단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흥사단의 죽음을 애도한다” “흥사단의 도덕적 죽음을 애도하며” 등등의 글이 많이 올라왔다. 최근 흥사단은 자신들이 기획한 국토대장정 프로그램에 참가할 학생들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행사를 취소해 이를 준비해왔던 많은 학생들을 울리고 있다는 것이다.
흥사단을 창설한 도산 안창호가 가장 강조한 것은 바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였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흥사단은 이미 흥사단이 아니다. 그래서 네티즌들은 ‘흥사단 조가’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약속위반은 한국에서 뿐만 아니다. 미국에서의 흥사단은 민족의 유산을 거짓으로 농락했다. 국민회의 유산을 지켜 주겠다고 서약까지 한 흥사단이 남의 재산을 사유화 하고는 내몰라 했다. 지난 1909년 미주한인사회의 최초의 한인단체 연합체로 출발한 국민회가 세월이 지나면서 70년대 새이민 시대가 열리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 들게 됐다.

공식적으로 국민회 마지막 회장은 안승화(작고) 씨였다. 그리고 국민회 마지막 회의는 1989년 1월 20일 오후 1시30분 LA코리아타운의 세종회관에서 열렸다. 참석자는 안승화 회장을 포함해 이화목(작고), 안정옥 이사, 구융회 서기 그리고 김희선 재무 등 5명이었다. 이날의 주요 결의사항은 국민회의 해산을 앞두고 재산을 청산하는 문제였다. 당시 국민회 재정은 ‘홈 세이빙 오브 아메리카’ 은행에 정기예금으로 기탁된 금액(만기일 금액 45,118달러 25센트)과 국민회관에 보존된 귀중한 유물과 사료 등이었다.

이날 회의에서 재산을 LA 총영사관이나 유관 동포 단체 등에 위탁 시키자는 논의를 한 결과 국민회와 가장 유사한 흥사단으로 결정했다. 청산기금은 국민회관을 나성 한인연합 장로교회 측에 매각해 선불로 받은 45,000 달러와 앞으로 받을 미수금까지를 흥사단에 기탁하기로 했다.이 당시 국민회가 흥사단에게 남은 돈을 기부하는 조건은 ‘국민회의 이름으로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이었다. 또 유물과 사료는 흥사단이 위임을 받아 훗날 조국이 통일되면 책임 있는 기념관에 영구 보존되도록 한다는 조건이었다.

그리고 회의는 이 결의사항을 집행하기 위해 안승화 회장, 구융회 서기, 김희선 재무 3인에게 전권을 위임했다. 이들 3인은 그해 3월7일 왕관식당에서 모임을 갖고 흥사단에게 국민회의의 청산 결의문을 발송하고 흥사단측의 공식 수락서를 받은 후 청산업무를 집행키로 했다.

당시 흥사단미주 위원부는 송재승 위원장의 명의로 이 모든 조건을 수락한다는 공문를 국민회로 보냈다. 이 과정에서 돌발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안승화 회장이 흥사단에게 모든 것을 전달하기 전 교통사고로 갑자기 사망했던 것이다. 이 바람에 서기를 맡았던 구융회 씨는 안 회장의 역할까지 맡아야 했다.
국민회와 흥사단은 1989년 5월1일 한국회관에서 국민회 청산에 따른 기금 전달식을 가졌다. 이로써 국민회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그 유산은 흥사단이 책임지기로 했다.

국민회 청산 이후 15년이 흘렀다. 그러나 흥사단은 국민회가 해산하면서 유언으로 남긴 ‘국민회 장학금’을 한번도 실시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흥사단은 국민회로부터 이양 받은 기금에 대해서 한번도 공개적으로 설명한 적도 없다. 흥사단의 한 관계자는 “국민회로부터 전달 받은 기금으로 흥사단 단소(회관) 구입비에 썼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흥사단은 국민회가 해산하면서 기증한 청산기금으로 ‘국민회 장학금’으로 동포사회에 혜택을 주라고 한 사명을 까맣게 잊어 버리고 자신들의 단소 구입비로 사용했다는 것은 도산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행동이었다.

한마디로 국민회 돈을 꿀꺽 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또 국민회관에 보존된 유물이나 사료들에 대해서도 흥사단은 국민회로부터 사료보존에 대한 위임을 받아 놓고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오늘날 국민회관 사료 분실에 대한 공모자적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만약 흥사단이 제대로 위임사항을 지켰더라면, 오늘날 국민회관 사료보존 문제도 말썽이 없었을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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