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호 원로 교수의 쓴소리 “친일행위 규정은 시대 상황 이해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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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종호 연세대학 특임교수.

한국의 원로문학평론가인 원로 문학평론가인 유종호(71·사진) 연세대 특임교수가 지난달21일 발간된 문예지에 현 정권의 ‘친일청산’ 운동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는 일제 식민지 40여년 동안 온전하게 항일운동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면서 “일제 부역자들에게 남겨진 죽음, 망명, 부역의 선택지 중 죽음과 망명을 택하는 지사들도 있지만 그런 선택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친일”이란 의미를 ‘일본 정부에 협조하면서 우리민족에게 분명한 해를 끼친 것’으로 보아야 한다면서 예를 들어 친일파로 낙인 찍힌 서정주의 “친일 문서가 아무런 울림이나 영향력을 갖지 못했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며, 그의 유명한 시집 ’화사집’도 “단 백 부를 찍었을 뿐”인 상황에서 “그의 (친일적인) 글을 읽고 군인이나 군속으로 지원해 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유 교수의 글이 발표되자 많은 네티즌들도 이에 동의하고 나섰다. 한 네티즌은 “가슴에 와 닿는 말씀이군요. 삶을 위한 일시적 친일은 그렇게 혹독하게 몰아 부치는 사람들 지금의 친공 친북은 권력(현 기득권층)을 잃은 후의 변명거리는 준비 해놨겠지. 가소로운 사람들 남의 눈에 티는 어찌 그리 잘 찾아 내면서 자기들 눈의 들보는 왜 모르는지 남을 탓하기 전에 너희들 몸이나 좀 깨끗이 하거라. 교수님 종종 자기과오를 모르는 인간들에게 회초리 좀 드세요”라는 글을 올렸다. 한편 또 다른 네티즌은 “그렇게 사정 다 봐줘서는 국가의 기강이 바로 서지 않는다…유종호 교수 자신이 흠집이 많아서 합리화 시킬려고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찌 친일 시를 만들고 이땅의 젊은이를 선동하여 전쟁터로 몰아낸 자들을 옹호하려는지”라면서 반대의견을 나타내기도 했다.

<편집자 주>


원로 문학평론가인 유종호 특임교수가 문예지 ‘문학과 사회’ 겨울 호에 기고한 ‘안개 속의 길-친일 문제에 대한 소견’을 통해 ‘친일청산’에 대해 뼈아픈 비판을 가하고 나섰다. 유 교수의 글은 조선일보, 동아일보, 연합뉴스 등을 포함 많은 언론들이 중요기사로 다루었다. 동아일보는 “생존 몸부림에 친일낙인 정당한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그는 “최근 친일인사 명단을 작성한다는 움직임을 보면서 문득 과거의 유병진 판사를 떠올렸다”고 했다. 유 판사는 1958년 당시 진보당 강령이 국시에 위반된다며 검찰이 사형을 구형한 사건에 대해 1심에서 진보당원 대부분에게 무죄를 선고해 ‘용공 판사’로 몰렸던 인물이었다. 유 교수는 예전에 유 판사가 쓴 ‘재판관의 고민’이란 책을 인용했다. 책에는 유 판사가 6·25전쟁 중의 부역자들을 재판하면서 느낀 고뇌가 담겨 있다.

“많은 이가 서울을 사수할 테니 안심하라는 정부의 말을 믿고 남았다가 살기 위해 부역했다. 이런 시민들한테 죽음이나 망명을 택하지 않았다고 사형이나 무기 같은 중형을 선고하는 게 과연 바른 것인가?” 유 판사는 인민군의 위협에 마지못해 심부름을 해 줬다가 부역자로 끌려온 열 네 살 소년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유 교수는 “일제 말기 국민총동원 체제의 숨 막히는 분위기를 유년기에 겪어 본 마지막 세대로서 최근의 친일 논쟁에 대해 소회를 밝히는 게 의무라고 생각했다”며 “그 시절은 일본에선 전멸해도 포로가 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오고, 조선의 아이들은 학교 대신 군용 송탄을 채취하러 다니던 ‘광풍의 시기’였다”고 적었다.

유 교수는 친일문제 연구가 임종국 씨가 펴낸 ‘친일문학론’에 대해 ‘노작’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여기에 거론된 작품은 대부분 ‘국민총동원’ 시기에 나온 것이다. 당시 살았던 거의 모든 문인이 친일문학 명단에 올라 있다. 시국에 끌려 다니며 글 몇 편을 내놓아 친일문인으로 낙인 찍힌 경우도 허다하다”고 주장했다.

유 교수는 “가령 시인 김상용의 경우 꽃집으로 호구지책을 삼다가 일제 말기에 ‘영혼의 정화’ 등 3편의 글을 쓴 것을 놓고 친일 명단에 올리는 게 공정한 일인가”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특히 “식량 공출과 징용에 열을 올린 관리들의 친일이 무거운 것은 자명하지만, 거기에 비하면 문학이라고 할 수도 없는 허드레 저급 선전 문건을 쓴 문인들을 중죄인 취급하는 것은 형평성 없는 가혹한 저울질”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는 유 교수의 글에서 친일행위를 따지는 작업과 병행해, 혹은 그에 앞서 친일 행위자를 대량 생산한 원천적인 사회적 조건을 성찰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한 지적을 꼽았다. 여기서 유 교수는 조선을 붕괴시키고 결국 일제의 강제 병합으로 몰고 간 원인들을 주시할 것을 주문한다.

그는 “고종이나 순종 같은 암주(어리석은 임금)와 부패한 그 수하자들에게 순종할 수밖에 없었던 주민들은 신참 외래 점령군들과 식민주의자들에게도 똑같이 복종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친일행위 이전에 그런 친일행위를 양산한 원인과 그 원인 제공자들에 대한 일종의 ’심판’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한일병합과 함께 자결하는 바람에 충정공이 된 민영환이 녹두장군 전봉준이 중앙 탐관오리의 대표자로 거론한 3명 중 한 명이며, 독립운동가로 꼽히는 조명희는 그 자신은 소련으로 망명했으며, 조선에 남겨진 가족들에게는 천추의 한을 안겨다 준 사실을 꼽았다.

유 교수는 나아가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일제에 순종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상황에 대한 이해 없이 현재의 잣대로 비방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친일인명사전 편찬과 같은 지금의 친일행위 청산 운동에 대해서도 시종 비판적인 논조를 유지했다.

특히 문학계의 친일청산 운동과 관련, ’친일문학론’을 저술하는가 하면, ’친일작품집’을 편찬한 고 임종국 씨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했다. 그는 임종국 씨가 “그나마 두 개의 민족지(조선, 동아일보)와 해방 전 우리 문학지의 최고 수준을 보여준 ’문장’ ’인문평론’이 폐간된 것은 역설적이지만 (임종국 씨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하면서 “그러지 않았던들 ’친일문학론’ 저자의 노력은 한결 고단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나아가 친일문학가의 대표주자처럼 거론되는 시인 서정주와 관련해서는 “(친일) 잡문 몇 편을 썼다는 것 때문에 (문인들을) 중죄인 취급을 받게 하는 것은 형평성 없는 가혹한 저울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전제하면서 서정주의 “친일 문서가 아무런 울림이나 영향력을 갖지 못했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며, 그의 유명한 시집 ’화사집’도 “단 백 부를 찍었을 뿐”인 상황에서 “그의 (친일적인) 글을 읽고 군인이나 군속으로 지원해 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 교수는 자신과 비슷하게 암울한 일제말 식민지시대를 경험했음에도, 지금에 와서 친일파 청산운동을 벌이는데 사람들에 대해서는 “산전수전 다 겪은 흠집 많은 늙은 혼백들”이라고 혹독한 비판을 가했다. “삶 경험이 얕은 젊은이들이 친일파 규탄에 열을 올리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흠집 많은 늙은 혼백들이 그러는 것을 보면 솔직히 인간에 대해 절망을 느낀다”고 말한 문학평론가 유종호 교수(연세대)가 ’친일청산’ 운동에 대해 매카시즘을 비판하기 위한 ‘逆 매카시즘’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유 교수의 글에 대해 ‘이용재’라는 네티즌은  “35년으로 길어진 이유를 생각해 보라 이 멍청아. 너희들의 굴종과 부역으로 그렇게 된 것이다. 너희들 북한주민에 대해선 뭐라고 하나. 이미 몇 년인데 아직까지 그러고들 있나?”이라고 글을 올렸다. ‘박상배’는 “참 좋은 지적이다. OO 같은 지적에 광분하는 무리들보다 훨씬 설득력 있고 알맞은 지적 같다.일제 36년은 한일합방 전후를 합치면 40여년의 세월이다.독립투쟁과 민족을 위한 희생과 헌신을 한 분들이야 우리후세가 길이길이 추앙해야 할 것이지만 자기 일신을 위해 적극적으로 친일을 한 모리배 같은 노~옴들과 그시기에 어느 직위에 있었기 때문에 친일로 질타하는 것은 구별해야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또 그는 “혹자들은 독일 괴뢰 정권인 프랑스의 비시 정권 하의 부역자들에 대한 프랑스의 엄격한 심판을 거론하면서 일제 때의 친일인사에 대한 심판을 이야기 하지만 비시정권은 4년 정도 유지되었지만 일제강점기간은 그 시대의 평균수명을 볼 때 40여년은 2세대에 해당하는 기간이다 이 기간동안 막일이나 농사를 짓거나 독립운동을 하지 않고 이 나라에 살았다면 전부 친일파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상봉’이란 네티즌은 “가슴에 와 닿는 말씀이군요. 삶을 위한 일시적 친일은 그렇게 혹독하게 몰아 부치는 사람들 지금의 친공 친북은 권력(현 기득권층)을 잃은 후의 변명거리는 준비 해놨겠지. 가소로운 사람들 남의눈에 티는 어찌그리 잘 찾아 내면서 자기들 눈의 들보는 왜모르는지 남을 탓하기 전에 너희들 몸이나 좀 깨끗이 하거라. 교수님 종종 자기과오를 모르는 인갼들에게 회초리좀 드세요”라고 부탁했다.

한편 ‘한우진’이란 네티즌은 “맞습니다. 그러니 김희선이 같은 인간 말종이 돌연변이처럼 기어 나오는 것 아닙니까… 곧 죽어도 독립군 후손이랍니다. 일제 압박의 40여년 가까이 그 영향을 안 받았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그나마 진정으로 나라를 걱정하고 위하는 분들이 계셨기에 광복이 이뤄졌겠지요… 이 드런 넘들은 왜 과거에 연연하며 목을 걸고 발광을 하는지 제 정신이 박힌 자들이라면 결코 용납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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