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춤’ 명가 강선영 LA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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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미주예총회장 이병임)이 창립 2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로 제 35회 전통문화의 올바른 정립과 총결산 ‘한국 무용예술의 어제와 오늘’을 주최한다. 이번 행사에는 지난동안 미주예총의 전통문화 뿌리 내리기 작업에 참여해 온 본국의 인간문화재 및 원로 무용가와 그 분들의 춤맥을 이어가고 있는 전수자들이 LA를 방문하다. 특히 “태평무” 전수자인 인간문화재 강선영 여사와 한국의 현대무용의 선구자인 육완순 여사가 직접 이번 행사에 참여해 우리 생애에 다시 보기 힘든 예술의 한 단면을 소개할 예정이다. 또한 이번 행사에서 우리 무용예술의 다양한 형태와 예술적 배경, 그리고 춤의 형성 과정과 역사가 담긴 스승들의 모습을 영상자료로 접하고, 전수 제자들의 재연과 해설을 통해 우리춤이 지닌 예술적 깊이를 밀도 있게 고찰하게 되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행사는 미주한국무용협회(회장 김응화) 주관과 한국문화원 후원으로 으로 오는 3월 6일과 7일 (오후 6시)
한국문화원 소극장 ‘아리홀’에서 개최된다. 이번 행사에 특별히 참여하는 강선영 여사의 예술을 소개한다.


-편집자



















 ▲ 사진설명
 ⓒ2005 Sundayjournalusa

지난해 4월 22일 서울의 국립극장 해오름 극장 1,2,3층 관람석을 가득 메운 가운데 강선영의 살풀이춤은 일순간에 수천 관객의 시선을 한 곳으로 강도 높게 집중시킨 감동의 드라마 한 편이었다. 대형 스크린에 비친 푸른 하늘은 모든 관객을 광활한 우주의 품안으로 깊숙이 빨아들였다. 현란하리만큼 푸른 하늘! 환희와 평화가 가득한 우주! 그 가운데 사뿐이 떠오른 천상의 여인, 맵시가 선녀처럼 아름다운 강선영 선생의 신비스런 출현으로 관객의 눈은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고 가슴은 감탄의 전류가 흐르면서 출렁거렸다.
살풀이춤 때 선영 여사의 얼굴은 달님이었는데 태평무를 출 때는 해님으로 변했으며 태평무의 열기가 뜨거워지자 그 얼굴에는 함박 웃음꽃이 만발했다. 남색 치마 속에 곱게 숨어 있던 흰 버선발이 사뿐 사뿐 내디딜 때 마다 가속도가 붙어 신바람을 일으켰다. 춤사위의 발디딤이 잦아지며 고저 장단의 율동을 토해 냈다.
“명무” 또는 “명가”로 불리는 인간문화재 강선영(姜善泳·82)은 모친이 떨어지는 선녀를 치마폭으로 받는 태몽을 꾸고 태어났다고 한다. 지난해 2005년은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예능보유자인 그가 무용을 배운 지 꼭 70년째 되는 해다. 그가 ‘강선영 불멸의 춤’이라는 공연으로 ‘춤의 고희’를 기념했다. 제자들과 함께하는 마지막 무대였다.
당시 그는 조선일보의 박돈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저는 양념이고 제자들을 봐 주세요. 문화재는 세상을 버려야 무대에서 은퇴하는 겁니다. 저 혼자서야 얼마든지 춤출 기회가 있지만 이렇게 제자들과 어울리는 건 마감하려고요. 제자들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입니다.”라고 말했다.
강선영의 모습을 기자는 <그 선물은 짧고 강렬하다. 총 3부로 꾸며질 공연에서 강선영은 살풀이와 태평무를 각 2~3분씩 보여줄 예정. 너무 짧다고 했더니 “아쉬워야 나중을 기약하죠”라는 말이 돌아왔다. 4년 전 척추수술을 한 후유증으로 허리 통증을 달고 산다는 명무의 표정은 왕비처럼 온화했다.>고 표현했다.

















 ▲ 사진설명
 ⓒ2005 Sundayjournalusa

경기도 안성 딸부잣집에서 태어난 강선영은 열두 살이던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교사의 권유로 춤에 입문했다. 스승은 한국 근대춤의 시조로 불리는 한성준(1874~1942)이었다.
절세의 고수이자 명무였던 한성준으로부터 배운 춤들은 “스스로 성품을 다스리지 않으려면 춤추지 말라”는 가르침과 함께 대물림됐다. 강선영은 “스승이 사라지면 2대만 지나도 춤이 변질되는데 태평무도 그렇게 될까 걱정”이라고 했다. 한성준이 무속장단에 춤을 붙여 만든 태평무는 빠른 장단에 발의 움직임이 두드러진 ‘발춤’이다. “몸 전체가 노는 게 아니라 정신과 발이 만나 노는 춤”이라는 설명이다.
1940년 한성준무용단의 부민관 공연으로 데뷔, 평생 동안 100여개국에서 1000회 넘게 무대에 올랐다. 무용협회 이사장, 한국예총 회장, 14대 국회의원 등을 지내기도 한 강선영은 제자들을 칭찬한 적이 없다고 한다. 다만 그가 침묵을 지키면 잘 췄다는 의미. “태평무는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것처럼 춰야 아름답다”는 그는 “하지만 땅을 밟아야 춤을 출 수 있듯이, 무용 밖 세상에도 관대해야 좋은 춤꾼”이라고 했다.
강선영은 1960년 한국 무용인으로서는 최초로 파리에서 개최된 세계민속예술제에 참가하였고 1963년 서라벌 예술대학 무용과 강사로 후배 양성에 전념하였다. 1965년 5월 제12회 영화제에 무용극 “초혼”을 출품, 문화영화 작품상, 1973년 국민훈장목련장, 1976년 10월에는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연예부문(무용)을 각각 수상했다. 1987년 사단법인 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 부회장에 선임되었고 1991년에는 단국대학교 경영대학원 예술경영과를 수료하였다. 1992-1996년 제14대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활동하였다.
태평성대의 왕과 왕비의 춤만으로 표현한 것중 왕비의 춤만 재현한 것이 태평무이며 강선영은 1988년 12월 1일 중요 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중요무형 문화재 제92호 태평무


중요무형 문화재 제 92호로 지정되어 명가 강선영 선생에 의하여 전승되고 있는 태평무는 당대 최고의 명무이신 故 한성준 선생께서 구성하였다. 전래의 왕십리 당국에 특이한 무속장단을 바탕으로 한 태평무는 경쾌하고 특이한 발짓춤에 손놀림이 우아하고 섬세하며, 절도가 있어 우리 민속춤만의 정중동의 흥과 멋을 지니고 있다.
태평무가 어느 시기부터 전승되었는지 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문헌 기록이나 국악인들의 구전으로 보아 약 100년 전부터 추어 왔던 춤임에는 틀림 없다. 태평무의 내용은 풍년과 나라의 태평성대를 축복하는 뜻을 담고 있다. 또한 이 춤은 다른 민속춤에 비해 춤사 위가 퍽 특이하고 개성적이며 예술성이 높다. 한성준의 태평무는 임금과 왕비가 나라의 태평을 기원하는 춤으로 만들어 진 것이다.
태평무의 음악은 진쇠, 낙궁, 터벌림, 섭채, 올림채, 도살풀이, 자진도살풀이 등으로 우리 민속음악의 대표적인 가락과 장단이 고루 어우러져 매우 독특하며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또한 경기 무속장단을 기본으로한 복잡한 장단이나 춤사위 디딤새로 보아 이춤이 궁중과 직결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태평무라는 이름에서 빼앗긴 나라에 사는 춤꾼의 소원이 보이고, 그가 가져온 장단과 춤사위의 근본이 경기도 도당굿이었다는 점에서 오랜 기원을 읽을 수가 있다. 한성준의 태평무를 직접 사사한 유일한 전통춤꾼으로 명가 강선영(姜善泳)이 있다.
태평무의 역사적 유래는 중요문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레악 및 제 39호 처용무보유자인 김천홍을 비롯하여 국악계 원로들의 고증과 이 춤을 배웠던 고 한영숙과 강선영선생에 의해서 해명되고 있다.
국악계 원로들의 이야기로는 과거에 한성준(韓成俊. 1875 – 1941)이 추던 태평무에 대한 기록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책자들이 분실되어 조원경의 <무용예술> 만이 전하고 있다. 고증자들은 이 춤을 한성준이 경기지역 무무(巫舞)를 재구성한 것이라고 했다. 춤의 내용은 왕과 왕비, 나라의 태평성대를 축원하는 것으로 장단이 복잡하여 음악을 알지못하고는 춤을 만들 수도 출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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