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 김영남 납치 확인, 북한 대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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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납치피해자 요코다 메구미(사망)의 남편으로 알려진 김영남씨는 고등학교 때인 1978년 8월 전북 군산시 선유도 해수욕장에서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치된 것으로 밝혀져 새삼 북한의납치극이 국제적 관심을 모았다. 납치 당시 군산기계공고 1학년에 재학중이던 김씨는 여름방학을 맞아 친구들과 함께 선유도 해수욕장에 놀러갔다가 불량배와 다툰 뒤 실종됐다. 함께 놀러간 친구 권모군(당시 17세)에 의하면 김씨가 5일 오후 7시경 선유도 해수욕장에서 여자친구들을 희롱하고 있는 불량배 김모씨와 다투다 해변으로 끌려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군의 어머니는 아들이 익사 사고 등으로 죽은 줄만 알아왔었다. 지난 27일 미의회 청문회에서 일본인 납치에 대한 북한의 만행이 다시 폭로됐다. 다음은 고교생 김영남 납치가 알려진데 대한 북한측의 대응을 인터넷 데일리NK가 전망했다.


-편집자


















▲ 12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김영남씨의
어머니와 누나 .(데일리NK제공)


북한이 일본인 납치피해자 요코타 메구미(납치 당시 13세 ? 중학생)씨의 딸이라고 소개한 김혜경(18세, 북한 거주)양과 1978년 전북 군산시 선유도 해수욕장에서 실종된 김영남(당시 16세)씨 가족과의 유전자(DNA) 정보가 일치해 혈연관계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써 북한이 당시 고교생이었던 김씨를 납치한 사실이 증명돼 남북관계에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남북의 대응 경로를 전망해 본다.


“납북자 송환” 언론 플레이


남한 정부는 최근 “납북자-국군포로 송환을 전제로 대북 사회간접자본(SOC)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언론에 흘렸다. 이를 두고 ‘대북정책에 있서 상호주의를 부분적으로 수용한 것 아니냐’는 관측과 ‘지방선거용’이라는 의혹이 있었다. 그런데 되돌아보면, 김영남 씨 납북 사실이 언론에 크게 공개될 것을 알고 미리 선수를 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남한 정부는 납북자 송환과 신원 확인 노력에 소홀했고 김영남 씨의 신원을 확인하는 과정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DNA 감식 결과 발표는 일본 정부와 한국의 납북관련 단체인 <납북자가족모임>(회장 최성용)의 끈질긴 추적과 노력의 결과다.
남한 정부는 이번 DNA 검사결과를 언론에 보도되기 훨씬 전에 알고 있었을 것이며, 납북자 문제 해결에 정부가 소홀했다는 여론이 비등할 것을 예상 다소 파격적이라 할 수 있는 ‘납북자-국군포로 송환 조건부 SOC 지원’ 계획을 수일 전에 흘렸을 가능성이 높다.











 ▲ 기영남군

이미 대책이 세워졌을 것이지만 남한 정부는 다소 난처한 입장에 처해있다. 일단 자국민 보호의 차원에서 강력하게 진상확인과 신병인도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5.31 지방선거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이 이번 조사결과를 수용하느냐, 김영남 씨가 어떠한 태도로 나오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수 개월간 남북관계가 경색되더라도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각오는 되어있을 것이다.


‘김영남 의거입북’으로 몰아


2004년 12월 북한이 보내온 메구미 씨의 유골은 가짜라고 일본 정부가 발표했을 때 북한은 강력히 반발했다. 장문의 ‘진상보고서’라는 것을 발표하기도 했다. 화장된 유골은 DNA 검사가 불가능하다며, 일본의 복수의 기관에게 의뢰했지만 가짜 의견을 제시한 곳은 한 개 기관이며 나머지는 판정불가 의견을 보냈다는 점을 ‘신뢰성 미비’의 근거로 삼았다. 오히려 공세적으로 일본에 해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번에도 북한의 예상 대응 경로는 크게 DNA 검사결과를 인정하느냐 마느냐로 우선 갈라진다.


끝까지 잡아뗄 가능


먼저 인정하지 않을 경우. 2004년 12월 결과처럼 ‘일본의 과학기술을 신뢰할 수 없다’거나 무작정 ‘반북(反北) 모략극’이라고 외쳐댈 가능성이 있다. 사실 이번 DNA 검사 결과는 일본보다는 남한과 관련된 문제이다. 요코타 메구미를 납치한 사실은 이미 시인했고, 납치문제와 관련해 일본과의 관계는 최악의 상태라 북한으로서는 더 이상 아쉬울 것도 없다.





기영남이 교육시킨 간첩 한국군 근무


한국인 납북자 김영남씨가 북한에서 교육시킨 전 북한 공작원이 현재 한국군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7일 일본의 납치피해자 가족회에 따르면 김영남 씨는 1997년 여성 공작원과 함께 부부로 위장해 남파된 최모씨의 대남 교육을 담당했다.
남파 직후 한국에서 체포된 최씨는 당국의 조사에서 김영남씨와 홍건표(당시 17세·천안상고 3년), 이명우(17세·천안농고 3년), 이민교(18세·경기 평택 태광고교 2년), 최승민(17세·경기 평택 태광고교 2년)씨 등 당시 함께 납북된 한국인들에게 대남 교육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대남공작을 전담하는 조선 노동당의 대외연락부 소속이었던 최씨는 김정일 정치군사대학에서 훈련 받은 경력도 있으며, 현재는 전향후 한국군에서 대북 정보수집 담당으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일본 납치피해자 가족회는 일본 경찰 당국에 최씨 조사를 추진해 줄 것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근 일본 정부가 일본인 납치피해자 요코타 메구미 씨의 남편일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한 김영남씨는 1978년 납북된 후 대남 공작원 양성 파트에서 일했다고 복수의 전 북한공작원들이 전했다.

북한에게 문제는 남한 정부. ‘믿을 수 있는 제3국의 조사기관에 의뢰하자’는 식으로 시간을 끌 가능성이 있지만 언젠가는 드러나게 될 거짓말이다. 질질 끌다 나중에 들통나면 더 큰 비난을 받겠지만, 현재 남한 정부가 북한의 입장을 두둔하는 편이니 ‘나중에 들통나도 된다’는 생각으로 일단은 시간을 끌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DNA 검사 결과를 인정해야만 한다. 북한의 상당한 딜레마다.


‘의거 입북’ 주장


김영남 씨는 지금까지 북한 공작원 양성소에서 김철준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해왔다. 북한은 DNA 검사 결과가 확정 발표되면 그가 납치된 것이 아니 ‘의거입북’ 하였다고 주장할 것이다.
제3국의 조사기관에 의뢰하지 않고 당장 이렇게 주장할 가능성도 있다. 김영남 씨가 김철준이라는 이름으로 2004년 11월 일본의 방북 조사단을 직접 면담한 것을 보면 벌써 그러한 준비가 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 김영남 씨는 DNA 검사를 위한 시료 채취 요청에 ‘특수기관에 종사하고 있어서 안 된다’고 거부한 바 있다.


남한으로 송환할 가능성


2002년 김정일이 고이즈미 일본총리에게 말했던 것처럼 “일부 망동주의자들의 소행”이라고 책임을 떠넘기며 납치 사실을 시인하고 김 씨를 남한으로 송환할 수도 있지만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 일단 자유세계로 돌아온 김 씨가 그동안 북한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면 미칠 파장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그는 공작원 양성소의 교관으로 일하면서 북한의 대남공작 관련 정보도 상당히 알고 있을 것이다.
북한은 이럴 경우 혈연을 통한 인질을 담보로 잡아놓는다. 남한에서 활동하다 체포된 북한의 공작원들이 쉽게 전향하지 못하는 이유는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이라는 이름의 인질’ 때문이다. 김영남씨가 북한 내에 그만한 혈연적 관계가 형성되어 있는지 여부가 관건이다.


보상받고 송환 가능성


북한이 김영남 씨를 송환할 묘수(?)가 생긴다면 막대한 보상금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범죄행위를 보상하는 것에 대한 남한과 국제사회의 비난여론이 높겠지만, 남한 정부는 어떻게든 이를 시도할 것이다. 보상금이 아닌 어떤 이름으로든 송환의 대가를 북한은 요구할 것이고 남한은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가능성은 높지 않다. 어쨌든 김영남 씨를 송환하였을 때의 파장이 너무 크다. 북한은 궁지에 몰렸을 때 황당한 거짓말을 뻔뻔하게 들이대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갑자기 김영남 씨가 실종되었거나 사망하였다는 식으로 나올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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