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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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의 본고장 잉글랜드에서 ‘붉은 악마(Red Devils)’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뜻하고 범위를 유럽으로 넓히면 벨기에 국가대표팀이 되지만, 한국에서는 대한민국 대표팀 응원단을 의미한다.
텔레비전 앞에서 얌전히 대표팀을 응원하던 한국 축구 팬들이 경기장으로,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은 4년 전의 일이었다. “12번째 선수”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2002 한일 FIFA 월드컵에 ‘출전’한 붉은 악마는 당시 대표팀 감독이었던 거스 히딩크의 용병술과 함께 한국이 준결승까지 진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붉은 악마의 역사는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5년 말 전국 각지의 축구팬들은 온라인 게시판을 통해 국가 대표팀을 응원할 서포터 클럽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모으게 된다. 이들은 97년 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이 시작되자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고 같은 해 8월부터 공식적으로 ‘붉은 악마’라는 이름을 내걸고 응원에 나섰다.
얼핏 듣기에 생소했던 이 명칭은 1983년 멕시코에서 열린 FIFA 세계 청소년 선수권대회에서 준결승에 진출한 한국 대표팀을 외국 언론이 ‘붉은 악령 (Red Furies)’이라고 부른 데서 비롯됐다. 축구팬들은 당시 대표팀이 세계를 놀라게 했던 것처럼 한국 축구가 세계의 강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이름을 붙인 것이다.
출범 당시만 해도 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그리 곱지만은 않았다. 한국은 분단 이후 공산주의 노선을 걷고 있는 북한과 반 세기 동안 적대관계를 유지해 왔고, 60년대에 등장한 군사독재 정권은 정치적인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반공 이데올로기를 내세웠다.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붉은 색은 금기시됐고 좌파 인사들은 이른바 ‘빨갱이’로 내몰려 탄압을 받았다.












90년대 들어 민주화가 이루어지긴 했지만 수십 년 동안 한국인들을 괴롭혀 왔던 레드 컴플렉스가 사라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한국 대표팀은 94년 미국 월드컵에서 흰색과 푸른색 유니폼을 착용했고, 붉은 악마가 축구장에 자리잡은 이후에 열린 98년 프랑스 대회부터 붉은색 상의를 입기 시작했다.
비록 소규모였지만 프랑스 원정에 나선 붉은 악마는 리용의 제를랑, 마르세이유의 벨로드롬, 파리의 파르크 데 프랭스에서 열정적인 응원을 보냈다. 한국은 이 대회에서 1무 2패의 초라한 성적을 거두고 1라운드에서 탈락했지만 붉은 악마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같은 해 말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 2년 후 시드니 올림픽까지 붉은 묽결은 그칠 줄 몰랐다.
안방에서 열린 2002 한일 FIFA 월드컵은 붉은 악마를 위한 무대였다. 대회 개막 전까지 본선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던 한국이 부산에서 폴란드를 2-0으로 제압하자 전국이 축구 열기로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전국 각지의 도심 광장에서 붉은색 티셔츠를 입은 수백만 인파가 자발적인 응원을 펼친 가운데, 붉은 악마는 경기장에서 카드 섹션을 이용한 조직적인 응원을 선보였다.
이탈리아와의 16강전을 앞두고 북한이 36년 전 잉글랜드에서 이탈리아를 상대로 일궈낸 기적을 상기시킨 붉은 악마의 부적 “AGAIN 1966”. 덕분에 사기가 꺾인 아주리 군단을 연장전 끝에 2-1로 물리친 대한민국 대표팀은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 “아시아의 자존심”을 지키며 당당히 준결승에 진출했다. 독일에 1-0으로 아쉽게 패하는 바람에 “꿈은 이루어진다”는 한국의 소망은 물거품이 되어버렸지만, 홈 어드밴티지를 극대화한 붉은 악마의 아이디어는 또 다른 캠페인으로 이어졌다.














결승 진출이 좌절된 후 터키와의 3위 결정전은 사실 승패에 큰 의미가 없는 경기였다. 대구 월드컵 경기장을 수놓은 “[email protected]리그(K리그에서 만나요)”라는 카드 섹션에는 월드컵이 가져온 축구 열기가 폐막 이후에도 국내 리그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붉은 악마의 염원이 담겨 있었다.
4년이 지난 지금 이곳에서 당시의 열기를 느끼기는 쉽지 않지만 붉은 악마는 조용히 독일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프랑스와의 조별 리그 두 번째 경기가 열리는 라이프치히에 캠프장을 차리는 한편 독일 현지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 교포들과 협력해 8년 전 프랑스에서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원정 응원을 펼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제 한국 대표팀은 지난 대회 4위의 기록이 운이 아닌 실력이었고 원정 경기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1라운드 첫 상대인 토고는 물론, 개최국 독일과 인접한 프랑스와 스위스의 수 많은 축구 팬들이 자국 대표팀을 응원하기 위해 독일 땅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올 여름 프랑크푸르트, 라이프치히, 하노버는 붉은 악마에게 새로운 도전의 무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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