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심회 간첩단 사건’ 총책 장민호씨 미국활동 총력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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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일심회’ 핵심멤버로 간첩혐의를 받고 있는 미국시민권자 장민호(44·미국명 마이클 장)씨는 지난 1985~87년 샌프란시스코(SF)에서 중앙일보 지사 기자로 활동하면서 당시 중앙일보 SF지사장이었던 김한길 현재 열린우리당 원내 대표와 함께 7개월 동안 지내 이들의 관계가 어떤 방향으로 지속됐는지 의혹으로 대두되고 있다.
김한길 대표는 장씨가 고정간첩으로 한국에서 활동할 당시 그의 부친상이 나자 장례식에 직접 참석해 문상할 정도로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어떤 형태로든 두사람이 계속 교류를 해왔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본보 특별취재반이 수집한 자료에 따르면 김한길 대표는 지난 1985년부터 87년까지 샌프란시스코 중앙일보 지사장으로 활동했다. 김 대표는 지사장이 되기 전 1982년부터 85년까지 한국일보 SF지사에서 기자생활을 했다. 김 대표가 한국일보 기자를 그만두고 85년 중앙일보 SF 지사장이 되면서 다음해인 86년에 장씨를 기자로 채용했다. 적어도 당시 김 대표는 기자로 뽑은 장씨와 7개월 정도를 함께 지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이 중앙일보를 떠난 시점이 비슷하다. 김 대표는 1987년 미국생활을 청산하고 올림픽국제학술대회 대변인을 맡아 귀국했다. 김 대표가 떠나자 장씨도 7개월 간의 중앙일보 기자를 그만두고 LA로 이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LA에는 친북한계로, 2003년에 친북활동으로 체포된 예정웅씨, ‘신한민보’를 발행하고 있던 김운하, 김일성 대학에서 가르쳤던 홍동근 목사, ‘조국통일상’을 수상했던 양은식 박사, 선우학원 박사 등이 거주하고 있었다. 한국 국가정보원이 발표한 미시민권자 장민호를 주축으로 한 ‘일심회’ 간첩단 사건에 미정부 관련 정보당국도 미주에서의 장씨 활동을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소식통은 “지난 2003년 FBI가 체포한 LA한인 미시민권자 예정웅씨 사건과 유사한 수사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특별취재반

















 ▲ LA한인타운

 


지난 1987년 샌프란시스코 중앙일보 지사 기자 생활을 청산한 장민호씨는 1989년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방북 후 미국에 돌아와 영주권자 신분으로 미군에 입대해 4년간 주한미군으로 용산기지에서 파견돼 근무했다. 그는 미군 제대와 함께 1993년 시민권을 취득했다. 장씨가 북한에서 모종의 지령과 훈련을 받았을 것으로 보이는 이력이다.
장 씨가 중앙일보 기자생활을 청산한 87년은 국내나 미주동포사회는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시기였다. 당시 ‘6월 민주화 항쟁’으로 국내가 뜨겁게 달아올랐으며, ‘6.29 선언’ 발표 등으로 직선제가 실시돼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등 3김 대선후보들의 선거운동이 미주사회까지 파급돼 한편으로는 동포사회 분열양상까지 보이기도 했다. 당시 야권 단일화가 실패하는 바람에 결국 노태우 정권이 출범했다.
한편 노태우 대통령은 미국을 방문해 선언한 대북완화정책인 소위 ‘7·7선언’은 미주사회에 큰 변화를 몰고 왔다. 이 선언으로 해외한인들의 북한 자유왕래가 허가되어, 그동안 숨어서 몰래 방북해 이산가족을 만났던 많은 동포들이 공개적으로 방북길에 나서는 계기가 됐다. 그 전까지는 비록 이산가족을 위해서만 방북했을 경우라도, 이 사실이 알려지면 ‘친북계’ 또는 ‘빨갱이’로 오인당하는 시절이었다.













93년 미군 전역 후 시민권 획득
지난 1979년부터 캐나다에 본부를 둔 친북단체인 ‘해외교포이산가족찾기회’(대표 전충림)는 당시 자신들이 실시한 방북사업은 ‘7·7선언’이 나오기 까지 미국동포사회에서 약 1천여명이 북한을 다녀왔다고 밝힌 적이 있다. 노태우 정권의 ‘해외동포 북한왕래허가’는 미주한인사회에서 방북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됐으며 1988년 서울올림픽대회 이후인 11월부터는 LA 에서 김운하, 김충자씨 부부가 설립한 <전금관광여행사> 등을 포함한 단체들이 방북사업을 벌였다.
그러나 이같은 분위기는 북한 공산집단의 해외지역 동포사회 침투를 더 용이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북한정권은 미주의 친북계를 강화시켜 고정간첩 대상자를 방북케 하고, 이들을 점조직으로 관리해 사실상 고정간첩끼리도 서로의 임무를 모르게 했다. 
이번 국정원 발표에서 장씨는 샌프란시스코에서 기자생활을 그만 둔 87년 북한 대외연락부 소속 김형성(가명)에게 포섭된 것으로 돼 있다. 장씨는 성균관대 국문학과 재학중 82년에 미국유학길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가 미국에서 어느 대학을 다녔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장씨가 중앙일보 근무 당시 샌프란시스코에 있었던 한 언론인은 “그가 미국에서 어느 대학을 다녔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없다”면서 “기자 생활을 한 것도 신분문제 때문으로 안다”고 전했다. 장민호씨와 같은 성균관대 81학번으로 전직 야당 의원 보좌관을 지낸 바 있는 박 모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장민호는) 82년도에 미국 가서 버클리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고 알고 있다. 다방면에서 지식이 해박한 친구”라고 말했으나 확인되지 않고 있다.
1962년생인 장씨는 미국으로 도미한 후 버클리대(UC버클리대와 다른 사립전문대학)를 다녔다는 이야기와 함께 UCLA, UC 버클리 또는 캘리포니아 코스트 대학에 다녔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기자생활을 한 장씨를 기억하는 일부 인사들은 장씨가 “기자 생활 중 반정부 성향과 반미성향을 보인 것은 당시로서는 젊은 세대들이 한 때 지니는 감정이라 특별히 친북성향으로 생각지 않았다”면서 “그는 문학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그의 전공이라 당연했다”고 말하고 있다.
당시 김한길 대표는 중앙일보 지사를 운영하면서 문학청년의 기질을 발휘하였기에 기자로 들어 온 문학청년 장씨와 여러모로 가까웠다는 것이 당시에 샌프란시스코에서 기자생활을 했던 사람들의 기억이다. 그러나 장 씨가 1989년에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 장민호

 

비밀리에 북한을 방문한 이유
장 씨는 몇 년 뒤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고 IT전문가로 변신해 샌프란시스코 남쪽 실리콘 밸리에 나타났다. 실리콘밸리 방위산업체나 정보업체에는 아무나 취직할 수 없다. 그러나 미시민권자이면 영주권자보다 한층 수월하다. 지금은iPark로 변경된 당시 정보통신부 산하 기관인 KSI에서 1998년부터 99년까지 마케팅매니저로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간은 그가 일심회를 구축할 때였다. 국정원에서도 장씨가 이때 한국의 IT정보를 북한으로 보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정보당국과 가까운 한 소식통은 “장 씨가 미군에 입대한 것은 방북시 북한에 포섭되어 지령대로 따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면서 “당시 시민권자가 되기 위해 가장 빠른 방법이 미군에 입대하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당시 시민권을 받기 위해 일부 한인 불법체류자들도 편법으로 미군에 입대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미시민권자가 되면 북한방북도 영주권자보다 수월하고, 첨단 방위산업체에도 근무할 수 있다.
iPark의 한 관계자는 “요즈음 여러 곳으로부터 장씨 관련한 질문을 많이 받고 있다”면서 “솔직히 우리들은 장 씨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고 밝혔다. 장 씨와 당시 근무했던 사람들은 지금 없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장 씨가 한국의 IT정보를 유출할 가능성에 대해서 마케팅 매니저로서는 직접 고급정보를 다루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에서 한 전자회사에 다니는 매니저급 한인은 “당시 매니저급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첨단정보를 빼낼 수 있다”고 밝혔다. 만약 사전에 훈련을 받은 사람이라면 첨단정보를 빼내기란 ‘식은 죽 먹기’라는 설명이다.
북한이 장씨를 이용해 오래전부터 치밀한 전략을 수립했다면 가능한 일이고 실제로 북한은 그런 방법으로 지금까지 수많은 고정간첩을 훈련시켜 온 것이 과거 간첩사건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 미시민권자인 그를  자유롭게 간첩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훈련시켰을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장씨도 빠른 방법을 택하기 위해 미군에 입대했으며, 주한미군에 근무하면서 정보를 북한에 제공했을 것으로 보인다. 용산 미 8군기지에 근무한 그는 남한에서 암약하고 있는 고정간첩들과 쉽게 접선했을 것으로 정보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한 정보관계자는 “미군인 그가 다른 사람들보다 쉽게 접촉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말하고 있다. 전역 후 미시민권을 취득한 그는 미국에 돌아와 LA를 포함해 샌호세, 시애틀, 뉴욕, 워싱턴DC, 필라델피아 지역 등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지역들은 미주지역에서 친북세력들이 주로 활동하는 도시들이다.
본보 취재진이 취재를 통해서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장씨의 행적이 89년 방북 이후에 특별한 활동을 나타내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한 정보전문가는 “고정간첩일 경우 거의 노출이 안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면서 “남에게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위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 예정웅
고정간첩의 철저한 ‘위장술’
워싱턴DC에서 ‘인사이드월드’라는 인터넷 뉴스를 제작하는 언론인 손충무씨도 그의 사이트에서 “샌프란시스코에서 기자 생활을 할 무렵 장민호를 만나본 주변 사람들은 장민호가 당시에는 간첩인줄 몰랐다. 한국 내부 사정에 상당히 많은 불만을 갖고 있었으며 미국에 대해서도 불만을 털어 놓으며 비판했다. 당시 우리는 기자의 입장에서 불만이 많은 것으로 알았지 간첩인줄은 몰랐다”고 적었다.
또 손 발행인은 “그가 샌프란시스코에 머문 시기, 북한 스파이 혐의로 미국 연방수사국(FBI) 에 체포된 예정웅 씨도 LA근처에 살았는데 그의 영향 때문인지 장씨는 LA로 이사를 갔다”고 했으며 “한때 장민호와 가깝게 지내던 친북 인사들에 의하면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지는 않았지만 북한을 돕는 일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장 씨를 아는 사람들은 LA에 있을 때 장민호의 집을 함께 방문했는데 북한의 몇몇 고위층 인사들과 찍은 사진과 그들로부터 받은 선물도 보여 주었다”며 “그래서 그가 북한에서 대우를 받는 인물 정도로 생각했다”고 밝혔다. 또 손 발행인은 “그(장 씨)가 뉴욕을 방문할 때는 유엔의 북한 대표부를 방문, 북한의 지령을 받거나 자신이 노력한 일들과 비밀 정보를 넘겨주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본보 취재진이 수집한 정보에는 장씨가 LA에서 2003년 북한에 정보제공으로 FBI에 체포되어 2년 형기를 복역했던 예정웅씨와의 관계는 아직 나타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장 씨 사건과 예씨 사건과는 여러모로 유사한 점이 많다.
우선 장 씨도 미주에서 중앙일보 SF지사 기자로 근무한 적이 있는데, LA에서 예씨가 포섭한 사람도 중앙일보 미주지사 기자 최 모씨였다. 공교롭게도 이들이 중앙일보 기자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이 지령에 따라 언론사에 침투했는지, 언론사 기자를 포섭했는지는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북한정권은 미주사회의 언론분야에 많은 노력을 기우려 침투공작을 벌여 왔다는 것이 미정보 관계자들의 이야기이다. 한 소식통은 “이번의 장민호씨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바로 2003년 예정웅씨 체포사건이다”면서 “예씨는 북한정권의 지시로 언론계에 조직원을 침투시켰다”고 설명했다.


왜, 중앙일보 미주지사인가?
지난 2003년 2월 4일 로스앤젤레스를 기반으로 친북, 통일운동을 해오던 예정웅씨(당시 58, 미국명 잔 예)가 “북한을 위한 정보제공, 간첩혐의(나중 간첩혐의는 제외)”로 미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에게 전격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해 동포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한국계가 국가안보 혐의로 미 당국에 체포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로 당시 미국과 북한은 핵문제로 긴장상태를 조성하고 있었기에 더욱 충격이 컸다.
FBI는 당시 LA 서쪽 산타모니카 시의 한 아파트에 거주해 온 예씨를 국가안보를 저해한 혐의로 체포, LA연방구치소에 수감하고 집안에 있던 컴퓨터 CD 등 각종 서류들을 증거물로 압수했다. 당시 LA 타임스는 서울태생의 예씨가 북한정부의 스파이로 일해 온 혐의를 받고 있으며 미국의 비밀서류를 입수해 평양에 전달하려 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보도했다. FBI는 오래전부터 예씨의 행적을 추적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FBI는 공식 보도자료에서 예씨가 지난 97년부터 3년동안 북한 공작원(agent)으로 활동해 왔고 평양의 공작금을 받아 미국내에서 비밀정보 입수활동을 벌였다고 밝혔다.


LA코리아타운 활동 근거지 마련
특히 예씨는 당시 중앙일보미주지사에 근무하는 최 모기자와 인터넷신문의 이(여) 기자를 포섭해 북한에게 정보를 제공한 것으로 기소장에 나타나 동포사회를 놀라게 했다. 이들 최 모기자와 이씨 등은 예씨의 주선으로 수차례 북한을 방문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씨는 LA 코리아타운 중심가인 8가에 사무실을 차려 놓고 북한에 정기적으로 정보를 보냈으며 이 기자를 미정부기관에 취직을 주선한 증거들이 적발되기도 했다. 이 사무실에는 중국 베이징의 북한대사관 연락처가 있었고, 수천 달러가 봉투에 들어 있는 것도 발견됐다.
예씨는 2000년 유럽을 여행하면서 주위에는 결혼 기념차 여행이라고 밝혔으나 오스트리아 빈에서 북한 대사관 직원들과 교류했음이 드러났다. 또한 체코의 북한 대사관측과도 교신했다.
예씨가 체포되자 대부분 한인 언론들은 그가 70~80년대 반독재 운동과 통일운동에 활발했으나 90년대 들어서는 생업에만 종사하고는 친북활동을 하지 않고 LA에서 조용히 샌드위치점을 운영해왔다고 보도하면서 그를 체포한 것은 반미운동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예씨가 조용히 살아왔다고 되어 있는 기간에 실제로 그는 중국, 오스트리아, 체코 등의 북한대사관측과 교류와 교신을 통해 정보들을 보낸 것으로 밝혀졌고, 그 자신도 재판에서 유죄를 시인했다. 그는 90년대 들어와서는 친북계열과 거리를 두었다고 알려졌지만 오히려 북한에 정보를 제공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의 사무실에서 발견된 비밀암호문에는 “비밀임무” “CIA” “원자핵시설” “펜타곤” 등등의 한국어 코드단어가 있었다. 또 그 사무실에서 발견된 북한 지령문에는 “높은 곳에 있는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어라” 등이 있었고, “요원을 포섭하라”는 문구도 나왔다.


동유럽 북한대사관과 잦은 접촉
예씨는 외국정부 에이전트 등록법 위반 및 외화 밀반입 혐의 등으로 유죄를 시인한 후 지난 2004년 11월에 연방법정(재판장 조지 킹 판사)에서 2년 실형과 2년의 보호감찰형 그리고  총 2만달러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선고공판에서 조지 킹 담당판사는 판결문을 통해 “예씨가 팩스와 이메일을 통해 북한에 신문기사와 잡지 등을 보내거나 에이전트 2명을 고용했던 점 등은 불순한 의도로 판단된 만큼 2년의 실형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예씨는 지난해 1월10일 연방 교도소에서 복역을 시작해 지난 5월 15일 출소했다. 
미국 동포사회는 최근 남북문제와 통일문제로 인해 여러 집단으로 나눠지고 있으나, 친북사항에 대해서는 애매한 점들이 도사리고 있다. 자신을 드러내놓고 ‘친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진보주의자’, ‘통일운동가’ 또는 ‘평화운동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는 ‘친북성향자’가 많다. 특히, ‘평화운동자’들 중에는 “북한핵이 자주권의 발동이다”라고 주장해 자신들의 ‘평화’와는 이율배반적인 자세를 보이기도 한다.
북한 김정일 집단은 미주지역의 ‘친북성향’ 단체나 개인들을 여러 계층으로 분류하여 점조직으로 형태로 관리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노무현 좌파정권을 지지하는 한인들이나, 민노당 등을 지지하는 한인들을 구별하면서 관리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정부도 9.11 사태 이후 북한 등 적성국가들에 대한 정보사찰을 엄격한 규정에서 실시하고 있는데 북한에 대한 정보제공이 미국의 안위에 중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다. 특히 친북반미 활동자나 단체들에 대해서는 미국법이 정하는 범위내에서 특별감시를 실시하고 있다.
한 정보 관계 소식통은 “이번 한국에서의 장민호 ‘일심회’ 386 관련사건은 미수사당국에서도 조사에 나설 것으로 본다”면서 “그 동안 내사한 사건이나, 수사진행에서 발견된 관련사항을 분석해 사전 차단에 나설 수도 있다”고 전하면서 “미주에 위장간첩이 많다”고 말했다.
한편, 장씨는 국내도 돌아온 직후부터 정치권에 문을 두드리기 시작해 여권 J의원 등과도 수 차례 접촉한 사실이 드러났다. IT 전문가로 위장한 그는 성균관대 선·후배들을 중심으로 인적 네트워크를 구성했으며, 현재 이들은 정치권, 재계, 언론계 등에 두루 분포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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