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단 사건 일심회 장민호씨 미국활동 총력 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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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국 검찰에서 간첩혐의로 체포되어 구속 수감 중인 것으로 알려진, 이른바 ‘일심회’ 사건의 핵심인물인 미국 시민권자 장민호(44·미국명 마이클 장)씨가 지난 1986년 샌프란시스코(SF)에서 중앙일보 지사 기자로 활동할 당시 전세계적으로 충격을 몰고온 뉴스가 있었다. 바로 ‘최은희-신상옥 북한탈출 미국망명 사건’이었다. 이들 두 사람은 86년 3월 15일에 오스트리아 빈 주재 미국대사관에 망명했으며 그해 5월 15일에 미국 워싱턴DC에서 기자회견을 해 또 한번 세계적인 뉴스가 됐다. 북한납치 8년 만에 자유세계로 탈출한 이들은 “김정일이 직접 납치를 지시했다”고 말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고정간첩 지령은 유명하다. 재미동포가 연관된 장민호씨의 간첩혐의 사건도 김정일의 작품으로 알려지고 있다. 장민호씨는 지난 1987년 당시 중앙일보 SF지사장이었던 김한길씨(현재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신문사를 떠나자, 자신도 기자직을 떠나 LA로 와서 당시 지하에서 친북활동을 하고 있던 미시민권자 김 모씨와 접촉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까지 장씨의 미국내 행적이 잘 알려지지 않는 것도 장씨가 의도적으로 한인사회에 잘 알려진 친북 활동자들과는 거리를 두었기 때문이며 모든 것을 점조직과 비밀암호문을 이용해 활동했기 때문이다.


<특별취재반>
















 ▲ 장민호 관계를 부인하고 있는 김한길의원

미국 LA 등지서 암약하는 친북단체
500여개 평통 등 국가기관에도 침투


간첩 혐의 받고 있는 ‘일심회’ 장민호씨 미국 ‘입국부터 출국까지’ 추적
FBI, CIA, 국토안보부, 국무부 등 미국내 관계기관 장씨 행적 파악 총력


열린우리당 김한길 원내대표와 80년대 중반서부터 친분관계 유지


장민호씨 행적에 대해 미국의 정보당국도 그의 미국내 행적과 한국과의 연계 등을 광범위하게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보당국과 연결된 한 관계자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장씨는 미국내 한인사회에서 알려진 친북사람들과도 접촉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질 만큼 은밀한 행적을 보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또 이 관계자는 “북한 김정일은 여러 단계로 미주지역 친북 활동자를 구분해 지령을 내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면서 “친북 활동자들도 자신들이 어느 단계에 있는지를 모르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밝혔다. 말하자면, 상대의 활동능력과 성과에 따라 고정간첩을 분류하여 지령을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위장 친북단체
50개 이상 암약

간첩사건을 담당하는 미국 FBI 내부에서도 장씨의 행적은 비밀문건으로 처리되고 있어 일반 정보 관리자들은 접근할 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장씨의 행적을 수사하는 부서는 국토안보부와 CIA를 포함해 주한미대사관, 국방부와 국무부 등의 협조체제로 관리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장씨의 최초 미국 입국비자 단계에서부터 출입국 관계 서류 등을 포함해 문서에 나타난 모든 기록들을 확인하고 있다.
현재 남가주 지역에서 활동하는 친북성향의 단체와 위장된 진보통일단체들은 약 50여개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1980년대부터 주로 미시민권을 취득한 재미동포들이 이산가족방문이라는 인도적 목적으로 북한을 방문하면서 일부는 고정간첩으로 또 다른 동포들은 친북협조자로 활동하게 되었다. 90년대부터는 미영주권자들도 방북이 확대되면서 미국내 친북지하조직은 더욱 확대되기 시작했다.











 ▲ 장민호
미국내 친북조직이 양성적으로 변모하기 시작한 것은 김대중(DJ)정권 출범 후였으며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던 2002년 대선이 계기였다. 한국에서 촛불시위로 반미친북활동을 주도한 세력들이 ‘여중생범대위방미투쟁단’을 만들어 그해 12월 DJ 정권의 비호아래 LA를 비롯해 워싱턴, 뉴욕 등을 방문하면서 노사모 회원들이 ‘노사모’ 현지 조직을 구축했다. 이 당시 영화배우 명계남씨도 직접 미국에 와서 노사모 조직 구축에 열을 올렸다. 또한 노무현 정권은 DJ정권 때부터 손을 대기 시작한 LA평통에 대해서도 ‘노사모’ 회원들을 심어 놓기 시작해 평통을 친북성향으로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한 예로, LA평통은 김광남 회장이 재직할 당시 인도적 명분이라는 구실로 염소를 북한에 보내면서 방명록에 ‘김일성 찬양’을 적어 동포사회에서 큰 물의를 불러오기도 했다.
이같이 DJ정권과 노무현 좌파정권의 비호를 받는 재미친북조직으로 그동안 대한민국에 대한 확고한 애국심으로 활동했던 미주동포사회는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논란이 확대되면서 친북활동이 노골화 되어갔다. 이들 친북단체들 중에는 재미동포전국연합, 민족통신, 범민련재미본부, 한반도평화통일포럼, 통일맞이 나성포럼, 민주노동당 미주후원회, 미주 노사모 등이 있다. 이들 단체의 임원들은 김일성이나 김정일의 생일 등에 방북축하단을 구성하기도 했으며, “평화”, “화해”, “민족공조”라는 명분을 내세워 실향민들은 물론 1.5세, 2세들에게도 선전해 친북사조를 주입시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동포사회의 교계와 언론계 그리고 한인회 등 단체들에 침투하여 북한의 주장을 대변하고 있으며 한미동맹 와해를 시도하고 보수동포세력을 견제하는데 힘쓰고 있다.  
한편, 한국검찰 조사에 따르면 김정일이 ‘일심회’에 대하여도 상당히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적단체인 일심회가 하부 조직을 통해 특정 정당과 시민단체를 장악하려 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는데 하부조직으로 ‘선군정치동지회’, ‘8·25동지회’, ‘백두회’ 등을 통해 일부 정당과 시민단체 관계자를 상대로 포섭을 시도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또한 일심회 총책인 장민호씨가 북한에 돈을 요청한 사실 등도 확인됐다.
본국 공안당국 발표에 따르면 장씨가 민노당을 포함한 일부 정당과 시민단체를 일심회의 하부 조직으로 활용하려 한 정황이 다수 확보됐다고 한다. 시민단체 접촉을 담당한 이진강씨는 환경단체 등을 대상으로 반미 활동을 벌이도록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한국의 공안당국은 일단은 일심회가 하부 조직을 추진하는 단계에서 적발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더라도 일부 인사는 이미 포섭됐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으며, 이를 밝히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LA 거쳐 간
신상옥-최은희 납북사건

최근 타계한 신상옥 감독은 과거 북한을 탈출한 후 미국에 망명하면서 상당한 정보를 미국 정부에 알려줬다. 그 중에는 재미동포들의 방북과 관련한 정보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씨는 북한을 탈출해 미국에 망명한 이후에도 한동안 그들은 “위장간첩일지 모른다”는 의혹의 시선을 받아야만 했다.
그만큼 김정일의 지휘 아래서 진행되는 간첩 활동이 치밀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신 감독에게 시련이 닥친 것은 1978년 1월, 최은희씨가 영화사 초청으로 홍콩을 방문하던 중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북되면서 시작됐다. 실종으로 알려진 최은희씨를 찾으려 6개월 뒤인 같은 해 7월, 신 감독이 미국 LA를 거처 홍콩으로 갔다가 그 자신도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북됐 다.
신 감독의 납치 여부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그 전후 사정이 확실하게 정리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는 78년 홍콩으로 가기 전 LA에서 잠깐 체류했는데 일부에서는 그가 납치된 것이 그 자신이 유도했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하여간 신상옥-최은희 망명사건은 아직도 많은 의문점을 남기고 있는 사건이다.
특히 신 감독이 북한에 납치된 후 다시 탈북을 감행, 미국으로 망명하는 과정에서 약 300만 달러 상당의 비자금을 갖고 나온 것으로도 알려져 논란을 일기도 했다. 북한에서 약 10년간 활동하는 동안 ‘탈출기’와 ‘소금’ 등 7편의 작품을 만들며 김정일 정권에 적극 협력했으며 그 뒤 미국과 한국을 오가면서는 당시의 북한 생활을 의도적으로 청산하려는 듯 KAL기 폭파사건을 그린 ‘마유미’와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의 실종사건을 그린 ‘증발’ 등 우파 보수주의적 영화를 잇달아 발표해 영화계 내에서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김한길 의원,
장민호씨 기자로 채용

현재 김한길 열린우리당 원내 대표는 ‘신상옥-최은희 미국망명사건’ 당시 중앙일보 SF지사장이었다. 간첩혐의의 장민호씨는 약  7개월 동안 김한길 대표와 함께 중앙일보 SF지사에서 근무했다. 김한길 대표는 장씨가 고정간첩으로 한국에서 활동할 당시 그의 부친상이 나자 장례식에 직접 참석해 문상할 정도로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어떤 형태로든 두 사람이 계속 교류를 해왔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본보 특별취재반이 수집한 자료에 따르면 김한길 대표는 지난 1985년부터 87년까지 샌프란시스코 중앙일보 지사장으로 활동했다. 김 대표는 지사장이 되기 전 1982년부터 85년까지 한국일보 SF지사에서 기자생활을 했다. 김 대표가 한국일보 기자를 그만두고 85년 중앙일보 SF 지사장이 되면서 다음해인 86년에 장씨를 기자로 채용했다. 적어도 당시 김 대표는 기자로 뽑은 장씨와 7개월 정도를 함께 지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이 중앙일보를 떠난 시점이 비슷하다.
김 대표는 1987년 미국생활을 청산하고 올림픽국제학술대회 대변인을 맡아 귀국했다. 김 대표가 떠나자, 장씨도 7개월간의 중앙일보 기자를 그만두고 LA로 이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LA에는 친북한계로, 2003년에 친북활동으로 체포된 예정웅씨, ‘신한민보’를 발행하고 있던 김운하, 김일성 대학에서 가르쳤던 홍동근 목사, ‘조국통일상’을 수상했던 양은식 박사, 선우학원 박사 등이 거주하고 있었다.
지난 1987년 샌프란시스코 중앙일보 지사 기자 생활을 청산한 장민호씨는 1989년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방북 후 미국에 돌아와 영주권자 신분으로 미군에 입대해 4년간 주한미군으로 용산기지에서 파견돼 근무했다. 그는 미군 제대와 함께 1993년 시민권을 취득했다. 장씨가 북한에서 모종의 지령과 훈련을 받았을 것으로 보이는 이력이다.
북한이 장씨를 이용해 오래전부터 치밀한 전략을 수립했다면 가능한 일이고 실제로 북한은 그런 방법으로 지금까지 수많은 고정간첩을 훈련시켜 온 것이 과거 간첩사건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 미시민권자인 그를 자유롭게 간첩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훈련시켰을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장씨도 빠른 방법을 택하기 위해 미군에 입대했으며, 주한미군에 근무하면서 정보를 북한에 제공했을 것으로 보인다. 용산 미 8군기지에 근무한 그는 남한에서 암약하고 있는 고정간첩들과 쉽게 접선했을 것으로 정보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미시미권 취득 후
행적 ‘아리송’

한 정보관계자는 “미군인 그가 다른 사람들보다 쉽게 접촉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말하고 있다. 전역 후 미시민권을 취득한 그는 미국에 돌아와 LA를 포함해 샌호세, 시애틀, 뉴욕, 워싱턴DC, 필라델피아 지역 등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지역들은 미주지역에서 친북세력들이 주로 활동하는 도시들이다.
본보 취재진이 취재를 통해서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장씨의 행적이 89년 방북 이후에 특별한 활동을 나타내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한 정보전문가는 “고정간첩일 경우 거의 노출이 안되고 있는 게 특징이다”면서 “남에게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위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  장민호씨 프로필



1962년 서울출생 1981년 성균관대 국문학과 입학 1982년 도미
1982~89년 버클리대 입학·졸업·미군의 그라나다 침공 반대시위로 투옥 전력설
1989년 1차 밀입북, 북한 공작원 교육(?)
1992년 한국 귀국(이름 마이클 장)
1992~99년 재별 L기업 최연소 팀장, 정부의 한미 IT기업 간 교류 참여
1998년 2차 밀입북 1999년 3차 밀입북
1999~2003년 벤처기업 사장 (유명S기업 계열사 N사 및 게임전문 위성방송 경영)
2003년 ~ 최근 K사에서 지상파 DMB사업 등 추진
2006년 3월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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