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총리가 살 수 있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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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전 총리에게는 ‘섹시함’이 없다. 맡겨진 일은 무리 없이 잘 처리할 것 같지만, 스스로 일을 만들어서 할 것 같지는 않다고 느낀다. 이른바 ‘치세에는 능신(能臣)’일 수 있지만, ‘난세의 간웅(奸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국민들은 지금 간웅도 좋으니 이 답답한 현실을 쾌도난마처럼 해결해줄 영웅을 목마르게 갈구하고 있다


















소극적 리더십을 벗어던져야
고건 전 총리가 평소 안타까워하는 것이 하나 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청계천 복원공사’와 ‘중앙버스전용차로’로 큰 재미를 보았는데, 정작 서울을 ‘세계 5대 지하철 도시’로 만들고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을 만든 자신의 업적은 홍보가 제대로 안 돼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고 전 총리는 언론과 인터뷰할 때면 지하철과 월드컵 경기장 이야기를 빼놓지 않고 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고 전 총리의 스타일과 의식세계의 한계를 느낄 수 있다.
국민들은 ‘업적’을 평가하기는 하지만, 감동을 느끼지는 않는다. 국민들이 진한 감동을 느끼고 때로는 전율하면서 환호하는 것은 바로 ‘신화’이다. ‘신화’가 무엇인가.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단기적인 이해관계에 얽매여 결사반대하는 것을 모든 역경을 뚫고 마침내 이루어 내었을 때, 그리고 그 결과 반대하던 이들이 차마 상상하지 못했던 결실을 맺어갈 때 ‘업적’은 바로 ‘신화’가 된다.
박정희 대통령은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며 근대화사업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당대에는 욕을 먹을지라도 국가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확고한 신념으로 뚫어냈기 때문에 신화가 창조된 것이다. 만약 경부고속도로를 놓는데 야당은 물론이고 국민모두가 쌍수를 들어 찬성했다고 치자. 허허벌판 영일만에 포항제철을 건설하겠다고 했을 때 외국자본들이 앞 다투어 돈을 빌려주고, 기술을 지원했다고 치자. 아마도 오늘날 국민들 대부분은 박 대통령에 대해 그토록 진한 향수를 갖고 있지 못할 것이다.
고건 전 총리가 서울을 세계 5대 지하철 도시로 만들고, 쓰레기매립장이던 난지도를 생태공원으로 조성해 상암 월드컵 경기장을 건설한 것은 분명 큰  ‘업적’이다. 하지만 지하철과 경기장을 건설 하는데 고 전 총리의 독창적 아이디어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더욱이 서울시민들이 목숨 걸고 반대했던 일은 더더욱 아니다. 정부차원에서 진행된 건설계획의 추진과정에서 고 전 총리가 마침 서울시장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나마도 고 전 총리 개인의 업적이라기보다는 참여했던 모든 이들의 공동 업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에 반해, 이명박 전 시장의 경우 ‘신화’의 냄새를 흠씬 풍긴다. 청계천 복원공사를 하겠다고 했을 때 반대가 엄청났다. 청계천 주변 상인들이 아우성치며 가두시위를 벌이고 도로에 불을 질렀다. 이 전 시장은 그런 반대를 극복하고 청계천을 복원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전 시장을 인정하는 것이다.
사실 공사규모나 액수로 보면 별로 큰 공사가 아니다. 그러나 그와 관련된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을 설득·조정했다는 점에서 국민들은 점수를 주고 있는 것이다.
이 전 시장이 또 하나의 치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중앙버스 전용차로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국민들 대부분은 고건 전 총리에게서 탁월한 능력과 안정감을 느낀다. 믿음직하다. 그러나 고 전 총리에게는 ‘섹시함’이 없다. 맡겨진 일은 무리 없이 잘 처리할 것 같지만, 스스로 일을 만들어서 할 것 같지는 않다고 느낀다. 이른바 ‘치세에는 능신(能臣)’일 수 있지만, ‘난세의 간웅(奸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하필이면 2007년 대한민국이 처한 환경은 난세 중에 난세이다. 바로 여기에 고 전 총리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그리고 또 바로 여기에 고 전 총리가 극적인 반전을 이룰 수 있는 해답도 있는 것이다.







지금 고 전 총리는 사무실에 출근도 하지 않은 채 정국구상 중이라고 한다. 김영삼-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에게 신년인사를 다녀온 것 이외에 다른 일정은 모두 취소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는 것’일까, 아니면 극적인 ‘반등의 기회’를 잡을 것인가. 하지만 아직은 누가 뭐라고 해도 고건 전 총리는 여권의 정계개편과정에서 ‘태풍의 눈’이다.















적진 깊숙이 치고 들어가야
“사령부를 포격하라.” 1966년 중국의 문화대혁명 당시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이 홍위병을 선동하며 했던 말이다. 요즘 여권의 상황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혼미를 거듭하고 있다. 크게는 노무현 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팽팽한 기 싸움을 벌이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그야말로 난파 직전의 모습 그 자체이다. 김근태-정동영 두 전·현직 의장은 노 대통령과 각을 세우고 정계개편을 주도하겠다고 손을 잡았다. 일부 의원들은 김근태-정동영 두 사람에게 2선으로 후퇴하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또 다른 일부 의원들은 고건 전 총리를 중심으로 신당을 만들어야 한다며 모임을 만들고 있다.  지금까지 고건 전 총리는 스스로 세력을 만들고, 지지율을 높이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밥상을 차려놓으면 그저 먹으려 든다는 비판이 뒤따르기도 했다. 고 전 총리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안정적으로 위기를 관리했다는 이미지와, 이에 더해 노 대통령의 국무위원 제청요청을 과감하게 거부하면서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러면서 차기 대권후보로 떠올랐고 1년 반 가까이 부동의 1위 자리를 고수했다. 하지만 고 전 총리가 주도적이고 능동적으로 지지율을 관리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지난해 1월 23일 고건 전 총리의 싱크탱크인 ‘미래와 경제’가 발족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제 고 총리가 본격적으로 뛰는 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고 전 총리는 ‘비정치적인 정책연구모임’이라고 연막을 쳤다. 5·31지방선거 결과 열린우리당의 참패가 확인되자, 고 전 총리는 6월 1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곧 희망연대를 발족’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 ‘희망한국 국민연대’의 발족은 8월 28일에야 이루어졌다. 그래도 사람들은 ‘이제는 진짜 뛰는 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고 전 총리는 ‘정치패러다임의 변화를 바라는 정치소비자 운동’이라고 또다시 연막을 쳤다. 국민들은 하나 둘 기대를 접고 마음을 돌리기 시작했다.
고건 전 총리가 정책연구모임을 만들고 시민운동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고 전 총리 측에서는 그게 아니라고 했다. 물론 나름대로의 전략에 따라 국민들이 지겨워하는 정치적 색깔을 가급적 감추려는 의도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고건 전 총리에게는 그와 같은 신중함은 있지만, 일이 잘못되었을 때 내가 모두 책임지겠다는 비장함이 없어 보인다. 대장이 목숨을 걸지 않는데 누가 대신 나서 목숨을 걸고 뛰려하겠는가. 홍보나 전략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바로 고건 본인이 신화를 한번 만들어보겠다는 절박함과 치열함이 있어야 한다. 지난 3일 고건 진영은 그 다음날로 예정된 ‘40대 직장인과의 만남’을 전격 취소했다. 이제는 좋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이벤트성 행사를 자제하고 3~4월로 예정된 신당창당에 몰두하겠다는 것이다.
신당창당의 준비단계로 구상하고 있던 ‘원탁회의의 출범’도 포기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비록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방향을 제대로 잡은 것이다. 외곽을 맴돌며 분위기 조성 타령만 해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바로 핵심으로 치고 들어가야 가부간에 결론을 낼 수 있는 것이다. 
지난 3일 열린우리당의 김부겸, 정장선, 조배숙 등 재선그룹의 7명이 모임을 갖고, “‘도로 민주당’도 곤란하지만 두 전·현직 의장이 신당 논의에 앞장을 서면 ‘도로 우리당’이 될 수밖에 없다”며, 김근태-정동영의 ‘2선 후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강봉균 정책위 의장은 김근태 의장을 ‘좌파’로까지 몰아붙이며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안영근 의원을 비롯한 중도보수 성향의 의원들과 민주당의 친 고건 파 의원 등 10여명은,  ‘통합신당추진을 위한 공동모임’ 결성을 추진하고 있다. 이제 고건 전 총리가 나설 차례이다. ‘너도 옳고 또 너도 옳다’는 지금까지의 황희 정승 식의 리더십으로는 국민들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 온몸을 던져 핵심에 부딪치는 치열함과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는 카리스마를 보여줄 때 태풍의 위력을 회복할 수 있다. 
<황태순·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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