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낳은 천재 LA 출신 사진작가 황규태의 인생역정 풀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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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6일 미연방수사국(FBI)은 16년 전 SBA기금 횡령혐의로 체포돼 실형선고를 앞두고 한국으로 도피했던 전 LA캐피탈 인베스트먼트 대표 황규태(68)씨를 지난해 11월22일 한국의 자택에서 검거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한미범죄인인도협정에 따라 조만간 미국으로 송환돼 재판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황씨의 체포소식이 전해지자, LA한인사회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고 황씨에 대한 안타까움을 전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황씨와 가까웠던 한인사회 ‘올드 타이머’들은 적지 않은 당혹감을 내비치며 2월중순경 예정된 송환에 대비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서울 구치소에 수감 중인 황씨는 지난 1990년 5월 SBA연방기금 유용혐의로 체포된 후 2건의 SBA기금 유용 혐의를 인정하고도 재판 도중 돌연 잠적해 연방법원이 체포영장을 발부했던 사건이다.
황씨는 LA한인사회에서 자타가 인정하는 성공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지난 65년 미국으로 건너 와 사진 전공을 살려 미 주류 사회에까지 유명한 <KT칼라 랩> 회사를 운영했고 80년 초에는 올림피아 호텔 등 부동산을 매입하며, 탄탄한 재력을 바탕으로 한국 정재계의 거물인사, 예술인들과도 두터운 친분을 맺었다. 이후 ‘LA캐피탈 인베스트먼트’ 융자회사를 설립, 매칭펀드 형식으로 SBA연방기금을 운영한 바 있다. 황씨를 잘 아는 LA의 저명인사들은 항상 넉넉한 웃음과 인정을 베푼 그의 인간성을 존경해 왔다.  또한 실험적이고 예언적인 사진작가로서의 예술성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의 인간 됨됨이와 성실성이 LA 시민사회에 널리 퍼져있기에, 황씨의 체포소식은 한인사회의 안타까움과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대표적 포스터모더니즘 사진작가로 활동하며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황씨가 무슨 이유로 회사 자금 유용혐의로 체포되었으며 재판 도중 한국으로 돌연 잠적, 무려 16년 간 도피 아닌 도피 생활을 해야만 했던 것일까. 마치 한편의 드라마 같은 황씨의 성공 궤적을 종합 취재했다. 


                                                                                      연훈 <취재부 기자>  













 ▲ 황규태
기자에게 털어놓은  20년의 한국 생활
기자는 지난해 10월 하순 서울 강남의 한 ‘복집’에서 황규태씨를 만났다. 무려 20년 만에 만남이지만 황씨의 모습은 그대로였다. 그동안 직•간접적으로 황사장의 근황에 대한 소식만 들었을 뿐, 그와 마주앉은 것은 20년 만에 처음이었다. 70세를 바라보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정함을 잃지 않았다. 예전처럼 남루할 정도의 순수한 옷차림에 푹 눌러 쓴 색 바랜 검은 모자와 어눌하고 순박한 충청도 사투리의 황규태씨(충청도 예산 출신)는 이날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너무나 수줍음을 타는 황사장은 작은 목소리로 “16년 전의 사건으로 미 검찰의 범죄인인도요청에 따라 현재 ‘출국금지’ 되어 있다”고 말하며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시종일관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으냐?’고 오히려 기자에게 반문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라고 자포자기한 표정으로 ‘미국으로 송환되지 않고 한국에서 재판을 받을 길이 없느냐?’고 묻기도 했다. 불법을 행한 사람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순수함이 느껴진 대목이다. 기자는 ‘미국 정부에서 범죄인인도요청에 의해 진행되는 사안인 만큼 미국으로의 송환은 불가피하며 달리 방법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하자, 황씨은 지그시 눈을 감으며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체념한 표정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최선의 길은 제3국으로의 도피 이외는 달리 길이 없었다. 그런 말이 오고 가는 사이에 황씨는 ‘이제 내 나이 70세고 도망을 가봐야 어디로 가겠는가. 차라리 미국으로 송환돼 떳떳하게 재판을 받는 것이 편하다’고 말하며 그 와중에서도 곧 있을 작품 전시회를 걱정했다.  기자와 만나고 돌아서는 뒷모습에서 기자는 참으로 ‘인생사 세옹지마 같다’라는 생각에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황사장과 기자와의 20년 인연과 악연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그로부터 약 1개월 뒤인 지난해 11월22일 그는 체포됐고 고검에서 조사를 받았다. 서울구치소에서 2번에 걸친 재판을 통해 송환결정판결을 받아, 오는 2월 초순 미국으로 송환 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황씨는 충분히 도망갈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체포될 때까지 모든 운명을 순순히 받아 들였던 것 같다. 그 날 황씨는 자신이 체포되는 문제보다, 미국에 있는 부인과 자식들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벌써 20년 이상 자신의 어리석은 판단 때문에 형벌과도 같은 삶을 살아 온 가족에게 또다시 고통을 안겨줄 것이라는 사실에 가슴 아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눈물만 흘리지 않았을 뿐, 그의 가슴에선 통곡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미주 동아일보 인수’가 비극의 시작
비극의 시초는 이렇다 할 사업계획 없이 즉흥적인 판단으로 무리하게 신문사를 인수하게 되면서 시작됐다.  1987년 자금난에 허덕이던 미주 동아일보를 인수한 것이 이번 사건의 직접적인 발단이 되었다. 그가 운영하던 LA캐피탈 금융회사에서 미주 동아일보를 인수 운영하면서 무리한 경영과 사옥 이전(크린샤워 사옥에서 8가로 이전)에 따른 지나친 투자로 심각한 자금난을 겪자, 자신이 운영하던 LA캐피탈 자금 일부를 편법으로 조달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언론사 운영을 가볍게 생각했던 황씨는 이미 20년 전부터 탄탄하게 자리매김 한 한국일보/중앙일보와 경쟁을 한다는 것이 처음부터 무리수였음을 후일 깨달았다. 그러나 한번 늪에 빠지기 시작한 황씨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자금을 조달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일부 친분 있는 인사들의 명의로 SBA자금을 대출 받는 수법으로 많은 자금을 신문사 운영자금으로 전용했다. 바로 이 문제가 오늘의 비극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황사장은 당시 과정에 대해 말하며 ‘모든 것이 자신의 과욕과 잘못된 판단의 결과였다’고 진술했다. 당시 그가 운영하던 미주 동아일보에 투자된 자금은 모두 300만 달러에 이른다. 결국 미주동아일보 인수가 황씨를 파국의 구렁텅이로 몰았으며 급기야 연방기금 횡령혐의로 FBI에 체포된 것. 모든 혐의를 유죄로 인정된 상태에서 실형 선고를 앞두고 한국으로 건너온것이 이번 사건의 실체이다. 













 ▲ 사막의 달,  캘리포니아,  1980-1985
사막에 떠오르는, 가슴 저리게 하는 태양과
붉게 물든 하늘 저편에 나타나는 조각달은
한동안 사막을 드나들던 나를 사막의 미아로
만들어 놓곤 했다. 자연과 생태 환경에
몰두했던 1980년대에 찍은 이 사진은 달과
물고기 뼈의 두 이미지를 조합한 것이다.
최고의 사진작가, ‘도망자’ 아닌  ‘예술가’로 평가
황씨는 당시를 회고하며, 바보 같은 결정에 후회와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당시 판단에 대해 ‘어리석은 결정’이었다면서 “지금은 추호도 도망 갈 의사가 없으며 곧 송환돼 재판을 받겠다”고 말했다. 그의 진심어린 표정에는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  귀국한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사진작가로 화려한 명성을 쌓아 나갔다. 1994년 워커힐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국립현대비술관(96), 광주비엔날레(97), 성곡미술관(2003) 등에서 단체전에 참가해 명성을 떨쳤다. 최근에도 몇 차례 사진전시회를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이번 사건으로 일정이 모두 취소돼 주변인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또 서울대, 이화여대, 상명대학원 등에 출강했으며 국립현대미술관과 국회의사당, 서울시립미술관, 예술의 전당 등에 그의 작품이 소장돼 있을 정도로 대표적 사진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1960년대의 흑백 다큐멘터리에서 2000년대 컴퓨터 작업까지 먼 길을 달려오면서 뛰어난 상상력을 발휘했다.  풍요와 황폐로 얼룩진 문명의 종말 같은 것을 자신의 렌즈 속 영상에 담아 의미를 발견하기도 하고 때로는 책상 위의 먼지에서 우주의 운명과 공간을 보고 생명의 존엄성이 사라져가는 위기의 시대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과학 기술을 ‘예술’이라는 통로를 통해 유머러스하고 밝은 톤으로 표현,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욕망으로 승화시킨 것. 그의 작품 세계는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꿈틀거리기 시작했고 한국으로 돌아간 후 제2의 전성기를 구사하고 한국 최고의 초현실주의적 사진작가로 탄생한 것이다.‘철부지’ 어린아이처럼 순수함과 열정으로 가득 찬 ‘70세 청년’ 황규태. 그의 작품은 복잡한 유전(流轉) 인생처럼 평범함에 안주하지 않고 언제나 새로운 미래에 대한 묵시론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는 <2000년 일본 영화 ‘소나티네’> 포스터에 자신의 얼굴 사진을 합성한 작품을 발표했다. 자신이 애착을 갖고 있는 ‘미래인류’ 혹은 ‘생명체들’의 영화적 패러디이다. 그는 자신의 뇌 세포 속엔 ‘테라(tera)급’의 바이오칩이 심어져 있고, 그 것은 빅 브라더(Big Brother)가 입력해 놓은 각종 오더로 꽉 차있고 그 칩 속에 입력된 ‘자살(Kill oneself)’ 명령이 작동해 작가가 웃으면서 자기 파괴를 실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작가는 사이보그인가? 휴머니스트인가?>를 반문하는 작품 설명을 통해, 당시 자신이 처한 상황과 닥쳐 올 미래에 대한 예언적 암시를 하고 있었다. 한국이 낳은 최고의 사진작가, 황규태. 그가 가진, 예술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넉넉함이 재판부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황규태 그는 누구인가?


계시적(啓示的) 리얼리즘의 대표적인 사진작가 

























 ▲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듯한 작품 -소나티네 2000
일본영화 <소나티네> 포스터에 작가 얼굴을 합성했다.
작가가 집착하고 있는 ‘미래 일류’ 혹은 ‘생명체들’의
영화적 패러디이다. 내 뇌세포 속엔 테라(tera)급의
바이오칩이 심어져 있고, 그것은 ‘빅 브라더(big Brother)’
가 입력해 놓은 각종 오더로 꽉 차 있다. 그 칩 속에 입력된
‘자살(Kill oneself)’ 명령이 작동했다. 나는 웃으면서
기계적으로 자기파괴를 실행한다.
나는 사이보그인가 휴머노이드인가.

한국 최고의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1938년 충남 예산 출생으로 예산농업학교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를 졸업, 1963년~1965년까지 경향신문 사진기자로 거쳐 1965년 미국에 온 후 73년까지 컬러 현상소에서 암실기사로 일하면서 사진가로 변신한다. 73년에 KT Color Lap 사진 현상소를 오픈해 미 주류사회까지 소문날 정도로 명성을 날린 유명한 칼라 현상소로 자리잡았다. 그는 언제나 겸손한 마음과 넉넉한 인간 관계로 언제나 인정이 넘쳐 있었고 LA한인사회에 가장 성공한 사업가, 예술가, 그리고 맘씨 좋은 동네 아저씨로 존경 받는 인물로 평가 받았다.
올림픽과 알바라도 부근의 올림피아 호텔을 인수해 경영하기도 했으며 칼폴리 대학 경제학 교수인 진형기박사와 함께 LA Capital Investment회사를 설립 연방정부의 중소기업 육성자금인 SBA 자금을 매칭펀드 형식으로 지원받아 경영했으며 87년 미주동아일보를 인수 언론인으로 활동, 자금난에 허덕이는 미주동아일보에 무리한 사업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경영하던 융자회사의 일부 자금을 신문사에 투입하면서 사건이 불거져 90년 FBI에 체포돼었다가 5000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석방, 재판을 받는 도중 유죄를 인정, 선고를 앞두고 한국으로 잠적 법원이 체포 영장을 발부 16년 만인 지난 해 11월22일 한미범죄인인도협정에 의해 체포되어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에 있다. 
현재 법원에 의해 송환명령이 발부돼 2월 중순 경 미국으로 송환 될 예정이다. 92년 한국으로 돌아온 후 사진의 한계를 벗어나 사진 이후의 사진을 대비하는 초현실적인 감각 기법으로 인간의 오만과 탐욕 절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신화적인 사진작가로 제2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작가는 한국 귀국 후 오로지 작품에 몰두하여 혁신적 작품을 끊임 없이 발표하였고 그 과정에서도 경제적 안위를 보장해주는 작품의 생산보다는 사진 예술에 대한 신념으로 작품성에 승부해 많은 작가들의 귀감이 되고 있으며 특히 후학들에게 존경하는 사진가이자 스승으로도 손꼽힌다. 
서울대 이화여대 중앙대 상명대 등 다수의 대학원 강의를 하면서도 ‘학생들에게 항상 새로운 교육을 받아야 하고 물이 고이면 썩는다’는 신념으로 교직에 과욕을 삼가하여 후배작가들과 이론가들에게 강의 자리를 양보하는 등 진정한 교육자로서의 자세를 몸소 실천하여 더 많은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황규태의 작품세계


몽타주-이중노출-초현실의 세계포착 


황규태는 초현실적 상상력과 자유로운 실험정신으로 우주시대와 생명공학시대의 도래에 대한 이율배반적인 의식을 매혹적으로 표현해 낸 한국의 대표적인 포스터모더니즘 작가다. 멀티 프린팅과 더불 익스포저, 톨라주, 몽타주 등 반사진적 방법과 디지털 프로세스로 표현된 그의 사진은 문명의 종말을 암시하는 미래세계의 묵시록처럼 과학과 인류의 문제를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다. 
그는 과학을 가지고 ‘놀이’하듯 스캐너와 포토샵을 이용해 차용과 복제를 넘나들며 테크놀러지적 상상력을 펼침으로서 우리에게 익숙하고 일상적인 물체들을 초현실적인 산물을 빛나게 하는 한국의 대표적 포스트모더니즘 사진작가다.  강렬한 인공색과 보색의 대비로 표현된 그의 사진은 물, 불, 태양, 우주와 같은 생명의 이미지를 비일상적이고 마술적인 세계로 펼쳐 사진 이후의 사진을 대비하고 있는 천재사진 작가다. 
작가는 오랫동안 미국에 거주하면서 느낀 현대화와 이면들을 고찰하고 문명화가 앞 당기는 미래에 대한 암시들을 표현했다. 생태적이고 환경적인 주제로 문명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아왔던 작가는 DNA,복제,우주, 사회 과학적 담론들을 작업하면서 미국 내에서도 주목 받는 작가로 소개되었다. 
작업 기법에서도 몽타주, 합성사진 등과 같이 시대를 앞서가는 시도를 통해 세계적인 유명작가들과 활발히 교류(특히 미국의 안셀아담스 작가와의 교류와 안셀아담스가 작가에게 보낸 각별한 애정을 표한 사례는 매우 유명하다), 필름 태우기 등의 기법과 주제는 세계사진사적으로도 매우 괄목할만한 시도라는 점에서 세계사진계가 갈채를 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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