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찬의 ‘이병박리포트’ 철저해부… 그 속엔 무엇이 담겨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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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리포트는 8년 전 이명박씨와 인연이 되었던 본인이 겪은 질풍노도의 사건과 과정을 가감 없이 적은 글이다. 부분적으로 논리적인 비약이 있을 수도 있다. 또한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감정에 치우친 면도 없지 않다. 다만 한 시대를 살아가는 양심있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꼭 말해야할 이야기를 쓴 것이다.”
‘이명박 X-파일’을 폭로한 김유찬(서울IBC 대표)씨는 ‘이명박리포트’를 집필하게 된 배경을 밝히면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소 장황한 설명을 달았다.
이명박 전서울시장과 관련된 각종 의혹을 담은 ‘이명박리포트’는 2007년 본국 대선의 최대 이슈로 부상했다.
지난 2월 23일 본지가 21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이명박리포트’ 초고본 전문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김씨가 주장하고 있는 이명박 전서울시장 관련 의혹들이 결정적인 근거부족으로 인해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감이 실렸다.
특히, 김씨가 책 속에서 증거로 인용한, 1996년 당시 이명박 캠프진영 관계자들조차 김씨의 주장을 반박하고 나섬에 따라 지리한 ‘진실공방’을 예고했다.
김씨는 지난 2월 3차례에 걸쳐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모든 게 공개되고 나면 이명박 전서울시장은 대선 후보에서 사퇴해야 될 것”이라며 강한 자신감을 내비친 바 있다. 이후 언론의 취재경쟁이 가열되면서 김씨도 기자들과의 만남을 능동적인 방향으로 전환해 자신의 입장을 알리는 데 전력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과연, 김씨가 가진 미공개 파일 중 이 전시장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안길 ‘소스’는 존재하는 것일까. 이런 의구심은 비단 정치권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도 큰 궁금증으로 자아내게 만들었다. 
이에 따라 본지는 1996년 종로지구당 간부를 지낸 권영옥씨에게 김씨가 보낸 ‘이명박리포트’ 원고를 긴급 입수해 구체적인 내용을 분석했다.


지난 1996년 4월 11일 이명박 전서울시장은 ‘정치 1번지’ 종로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그 직후부터 ‘이명박리포트’를 작성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김유찬씨는 6급 비서로 활동하고 있었다.
1년 3개월 가량 이 전시장과 한솥밥을 먹으며, 국회의원 선거를 치렀던 것이다.
그러나 김씨는 얼마 뒤, 이 전시장의 선거 관련 내부 자료를 폭로하면서 ‘동반자’가 아닌 ‘적대적 관계’로 변질됐다. 이 전시장은 해당 사건으로 국회의원직을 상실했고, 김씨도 법적 처벌을 받아야만 했다.


11년만에 다시 이명박 관련 폭로 재연
그로부터 정확히 11년이 지난 오늘 다시 김씨가 이 전시장을 겨냥해 ‘폭로의 활시위’를 당겼다. 이른바 ‘이명박 X-파일’을 묶어 단행본 책자를 내기로 발표한 것이다.
김씨는 “이번 사건은 정인봉 변호사가 먼저 시작한 것이다. 정 변호사가 나와 관련된 내용을 거론하면서 부득이하게 내가 해명을 해야 될 상황에 놓였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기자회견을 자청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또, “당시 법정에서 이 전시장측은 나에게 위증을 교사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이 사실을 숨기고 있다”면서 “대선주자인 이 전시장에 대한 사법처리가 끝났더라도, 국민적 판단은 아직 남아있다고 본다”고 했다.
그는 당시 자신이 위증을 하지 않았다면, 이 전시장은 구속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폭로의 수위를 높였다. 당시 지구당 관계자들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해줄 것이라고 밝히기까지 했다.
하지만, 김씨의 주장은 ‘일방적인’ 주장으로 점철되고 있다. 폭로의 본질을 규명하기보다, 이 전시장측 입장을 대변한 한나라당 정두언, 박형준 의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는데 급급한 모양새다. 특히, 김씨가 이번 폭로의 핵심 근거로 제시한 당시 종로지구당 관계자들이 전혀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당시 종로지구당 사무국장이었던 권영옥씨는 “김유찬씨에게 위증을 교사할 만한 하등의 이유가 없었고 오히려 김씨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위증을 감행한 것”이라며 “1억원이 넘는 돈을 받은 것도 내가 알기로는,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김씨가 요구했다고 들었다”면서 김씨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 사건으로 본국 대선정국이 일대 혼란에 빠져들었다.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잇따라 폭로에 휘말리면서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 된 것이다.
이 전시장은 대선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40% 후반의 지지율을 확보하고 ‘대세론’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러나, 폭로가 계속될 경우, 현재의 지지율 스코어를 유지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그렇다면, 김씨는 왜 이 전시장에 대해 계속해서 폭로를 감행하고 있는 것일까.
김씨는 1996년 9월 10일 당시 이명박 의원의 불법·부정선거 폭로를 기점으로 그동안 꾸준히 이 전시장의 ‘약점’을 정리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국회의원 선거 승리 이후 자신을 ‘토사구팽’시킨 이 전시장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이 깔려 있다. 김씨는 선거가 끝나고 나서 얼마 뒤에 비서를 그만뒀다.
그러고 나서, 2002년 지방선거 당시 서울시장에 이명박 후보가 출사표를 던지자, ‘이명박 리포트’를 출간하기 위해 출판사를 수소문하고 다녔다. 물론, 당시 책이 출판되지는 않았지만 이 전시장측에 이러한 내용이 전달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언론에도 관련내용이 제보됐지만, 당시에는 기사화되지 않았고, 더 이상 진전되지도 않았다.
2007년 2월 폭로는 그래서 충분한 시간적 여유와 준비가 수반됐음을 알 수 있다. 역으로, 김씨가 아무리 명분을 제시하더라도, ‘반(反)이명박’이라는 감정에 치우쳐 있음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그는 리포트에서 “과대포장된 인물, 신기루 같은 거짓 명성에 휩쓸려 지도자를 잘못 선택하여 국가적인 에너지를 낭비하는 우를 범하지 말고 대통령으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제대로 검증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김씨의 주장을 뒷받침 할 수 있는 인물들이 하나같이 입장 표명을 유보하거나 반대 의견을 내놓음으로 인해서 명분이 크게 약화된 게 사실이다.













‘제2의 김대업인가’ 아니면 ‘진실인가’
이 전시장과 가까운 모 의원은 “정인봉, 김유찬씨는 ‘제2의 김대업’”이라며 “김유찬씨가 전경련 회관에서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박근혜 전대표측과 김씨를 연결 짓는 해석도 나오고 있고, 여권과의 연루설도 회자되고 있지만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루머에 불과하다.
오히려 김씨가 벌인 사업이 사실상 실패함에 따라 그 책임을 이 전시장에게 돌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김씨가 상암동DMC 랜드마크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투자자들로부터 수십억원을 받아 사용했다고 한다. 기타 사무실 운영비와 입찰 준비에 최소 50억원 안팎의 자금이 필요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당시 90억원이 넘는 입찰 보증금을 납부하지 못해 탈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전시장이 자신의 존재를 인지하고 나서 이 사업을 사실상 방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상태로 진행된다면, 김씨가 대표로 있는 서울IBC는 이 사업권을 따내기 어려워 보인다.
김씨의 고교 동문인 L변호사는 이와 관련 “김유찬이 투자자들로부터 압박을 받으면서, 그 화살을 이명박 전서울시장에게 돌릴 목적으로 폭로를 한 게 아닌가 싶다”고 진단했다. L변호사는 김씨가 왕왕 법률자문을 했던, 비교적 가까운 인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씨의 폭로전은 앞으로 더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김씨가 자신의 폭로 이후 국민적 반향이 상대적으로 미미하다는 점 때문에 더욱 강경한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권 전사무국장에게 보낸 일부 원고에서 이 전시장의 여자문제, 종교문제 등 민감한 부분을 정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가 언론에 ‘여자, 종교 문제는 뺐다’고 말한 대목에서 여지가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원고에는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남자로서 배꼽아래 일은 쓰지 않기로 했다”고 전제한 뒤 다음과 같은 내용을 후술해 놓았다.
“이 글을 쓰고 있을 무렵 이명박씨를 십여년간 알고 지내던 한 인사와 만나게 되었다. 그는 이명박씨의 측근 중의 측근이었다. 공교롭게도 그는 이명박의 엽색행각에 대해 누구보다도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현대건설 사장, 회장 재직시절 인턴 여직원과의 염문사건에 대해 입을 열었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의 염문에 대해 내게 이야기 하지 말게! 나는 그의 숨겨진 여자이야기나 폭로하는 쫄장부가 되기 싫으네’
정색을 하는 내게 그는 웃으며 자신이 L호텔에서 이명박과 함께 나오는 여인을 목격한 장면 등 그 숫자로 세기 어려운 사례를 열거하며 그의 여성편력을 이야기 했다. 나는 내가 스스로 경험하고 본 이야기 이외에는 가급적 이 글에 실지 않으려고 했다. 왜냐하면 자칫하면 이 글의 순수성과 진실성을 왜곡할 위험성이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그가 숱한 여성편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지만 이글은 내가 경험한 그의 비인격과 비도덕성만을 논하는 마당이기에 주변의 강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의 여자이야기는 쓰지 않는다. 다만 그에게 경고하고픈 것은 아무리 감추려 해도 이미 자신이 뿌린 씨앗들이 있으며 그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참담하고 아픈 인생을 더 이상은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종교 문제와 관련해서는 “서울시장선거가 한참 불이 붙었던 2002년 어느날 여의도 순복음 교회 대형스크린에 이명박후보의 얼굴이 비추어졌다. 잠깐이 아닌 약 5분간이나 그의 얼굴이 비추어졌다. 순복음 교회입장에서 주일날 스크린에 이렇듯 외부인사가 장시간 비추어진 예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 순복음 교회입장에서는 주차장 부지 확보가 최대관건이다. … 양자간에 모종의 거래가 이루어졌다”는 식으로 글귀를 적어놓았다.


미공개된 여자, 종교 문제 거론될까
이렇듯, 김씨는 이번 폭로를 위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며 자료를 준비해 왔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명박 리포트’는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씨에게는 ‘네거티브의 극치’라고 할 수 있는 이 전시장의 극히 개인적인 사생활 부분이 남아 있다고 봐야 할 듯싶다.
2007년 대선 판도를 뒤흔들고 있는 ‘김유찬식 폭로’가 어디까지 진행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유찬씨가 추진 중인 상암DMC 랜드마크 사업은?


자격조차 갖추지 못한 업체들이 ‘과열경쟁’
김유찬씨는 지난 2003년 (주)서울IBC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상암DMC센터 랜드마크 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사업을 주관했던 곳은 서울시였고, 이명박 서울시장이 재직할 당시다.
김씨는 그러나 2번의 입찰 과정에서 모두 실패했다. 입찰 보증금을 납부하지 못한 게 원인이다. 물론, 김씨는 이 부분에 있어서 “우리는 이미 막대한 외자유치를 성사시켜 놓은 상태였다”면서 서울시에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당시 이 사업에는 김씨 외에도 정치권 출신 인사들이 주도하는 컨소시엄이 3개나 더 있었다. 하지만, 모든 컨소시엄이 구비해야 할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해 2차례나 진행된 입찰이 모두 무위에 그치고 말았다.
김씨의 경우, “이 전시장이 나와의 관계로 인해 사업을 방해했다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 토로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업체는 이 전시장과의 과거 친분을 과시하는 등 혼탁한 양상으로 전개됐다는 후문이다. 김씨가 대표로 있던 서울IBC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한다. 일부 회사 관계자들은 외국의 유명인사를 동의없이 고문단에 끼워넣기도 했다고 한다. 미국 연방 하원의원을 지낸 김창준씨가 그 대표적인 케이스다. 김씨는 후에 M사에 강력히 강의하고 자신의 이름을 제외시킬 수 있었다. 문제의 M사 일부 인사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친분을 거론하기도 해 향후 입찰 과정에서 논란이 예상되고 있다.
김씨는 이 사업을 위해 일부 투자자들로부터 수십억원의 투자금을 받아 사무실을 운영했지만, 결실을 거두지 못해 ‘진퇴양난’에 처해 있다. 일부 투자자들은 자금 회수를 위해 김씨를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김씨의 사무실이 역삼동 소재 모 빌딩에 자리잡고 있었지만, 여의도 전경련 회관으로 옮기게 된 것도 자금난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전경련 회관 입주금과 운영비를 어떻게 조달했는지도 의혹이 일고 있는 대목이다. 랜드마크 사업이 어려운 이유는 137층 규모의 대형 건물에 입주할 업체까지 사전에 선정돼야 한다는 조건 때문이다. 한편, 일부 입찰 참가 업체는 서울시가 사업을 지연한다면서 서울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유찬씨 주장을 반박하는 사람들


“‘위증교사’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김유찬씨가 이명박 전서울시장과 관련된 폭로를 감행한 것과 달리, 그의 주변에선 김씨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어 주목된다.
우신고 동문 L변호사의 경우 “김유찬이 과거 이명박 전서울시장측이 자신에게 위증을 교사했다는 언급을 단 한 차례도 한 적이 없다”면서 “김유찬이 사업 실패의 원인을 이 전시장에게 돌리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면서 오히려 김씨의 폭로를 다른 관점에서 해석했다. L변호사는 김씨와 오랜 친분을 유지해온 사이로 알려져 있으며, 종종 법률 자문을 해 준 인물이다.
또, 김씨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 할만한 인물로 지목한 권영옥 당시 종로지구당 사무국장도 김씨의 주장을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권씨는 “이명박 전서울시장이 김유찬에게 위증을 교사한 적이 없다”면서 “스스로가 먼저 그렇게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씨는 1996년 선거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했던 인사다.
김씨가 거론한 또 다른 증인이었던 주종탁 당시 조직부장도 김씨의 주장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김씨는 “지금은 내가 무슨 말을 할 게재가 아닌 것 같다”면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주씨는 현재 서울IBC의 부회장직을 맡고 있다. 당시 입찰 경쟁자였던 업계 관계자 A씨도 “입찰에서 떨어진 것은 김유찬이 입찰 보증금을 내지 못해서지 누가 방해는 했던 게 아니다”면서 김씨의 주장을 ‘거짓’이라고 꼬집었다.


 


















다음은 ‘이명박 리포트’를 요약, 정리한 내용이다


<목차>
I. 이명박사건 왜 일어 났나
1. 앗! 저 사람 김유찬 아냐!
2. 우째 이런 일이!
3. 기자회견의 동기
4. 이종찬부총재와의 만남
5. 홍콩 찍고 캐나다까지
6. 검사! 아무한테나 반말하지 마시오!


II.나는 가난한 프롤레타리아 출신
1. 내 고집은 황소고집
2. 가난했던 어린시절
3. 사람이 죽었는데 무슨 놈의 이념이냐
4. 조용기 목사님 장학금 좀 주세요
5. 입대는 이등병으로 전역할 때는 육군중위
6. 현대건설이여 영원하라
7. 자식농사 망친 사람들은 모두 내게로 오라
8. 콩나물콩 김 사장
9. 단돈 1달라로 캐나다를 갔다 온 사나이
10. 나이 35살에 분유를 210톤이나 먹은 사연


III. 종로는 밥보다도 정치가 더 중요
1. 좋은 上司를 만난다는 것은 축복이야
2. 이명박의 씽크탱크- 선거기획단
1) 그래 비밀아지트 하나 만들어봐
2)‘또 하나의 신화’를 만드는 사람들
3) 여보! 그 여자들에게 한 눈 팔면 안돼!
4) 종로유권자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3. ‘민’은 모든 ‘정치’의 근원인데…
1) 시간을 정말 안지키는 후보자
2) 정치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  


IV. 이명박과 얽힌 정치판 뒷이야기
1. 국정감사장에서 생긴 일들
1) 장관! 세계화를 영어로 써보시오!
2) 속기사의 경고
2. 사람은 많아도 사람이 없다
3. 숙대 출신은 안돼
4. 아! 부처 같은 사람
5. 정 박사가 밝힌 이명박과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
6. 당신이 조수석에 앉으시오
7. 당신이 뭐 한일이 있다고
8. 이명박의 떡값 이야기
9. 대권에 도전하려면 재산의 절반은 환원하라
10. 이명박을 떠나 간 사람들


V. 이제야 진실을 밝힌다
1. 정치법정과 진실공방
2. 명예회복을 위한 무모한 도전 그리고 참담한 실패
3. 종로 선거후 기자접대비 1000만원과 얽힌 이야기
4. 눈물로 쓴 항소장과 항소이유서
5. 제2차 기자회견을 준비하다
6. 이명박 그는 내 인생의 걸림 돌인가
7.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이종찬(당시 국민회의 부총재)와의 3억원 거래설 진상>
96년 9월8일 오전 11:00 경 나는 새정치국민회의 중앙당사로 이종찬부총재를 찾았다. 이명박에 대한 ‘직격탄’을 날리기 위해서는 그의 카운트파트너였던 이부총재가 가장 적임자라는 생각에서였다. 당시 집권여당의 실세로 맹위를 떨치던 이명박 의원 아니던가? 그것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나 마찬가지였다.
금번 사건을 정치 쟁점화시켜 비현실적인 정치관련 법안도 차제에 정치권에서 현실에 맞게 수정할 수도 있는 계기도 마련할 수 있는 점도 고려되었다. 보다 현실적으로 이명박 의원에게 직격탄을 날리는 경우 예상되는 역공에 대한 정치적 바람막이 역할이 정실히 필요했다.


<검사! 아무한테나 반말하지 마시오!>
대기실에 앉아있으려니 한 사람이 들어왔다.나중 그가 주임검사인 주성영검사(현 한나라당 의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빈정거리는 투로 반말을 건네었다.
주검사:“니가 김유찬이야?”
김:“예, 그렇습니다만…”
주:“이 친구 되게 뻔뻔하네!”
김:“무슨 말씀이십니까?”
주:“야! 니가 무슨 대단한‘양심선언’이라도 한 줄 알아?”
김:“??? … 아니 뉘신데 처음부터 반말이십니까?“
주:“뭐? 나? 검사다!”


<정말 시간을 잘 안 지키는 후보자>
MB는 평소 사람을 대할 때 ‘진지성’이 부족하다는 평을 많이 받아왔다. 건성으로 사람을 대한다는 비난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본의는 아니지만 자신 보다 훨씬 나이가 든 이들에게조차도 반말 비슷하게 한다하여 지역민들에게 욕을 얻어먹는 경우도 많았다. 그것은 아마도 그가 현대건설 회장재직 시 자신 보다 나이가 많은 부하들에게 늘 하던 버릇대로 한 것이 몸에 밴 때문으로 해석된다. 그 자신 악의가 없었다고 극구 해명해도 말이란 한 번 실수해 버리면 그만인 것을.
사람과 만날 약속을 해 놓고도 1시간 이상씩 기다리게 하는 경우도 보통이었다. 요즘 같이 바쁜 세상에 그것도 현대시절 MB에게 목이 메어 납품하는 사람들이 아닌 바에야 사람 불러 놓고 1~2시간씩 기다리게 한다는 것이 얼마나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할 것인가. 가뜩이나 유권자에게 그리 한다면 그것은 정치인으로서의 에티켓이 빵점인 것이다.


<이명박 그에게 ‘사람’은 많아도 정작 ‘사람’이 없다>
MB의 측근에는 그의 유명세와는 달리 ‘사람’이  없었다.‘신화적인 인물’이라서 그런가 도무지 ‘가신’이라고 일컬을 수 있을 만한 인물이 드물었다. 나는 이것이 MB가 현대건설회장에 이르기까지 앞만보고 달려온 때문이 아닌가 생각했다. 원래 기업체에선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생존경쟁을 해야만 한다. 동료애고 뭐고 할 것이 없다. 20대 이사, 30대 사장, 40대 회장의 초고속 승진만을 해온 그였기에 주변을 돌아보고 아랫사람을 챙길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정 모박사가 밝힌 이명박과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 결별의 진짜 이유>
2006년 나는 우연치 않게 한 사람과 인연이 되었던 적이 있다. 그는 현대 정주영가의 종손으로 국제경제학 박사였다. 2003년부터 시작한 상암동 137층 건립사업을 하면서 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우리사회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인 많은 분들과 인연을 가지게 되었다. 편의 상 정 박사라고 칭하도록 하겠다. 정 박사와의 인연은 순복음교회 한 장로님의 소개로 이루어 졌다. 처음 그를 만나게 되었을 때 이미 그는 나에 대해 어느 정도 정보를 가지고 있는 듯했다. 장로님과 함께 찾은 그의 방의 각종 경제관련 서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분은 학자풍의 외모를 가지고 다소 성격이 급한 듯한 분이었다.
몇 차례 그분을 만나게 되면서 우리는 자연스레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나는 그분에 대한 친밀감을 가졌다. 처음 그 분을 만나게 될 때 동석했던 장로님도 몇 번 정 박사를 만나 뵙게 되면서 배석하지 않고 직접 정 박사와 단 둘이서만 만나는 경우가 많았다.
어느 날인가 정 박사는 나를 광화문 부근 한 음식점으로 안내했다. 그분이 자주 가는 음식점이었다. 음식점 여주인은 정 박사에게 매우 친절하게 인사를 건내었다. 그곳에서 정 박사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내게 건내었다. 자신과 이명박, 그리고 이명박과 현대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가 말한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정주영회장이 살아생전 청구동 자택에서 자주 조찬 회의가 열리 곤 했는데 정 박사가 종손의 자격으로 가끔 그 자리에 참석했었던 듯싶었다. 동생인 정세현 회장과 아들 정몽구회장, 정몽헌회장 등이 주 참석자들이었고 가끔 이명박 당시 사장도 참석하곤 했다는 것이었다. 자신은 이명박 사장의 바로 옆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곤 했다고 했다. 정주영회장이 현실 정치에 뜻을 두고 있을 무렵인 것으로 기억했다. 그날 이명박씨가 작심한 듯 정주영회장에게 인천제철을 자신에게 떼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정주영회장이 회의가 끝이 난 직후 자신에게 “별 미친놈 다보겠다. 인천제철을 달라니 가당치 않다!”고 매우 화를 내었다고 했다. 30년 자신이 그토록 입이 달토록  이야기한 평생 직장인 현대를 떠나면서 이명박 당시 회장은 정주영회장과 빅딜을 시도했는데 이것이 수포로 돌아가자 결국 30년 정을 끊고 당시 여당인 민자당의 전국구 의원으로 발 빠른 변신을 하였다는 주장이었다. 이때 이후 정주영 일가와 이명박씨 간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형성되었음에 틀림없다.  


<정치법정과 진실공방>
이의원측은 매번 공판을 전후로 하여 내게 150만원에서 200만원 정도의 생활비를 지급하였다. 그 돈의 전달은 권영옥 국장과 J 조직부장이 주로 하였다. 나는 매달 생활비조로 몇 푼씩 건네 받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그래서 여러 차례 생활비지급 방식을 일괄지급 방식으로 해달라고 건의했으나 나의 열악한 경제사정을 꿰뚫고 있는 그들은 바로 이 생활비 명목으로 건네는 돈으로 나의 목줄을 죄었다. 어떤 때는 40~50일 만에 불규칙하게 지급하는 통에 애를 먹기도 하였다. 그러하면 그들도 제2심의 결과에 자신들의 의도한 대로 잘 나왔을 경우 후사하겠다는 감언이설로 나를 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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