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망각 속 쓸쓸하게 치러진 ‘도산 69주기 추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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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안창호는 한국인이나 해외동포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지난 10일은 도산이 순국한 지 69주기가 되는 날이다. 하지만 이날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100년 전인 1902년, 청운의 뜻을 품고 미국 땅에 와서 동포들과 함께 고생하면서 ‘애국애족’과 ‘조국독립’ 운동을 위해 모범을 보였을 뿐 아니라, 그 자신을 희생했다. 그가 1905년 조직한 항일운동체인 공립협회가 1909년 2월 1일 합성협회와 통합해 탄생된 최초의 재미한인 항일애국운동 연합단체인 대한민국민회 창립 100주년(2009년)이 불과 2년을 앞두고 있다. 또 그가 1913년 5월 13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설립한 청년수양단체 흥사단은 이제 창단 100주년 (2013년)을 앞두고 있다. 대한인국민회와 흥사단은 미주한인사회의 정신적 지주로 볼 수 있는 단체이다. 하지만 훌륭한 선조들과 전통 있는 운동체를 둔 미주 땅의 한인들과 단체들은 이들 선각자들의 유훈을 기념하고 보전하는 일에 대해 너무나도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 또 일부 사람들은 선각자들의 이름을 빌려 자신들의 명예를 알리는데 관심을 둘뿐 존경이나 예의는 아랑곳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번 도산 안창호선생의 69주기 추모식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성 진<취재부 기자>

    


국민회관 기념재단 차기 이사장 선출에 감투 ‘세습화’ 코미디 같은 이사장선출
국민회관 자료 보조비 타내기 위해 한국정부에 ‘부풀린 재정보고서’ 제출 의혹


지난 9일 오후 6시 30분 코리아타운 JJ 그랜드 호텔의 ‘코스모스 룸’에서 흥사단 LA지부(회장 정영조) 주최로 ‘도산 안창호 순국 69주년 추모식’이 열렸다. 도산은 1938년 3월 10일 조국광복을 보지 못하고 옥고를 치루다 서울대 병원(당시 경성제대병원)에서 병보석 중 순국했다.
LA흥사단 주최의 이날 도산69주기 추모식 자리에는 도산의 맏딸 안수산 여사와 외손자 필립 커디 씨를 포함해 정영조 흥사단LA지부 회장 등을 비롯해 불과 14명이 참석했다. 외부 참석자 4명을 제외하면 흥사단 단원은 고작 10명만 참석한 셈이다. 이날 도산과 직접 관련이 있는 <미주 흥사단> 이나 <미주도산기념사업회> 임원들 대부분은 참석하지 않았다. 평소 “도산을 존경한다”고 말하고 다니는 한인 단체장들이나 인사들의 모습도 물론 볼 수 없었다.
한편, 서울에서는 지난 10일 오전 10시 도산공원 묘소에서 흥사단(이사장 박인주)과 도산안창호 기념사업회 (회장 정근모)가 공동주최로 ‘도산 순국 69주년 추모식을 거행했다. 이 자리에는 정부 대표로 박유철 국가보훈처장, 애국단체를 대표해 김국주 광복회장 등을 포함한 내빈들이 참석해 헌화와 분향을 하면서 선각자의 유훈을 되새겼다.  한국에서는 추모식을 위해 1개월 전에 공고했다.
그러나 LA에서는 추모식 공고조차 없었다. 코리아타운 한 호텔 식당의 한 방에서 개최된 ‘추모식’은 제목만 ‘추모식’이었지 도산에 대한 존경이나 예의는 물론 추모의 분위기가 전혀 갖추지를 못한 초라한 ‘추모식’이었다. ‘추모식’ 자리에서는 3월말로 예정된 흥사단 주최의 음악회 준비를 위한 논의가 더 중요 과제로 다뤄졌다. 다만 이날 안재훈 전위원장의 추모 기념 강연만 ‘추모식’ 격식을 간신히 채웠다. 2001년 리버사이드에 건립된 도산 동상 자리가 훌륭한 성지임에도 불구하고 <흥사단>이나 <미주 도산 기념사업회>는 망각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위원장 자리도 세습화
‘네가 내자리 차지해라’
이날 추모식에 참석한 도산의 외손자 필립 커디씨는 아주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그는   캘리포니아 주정부에 비영리재단으로 등록되어 활동해왔던 ‘미주도산기념사업회’(회장 홍명기)가 2005년부터 등록 규정을 준수해오지 않아 주정부로부터 등록이 소멸되었음을 발견하고, 자신이 새로 <도산기념사업회>를 등록시켰다고 설명했다. 참석자들은 놀라움과 수치심을 감추지 못했다. <미주도산기념사업회>는 그 동안 리버사이드 시청 광장에 ‘도산 안창호 동상’을 건립(2001년 8월 11일)했으며, 국민회관 복원(2003년 12월 9일)사업도 주도적으로 추진해 한인사회로부터 존경과 찬사를 받아온 조직체이다. 그러나 국민회관을 복원해 국민회관 기념재단에 계속 주도적으로 참여하면서부터 다른 참여단체인 <흥사단>과 <LA한인연합장로교회>측과의 3각 갈등으로 국민회관 기념관 운영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비난도 받고 있다.
본보에서 그 동안 수 차례에 걸쳐 보도한 국민회관 복원 당시 발견된 ‘다락방 유물’ 보전과 서울 도산기념사업회로 불법 반출된 국민회관 유물 반환에 대해서도 이들 국민회관 기념재단측은 마냥 시간만 허비하고 있다. 이 기념재단은 지난 1월 정기총회에서 홍명기, 백영중, 김도기3인 공동이사장들의 사퇴를 승인하고 새로운 이사장 선출을 위해 5인 선출위원들을 선임했다. 5인 위원은 흥사단을 대표한 정영조LA지부회장, 기념재단을 대표한 잔 서 국장, 교회측을 대표한 김영열 기념관 관리인, 재단 이사회측에서 민병용 이사와 배국희 이사 등이다. 하지만 지난 2월 이들 5인 위원회에서 마련한 차기 이사장 내정 후보 명단은 한마디로 코미디 같은 명단이었다.
차기 이사장도 3인 공동 이사장 제도로 한다면서 백영중 전임 공동이사장이 추천한 정영조 LA흥사단지부 회장, 홍명기 전임 공동 이사장인 추천한 잔 서 국장, 김도기 공동 이사장이 추천한 김영열 관리인 등 3인을 차기 이사장으로 선임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전임 공동이사장들의 후계자들을 선정해 감투의 ‘세습화’를 만들어 내었다. 더군다나 차기 이사장을 선출하기 위해 선정된 추천위원들이 자신들을 이사장에 선임하는 코미디 같은 행태를 보였다.













“액수를 부풀려라”
한국정부에까지 눈 속임
이 같은 국민회관 기념재단측의 부조리한 운영은 한국정부까지 속이는 술책을 마구 저질렀다. 기념재단측은 ‘다락방 유물’ 보존관리를 위해 한국정부 보훈처 등 관련부처에 지원요청서를 보내면서 유물보존비용을 과다하게 청구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재단측은 ‘다락방 유물’에 대한 화학처리 등 보존조치를 담당할 모 대학 학술기관에게 ‘금액을 많게 책정하라’고 요구해 과다 청구된 자료서를 한국정부에 보냈다가, 한국정부 부처에서 ‘비용이 너무 많다’고 하자, 이번에는 해당 학술기관에다 ‘금액을 대폭 축소해달라’고 요청한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한편 이 재단이 지난 1월 정기총회에서 밝힌 재정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정부 보조금, 일반 기부금 등을 포함해 현재 약 9만 달러 정도 기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각을 다투는 ‘다락방 유물’ 보존에 기초작업도 하지 않고 있다. 지난 1년간 수입지출을 보면 주로 김영열 관리인 인건비와 기념관 보수비, 전기세, 물세, 전화비 등 지출이 고작이다. 재정보고서를 보더라도 이 국민회관 기념재단은 해야 할 활동이나 사업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이 분명하다. 국민회관 기념재단은 일반 동포사회로부터 성금을 받고 있는 단체이기에 마땅히 동포사회에 재정보고를 공개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체 이사회에서만 공개하고 있을 뿐이다. 이 재단 이사회는 지난 1월 정기총회에서 차기 사업활동으로 애국선열 추모제 관장, ‘다락방 유물’ 자료 출간, 국민회 자료 출간, 대한인국민회 창립 100주년 기념사업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날 총회에서 결정된 구체적 방안은 결정되지도 않았다. 따라서 이날 논의된 사업 활동들이 실지로 집행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회의 때 마다 그럴듯한 논의와 결정이 이뤄졌으나 실천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 지난날의 과정을 증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민회관 재단 이사회 구성은 <미주도산기념사업회>와 <국민회관 복원위원회>에 관련된 사람들, <흥사단> 관계자들, 국민회관 기념관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측 관계자 그리고 이들 단체들과 관련을 맺었던 커뮤니티 인사들로 되어 있다. 즉, 복원위를 주도했던 홍명기 전 이사장, 흥사단을 대표했던 백영중 전 이사장, 그리고 교회측 김도기 전 이사장 등 3인 중, 홍명기 전 이사장과 백영중 전 이사장이 뒤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두 사람은 겉으로는 상대방이 기념재단 이사회를 이끌어 가야 한다고 ‘소리’를 내고 있지만, 실지로는 다른 생각들을 품고 있다. 이제 이들은 자신들의 측근인 잔서 국장과 정영조 흥사단LA지부회장을 내세워 수렴청정을 꾀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이사들은 ‘어디에 줄 서는 것이 내게 이로운가’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이것이 오늘의 국민회관 기념재단 이사회의 모습이다. 천금 같은 ‘다락방 유물’은 이 시간 현재도 터마이트 공격으로 사그라지면서 썩어가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도산의 리더십이 필요할 때이다













 ▲ 구익균 옹
최근 미국과 북한의 관계 회복이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에 희망을 던져 주고 있다.
반면 나라 안으로는 근시안적인 민생경제와 주택 정책, 교육 정책 등이 서민에게 많은 고통을 안기고 있다.
서민의 꿈은 작은 주택을 갖고 오순도순 평화롭게 차별 없이 잘살아 보는 것이다. 국민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주고 정책을 바르게 행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다. 이처럼 국가가 어려울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한국의 지도자가 도산 안창호 선생이다. 80년 전 상하이에 갔을 때 선생을 처음 만났다. 선생은 젊은 나를 반기고 당돌한 불평을 모두 들어 주며 패기를 잃지 않도록 용기를 주셨다. 덕분에 선생의 비서가 돼 독립혁명사상을 배울 수 있었다.
오늘날 일부 한국인은 추상적 이념을 나눠 서로 비난하며 갈등을 부추긴다. 친미다 반미다, 진보다 보수다 하며 서로 자기주장만 옳다고 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80년 전 상하이에서 독립혁명을 전개할 때도 비슷한 양태를 봤다. 이때 도산 선생은 미국 동포들이 모금해 준 2만5000달러를 갖고 상하이에서 임시정부의 기초를 확립하고 독립혁명운동에 전념했다. 그러나 도산 선생의 헌신적인 운동은 분파주의와 지역주의에 매몰된 사람들의 편견과 방해로 좌절을 겪었다.
선생은 일제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국권을 회복하는 길은 독립전쟁과 혁명운동임을 인식해 민족 내부에서 민주사회정책을 펴려 했다. 그래서 도산 선생과 애국지도자들은 지역주의와 분파적 이념주의를 초월한 인사로 비밀조직 대독립당을 구성해 민족의 독립혁명을 달성하고자 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선생이 일본 경찰에 체포돼 한국에 돌아옴으로써 대독립당 조직은 와해되고 말았다.
10일은 선생이 서대문형무소에서 반죽음이 돼 나와 경성대병원에서 순국하신 지 69주년 되는 날이다. 국가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산 선생처럼 진보와 보수, 민족주의자와 공산주의자를 모두 포용하는 마음 넓은 지도자가 필요하다.
모두가 자신의 이익보다 국가 이익을 우선하는 애국정신을 실천할 때 이 난국을 극복할 수 있다. ‘잃어버린 옛 나라를 찾아 복스러운 새 나라를 건설하자’는 도산 선생의 유훈이 가슴속 깊이 사무친다.
2007년 3월 10일 구익균 도산안창호혁명사상연구원 이사장


구익균 옹 >>
3월10일 도산 안창호 선생 69주기를 추모해 LA에 거주하는 흥사단원인 구익균(99) 도산안창호혁명사상연구원 이사장이 언론사에 보낸 추모사를 공개했다. 미주 거주 최장수 독립유공자인 구익균 옹은 지난 1929∼1932년 상하이에서 도산 선생을 측근에서 도운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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