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골프장 사장 납치사건으로 드러난 정인숙 아들 정성일의 실체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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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권 최대의 미스터리 사건으로 남아있는 이른바 ‘정인숙 피살사건’이 또 다시 세인들의 입에서 회자되고 있다. 지난 달 26일 인천 국제공항 여객터미널 횡단보도에서 한성골프장 사장 강모(59)씨와 그의 아들(24), 운전기사 은모(42)씨 3명이 납치된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던져주고 있는 가운데,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정성일씨가 지난 16일 긴급 체포되면서 정씨가 바로 70년 ‘의문의 피살사건의 주인공인 정인숙 여인의 아들임이 알려지면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3공시절 수많은 권력자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지며 희대의 요화로 알려진  ‘의문의 피살’ 주인공의 아들인 정성일씨가 지난 2월 20일 정씨가 서울 한 식당에서 강 사장의 외삼촌 윤모(66·구속)씨,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 김모(41·구속)씨를 만나 윤씨에게서 골프장을 빼앗으면 1500억원을 줄 수 있느냐며 제의, 윤씨가 수락하자 행동대원들을 끌어 모아 납치극을 꾸민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의 출생 비밀과 생부로 알려진 정일권 전 총리를 상대로 ‘친자확인소송’제기 후 ‘1백만달러 합의’ ‘탕진’ 신분도용사건 후 추방으로 이어지는 정씨의 인생유전 인생의 숨겨졌던 비밀들이 수면위로 떠 오르고 있다.
황지환(취재부 기자)













 ▲ 정성일
‘나는 정인숙 여인의 아들 정성일’


경찰이 정씨를 검거할 당시 BMW를 몰고 강남구 논현동의 한 룸살롱에서 역삼동 K호텔로 대리운전을 시킨 첩보를 입수, 이 호텔을 비롯한 인근 10여개 호텔을 탐문해 검거했다고 설명했다. 체포 당시 정씨는 ‘리처드 박’이라는 이름으로 투숙했으며, BMW는 LG카드 명의의 리스차량인 것으로 확인됐었다. 체포 당시 그는 “리처드 박”이외 2-3개의 가명을 사용했고, 자신을 M&A 전문가로 소개하며 국내에서도 사기 행각을 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찰 조사과정에서 정씨는 3공화국 시절 한강변 의문의 권총피살 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정인숙 씨(사망)의 친아들인 것으로 밝혀져 더욱 세간의 관심을 끌어왔으며, 경찰조사과정에서 언론에 자신이 정여인의 아들이라는 점이 보도된 데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성일씨의 모친은 다름아닌 지난 1970년 3월 17일 서울 마포구 강변대로 코로나 승용차 안에서 미모의 26세 여인이 목과 가슴에 두 발의 총알을 맞고 숨진 채로 발견된 정인숙의 아들이기 때문이었다.
이 사건이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그녀가 고급요정 선운각의 얼굴마담인 데다 그녀가 가지고 있던 수첩에 정·재계 거물 26명의 이름이 적혀있다는 사실이 알려 지면서부터다. 당시 여권발행이 힘들었던 시절에 복수여권까지 소지하고 있어 더욱 그녀에 대한 관심은 증폭될 수 밖에 없었다.
정인숙씨는 1945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본명은 정금지. 대구에서 초·중·여고를 졸업했고 아버지는 대구부시장을 지냈었다. 영화배우의 삶을 꿈꿨던 그녀는 우여곡절 끝에 비밀요정으로 가게 되었고 당시 검찰은 정 여인의 오빠가 여동생의 문란한 사생활에 분노해 살해했다고 발표했지만, 사람들은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끊임없는 의혹들이 제기되었다. 더욱이 그녀가 낳은 세 살배기 어린 아들의 아버지가 국무총리라는 소문이 돌면서 아버지 진실공방이 소송으로까지 번지기도 했다.
이처럼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온 그녀의 어린 아들은 다름 아닌 골프장 사장 납치사건으로 주목된 정성일 씨다.













정일권 전 총리 상대로 친자확인소제기 후 돌연 취하
 
베일에 쌓인 정 씨는 지난 93년 쓴 자서전 <저는 당신의 아들이었습니다>에 기술된 내용에 의하면 외할머니 손에 자랐으며 외할머니가 작고하지 친척을 통해 어머니 ‘정인숙’의 존재를 알게 된다. 고교 2년 재학 중이던 1985년 이곳 LA로 유학을 왔으며 USC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으며 졸업 후 금융회사, 한인 경영의 A자동차회사 세일즈맨으로 근무하다가 91년 한국으로 돌아와 동생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어 10년 실형을 살고 출소해서 사업을 하고 있던 외삼촌 정종옥씨를 만나면서 자신의 생부가 정일권 전 국무총리라는 말을 듣게 되었고 같은 해 6월 정 전 총리를 상대로 ‘친자확인’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한 달 만에 돌연 소를 취하하고 돌연 LA로 다시 들어와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며 주지육림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LA에 사는 교포들은 그때부터 정씨가 바로 ‘정인숙’의 아들이며 생부가 정일권 전 총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정씨 스스로가 자신을 소개하면서 항상 ‘내 생부가 정일권 전 총리이며 정인숙 여인의 아들’이라는 것을 은근히 과시하고 다녔다. 그리고 한국을 다녀온 후부터 돈을 물쓰듯 쓰고 다녔다. 웬만한 룸 사롱에서는 정씨를 ‘돈 잘 쓰는 정일권 전 총리의 아들’로 알고 있었고 친자확인 소송 취하 조건으로 정일권 씨로부터 100만달러의 거액을 받고 합의를 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친자확인소 취하에 대한 의혹이 결국 돈으로 해결되었다는 사실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 같은 소문은 정씨 스스로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흘린 말이며 고급 주택에 최고급 자동차를 구입하고 항상 주변에 여자들로 가득 차 호사스런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 정씨와 새기던 한 여인은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내가 알고 잇는 것은 정씨가 친자확인 소 취하로 80만 달러를 생부에게 받았다는 사실만 알고 있다’고 말하며 ‘그러나 불과 2년도 안돼 합의금으로 받은 돈을 모두 탕진하고 결국에는 ID신분도용 사건으로 체포되어 구속되었다가 사귀던 여자의 도움으로 베일본드(보석금)을 내고 풀려난 후 재판도 받지 않고 한국으로 도주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 놓았다.


‘추방이냐? 도주냐?’ 신분도용사건 연루 추측 난무


돈이 떨어진 정씨는 93년 다시 한국에 나가 다시 친자확인 소송을 제기하려 했으나 정전총리가 지병으로 병상에 있어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던 중 다음 해인 94년 별세하자 다시 LA로 돌아왔다. 그 후 정씨는 훤칠한 키와 외모를 지닌 그는 D만두 식품 회사 딸과 결혼을 해 딸을 낳고 살았으나 허황된 꿈과 개인 사생활이 복잡해 순탄치 않은 결혼 생활을 해왔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씨는 2002년 6월 한인 4명의 명의로 크레딧카드 여러 장을 발급 받아 사용한 혐의로 체포되었다가 사귀던 애인의 도움으로 베일본드(보석금)를 내고 석방된 후 재판을 받지 않고 한국으로 도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아직 정확한 내용이 밝혀지고 있지 않다. 한국 검찰과 언론에 의하면 정씨가 려지고 있으나 한국의 언론들은 정씨가 2005년 이 사건으로 실형을 살고 추방을 당했다고 보도되고 있으나 ‘추방인지?도주인지’ 아직 파악되고 있지 않아 현재 본보에서 사실관계 여부를 파악 중에 있다. 이 사건으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 온 정씨는 이후 특별한 수입 없이 거액의 돈을 물쓰듯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지난 해 6월 강남에 B&A와 풍력발전소 건설 계획을 추진하는 사무실을 내고 압구정동 아파트에 BMW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호사스런 생활을 하던 정씨가 최근에는 사무실 임대료를 내지 못할 정도로 쪼들린 생활을 하고 있다가 이번 납치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보여진다. 검찰은 정씨가 납치사건 이외에도 다른 사기사건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까지 가담한 한성골프장 사장 납치사건 전모


복잡한 사생활과 허황된 꿈이 부른 자업자득 결과
제3공화국 최대 미스터리 사건의 주인공인 정인숙씨의 아들 정모(39)씨가 한성골프장 사장 납치에 개입한 뒤 달아났다가 사건 발생 18일 만에 H 호텔에서 긴급 체포되었다. 체포 당시 미국 명 리처드 박이라는 이름으로 투숙했었고, 타고 있던 BMW는 LG카드 명의의 리스차량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정씨는 지난 2월 20일 정씨가 서울 한 식당에서 강 사장의 외삼촌 윤모(66·구속)씨,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 김모(41·구속)씨를 만나 윤씨에게서 골프장을 빼앗으면 1500억원을 줄 수 있느냐며 제의, 윤씨가 수락하자 행동대원들을 끌어 모아 납치극을 꾸민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정씨는 경찰에서 “가짜 (체포)영장만 들고 있으면 된다고 하는 등 모든 일은 김 변호사가 시킨 일”이라며 “난 납치극 내용 자체를 몰랐고 하수인에 불과하다”고 진술하며, 주범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들은 강 사장 납치 범행을 모의하면서 당시 정씨는 “(골프장) 강 사장을 공해상에서 수장시키거나 독극물로 죽일 수도 있다. 강 사장의 소재를 영원히 밝힐 수 없도록 해주겠다”고 말하는 등 납치극을 사실상 지휘했다고 공범들은 진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반면 그는 납치에 개입한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납치극을 주도한 것은 윤씨와 김 변호사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전해졌으며 범행을 사실상 진두 지휘한 것으로 드러난 변호사 김모 씨는 부장검사 출신인 것으로 드러나 놀라움을 더하고 있다.
김 씨는 1992년 검사로 임관한 후 인천 및 서울지검 등을 거쳐 2005년 지청 부장검사를 역임했었고, 지난해 변호사를 개업한 김 씨는 2003년 국가정보원 파견근무를 하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특히 김씨는 범행에 사용할 체포영장을 위조하고 납치 실행자들에게 도피자금을 대 주는 등 납치에 적극 가담한 것으로 밝혀졌다.


의문의 피살 정인숙은 누구?












 

정인숙씨는 1945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본명은 정금지. 대구에서 초·중·여고를 졸업했고 아버지는 대구부시장을 지냈었다. 영화배우의 삶을 꿈꿨던 그녀는 우여곡절 끝에 비밀요정으로 가게 되었고 당시 검찰은 정 여인의 오빠가 여동생의 문란한 사생활에 분노해 살해했다고 발표했지만, 사람들은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끊임없는 의혹들이 제기되었다. 더욱이 그녀가 낳은 세 살배기 어린 아들의 아버지가 국무총리라는 소문이 돌면서 아버지 진실공방이 소송으로까지 번지기도 했다.
정인숙 씨는 1970년 3월17일 서울 한강로변에 세워진 코로나 자동차에서 총에 맞은 채 변사체로 발견됐다. 당시 26살이었던 그녀는 선운각 등 최고급 요정에서 호스티스로 일하면서 고위층 인사와 교분을 가져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3살 된 아들을 둔 미혼모였기 때문에 그녀의 죽음 후 아들의 아버지가 누구냐를 놓고 소문이 무성했다. 특히 ‘최고 권력자와 내연관계’ ‘정일권 국무총리와 동거’ 등 각종 설과 맞물려 3공 최대의 섹스 스캔들로 비화하기도 했다. 경찰은 오빠인 정종욱 씨가 사생활이 문란했던 동생 정인숙 씨를 권총으로 살해하고 자살하려 한 것이라고 수사 발표했지만 이 또한 의문이 제기되어 왔다.
한편 사건 당시 3살이던 아들 정성일 씨가 1991년 “대한민국에서 대통령만 빼고 높은 자리는 거의 다 해본 정일권 씨가 아버지”라고 주장하며 친자확인소송을 제기해 정인숙 씨가 또 다시 세인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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