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종 – 신영, 월셔가 40층 주상복합 신축계획 발 꼬이다’ <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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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움 남매들간  치열한 법정소송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가족 중의 한 사람이 당신을 보고 “너는 우리 집 가족이 아니야!” 라고 선언했다면 당신은 어떡하겠는가. 황당할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일이 실제로 LA한인사회에서 일어났다.  이 사건은 지금 LA 카운티 법정에서 2년째 공방을 벌이고 있다.
사건번호 BC343382로 법정에 수록된 소장들을 살펴보면 할리우드 영화같은 스토리감인 이 사건의 한쪽 주인공이 타운에 화제를 몰고 온 40층 호화 콘도 를 건설한다는 신영 윌셔 콘도 건설에 깊게 참여하고 있는 ‘밀레니엄’의 대표 찰스 이씨(한국명 이장호)이다. 
찰스 이씨는 신분이 온누리교회의 선교목사로 되어있다. 목사 신분인 찰스 이씨는 지난 17년간 함께 가족회사 ‘밀레니엄’을 공동 운영했던 친 누나 세리 이씨를 어느 날 갑자기 자신과의 동업을 없던 것으로 만들어 아예 회사 임원 명단에서 삭제해버렸다.  그 같은 일은 누나 세리 이씨가 마침 결혼해 신혼여행을 갔다 온 사이에 저질러진 사건이었다. 황당한 누나 세리 이씨는 너무나도 충격에 빠져 유산까지 하는 고통을 당했다.
지난 2005년에 시작된 법정소송을 통해 누나 세리 이씨는 자신이 동생 찰스 이씨와 함께 가족회사인 ‘밀레니엄’을 운영하면서 동생 찰스 이씨와의 파트너로서의 신분을 나타내는 비즈니스 기록, 서류 등은 물론 자신이 동업자였음을 확인시켜주는 등 이에 관련된 증인만도 50여명이나 확보해 동생 찰스 이씨의 부조리를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
처음 이들 3형제, 제임스 이, 세리 이 그리고 찰스 이씨 등이 가족 회사를 운영했는데 이들 모두 나름대로 비즈니스에 일가견을 지니고 있다. 형 제임스 이씨는 처음 부동산 중개인이었다가 나중에는 건축업자가 되었다. 세리 이씨는 미술대학에서 실내장식을 전공한 후 나중 부동산 개발 업계에 뛰어 들었다. 동생인 찰스 이씨는 신학대학을 졸업한 후에 부동산 브로커 면허를 취득했다.  하지만 부동산 브로커로서는 큰 활약은 없었다. 한 때 찰스 이씨는 돈 많은 장인과 가족들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변호사가 되기 위해 법과대학에 진학했다. 지난 80년대 이들 형제 자매들은 각기 부동산 분야에서 나름대로 실력을 쌓아 나갔다. 찰스 이씨가 법과대학에서 공부하는 동안 이들의 어머니인 아만다 이씨와 자녀들은 가족회사 KSJ,Inc.(3545 Wilshire Bl.)를 1996년 11월에 정식으로 설립했다. KSJ라는 상호는 세리(Sherry)와  제임스 (James)의 이름의 이니셜을 따서 붙인 것이다. 약 1년간 KSJ로 운영하다가 상호를 ‘밀레니엄 인베스트먼트’(Millennium Investments)로 바꾸었다. 


밀레니움 탄생의 배경과 과정


한편 세리 이씨는 1995년 당시 캘리포니아 주정부 재무관인 매튜 퐁에 의해 주정부 주택재정위원회 위원으로 임명 받으면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실력 있는 인사들과의 교분으로 비즈니스를 성공적으로 키워 나갔다.  주정부 재정위원회 위원으로서 세리 이씨는 자연히 주택건설 사업에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게 됐으며, 이 중 데이빗 마이와 연결되어 가족회사 ‘밀레니엄’이 최초로 LA지역에 113개 주택 건설을 성공적으로 이루었다. 이것이 “크레센트 빌리지”(Crescent Village)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세리는 ‘밀레니엄’의 파트너 자격으로 게이트 웨스트 컨스트럭션 (Gate West Construction, Inc.)의 데이빗 마이와 프랭크 리우를 동업자로 하여 CMI Development LLC라는 유한회사를 설립했다. 또한 이 프로젝트를 통해 세리 이씨는 이스트 웨스트 뱅크의 회장인 도미니크 농을 알게 되어 크레센트 빌리지 건설을 위한 융자를 받았으며, 역시 설계회사인 그루엔 어소시에이트이가 주택설계를 담당했다. 그리고 에스크로 회사 대표인 마리아 마티네즈도 알게 됐다. 크레센트 빌리지가 건축되는 동안에도 세리 이씨는 ‘밀레니엄’의 동업자로서 매튜 퐁 재무관과 함께 저소득층주택 포럼에도 참석하면서 관련업계 인사들을 만났다.
이 중에는 후일 ‘빌리지 케어’(Village Care) 프로젝트를 함께 할 그레이그 존슨과 톰 딘을 만나게 된다.  세리 이씨는 크레센트 빌리지 완공으로 ‘밀레니엄’에 11만2천 달러의 이익을 가져다 주었다. 여기서 발생한 이익금중 일부를 가족회사 KSJ가 한미은행에 계좌를 개설할 때 예치금으로 사용했는데, 당시 예치된 수표는 세리 이씨가 참여한 CMI Development LLC 회사 배당금으로 받은 것이다. 이 같은 기금은 가족회사 KSJ 에서 제임스, 세리 그리고 찰스 이씨 등의 월 배당금조로 지출됐고, 회사가 1999년 2월 자금이 고갈될 때까지 회사 운영비로도 쓰여졌다. 그 당시 ‘밀레니엄’ 회사는 찰스 이씨가 개설한 밀레니엄 인베스트먼트 계좌에서 지출됐다. 이 같은 상황이 향후 5년간 지속됐다. 찰스 이씨는 법과대학을 수료한 후 ‘바인 브라더스’와 ‘S-코퍼레이션’과 관련을 맺었다.
또한 찰스 이씨는 라스베가스에서 리커 스토어로 거부가 된 장인 이해언씨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었다.  이해언씨는 라스베가스 인근에서 최대의 매장과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Lee’s Liquor Store’의 회장이다. 그는 라스베가스 올드 타이머로 한인회장도 역임하였고 최근까지 한미 시민권자협회를 이끌어왔다.  













누나를 주축으로 한 가족회사의 성장


한편 세리 이씨는 다양한 정치인들을 포함해 사업상 유익을 줄 수 있는 사업가들과의 교제를 통해 가족회사의 프로젝트를 운영해 나갔다. 1996년부터 2004년까지 세리 이씨와 찰스 이씨 등 형제들은  ‘밀레니엄 인베스트먼트’(나중에 밀레니엄 엔터프라이스로 변경) 산하에서 여러가지 프로젝트를 함께 운영했다. 형 제임스 이씨는 ‘ATO 콘트랙팅 서비스’라는 이름을 사용해 가족회사의 건축사업을 담당했고, 세리 이씨는 ‘마벨라 컨셉 엔 디자인’이라는 인테리어 회사 명의로 프로젝트의 디자인을 담당했으며, 찰스 이씨는 재무를 담당했다.
그러던 중 2004년 여름에 개인적으로 문제가 있던 제임스 이씨가 세리 이씨를 밀레니엄 사무실에서 신체적인 위협을 가하고, 밀레니엄 직원들에게도 위협을 주는 사태가 야기되면서 가족회사에서 갈라지게 됐다.
이로인해 제임스 이씨는 자신의 개인회사인  ATO 콘트랙팅 서비스를 법적으로 가족회사와 분리시켰다. 그리고 2004년 9월과 12월에 각각 합의서를 작성해 가족회사에서 자신의 지분 1/3을 세리 이씨와 찰스 이씨 형제에게 반반씩 양도했다. 이로서 지금까지 3명의 형제가 운영했던 가족회사는 세리 이씨와 찰스 이씨가 공유하게 된 것이다.
이후 세리 이씨와 찰스 이씨는 밀레니엄 회사를 재조직하기로 하면서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관리할 지주회사를 구성키로 했다. 이를 위해 찰스 이씨는 법적인 서류들을 관장하기 위해 새로 존 보스틱크를 영입했고, 새로운 지주회사는 ‘밀레니엄 퍼시픽 아이콘 그룹’(“MPIG”, Millennium Pacific Icon Group)로 명명했다. (바로 이 ‘밀레니엄 퍼시픽 아이콘 그룹’이라는 회사가 최근 (주)신영과 함께 3억 달러 초 고급 콘도 건설 프로젝트에 주관 회원사로 참여한 것이다. 여기에 대표는 찰스 이씨로 되어 있다.) 


교묘한 위장술로 100% 단독 보유


한편 세리 이씨의 추천으로 ‘밀레니엄’측은 그녀의 오랜 친구인 로이 우치텍크를 영입해 “MPIG”를 유한회사(LLC)로 만드는데 참여시켰다. 또한 세제 관리를 담당하기 위해 매튜 리처드슨을 영입했다. 2005년 6월 7일 밀레니엄 운영회의가 리처드슨 주재로 그의 다운타운 법률사무소에서 가졌는데, 이자리에서 리처드슨은 찰스 이씨와 세리 이씨를 대신하여 밀레니엄의 운영합의서 (Operating Agreement)를 작성하는 담당자로 선정됐다. 운영합의서는 보통 LLC(유한회사)에서는 기본적인 법적문서로 이것이 없이는 은행 등에서 융자도 해주지 않는다. 
나중 재판에서 리처드슨은 찰스 이씨의 측근인 보스틱크는 리처드슨에게 찰스 이씨와 세리 이씨가 50/50의 파트너라고 알렸으며, 이에 대해 그자리에 있던 찰스 이씨는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이같은 의미는 세리 이씨와 찰스 이씨가 회사에서 동업관계라는 뜻이다)
그 날 회의 이후 보스틱크는 리처드슨과 찰스 이. 세리 이씨 등을 포함 팀멤버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밀레니엄의 재조직이 완결됐다고 통보했다. 이메일의 처음 항목은 찰스 이씨와 세리 이씨가 이 회사의 ‘매니저’로 50/50 파트너라면서 운영합의서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이메일에서는 보낸 내용 중에서 수정할 사항이 있는가라는 질의에도 찰스 이씨는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
리처드슨은 보스틱크의 지시에 따라 운영합의서를 준비했으며 초안 검토를 위해 2005년 7월 25일에 보스틱크에게 보냈다. 보스틱크는 다시 그 초안을 찰스 이씨에게 보내면서 수정할 사항이 있는가라고 요청했다. 이 같은 과정에서 찰스 이씨의 지시에 따라 보스틱크는 운영합의서에다 찰스 이씨가 ‘밀레니엄’의 100% 소유자로 변경시키면서, 한편 세리 이씨의 관한 사항들을 모두 삭제시켰다. 이렇게 만들어진 운영합의서에 찰스 이씨가 서명을 하였으며, 그 서류를 2005년 8월 9일에 매트 리처드슨의 보좌관인 소렌손에게 보냈다. 세리 이씨는 이같은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보이며, 운영합의서는 애초 6월에 임원들이 합의한대로 자신과 동생 찰스 이씨가 50/50 파트너로 작성된다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
세리 이씨는 2005년 9월 1일 신혼여행에서 돌아 오면서 자신의 위치가 크게 달라졌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회사 전문법률팀 세퍼드 뮬린에게 연유를 묻자, 날라온 대답은 “찰스 이씨가 회사의 유일한 법적인 ‘매니징 멤버’(LLC형태의 유한회사에서는 매니징 멤버(Managing member)가 최고 책임자가 된다)이다”였다. 말하자면 세리 이씨는 파트너도 아니고 임원도 아니라는 뜻이다. 자신의 신분과 법적 권리를 되찾기 위한 세리 이씨의 소송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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