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제 2의 탄핵기획설’ 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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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 생각하니 좀 끔찍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2일 자신의 핵심 측근들로 구성된 참여정부평가포럼(대표 이병완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서 정말 ‘끔찍한’ 말을 했다. 한나라당이 집권할 경우 나라가 어지러울 것이란 뉘앙스로 노골적인 ‘선거 개입’ 발언을 서슴없이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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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은 “한나라당이 무슨 일을 할까 예측하려면 전략을 봐야하는데 그 전략이 뭔지 알 수가 없다. 책임 있는 대안을 내놓은 일이 거의 없고 앞뒤가 맞지 않고 말과 행동이 다른 게 너무 많다. 무책임한 정당이란 것은 분명하다”고도 했다.
 또 한나라당 두 유력 대선주자에 대해서도 원색적인 비판을 가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겨냥해선 “제정신 가진 사람은 대운하에 투자하지 않는다”고 했다. 박근혜 전 대표를 공격하는 대목에선 “해외신문에서 ‘독재자의 딸’이니 뭐니 그렇게 나오면 곤란하다”고 말했다.
 당연히 한나라당은 “대통령의 주치의를 정신과 의사로 바꿔야 할 것 같다”는 등 원색적인 용어를 총동원하면서 노 대통령을 비난했다. 그러면서 ‘탄핵론’까지 나왔다. 박 전 대표 캠프의 이정현 공보특보는 “노무현 대통령의 또 다른 선거개입이자 불법 사전선거운동으로, 그 자체가 탄핵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대통령의 발언은 한나라당 후보가 대선에서 당선되지 못하게 하려는 것으로, 명백한 선거법 위반”이라며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규정한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한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탄핵’을 직접 입 밖에 올리지는 않았지만, 탄핵감이라는 뉘앙스가 강하게 풍겼다.
 헌법학자들 가운데서도 “대통령의 발언은 한나라당 대선 주자들을 폄훼하면서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탄핵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이 많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은 이번 발언으로 탄핵 논란이 일 것을 몰랐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노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를 노리고 의도적으로 선거에 개입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말을 했다는 관측이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노 대통령은 이미 ‘선거 개입’ 발언으로 한차례 탄핵을 당한 바 있다. 지난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총선에서 개헌 저지선까지 무너지면 어떤 일이 생길지 정말 말할 수 없다”,  “국민이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한 것이 빌미가 됐다.
 4·15 총선 직전에 나온 이 발언들은 즉각 선거법 위반 논란을 낳았고 중앙선관위는 며칠 후 “노 대통령의 발언이 선거법상 공무원의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고 결론 내렸다. 이에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국회에 탄핵소추안을 발의했고, 헌법재판소는 같은 해 5월 탄핵 사건을 심판하면서 “대통령도 선거법상 중립 의무가 있는 공무원에 해당한다”고 판단, 선관위의 결론을 재확인했다.
 헌정 사상 첫 현직 대통령 탄핵이란 ‘뜨거운 맛’을 본 노 대통령이 연말 대선을 앞두고 왜 다시 논란이 일 것이 분명한 선거개입 발언을 했을까. 더구나 2일 특강에서 한 말은 2004년 선거법 위반을 이유로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될 당시의 언급 수위보다 훨씬 높다.














이 대목에서 노 대통령의 ‘제2의 탄핵 기획설’이 나온다.
2004년 당시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강행하자 ‘노사모’를 중심으로 엄청난 국민적 저항이 일었다. 이른바 ‘탄핵역풍’이 몰아쳐 한나라당은 막판 박근혜 대표가 일으킨 바람에도 불구하고 원내 제1당 자리를 열린우리당에 내줘야 했고, 민주당은 이후 지리멸렬했다.
 노 대통령은 탄핵역풍으로 일거에 정국주도권을 장악한 그 때의 경험을 살려 이번 대선국면에서 의도적으로 탄핵을 유도하고 있다는 분석에서 ‘제2의 탄핵 사태 기획설’은 출발한다.
 현재 범여권은 사분오열 돼 있다. 반면 한나라당은 이명박·박근혜, 두 유력주자가 지지율면에서 압도적인 1, 2위를 차지한 채 경선흥행까지 벌이고 있다. 한나라당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상태로 간다면 정권재창출은 난망하다.
 따라서 노 대통령 입장에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고, 자신이 탄핵을 당해 임기가 단축되더라도 정치권에 탄핵정국이 다시 조성되면 범여권이 결집할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란 관측이 정가에서 나돈다.
 임기 말을 맞은 지금 상황에서 자신이 탄핵을 당하더라도 2004년 같은 국민적 저항이 일 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범여권을 결집하는 효과를 낼 것으로 내다봤다는 관측이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이 탄핵까지는 아니더라도 대선정국의 전면에 부상하기 위해 일부러 한나라당을 겨냥해 격정적인 말을 쏟아냈을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자신에 대한 한나라당의 공격이 거세질수록 노 대통령은 대선정국의 주요 변수로 자리 잡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대선정국에서 ‘노무현’을 배제할 수 없다. 이른바 ‘비노(非盧)’ 그룹에서 주장하는 ‘노무현 배제론’은 현실적으로 힘을 잃게 되는 것이다.
 이전에도 노 대통령은 올 초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을 전격 제안했고, 최근에는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라는 기자실 개편을 추진하는 등 끊임없이 정치적 의제를 설정하면서 대선정국에서 존재 가치를 과시해 왔다. 현시점에서 이런 정치적 의제는 곧 대선 의제가 됨으로써 노 대통령의 대선 영향력이 생긴다.
 어쨌든 이번 참여정부평가포럼에서의 발언이 의도된 것이라면 그 효과는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한나라당이 선관위 고발을 운운하고 있고, 일부에서 탄핵 이야기도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선관위도 선거법 위반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은 만큼 노 대통령은 대선정국에서 다시 주요 화두로 부각됐다.
 특히 청와대가 “앞으로도 참여정부 정책이 폄하될 경우 대통령이 적극 반론을 펼칠 것”이라고 예고한 만큼 노 대통령이 한나라당을 자극하는 제2탄, 3탄의 ‘폭탄 발언’을 계속해서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


<김한필·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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